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목소리를 남긴다. 가수도 배우도 아닌 내가 발성과 음색을 갈고닦으려는 이유.

내 목소리는 낮고 크기도 작은 편이다. 대학생 시절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순간은 대형 강의실에서 마이크 없이 질문을 받는 일이었다. 불행히도 강의실 뒤편에 앉아 있었다면 내 기준 소리를 지르듯 배에 힘을 주고 말해야 했는데, 그럴 때면 경험상 ‘삑사리’가 날 확률도 높았다.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교수님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술집이나 카페에 갈 때도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피하려는 건, 그런 곳에서라면 말을 적어도 두세 번은 해야만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되돌아오는 질문에 같은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말해야 하는 상황은 늘 피곤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네 집으로 전화를 하면 남자아이로 오해받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 말하는 음역대는 변성기가 찾아오기도 전부터 낮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근거 삼아 나는 약한 목을 갖고 태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캑캑 막혀 마른기침이 튀어나왔고, 평소 말하는 목소리보다 높고 큰 소리를 쓰면 음 이탈이 쉽게 나고 목 근육도 금세 뻐근해졌다. 그럼에도 목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건 신기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는 건 콘서트나 페스티벌에 갔을 때가 전부인데, 하루 이틀 아무리 목을 혹사해도 쉬지 않는 것도 미스터리다. 혹시 본능적으로 약한 목을 보호하고자 성대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 단아하고 맑은 목소리로 유명한 배우 이청아는 유튜브 채널에서 의학적 진단을 토대로 자신에게 맞는 발성법과 목소리를 찾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더 이상의 무의미한 추측 대신 객관적인 진단을 받기로 했다. 음질, 음역대, 성대 접촉률, 공기역학, 비음도. 5가지 분야의 검사와 성대 내시경으로 목소리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의 원인을 찾아봤다.

 

목소리와 성격의 상관관계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각종 수치와 그래프로 빼곡한 검사지는 작고 낮은 목소리가 약한 성대를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는 내 말이 궤변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른쪽 성대가 부어 있어요. 너무 낮은 음역대를 쓰네요. 일반적인 여성에 비해 타고난 음역대가 낮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 말하는 목소리보다 좀 더 높은 소리를 써야 성대에 주는 부담을 줄일 수 있어요. 이 상태가 아주 오래 지속된다면 말하는 데 불편한 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보아스이비인후과 약수본원 오재국 원장의 말이다. “더 높은 톤으로 말했을 때 음 이탈이 자주 나는 건 그만큼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예상 밖의 첫 마디에 인터뷰어로서의 본분을 잊고 완벽한 환자 모드가 되어 질문을 이어갔다.
내 경우는 음역대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세부터 발성에 불리했다. 일반적으로 체중이 앞쪽으로 쏠릴 때 에너지를 잘 쓸 수 있는데, 내 무게중심은 앞과 뒤의 비율이 4 대 6 정도다. 가뜩이나 작은 소리가 몸을 기준으로 뒤편에 쏠려 있다는 뜻이다. “호흡 수치도 낮네요. 발성은 처음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호흡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성대가 붙었다 떨어질 때 시간당 적어도 120ml의 공기가 지나가야 하는데, 측정된 데이터는 96ml 정도예요. 발성할 때 나오는 공기의 양 자체가 적기 때문에 성대를 잘 진동시킬 수 없는 거죠.” 다행히 정상인 수치도 있었다. 양쪽 성대의 접촉률은 44%로 양호한 편이라고. 가장 의외의 결과는 그다음이었다. “비음 수치가 높아요. 목소리가 낮으면 콧소리는 줄어드는 게 일반적인데, 음역대에 비해 코로 나오는 소리의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왠지 낯설고 거부감이 들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콧소리의 비중이 높다고 해서 성대 건강에 해를 끼칠 위험은 없다지만 비음은 꼭 고치고 싶었다.

오재국 원장은 내 검사 결과의 원인 중 하나로 성격을 꼽았다. 내가 타고난 음역대에서 굳이 낮은 소리를 골라 쓰는 건, 큰 소리로 나서는 것을 꺼리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는 거다. 결국 작고 낮은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의학적 원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기억도 나지 않는 유년기의 언젠가부터 그렇게 말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다소 허탈한 결론뿐. “사는 대로 생각할 수도, 생각하는 대로 살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 있어요. 말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방식대로 말할 수도 있지만, 내 목소리와 말투를 따라 살게 될 수도 있어요. 어떤 소리로 어떻게 말하느냐가 한 사람의 이미지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는 거죠.” 오재국 원장의 말대로라면 나에게 편한 것이 곧 건강한 방법이라는 안일한 생각부터 버려야 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목소리를 바꿔 말하는 건 쉽지 않다. ‘부캐’를 만들듯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써보는 전략은 어떨까? 오재국 원장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사회적 자아가 필요할 때는 좀 더 크고 높은 목소리를 쓰고, 일상에서는 평소 내는 목소리를 쓰는 식의 노력만으로도 발성을 교정하기에 충분하다는 거다. 나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소수가 모인 조용한 대화 자리를 좋아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상 그렇지 못한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라도 다른 소리를 내보려고 노력한다면 소극적이게 보이는 태도도, 오른쪽 성대의 부기도 나아질 수 있다!

 

매력적인 사람으로 소통하기

내 목소리 데이터를 정상 범위로 돌려놓기 위한 솔루션은 크게 2가지였다. 말할 때 몸의 무게중심을 앞쪽에 두고 호흡 압력을 높이는 것. 후자는 노래방에서 고음을 지르기 전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를 떠올리면 쉽다. 발성은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감각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계속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엄밀히 따지자면 음성 치료다. 미국 인류학자 레이 L. 버드위스텔(Ray L. Birdwhistell)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사소통 과정에서 목소리, 눈빛, 손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내용 전달에 차지하는 비중은 65% 이상이다. 어떤 말을 했는지보다 그것을 전달하는 목소리나 눈빛, 손짓, 자세 같은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남은 평생 동안 높은 확률로 가수나 성악가, 배우가 될 일은 없겠지만, 굳이 수고스러운 치료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면 이유는 하나다. 더 잘 소통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사람이 목소리로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건강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쓰는 건 언제 어디서든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의식하며 말하기 시작하니 고칠 점은 계속 보였다. 그럴 때마다 자세를 바로잡고 한 호흡 크게 들이마신다. 나만 느끼는 변화라 할지언정 왠지 자신감이 생기는 걸 보면 나름 효과는 있는 듯하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이미 조금씩 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