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고 있는 ‘제철코어’를 어디까지 알고 있니?

세상에서 가장 쉽고 착한 트렌드의 등장!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제철코어’다. 

놈코어, 발레코어, 바비코어, 고프코어…. 수많은 트렌드 코어 속에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코어가 등장했다. 바로 ‘제철코어’인데, ‘시기에 맞는’을 뜻하는 ‘제철’에, ‘핵심’을 뜻하는 ‘코어(Core)’를 합친 단어다. 이는 어쩌면 지금까지 거쳐간 온갖 유행 중 가장 시시하지 않고,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유행이다. 일상에 늘 있던 제철이 정말 트렌드가 된 걸까?

인스타그램에서 ‘제철’이 언급된 게시글 수는 지난 2022년 약 9만5000개에서 2024년 약 17만 개로 무려 79%나 증가했다. <제철 남자> <제철 누나> 등 예능에서도 ‘제철’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고, 각종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도 ‘제철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은 이런 제철코어를 가장 잘 설명하는 책이다. 절기별로 작가가 느끼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적은 이 책은, 모두가 질색하는 가장 더운 날인 대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름이 이토록 더운 것은 우리에게 쉬어 갈 명분을 만들어주려고, 무리하지 않는 법과 휴식의 자세를 가르쳐주려고, 무엇보다 쉬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쉴 때 느껴야 하는 건 죄책감이 아니라 평온함임을 알려주려고.” 

제철코어의 핵심은 계절, 그리고 이를 더욱 촘촘하게 나눈 24절기에 있다. 본래 농사를 위해 태양의 흐름을 기록한 절기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하면서 음력과 함께 그 중요성이 점차 사라졌다. 달력과 시계, 온도계가 있는 시대에 절기를 따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긴 겨울에 작별을 고하는 입춘, 긴 여름의 끝을 알리는 처서처럼 지긋지긋한 계절을 떠나보낼 때 외에는 특별히 절기를 언급할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제철코어’ 트렌드에 힘입어 절기가 되살아났다. 사계절이 아닌 시시각각 흘러가는 계절의 흐름을 바라보기에는 절기만 한 것도 없어서다.
일본은 이를 더 세분화해 72절후로 만들었지만, 그를 따라 하기엔 조금 숨 가쁘다. 어른들이나 따르는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던 절기, 제철 감각이 왜 MZ세대의 트렌드가 됐을까? 전문가들은 제철 트렌드가 적은 투자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에 경기침체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유행이며, 이는 웰니스를 중시하는 풍조, 경험 소비와 가치 소비에 집중하는 최근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계절을 즐기는 데는 호캉스나 해외여행, PT, 미용 시술처럼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집 앞 공원 벤치에서 1시간 정도 하릴없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제철을 만끽할 수 있으니, 오히려 이 계절에 집중하는 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제철 식재료 즐기기, 철마다 바뀌는 자연 즐기기, 지속 가능성 고민하기 등 제철을 즐기는 대표적인 방법은 웰니스 트렌드와도 연결된다. 다시 말해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온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 위기 역시 제철 트렌드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제철 식재료나 계절 변화는 늘 있어왔지만, ‘왜 지금인가?’에 대한 답은 바로 전 지구적 기후 위기다. 이상기후가 계속되면서 ‘지금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생긴 것. 동해에서 오징어와 명태가 사라지는 것처럼 과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 샤인머스캣에 밀려 캠벨포도의 수확이 늘어난 것처럼 지금 맛보는 과일이 내년에는 없을 거라는 불안감도 제철 트렌드를 부추긴다. 맛 좋은 제철 과일을 맛보는 게 진정한 럭셔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소규모 농장에서 생산한 과일은 입소문을 타고 출시되자마자 동난다. 소규모 생산자가 재배한 제철 과일은 대형마트가 아닌 SNS나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되며, 이를 구매하려는 노력은 ‘티케팅’을 방불케 한다. 이렇듯 제철 트렌드는 점차 사라져가는 계절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제철코어’를 즐기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퇴근길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돌고, 가을 산책을 하면서 단풍잎을 줍고, 여름에는 물속에 풍덩 뛰어들어 야외 수영을 즐기고, 겨울에는 아파트 화단에서 눈오리를 만드는 일. 1년 내내 만날 수 있는 수입 열대 과일 대신 제철 과일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잠깐 나오는 온갖 딸기의 품종을 비교해서 맛보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무화과를 한 접시 먹어 치우는 것도 포함된다.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계절에 조금 더 마음을 주면 되는 일. 그거면 충분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가장 쉬운 트렌드가 마침내 등장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신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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