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와 알프스에서 보낸 하루
배우 김남주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자다. 여배우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삶의 하루하루를 최대치로 사는 그녀와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 몽블랑 중턱에 자리한 어느 아늑한 산장에서 보낸 하루.
ㅡ 알프스 산 중턱에 있는 산장에서 진행한 오늘 촬영 어땠나요?
무엇보다 좋아하는 눈을 실컷 보며 촬영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산장으로 올라오며 눈이 소복이 쌓인 숲길을 지날 때는 겨울왕국에 온 기분이 들었죠. 여행을 온 것처럼 들뜨기도 했고, 오랜만에 찍는 화보라 긴장감을 느끼면서 촬영했어요. 화보가 실리는 달이 3월호라 멋진 설경을 보여드릴 수 없는 게 아쉬워요.
ㅡ 화보 속 주인공처럼 화려한 젯셋족의 삶을 살고 있나요?
화보나 광고 촬영 때문에 해외를 자주 오가는 편이지만 요즘은 평범한 엄마의 삶이 더 익숙해요. 촬영이 없는 날의 대부분은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없이 보내요.
ㅡ 결혼 전과 비교해서 지금의 삶은 어떤가요?
결혼 전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해요. 여배우로서의 입지도 더 좋아졌고요. 사실 20대 시절에는 열 손가락에 꼽히는 스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결혼한 여배우 하면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래도 여배우들은 나이가 들면서 인기가 떨어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엄마로 살기는 더 편해요. 아직까지 번화가에 가면 사람들이 몰려든다면 아이들과 함께 다니기 굉장히 불편할 테니까요.
ㅡ 결혼 후 배우로서의 삶도 많이 달라졌나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작품이며 광고며 일이 뚝 끊긴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재기할 수 있었어요. 그때 함께 작업한 박지은 작가와 인연이 돼서<역전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까지 계속 작업했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운이 많이 따라줘야 하는 것 같아요. 실력은 대단한데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빛을 못 본 동기들이 많거든요. 박지은 작가처럼 좋은 작가를 만난 게 대단한 행운이죠.
ㅡ 많은 여성이 당신의 삶을 부러워해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40대 중반인데도 배우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엄마로서의 역할과 배우로서의 일, 어느 하나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게 아쉬울 때도 있지만 결혼 후에 일을 더 사랑하게 된 것만큼은 확실해요.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릴 때 정말 어렵게 살았어요. 배우로서의 이미지보다 돈 때문에 일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많았고, 잡지 촬영처럼 돈이 안 되는 일은 거절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화보 촬영을 하는 게 무척 좋아요. 나이를 먹어가니까 조금 더 젊었을 때 사진 한 장을 더 남기는 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찾아줄 때까지는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에요.
ㅡ 엄마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고 들었어요.
4남매 중 막내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무척 고생하며 저희를 기르셨어요. 데뷔 초에 난생처음 해외 촬영을 갔는데 ‘엄마와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죠.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고부터는 해외 촬영을 갈 때면 자비로 엄마를 꼭 모시고 갔어요. 요즘은 촬영장에 가끔 딸 라희를 데리고 다녀요. 라희에게 엄마의 일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추억도 만들어주고 싶어서죠.
ㅡ 라희가 엄마처럼 배우로 살길 바라나요?
라희가 초등학교에 가면서부터 촬영장에 데리고 오거나 해외 촬영을 함께 가기도 하는데,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엄마의 화려한 모습을 어릴 적부터 접하면서 그런 인생을 꿈꾸면 어쩌나 걱정해서죠. 어린 나이에는 배우의 화려한 모습만 눈에 들어오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이야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친한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어차피 배우의 딸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평범하게 살 수 있느냐고.
ㅡ 엄마가 되니 어떤 점이 변하던가요?
원래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내 아이를 낳으니까 더 예쁜 거죠.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하는데 늘 부족하죠.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기도와 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키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절대적인 존재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똑 소리 나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지만 제가 생각보다 자존감이 낮거든요.
ㅡ 아이를 가진 부모는 모두 약자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일과 가정 모두 조화롭게 꾸려내는 거 같아요.
성격이 굉장히 긍정적인 편이에요. 저희 가족들이 다 그래요. 아이가 넘어져서 상처가 나면 큰 상처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그러거든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 않고 털어버려요.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삼십 분이면 잊어버리죠.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활동하면서 슬럼프도 당연히 찾아왔는데 그럴 때도 ‘나는 왜 더 잘나가지 못할까’ 고민하기보다 ‘이만큼이라도 참 감사하다. 대한민국 사람 중 몇 명은 내 이름을 알잖아’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어요.
ㅡ 젊음의 비결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촬영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군살이나 부기가 하나도 없잖아요!
저는 백조 같은 스타일이에요.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지만 사실 노력을 많이 하는. 이번 촬영을 앞두고 열흘 전부터 나트륨을 거의 안 먹었어요. 살이 확 찌는 편은 아닌데 아줌마가 되니까 마음껏 먹으면 배도 볼록 나오고 그러거든요. 나이가 들면 체질도 바뀌나 봐요. 그나마 다행인 건 물살이라 살이 잘 찌고 잘 빠져요.
ㅡ 운동도 꾸준히 한다고 들었어요.
아이들 챙기면서 바쁜 엄마로 살다 보면 매일 꾸준히 관리하는 게 힘들어요. 활동을 좀 쉴 때 TV에서 김성령 언니처럼 확 예뻐진 여배우들을 보면 몸매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하고 그래요. 여배우라면 각자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을 텐데요.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살이 좀 찐 것 같으면 한 3일은 적게 먹고, 중요한 촬영을 앞두면 식이요법을 독하게 하고 그러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잘 붓는 체질이라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국물도 안 먹으려고 노력하고요. 식이요법을 할 때는 닭가슴살과 고구마를 먹고, 운동을 하죠. 오늘 촬영을 앞두고 열흘 전부터 하루에 샌드위치 하나 먹고 버텼어요. 닭가슴살이나 토마토 모차렐라 샌드위치나 샐러드만 먹으면서요. 배우가 아니었다면 절대 못했을 거예요. 보통 엄마들이 아이들 키우면서 그렇게 절제하며 살긴 힘드니까요. 남편은 기초대사량이 워낙 높아서 살이 잘 빠져요. 그래서 다이어트 할 때는 저녁을 따로 먹어요.
ㅡ 덕분에 이번 촬영은 몸매며 피부며 보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남편이 가끔 저한테 참 독하다고 얘기해요. 사진이면 포토샵으로 보정해도 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요! 그런데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촬영장에 가면 스태프들은 다 알잖아요. 완벽주의까지는 아닌데 먹고 싶은 걸 잠시 못 참아서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가지 못하면 제 자신에게 화가 나요. 그런 태도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도 같아요.
ㅡ 피부는 어떻게 관리해요? 주름도 하나 없고 장시간 비행기를 탔는데도 트러블도 하나 없고요.
사실 게으른 편이에요. 피부과도 자주 안 가고요. 좋은 화장품을 잘 선택해서 꾸준히 사용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겠죠. 그리고 물을 자주 많이 마시려고 노력해요.
ㅡ 비행기 안에서는 어떻게 관리하죠?
일단 잘 지우는 게 중요해요. 비행기 안에서 지우기가 번거로워서 클렌징 티슈나 클렌징 크림으로 지우고 간단히 세안을 한 다음 평소 사용하는 세럼이나 크림을 공병이나 작은 병에 덜어서 충분히 발라요. 53세 이후부터는 피부가 굉장히 건조해지더라고요.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에 도착하면 다시 꼼꼼하게 세안하고 기초 제품을 단계별로 발라요.
ㅡ 요즘은 어떤 제품을 즐겨 바르나요?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테스트해보고 번갈아가며 쓰는 편이에요. 요즘은 라꼴린느의 나티브에이지 르 세럼과 라 크림, 셀룰라 하이드라 퍼밍 바디 크림을 즐겨 발라요. 나이가 들수록 얼굴뿐 아니라 몸도 많이 건조해지는 만큼 보디 피부의 보습과 탄력을 개선하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써요.
ㅡ 데뷔 후 패션 감각이 있는 커리어우먼 역할을 주로 맡아왔는데 전혀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연기 경험이 쌓일수록 이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자기 색깔이 있는 만큼 최상으로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르로 따지자면 사극은 저의 영역은 아닌 거 같아요. 대중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김남주는 일도 잘하고, 뭐든 똑 소리 나게 잘할 것 같고, 어떤 옷을 입고 나올까, 어떤 화장을 할까 궁금해하죠. 옛날에 “저의 부족한 연기력 2퍼센트를 패션으로 채우고 있어요”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 대중들이 제가 하고 나오는 것들을 좋아해주고 반응을 보이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ㅡ 요즘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하는 배우도 많은데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나요?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긴 해요. 좋은 분들과 함께할 좋은 기회가 있다면 흔쾌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제안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런 일이 배우의 본업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요. 단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한국에 돌아가면 제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벨포트와 ‘제2 의 김남주를 찾아라’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저희 소속사에 신인 여배우가 아직 없는데 신인 여배우도 발굴하고, 벨포트의 새 모델도 찾는거죠.
ㅡ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광고에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광고한 브랜드에 대한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배우로 알려져 있어요.
‘광고료 받고 광고 한 편 찍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그러지를 못해요. 저도 모르게 광고가 예쁘게 잘 나와서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져요. 그래서 항상 광고주에게 왜 저를 선택했는지 물어봐요. 나의 어떤 이미지를 사고 싶은 건지 말이에요. 저를 모델로 기용한 브랜드나 회사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좋은 제품은 주변에 많이 추천하는 편이에요.
ㅡ 여배우로서 서서히 나이가 들고, 작품에서 맡는 역할이나 비중에도 변화가 찾아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삶의 변화는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 주인공 역할은 젊은 후배들한테 서서히 물려주고,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또 맡게 되겠죠. 그때쯤에는 사실 주인공 역을 맡을 체력도 안 될 것 같아요. 물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체력이 안 되어도 정신력으로 버티는 게 배우니까요. 드라마 <역전의 여왕>을 찍을 때 비 맞는 장면을 촬영하고 5개월 동안 기침을 했었어요. 그렇게 오래 버텼는데 원하는 만큼 시청률이 안 나와서 욕심이 나서 11회 연장을 했어요. 결국 시청률 30%를 찍고 종영했어요. 앞으로 십 년, 배우로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엄마로서는 더 욕심을 부릴 것 같아요. 해야 할 일도 많을 테고요.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온 게 올해로 11년째예요. 앞으로 십 년이 더 중요하겠죠. 그 다음에는 아이들도 자기 몫을 하고 살 테고 그럼 한숨 돌릴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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