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NORMAL / 장도연&신현지
두 발을 땅에 딛고 폭발시키는 장도연과 신현지의 가장 보통의 에너지.
유튜브 콘텐츠 <살롱드립>에서 이 화보가 시작됐어요. 신현지 씨가 출연한 회차에서 ‘업계 관계자분들 연락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보고 잽싸게 연락드렸습니다.
장도연(이하 도연) 담당 PD에게 “나 현지랑 진짜 화보 찍는다”고 하니 간식차를 보낸다는 걸 간신히 말렸어요. 저희 사이에서도 나름 이슈였어요.
신현지(이하 현지) 테오(TEO)팀 다 부를걸! 진짜 말이 씨가 되는 세상이에요.
TV와 무대 위를 종횡무진 중인 두 분의 스케줄이 관건이었어요. 현지 씨는 어제 한국에 도착했죠?
현지 네. 파리 패션위크가 끝나고 어제저녁에요.
피곤하지는 않아요?
현지 괜찮아요. 청춘이에요! 근데 저희는 처음 뵙죠?
맞아요. 피처 에디터는 다양한 아티스트를 만나는 대신 모델과 촬영하는 일이 드물어요. 저는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4>(이하 <도수코>)부터 쇼와 지면에서 현지 씨 얼굴을 자주 봤지만요.
도연 저도 현지를 <도수코> 때 처음 봤어요. <도수코>가 치열한 서바이벌로 사람을 극한으로 몰잖아요. 다양한 인간 군상도 등장하고요. 현지는 그 속에서도 상황이나 사람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더라고요. 파이널 미션 때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촬영한 커버도 생생히 기억나요. 나이도 어린 친구가 굉장하더라고요. 성인이 되어서 세계적인 모델이 되는 모습까지 멀리서 지켜봤어요. 인상이 강렬하게 남았는데, 2022년 <넥스트 레이블>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딱 만났죠.
현지 씨는 도연 씨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현지 어릴 때부터 언니의 개그가 도파민을 채워줬어요. MC로 활약하면서는 장도연이라는 사람 자체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고요. 상대를 배려하며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실제로 <살롱드립>에 출연했을 때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편안했어요.
서로를 향한 호감을 바탕으로 언젠가 만나게 될 운명이었나 봐요.
도연 맞아요. 막상 가까워진 건 프로그램 종영 후 현지가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낸 덕분이죠.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어요?
현지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 싶었죠.(웃음) 방송하면서 제가 먼저 다가간 건 거의 처음이었어요.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는데, 도연 언니는 특별했으니까요.
도연 저 역시 그렇게 다가와도 잘 둘러대면서 거절하는 편이거든요. 싫고 불편하기보다 다시 봐서 좋은 관계가 있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딱 좋은 관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현지는 둘이 봐도 불편하지 않겠다, 어색하지 않겠다 싶었어요.
그 이유는 뭐예요?
도연 같이 일한 시간이 있었고 그 안에 이야깃거리가 있잖아요. 첫 만남에 주량 자랑하다 만취해서 실려 갔지만요.(웃음)
두 분의 독서 모임 ‘유도리’도 그때 탄생했나요?
현지 맞아요. 버킷 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다 유도리가 탄생했어요. 당시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어 독서 모임을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언니도 문화에 관심이 많아 둘이 해보자 했고요. 두 번째 만남에서 <샤덴프로이데>라는 책을 읽고 스지집에서 만났어요. 그다음에는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문화 모임으로 성장했죠. <살롱드립>에 출연하고, 이렇게 화보까지 찍으니 점점 스케일이 커지고 있네요, 우리.
유도리에 추천하고 싶은 멤버가 있나요?
도연 추천하기에는 저희가 체계가 없고…. 술 마시고 싶은데 마땅한 핑계가 없으니 모임을 빙자해 만나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서로의 존재가 든든할 때는 언제예요?
현지 언니가 저를 알고 있는 것 자체가 제 자랑이에요. 존재 자체로 큰 힘이 돼요.
도연 미쳤나 봐! 전도연 배우랑 헷갈리는 거 아냐? 현지는 늘 이렇게 좋게 얘기해줘요. 느끼하지 않게 칭찬하는 게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너무 잘해요. 듣는 순간은 부끄럽지만 곱씹을수록 행복해요.
현지 없는 소리는 못해요. 거짓말도 못하고요. 언니는 만날 때마다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줘요. 늪이에요 늪.
최근에 받은 신선한 충격이 있나요?
현지 언니는 모든 사람이 알아보는 연예인이잖아요. 얼마 전 같이 콘서트를 보고 제 차로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전철을 타고 간다는 거예요. 충격과 반전!
도연 지하철을 애용해요. 교통 체증도 없는 최고의 교통수단이에요. 지하철 안에서 책 보면 집중도 잘되더라고요.
현지 언니, 우리 다음 유도리 모임 정해졌다. 지하철 종점까지 책 읽으면서 다녀오기!
현지 씨는 생각하는 걸 실천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네요. 생활력을 실험하고 싶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독서 모임을 알아보다 직접 만들기도 하고요.
현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잖아요. 흙 속의 진주도 내가 흙을 파야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요.
서로에게 변치 않길 바라는 모습이 있나요?
현지 언니는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기에 본성이나 진심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매번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기에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거나 변질되지 않을 것 같아요. 참 단단한 사람이에요.
도연 현지는 생각의 방향이 올곧게 정해진 친구예요. ‘긍정적으로 살아야지!’라고 애쓰지 않아도 회로 자체가 긍정적으로 발달한 친구 같아요. 부러우면서도 대단해요.
현지 비결은 수용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만 힘들어요.
타고난 성향이에요? 경험을 통해 터득한 비결인가요?
현지 후자요. 또래보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면서 터득한 것 같아요. 세상을 영화처럼 보기로 했거든요. 힘들 때면 ‘나는 어떤 영화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피곤한 캐릭터구나’ ‘저 사람은 답답한 캐릭터구나’ 생각해요.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제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크든 작든 모두가 겪는 일인데,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뭐든 ‘오히려 좋아’ 마인드네요. 또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어요?
현지 매일 15분씩 달을 보면서 내면의 깊고 은밀한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아요.
소원도 비나요?
현지 빌어도 봤지만 절대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더라고요. 대신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생각을 음미해요. 답을 주지 않아도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돼요. 달은 전 세계 어디든 있으니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주변 사람에게는 안 좋은 얘기는 묻어버리고 좋은 기운만 전파해야죠!
도연 씨에게도 마음을 다독이는 비법이 있어요?
도연 영화 보는 일요. 책도 열심히 읽으려고 해요. 좋은 콘텐츠를 쌓아두면 힘들 때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진다고 생각해요. 책 속의 좋았던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영화를 보고 조금씩 기록해두는 편이에요.
비슷한 듯 다른 두 분의 확실한 공통점은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커리어를 이어간다는 거예요. 동력이 뭘까요?
현지 저는 모델 일에 확신이 없어서 지금까지 해왔어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될 때까지 달린 시간이 이렇게 쌓였어요.
얼마나 잘하고 싶었어요? 샤넬 2023 F/W 오트 쿠튀르 단독 클로징, 모델스닷컴의 인더스트리 아이콘과 같은 성과보다 더요?
현지 가끔, 문득 찾아오는 인정이 감사하지만, 더 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도연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동력이 된다는 게 신기해요. 저는 완전히 반대거든요. 흘러가는 대로 살자 싶어요. 누군가는 저한테 속 편히 산다 하고, 누군가는 무기력하다는데. 어쩌겠어요 이게 저인걸요.
물 흐르듯 살았는데 지금의 장도연이 있다고요? 유튜브에 ‘장도연 활약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고 뭉클했어요.
현지 저도 그 영상 보고 울었어요. 그걸 보고 나서 언니가 <라디오스타> MC가 된 게 더 기쁘더라고요.
도연 현지가 크게 기뻐해줘서 저는 또 감동했어요.(웃음) 작은 단위로 보면 늘 애쓰며 살죠. 그런데 이 애쓴다는 의미가 안쓰럽거나 억지로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후회 없도록 몰입하는 거예요. 10년 가까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데,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안 봤을 거예요. 좋은 스피커가 되고 싶으니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하고, 적당히 알면 위험하니까 열심히 공부하게 됐어요. 알면 알수록 부족한 게 느껴져서 파고든 거죠.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괜찮다, 이렇게 사는 거지’ 생각하고, 잘되면 좋은 거예요.
칭찬과 비판 중 나를 성장시킨 건 어느 쪽이에요?
현지 저는 무조건 칭찬요! 사소한 칭찬이 쌓여 성장할 수 있었어요. 비판은 저를 휘둘리고 주눅 들게만 하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칭찬이 있어요?
현지 칼 라거펠트 선생님과 함께한 샤넬 광고 촬영 현장이었는데, 총 7명의 모델이 있었어요.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제 이름이 어렵다 보니 선생님께서 저를 보고 윤지, 현지, 욘지 반복하다가 윤지로 하겠다고 하시고는, “윤지, 이 중 네가 제일 빛나고 특별해. 넌 진짜 크게 될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촬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는데, 그때 그 순간은 절대 잊을 수 없어요.
도연 현지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저 역시 칭찬인 것 같아요. 비판은 정말 싫어요. 어련히 알아서 열심히 하는데 좋은 얘기를 해줘야죠! 저는 제가 너무 웃기거든요. 애드리브가 터지면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했지? 잘했다!’ 곱씹을 때 너무너무 행복해요. 일이 적을 때도 그랬어요. 그러다 이 일을 오래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 적이 있는데, 어느 순간 제가 거짓이나 가식 없이 제 모습 그대로 방송을 하게 된 시점이었어요.
그때가 언제예요?
도연 <코미디 빅리그>를 하면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아졌어요. ‘나도 이제 잘 풀리나 보다’ 하면서 신이 난 무렵이었는데, 어느 날 작가님 한 분이 ‘너무 잘하고 좋은데 너만의 색이 없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순간 너무 무서웠죠. 그래서 준현 오빠(김준현)에게 “여기저기서 나를 찾아주니 감사하긴 한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어요.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거든요. 잘해도 이게 맞나 찝찝하고, 못하면 속상하다고 했더니, 오빠가 “너는 색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잘 스며들 수 있는 거야”라는 거예요. 당시 광고 카피 중 ‘슈퍼 노멀’이 있었는데, 그걸 언급하면서 평범한 것 중 제일 빛난다고 생각하라고 했죠. 그때 ‘나대로 가자’고 다짐했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제 모습 그대로 방송하거든요. 그래서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현지 저도 모델 중 슈퍼 노멀이에요.
도연 네가 노멀한 곳이 어디 있어!
현지 언니, 세계적인 모델들 생각해봐, 뭐 하나씩 딱 생각나는 거 있잖아. 나 뭐 생각나? 없지! 나도 완전 노멀인 거야.
‘노멀’한 두 사람의 이름 앞에 이제 ‘슈퍼’라는 수식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도연 멋있는 사람이고 싶어 계속 노력하는 것 같아요.
현지 맞아요. 저도 꿈이 뭐냐고 물으면 늘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답해요.
펼쳐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지독한 욕망 같은.
현지 욕심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이 세상이고 패션 업계는 더 그래요. 시작할 때도 특별한 목표는 없었어요. 엄마의 권유로 모델 일을 시작했고, <도수코>에 출연했고, 얼결에 1등 했더니 모델이 되어 있었어요. 욕망을 품었을 때는 이뤄진 적이 없고 실망만 컸어요. 앞으로도 일에 있어서는 목표를 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인간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최근 어디에서 본 글에 ‘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걸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아마추어’라는 글을 봤는데, 크게 공감했어요.
도연 저는 여유롭게 흘러가고 싶어요. ‘궁극의 지혜는 유머’라는 말을 좋아해요. 여유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유머, 너무 멋있잖아요.
농담도 아무나 잘하지 못하죠.
도연 그래요! 포인트는 농담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에요. 잘하는 게 어려워요. 저도 잘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애쓰는 거예요.
현지 천재예요. 겸손한 천재. 179번째 오프라 윈프리!
도연 179번째 정도면 감사히 받을게.
- 에디터
- 김정현
- 포토그래퍼
- HYEA W. KANG
- 스타일리스트
- 김미강
- 헤어
- 안혜수(장도연), 이혜영(신현지)
- 메이크업
- 김강미(장도연), 오가영(신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