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아래 갈라지는 근육이 대단해요.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나 봐요?
아휴, 지금은 비수기예요. <멋진 신세계> 촬영이 한창이라 잠잘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요즘 운동은 꿈도 못 꿔요.
운동은 꽤 오랜 취미죠? 지방 촬영에 가면 헬스장을 4개씩 등록하고는 했다고요.
쉴 때는 정말 열심히 해요. 몸속에 좋은 음식을 넣고, 땀 흘리며 건강한 에너지를 채우는 과정이 제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거든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나에 대한 투자를 해야 달릴 수 있겠더라고요. 이번 작품이 끝나면 발레를 배워보려고 해요. 예전에 했던 프리다이빙도 다시 시작하고 싶고요. 이달까지는 모든 에너지를 이번 캐릭터인 ‘신서리’에 쏟아부어야 하거든요.
<얄미운 사랑>에 이어 또 한 번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옵니다. 이 장르에 끌린 이유가 있나요?
사실 <멋진 신세계>의 대본은 <얄미운 사랑>을 결정하기 전에 받았어요. 당시 코미디물에 흠뻑 빠져 있었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계기로 코미디 연기가 어렵고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니까 더 잘하고 싶더라고요. 돌아보면 연기 잘하는 선배님들은 전부 코미디 연기에 능통하신 것 같고. 코미디‛도’ 되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멋진 신세계>의 ‘신서리’는 가벼운 듯하면서 무겁고, 밝은 듯하면서 아픔이 깊은 인물이라 눈물과 감동이 배가되더라고요.
이번에는 어떤 코미디를 기대하면 될까요?
뒷배 없이 혼자 힘으로 조선을 뒤흔든 천출 출신 희빈 ‘강단심’의 영혼이 현대로 날아와 무명 배우 ‘신서리’의 몸에 들어가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소위 ‘한따까리’ 하던 여인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불시착해 팔각정과 같은 건물이 하늘로 치솟아 있고, 바퀴가 굴러가는 세상을 마주하게 된 거죠. 현대사회의 고질병과 문제에도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요. 사사로운 현대 문명 타파기가 코미디의 주된 요소예요. 그 과정에서 성공밖에 모르는 야욕 넘치는 악질 재벌 차세계(허남준 분)와 만나 치고받고 싸우며 새로운 감정을 알게 돼요. 코미디는 하면 할수록 욕심은 더 커지는데 쉽지 않네요. 그래도 확실히 코미디적 요소가 많으니 현장에서도 자주 웃게 돼요. 몸은 정말 힘든데, 솔직한 심정으로 20부작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신서리, 차세계 등 모든 인물과 사랑에 빠졌거든요.
원 없이 사랑하고 있나요?
정말! 모든 작품을 후회 없이 하려고 하지만, <멋진 신세계>만큼은 원 없이 사랑했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신서리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예고편 전반에 ‘악녀’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라고요.
이중적인 면의 간극이 매력적이었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악녀의 선상에 있는 인물도 한 사람이잖아요. 알고 보면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푼수 같은 면도 있거든요. 서리는 악하다기보다 자기도 모르게 발동해야 했던 생존 본능이 더 앞선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인생에 사랑을 배제하는 모습이 한 여자로서 안쓰럽더라고요. 보면 볼수록 위로해주고 싶은 순간이 많아져요.
지금의 임지연이 있기까지 지나온 시간이 생각나기도 했을 것 같네요.
여러 지점이 있었는데, 유독 주변인과의 관계가 그랬어요. 가족, 사랑,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과거의 제 모습이 투영되더라고요. 가족을 좀 챙기고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항상 끙끙대며 치열하게 살기 바빴으니까요.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단심이 서리의 몸에서 미련 없이 사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위로를 품게 되더라고요.
인생 2회차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나요?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고 싶어요. 대신 아역 배우부터 시작하고 싶고요. 현장에서 순수한 시선으로 연기하는 아역 배우를 볼 때면 경이로울 때가 있거든요. 저는 계속 나이를 먹을 테니 중년의 연기를 해볼 수 있지만, 어린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잖아요. 어릴 때부터 연기하고 싶었는데, 그때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요.
15년간 꾸준히 일의 동력을 ‘재미’로 꼽았던 게 생각나요. 여전히 이 일이 새롭고 재미있나요?
오히려 요새 여러 작품을 밀도 있게 하면서 그 생각이 더 커졌어요. 열심히 준비한 걸 현장에서 해냈을 때 성취감이 손톱만큼이라도 사라지고, 기계처럼 움직이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못 버틸 것 같더라고요. 작품의 성패를 받아들여야 하고, 늘 좋은 현장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찰나의 재미가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예요. 물론 지치는 순간이 오면 잊기도 하고 무뎌질 때도 있지만, 스스로 주문을 걸고 되뇌려고 해요. ‘지연아, 이거 지금 너무 재미있는 순간이잖아.’
달리다 보면 지난하고 치열해도 어느 순간 일에 대해 감사하는 시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시기에 닿은 걸까요?
맞아요. 감사함이 보이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요새 유독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예전에는 시키는 거 하기 바빴고, 혼나지 않게 잘해내는 게 목표였어요.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됐다, 넘어갔다’였는데 지금은 촬영팀과 기술팀, 조명팀 등 여러 스태프와 하나 되어 신을 만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져요. 호흡하는 법을 알게 되고, 선후배와 소통하게 되고, 보이는 게 더 많아져서 그런가 봐요.(웃음) 포기하지 않았더니 이런 날도 오네요.
포기하고 싶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가장 컸어요. 저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면 좋겠거든요. 제가 이 일로 행복한 미래, 부와 명성을 바라기보다 그저 오늘 하루가 제일 행복하면 좋겠어요. 내가 연기를 하는 이 현장이 행복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열심히 올라온 것 같기도 해요. 예전보다는 좀 더 능숙해지고, 나이가 들다 보니 사회성도 좋아지고, 사람들 대하는 법도 알고, 같이 호흡하는 방법도 알았으니까 그건 결국 그냥 내가 좀 더 편하게 연기하고 더 행복하기 위한 길이었던 것 같아요. 심지가 바짝 서 있을 때도 있고, 무뎌질 때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오늘 하루 행복하자고 하던 게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요.(웃음)
현재의 목표도 여전하고요?
네, 내일의 내가 행복하려면 오늘 준비를 잘해야 하고, 이런 거죠.(웃음) 탁! 착! 진행될 것 같은 신이라면 전날 더 열심히 하게 되고요. 일단 준비를 잘해야 행복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저 스스로에 대한 기대죠. 이번 현장에서도 후반으로 향할수록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과 재미를 줄지, 내가 느낀 통쾌함이 전달될지를 상상해요. 장담할 수 없지만, 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는 느낌이 커요. 제가 신서리로서 뱉는 대사, 들었던 대사가 너무 좋거든요. 긍정적인 메시지와 울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드니까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여전히 기대되는 배우라는 타이틀이 가장 행복한가요?
네, 사람들이 제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기대한다는 얘기에 들떠요. 잘 살아온 것 같고요. ‘기대되는 배우’.
작품을 선택할 때는 어떤 요소가 가장 중요해요?
매번 다른데, 요즘은 ‘이거다!’ 하는 촉이 와요. 주변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서도 계속 마음에 남고 끌리는 작품이 있어요. <옥씨부인전>이 그랬고, <멋진 신세계>도 그랬고요. ‘나 왜 이렇게 하고 싶지?’ ‘왜 자꾸 이 여자가 하고 싶지?’ 이러면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스스로의 촉을 좀 믿는 편이에요?
그건 아닌데, 음, 임지연이라는 사람을 잘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을 때 그 촉이 발동하는 것 같아요. 그런 소스가 많으면 선택이 유리해져요. 물론 <마당이 있는 집>의 추상은처럼 그렇지 않은 선택도 있었지만요.
<마당이 있는 집>의 추상은, <더 글로리>의 박연진, <종이의 집>의 서울 모두 ‘임지연’의 궤도를 벗어난 선택이었나요?
상은이는 저조차 상상 못한 캐릭터예요. ‘이걸 대체 어떻게 하지?’ 하며 무모하게 선택했죠. 그런데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좀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에 그 촉이 발동하지만, 동시에 ‘다음에는 또 어떤 무모한 짓을 해볼까?’ 하는 고민도 있거든요.
무모한 것의 매력이 있죠?
평탄하게 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제 성향이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무모할 때 느끼는 재미도 크고요. 저는 제 나름의 굴곡대로 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언제, 어느 타이밍에 무모한 짓을 할지 몰라요. 평소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작품을 보는 편인데, 그러면서 계속 자극받아요. ‘저런 역할 너무 해보고 싶다!’ 그렇게 계속 마음에 두다 보면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요.
최근 그 무모함을 자극한 캐릭터는 뭔가요?
하나 있어요. 외계인을 하고 싶습니다! 영화 <부고니아> 속 엠마 스톤의 연기를 보면서 놀랐어요. 외계인이라는 종족에 한 번쯤 도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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