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때보다 다양하고, 열정적이었으며, 동시에 혼란했던 올해의 컬처와 라이프스타일의 주요 장면들. 

꺼지지 않는 성수의 불

2023년 모든 브랜드가 앞다퉈 팝업 스토어 전쟁에 뛰어들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를 고민하는 와중에 이들의 격전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성수로 통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팝업 스토어는 매주, 매달 성수로 향할 새로운 이유를 만든다. 브랜드가 론칭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낙수 효과처럼 새로운 카페와 복합문화공간 역시 둥지를 튼다. 독특한 체험과 전시 같은 톡톡 튀는 공간 구성 역시 소유보다 경험에 가치를 두는 MZ세대를 끌어모으는 이유.

다시 시작된 여행

한국인이 다시 세계로 향했다. 15년만에 최저를 찍으며 날이 갈수록 착해지는 엔화 덕에 일본이 특히 인기다. 호텔스닷컴이 약 한 달간 14개국 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TV 프로그램과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여행을 계획하는 스크린 투어리즘, 호텔의 선정 조건으로는 분위기(Vibe), 일본 료칸과 모로코 리아드 같은 현지 문화를 만끽하려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TASTE SEOUL!

글로벌 외식 브랜드의 격전지로 서울의 열기가 뜨겁다. 강남 1호점을 시작으로 여의도에 문을 연 미국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파이브 가이즈(Five Guys), 캐나다의 국민 카페 팀홀튼(Tim Hortons), 텍사스를 제패한 윙 프랜차이즈 윙스톱(Wing Stop) 등이 올해 서울에 상륙했다. 여러 브랜드가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반려의 챗GPT

챗GPT의 사용이 빈번해졌다. 인공지능(AI)을 잘 다루는 것이 미래 경쟁력이 될 것이라 예측하며, 생성형 AI 관련 클래스도 속속 생기고 있으며, 직장인과 학생 할 것 없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챗GPT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주간 사용자 수 1억 명을 돌파했으며, 개발자 200만여 명이 이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K-CUISINE 

비빔밥과 불고기는 잊을 것. 미식으로서 한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아토믹스’를 이끄는 셰프 박정현은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했고, 임정식 셰프의 ‘정식’ 역시 뉴욕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2개를 받았다. 해비치 호텔 출신 박웅철 셰프와 기보미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런던의 ‘솔잎(Sollip)’ 역시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공간 중 최초로 미쉐린의 별을 수확했다. 리오넬 메시는 MLS 우승 파티를 마이애미의 한식당 ‘꽃(Cote)’에서 여는 등 한식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는 중.

우리가 사랑한 판다

푸바오는 누가 뭐래도 올해의 힐링 아이콘이다. 2020년 자이언트 판다 커플 러바오와 아이바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행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이름처럼 우리 곁에 무해한 존재로 다가왔다. 용인 푸씨, 푸린세스, 푸질머리 등의 애칭을 얻은 푸바오는 매일 슈퍼스타의 행보를 밟고 있다. 포토 에세이를 출간하고 더현대 서울에서 2주간 열린 팝업 스토어 티켓은 5분 만에 매진됐다. 지난 7월에는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축복 속에 탄생했다.

스포츠는 살아 있다

2022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우여곡절 끝에 2023년 9월 23일에 개최됐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이전 대회와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특히 수영은 예선과 결승을 포함해 한국 신기록을 쏟아내며 메달 22개를 획득, 앞으로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황선우, 김우민 등이 새로운 수영 스타로 등극했다.
한편, LG트윈스는 감격스러운 야구 왕좌에 올랐다.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 우승컵까지 들어 올렸다. 긴 시간 하위팀을 전전하던 설움에서 벗어난 LG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양산했다.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우승 축하주로 199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사온 아와모리 소주는 이미 증발했다는 소문. MVP를 차지하며 구 회장이 1998년 구입한 롤렉스 시계를 받게 된 오지환은 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23 KBO 리그는 5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관중 800만 명을 달성, 정규 시즌 관중 수 역대 3위를 기록하며 인기 스포츠의 위상을 떨쳤다.

올해의 밈

| 중꺽마 |  2022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후 프로게이머 데프트(김혁규)가 남긴 명언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꺾그마’까지 진화했다. ‘중꺾그마’의 창시자는 개그맨 박명수다. 그는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며 “꺾여도 계속 가지를 뻗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너T야? |  T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남보다 조금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 유튜브 채널 ‘밈고리즘’의 콘텐츠 ‘폭스클럽’에서 시작된 이 밈은 MBTI에서 파생했다. 공감과 위로 대신 현실적 조언을 하는 사람을 향해 원망의 눈초리와 곁들여 활용한다.

하나로 모여!

패션 브랜드가 패션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뛰어든 것. 패션 브랜드의 카페, 레스토랑, 호텔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버버리는 다니엘 리의 첫 버버리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성수동에 ‘성수 로즈’를 열었는데, 다채로운 공간 구성 속 눈에 띄는 건 영국 레스토랑 노만(Norman’s)과 협업한 카페다. 에르메스의 홈 컬렉션은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 필립 드쿠플레와 만나 독보적 아티스틱 퍼포먼스 ‘에르메스 퍼레이드’를, 마르니 역시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중심으로 청량한 무드를 가득 담은 마르니 마켓을 공개했다.

DETOX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도 꾸준하다.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과 각종 전자 기기를 스스로 설정한 시간만큼 ‘금욕상자’에 집어넣으면 도파민 디톡스 준비 끝.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코드 쿤스트가 금욕상자에 전자 기기를 봉인하고 불안감을 느끼다 서서히 자연으로 눈을 돌린 것처럼 우리는 잃어버린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온라인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는 중이다.

EARTHING

맨발로 땅을 밟아 우리 몸의 불필요한 전압을 덜어내는 ‘어싱(Earthing)’이 새로운 웰니스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크게 조성된 공원이든 아파트 단지 내 작은 산책로든 흙과 모래가 있는 곳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발을 벗는다. 산책하다 종종 마주치는 맨발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 각종 매체에서는 혈류 개선, 뇌 기능 향상 등 맨발 걷기의 효능을 이야기하고, 어싱을 체험할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도 크게 늘었다. 경기 용인시 한숲근린공원, 경기 성남시 율동공원 등 지자체에서는 맨발로 걸어도 무리 없는 황톳길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편의를 위해 신발 보관함과 세족장까지 설치한다고.

명상 속으로

팬데믹을 거치며 자리 잡은 건강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기 위해 다양한 명상법이 주목받고 있다. 마냥 근육을 키우고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균형을 챙기려는 움직임이다. 한숨 쉬듯 툭 내뱉는 색다른 호흡 명상을 통해 몸속 불필요한 에너지를 내보내는가 하면, 차를 내리고 따르고 마시는 차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기도 한다. 잔잔하고 깊은 소리의 울림에 몰두하는 소리 명상과 손 글씨 쓰기에 집중해 복잡한 머릿속 생각을 덜어내는 필사 명상까지.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은 이토록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