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듯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끝에는 차와, 차를 내리는 나만 남는다. 어지러운 생각은 비우고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시간. 다도는 명상을 닮았다. 

차와 수행

차를 마시는 시간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천천히 기다리는 과정이다. 그 무엇의 방해도 없이 혼자 머무는 공간에서 깔끔하게 정돈된 옷을 입고, 도구를 준비해 차례를 지켜 차를 내리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흐트러짐 없이 느긋한 속도로 이어간다. 어쩌면 ‘수행’에 가깝다. 다도에는 ‘가장 중요한 과정’도, ‘핵심 포인트’도 없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아끼는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혼자 차를 마실 때 그 누군가는 내가 된다. 스스로를 위한 차 한 잔을 내리며 눈앞의 과정에만 집중할 때 나와 차를 제외한 불필요한 요소는 하나씩 지워진다. 자기만의 방에서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차를 마시는 건, 그래서 필요한 일이다. 

 

비우고 바라보기

찻잎과 찻잔, 차를 우릴 다관, 물을 끓일 탕관과 식힐 수구, 버릴 수 있는 퇴수기까지. 혼자 차를 마시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 가까운 곳에 걸어둘 그림이나 서예 작품, 식물이나 꽃 등. 이 외의 요소는 개인의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두면 된다. “나를 위한 찻자리에 물건을 들일 때는 미적인 부분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두는 건 그래서 필요해요. 꽃이나 식물은 찻자리의 계절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차를 즐기는 자리라는 본질을 훼손할 정도로 화려하고 풍성한 식물은 시선을 앗아가 역효과를 내겠죠. 어떤 과정에서든 과하지 않게 절제하는 태도만 기억하면 돼요.” 충남 천안에서 대를 이어 차실 다림헌을 운영하는 이낙구 대표의 말이다.

차를 내리는 건 물을 따르고, 버리고, 기다리는 과정의 연속. 뜨겁게 끓인 물은 수구에 담아 한 번 식힌 뒤 다관으로, 찻잔으로 옮긴다. 다구를 따듯하게 데우기 위함이다. 잔이 은은한 온기를 머금는 동안 수구에서 한소끔 식은 물로 찻잎을 우린다. 예열을 마친 잔에 담겨 있던 물은 퇴수기에 버린 후 차를 따라 마실 준비를 한다. 울산다도예절협회장 황정자 선생에게 전통 한국 다례를 전수받은 갤러리 일지 정윤 관장은 이 과정을 명상에 빗댄다. “달달 외워야 하는 과정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덜어내는 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정해진 순서와 절차가 있지만 그걸 반복적으로 행하다 보면 눈앞의 과정에만 집중하게 돼요. 생각을 조금씩 비우는 거죠. 그게 곧 명상이고요.” 일회성으로 끝내기보다는 반복해서 훈련할수록 명상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차를 잔에 따랐다면 이제 오감을 활짝 열 차례. 찻잔의 미지근한 온도를 느끼고, 향을 맡고, 입에 한 모금 머금고 혀끝으로 굴려도 보고, 이어서 따를 때마다 달라지는 탕색(차의 색)을 보고, 따르는 소리에 집중한다. “다도는 외우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행위예요.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거나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 시간이라는 생각 따위도 내려놓고, 그저 쉬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겁니다. 마음의 파고가 점점 잦아든 상태에 들어서는 것. 결국 명상이죠.” 이낙구 대표가 바라보는 다도 역시 명상의 맥을 잇고 있었다. 

 

돌아가는 마음

보이차를 전문으로 다루는 월하보이의 주은재 대표는 매일 다실을 오픈하기 전, 스스로를 위한 찻자리로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다. 수년간 반복된 찻자리는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그의 방법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쉼이 가능해요. 느릿느릿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꽉 움켜쥔 일일 때가 많아요. 그걸 흘려보내고 다시 눈앞의 과정에 집중하는 건 수행과 같아요. 마음을 정화해주고요.” 모든 과정을 마친 뒤의 찻자리는 가지런하다. 처음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몸은 가벼운 운동을 한 것처럼 개운하고 마음은 깨끗해진다. 스스로와 부쩍 가까워진 듯한 마음도 든다. 경남 하동에서 차실 호중거를 운영하는 오금섭 대표는 급하고 바쁠수록 시간을 들여 찻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바쁘다는 뜻의 한자어인 ‘忙(바쁠 망)’은 ‘마음 심(心)’과 ‘잃을 망(亡)’으로 나뉘어요. ‘나를 위하고 대접하려는 마음을 잃는다’는 뜻이죠. 이건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눈앞의 일에만 급급해 마음을 잃고 있는 사람일수록 진득하게 찻자리를 가져보세요.”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다독이고 돌봐야 한다. 이를 위해 누군가는 루틴을 만들고, 어떤 이는 수련을 택한다.
이 모든 일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비우고 채우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찾는 것. 티백의 간편함 대신 빙빙 돌아가는 다도의 불편함을 택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