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NESS

조경 디자이너, 가든 메이커 이준규가 추구하는 웰니스

2026.05.09ALLURE, 이마루(프리랜스 에디터)

테마파크 안 커다란 정원에서 나만의 안식과 행복을 찾다. 이준규가 가꾼 것들. 

소박하고 다채로운 것. 지금 에버랜드의 정원은 이준규의 성정을 닮았다.
특별히 제작한 앞치마와 정원을 향한 철학을 담은 책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꽃을 다른 방식으로 보존하는 ‘압화’를 위한 도구.
정원 명상을 위한 필기도구. 그리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가위.
독서를 즐기는 이준규에게 뭔가를 쓰는 순간은 큰 기쁨이다.

조경 디자이너 이준규는 몸이 약했던 어린 시절, 사람을 치료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 ‘공간’ 또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조경 디자이너가 되어 10여 년간 국내 최대 테마파크 에버랜드에서 조경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영국 에식스대학교 위틀칼리지에서 정원디자인 석사와 조경학 박사 학위를 받고 다시 돌아온 곳 또한 에버랜드였다. 정원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식물콘텐츠 그룹장으로서, 꽃과 사람의 거리를 좁히며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고 있다.

스스로를 ‘가든 메이커’라고 소개한다. 꽃이 피어나는 가장 바쁜 계절, 가든 메이커의 일과는 어떤가?
테마파크의 본격적인 봄 시즌이다. 1년 전부터 시작한 기획을 토대로 모든 게 3월 20일 전후에는 완벽하게 세팅돼야 한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4시 반에 일어나 필라테스로 몸을 풀고, 키우는 화분에 물을 준 뒤 연희동 집에서 출발해 용인에 도착하면 6시 30분 정도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캘리그래피 명상을 하거나,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후 포시즌스 가든부터 시작해 현장을 돌아보며 간밤에 일어난 일을 확인한다.  

캘리그래피 명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걷기 명상을 꾸준히 했다. 휘발되듯 날아가는 생각을 쌓아두면 좋겠다 싶어 다이어리에 메모를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게 되지도 않고 큰 의미가 없더라. 하지만 뭔가를 쓰는 경험은 즐거웠기에 이 순간을 좀 더 창조적인 일로 이어갈 수 없을지를 고민하던 중 떠오른 것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같이 쓴 붓글씨였다. 벌써 10년쯤 되다 보니 글뿐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압화도 하게 됐다. 손님을 위한 작은 선물로 꽃 그림과 문구가 적힌 카드를 직접 만들어 건네기도 한다.

에버랜드는 초창기 명칭이 ‘자연농원’이었을 정도로 창업주의 자연에 대한 애정이 깊게 반영된 곳이다. 하지만 오늘 만난 매화원 하늘정원길 같은 거대한 산책로가 놀이기구 너머에 있을 줄은 몰랐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16년 에버랜드에 다시 돌아왔을 때만 해도 팀 이름이 ‘식물 환경 그룹’이었다. 꽃과 식물은 예쁜 한 폭의 그림 같은 배경이면 됐던 시절, 당시 매화원은 맨 땅에 13종의 나무 700여 그루가 그야말로 ‘꽂혀져’ 있는 상태였다. 매화는 2주만 꽃을 피운다. 꽃이 없을 때부터 단풍이 피고, 첫눈이 내릴 때까지 1년 내내 이야기가 있는 장소, 꽃이 일순간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는 품격 있는 꽃이다. 선비는 왕을 향한 절개를 다짐하는 자신의 모습을 수양하며 탐매(매화를 찾아다니는 여행)를 즐겼고, 동지부터 매화를 그리면 100개째가 완성될 때 실제로 꽃이 폈다고 한다. 매화원의 주인공은 매화지만, 다른 꽃도 심어져 있다. 때가 되면 오늘처럼 무스카리가 곳곳에 올라오고, 가을이 되면 국화도 핀다. 원래는 축제가 끝난 뒤 경제적 이유로 버려진 튤립 구근도 이곳에 옮겨 심는다. 작년부터는 꽃이 진 후 매실을 따서 청을 담그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포시즌스 가든과 달리 이곳은 시즌마다 꽃 교체가 필요한 곳은 아니기에 오히려 생태적 정원을 만드는 데에 최적의 장소가 됐다.

계절이 느껴진다. 테마파크의 정원에 이런 서사를 부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 다르다. 화려한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작은 꽃을 보며 ‘안 예쁘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하면 설득이 어렵다. 하지만 이 정원은 이런 철학적 사고에서 형성됐고,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하면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나무가 내게 해주는 말, 나무가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어진 이야기를 ‘서사’라고 표현하는데, 그 서사가 내게 주는 위로도 있다. 일종의 처방전이랄까. 예를 들어 대나무 열매는 풍수적으로 길조인 봉황새의 먹이로 여겨진다. 기운이 약한 땅에 봉황새의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대나무를 심었고, 담양 소쇄원의 대나무 숲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내가 발굴한 이야기를 고객에게 전하면 사람들도 대나무를 볼 때 ‘아, 여기는  봉황이 오겠구나. 좋은 기운을 얻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때 사실 여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올 초 펴낸 저서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에서 김용택 시인의 에세이집에서 발굴한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라는 문장이 가든 메이커로서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언급한다. 이 문장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이 관계를 통해 풍성해지듯, 식물도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배경으로만 있으면 그냥 그림일 뿐이다. 포시즌스 가든의 꽃밭 울타리를 모두 없애는 결정을 내릴 때, 그 확신을 갖게 해준 문장이다. 사실 식물은 인간이나 동물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진화 과정을 거친 생명체다. 인간의 문화 중 식물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가 굉장히 많다. 하다못해 종이도 우리가 나무를 배경으로만 생각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져보고, 잘라보고, 소통하면서 종이가 탄생하고 문명이 시작된 것 아닌가. 부딪침과 소통은 필수적이다. 

평소 주로 어떤 책을 읽나?
순수 문학과 시집,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읽을 때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내용이 있으면 주인공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꿔서 그 문장에 내 상황을 대입하는 습관이 있다. 쓴 사람이 자신의 맥락과 환경에서 만들어낸 문장을 내게 대입할 때 어떤 접점이 발생할지를 보는 것이 흥미롭다. 정원문화유산을 공부하면서 정원이 사람의 심리와 밀접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심리적으로 공부하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더라.

4월 초, 매화원에서. 중부 최대 규모의 매화를 감상할 수 있는 매화원에는 갖가지 꽃과 식물이 함께 어우러진다.
에버랜드 정원의 상징인 포시즌스 가든에서. 예전에는 축제 뒤 버려진 튤립이 이제는 매화원의 정원에서 다음 생을 살아간다.

정원의 어떤 면이 사람의 심리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나?
어느 사람의 정원에 가면, 그 사람의 성격을 대강 알 수 있다. 정원에는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오너십이 분명히 있다. 본능적으로 정원에 나를 대입하다 보면, 이 공간이 본연의 모습대로 잘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 그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집이나 건물과 달리, 정원은 인간이 만든 공간 중 유일하게 성장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정원에서의 성장은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칼 융이 말한 ‘자기화(Individuation)’가 가장 가까울 것 같다. 정원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모든 땅은 3년 정도면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다. 밖에서 씨앗이 날아오고, 내가 심지도 않은 꽃이 피어난다. 그게 공간이 ‘자기화’되는 과정이다. 그걸 이기려 들면 정원 일은 괴롭고 고된 노동이 된다. 인간도 나이를 먹으면서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답게 살 수 있을 때 완벽하게 성장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토양이 가진 본연의 모습과 가치를 드러내는 정원을 보며 정원을 만드는 나도, 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도 함께 성장함을 실감한다.

책에도 언급했지만 국가 단위의 조경 관광지 조성이나 지자체의 대규모 꽃 축제 등이 늘어났다. 이런 행사가 식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저변이 확대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제대로 된 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꽃 축제나 행사는 대부분 무료 아니면 몇 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결국 그 가치만큼의 공간으로 꽃을 대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있다. 영국 유학 시절, 취미로 합창단 활동을 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40분이나 가야 하는 외곽 지역의 합창단이었는데, 노래 연습을 할 때 악보 하나에도 저작권료가 있다. 한국에서라면 누군가 복사해서 ‘쫙’ 돌렸을 악보 복사지 대신, 수십 년 된 종이를 붙잡고 연습을 하니 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추어 극단도 셰익스피어 연극을 하려면 여전히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무료 초대권도 아예 없다. 그러면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보러 온다. 가치를 인정하는 것, 평범한 사람도 제대로 된 가치를 지불하고 즐기는 것의 중요함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원은 가격 면에서 문턱이 높다. 에버랜드 입장료는 5만~6만원, 2025년 처음 시작한 ‘가든 패스’는 연간 10만원대부터 시작하니까. 그러니 그만큼의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 우리 또한 설득하고, 교육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만든다. 차별화된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을 통해 배운다고 말한다. 항상 식물과 함께하며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너무 많은데….(웃음). 최근 가족들이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면서 불면증을 겪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식물의 줄기나 가지 끝에 생기는 ‘끝눈’을 ‘정아’라고 부른다. 식물학에서 ‘정아우세’라고 하는데, 옥신이라는 호르몬을 내보내면서 곁가지가 나가는 것을 방해해, 식물이 위로 탄탄하게 자랄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현상이다. 하지만 정원사들은 이 정아를 잘라준다. 그래야 곁가지가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옆으로 풍성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이 현상이 우리 가족의 상황과 포개지며 많은 위로가 됐다. 그동안 내가 우리 가정의 중심을 잡는 정아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자랄 수 있도록 과감하게 잘려 나가야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시기는 우울로 허비할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과 나도 성장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임을 배웠다. 이제는 잠도 푹 잔다. 

a 직업 만족도도 높은가?

물론 높다! 개인적으로 기업 CEO나 회장 등 VIP를 안내할 일이 종종 있는데, 그중 한 분이 나보고 ‘부럽다’라고 하더라. 원하는 걸 공부하고, 원하던 직장에서, 원하는 공간을 가꾸며 일한다는 이유에서다. 돌아보면 정말 조경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한 이후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30여 년간 계속 같은 길을 걸어왔다. 여전히 고민은 많지만, 나는 앞으로도 정원을 통해 계속 말을 걸고 싶다. “제가 가꾸고 있는 정원을 보러 오세요. 저는 이런 사람이고, 제가 가진 생각은 이런 겁니다”라고.

    포토그래퍼
    유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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