겉 ‘에겐남’ 속 ‘테토남’을 추구하는 진짜 테토 ‘남돌’ 시대
‘남자병 퇴치’와 ‘외모 관리’, 남자 아이돌은 어쩌면 가장 젠더적으로 진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난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선보인 NCT WISH의 ‘TT’(원곡 TWICE) 커버 무대는 공개와 동시에 아이돌 팬 사이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유튜브 클립 조회수 170만 회를 기록하며 같은 날 무대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영상의 인기 댓글들은 이렇다. ‘멋있는 건 한철이지만 귀여운 건 평생 간다’ ‘요즘은 여돌도 이 정도 콘셉트는 안 하는데 위시가 해줌’ ‘여성안심쉼터’ ‘진정한 테토 그룹’ 등등. 특히 흥미로운 건 마지막 댓글이다. 흰색 털옷에 빨간 귀모자, 날개를 달고 춤추는 NCT WISH가 진정한 ‘테토(테스토스테론) 그룹’이라니? 하지만 이런 반응은 최근 K-팝 팬덤 내에서 어색한 것이 아니다. 가죽 재킷의 올 블랙 착장, 근육이 펌핑된 몸…. 흔히 ‘남성적’으로 분류되는 이미지에 국한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 선상에 놓인 것을 기꺼이 해내며 남성성에 연연하지 않는 것. ‘내 여자(팬)’가 원한다면 빼지 않고 애교든, 귀여운 동물 머리띠 착용이든 해주는 것. 이런 호쾌하고 프로페셔널한 태도가 오히려 ‘남자답게’ 느껴진다는 흐름이다.
영국 전래 동요인 <마더 구스>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여자아이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설탕, 향신료, 그리고 온갖 근사한 것들. 남자아이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개구리, 달팽이, 강아지 꼬리….” 하지만 지금의 많은 남자 아이돌, 특히 신인을 구성하는 것은 설탕과 향신료에 가까워 보인다. 반짝이는 피부 톤에 핑크 블러셔를 넓게 펴 바른 메이크업은 물론, 귀여운 각종 챌린지와 기꺼운 애교 포즈까지! 4집 미니 앨범 타이틀곡 ‘Overdrive’의 ‘앙탈 챌린지’가 뒤늦게 화제를 일으키며, 음원 순위 역주행에 성공한 TWS(투어스)도 이런 흐름의 중심에 있다. 청량 콘셉트로 데뷔해 3년 차에 접어든 TWS 멤버들은 한발 더 나아가 서로의 ‘남자병’을 관리한다. ‘남자병’은 남자 아이돌이 20대 중반 즈음 되면 근육을 키우거나, 태닝과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등 귀여운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 팬덤이 사용하던 유행어를 이제는 아티스트 당사자도 인식한 것이다. 위버스 라이브에서 맏형 신유가 혼자 애교를 하지 않자 다른 멤버들이 직접 포즈를 취하게 하는 장면이나, 웹예능에 출연해 “남자병이 올 뻔했는데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멤버 스스로 말하는 장면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런 흐름은 신인 아이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1월 오랜만에 컴백한 엑소 멤버들은 음악방송 비하인드 영상에서 컴백을 앞두고 ‘아이돌은 외모도 실력’이라며 서로의 외모를 철저히 점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대 후 너무 아저씨 같아 걱정했는데 많이 노력했다’라는 형들의 일침 앞에 막내 세훈은 식단을 인증하기도 하고, 카이와 찬열은 ‘몸이 커진 게 멋있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나중에 보니 팬들도 그때 내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아이돌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제대 후 차근차근 근육을 줄이는 과정을 나누고 팬들에게 피부 관리법을 묻는 NCT 태용이나, 최근 피부 관리 루틴을 공개하며 언급한 제품이 실시간 트렌드에 오른 해찬 등 다이어트와 스킨케어는 남자 아이돌이라면 10년 차에도 당연한 일이다. 흔히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요구해온 외모 관리, ‘코쪼(코르셋 조이기)’가 가장 대등하게 적용되는 직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단순한 즐거움이자 ‘밈’으로 즐겨도 될까? 남자 아이돌들이 적극적으로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 정신이다.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고 사랑받는 것. 이는 자발적인 상호작용일 수도 있지만, 소비자(팬)에게 선택받기 위한 노동일 수도 있다. <환상통> <성소년> <나의 천사> 등 아이돌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펴낸 소설가 이희주는 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가끔은 소년들의 애교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수십 번씩 반복되는 고양이 흉내가 아닌, 기꺼이 그걸 해주는 ‘순응의 자세’라고. (중략) 나는 그들이 우리를 ‘사랑’한다며 보여주는 태도가 진심이길 바란다. 노동의 밖에서도 지속되길 희망한다.” 아이돌이 보여주는 달콤한 태도가 결국은 팬서비스라는 노동이자 스스로의 상품화라는 걸 알지만, 그 일부에 ‘진심’이 있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아이돌의 ‘비남성성’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는 팬들 스스로 마음에 거는 안전장치기도 하다. 과거 오빠들의 여성혐오 발언이나 범죄를 겪어온 팬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를 끊임없이 찾으려고 한다. 커뮤니티 플랫폼 게시판과 라이브는 물론, 버블과 DM 같은 개인 소통 서비스, 팬 사인회 등 끝없이 일상이 공유되는 요즘은 특히 그런 단서를 모으는 게 한층 쉬워졌다. 옛날처럼 “제 여자친구는 팬들뿐이죠”라는 듣기 좋은, 그러나 허무맹랑하고 무책임한 한마디로 넘어가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멤버끼리 스스로 ‘아이돌스러움’을 검열하는 태도를 보일수록, 팬들은 안심하고 팬 활동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 모든 것이 행여 상업적인 셈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해도, 젊은 여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K-팝 신에서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일부나마 존중받는 것을 부정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10여 년 전 시작된 ‘미투’를 계기로 대대적인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났을 때 여성들의 요구에 가장 빨리 응답한 분야 중 하나도 K-팝 신이었다. 2016년 BTS의 소속사 빅히트와 멤버들은 당시 그룹의 가사 중 일부를 지적한 ‘#BTS피드백을원합니다’라는 팬덤의 단체 행동에 신속하고 성실하게 답했다. 다소 과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앞태도 최고 뒤태도 최고(‘호르몬 전쟁’)’나 ‘명품 백을 쥐기보다 내 손을 잡아주는(‘Miss Right’)’ 같은 가사의 곡을 콘서트 무대에서 더는 보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대다수 남성들이 경제력이나 학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 외에 인간적으로 사랑받을 요소를 가꾸는 데는 무감했던 한국 사회에서, 사랑받을 ‘노력’을 하고 실천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 그게 여자들이 아이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닐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오랜 진리에 기댄다면, 결국에 약자는 지금 애교를 바라보며 웃는 팬들이기도 하다.
NEW ALBUMS

YENA | LOVE CATCHER
<달빛천사> 오마주와 하츠네 미쿠와의 협업 등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솔로로서 예나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타이틀곡 ‘캐치 캐치’는 뮤직비디오를 꼭 함께 볼 것. 콘셉트에 가려져 다소 빛을 보지 못한 예나의 미성이 돋보이는 곡도 주목할 만하다. ‘4월의 고양이’ 작사에 참여한 한로로를 비롯해 윤마치와 폴킴 등 협업 리스트에서 예나의 음악적 욕심이 엿보인다.

ONEW | TOUGH LOVE
온유가 총 5곡이 수록된 미니 5집 앨범으로 돌아왔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작곡에 참여한 타이틀곡 ‘TOUGH LOVE’는 플레이어로서 온유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곡이다. ‘Flex on me’ ‘X, My Love’ 등 전체적으로 세련된 감각이 돋보인다.

P1HARMONY | UNIQUE
‘빌보드 200’ 진입을 비롯해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피원하모니는 ‘UNIQUE’라는 단어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팀이다. 총 6개 트랙은 전반적으로 묵직한 드럼 비트와 힙합 무드를 안고 있다. 3월 초, 서울 앙코르 콘서트에서 선공개곡으로도 선보인 ‘L.O.Y.L.’은 꼭 들어보길.
- 일러스트레이터
- DAMIEN J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