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중심은 민정이라는 여자다. 그런데 이 민정이라는 여자는 자꾸  자신이 민정이 아니라고 한다. 그녀 이야기가 영화 속남자들은 물론, 관객까지 홀린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민정을 맡은, 배우 이유영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웨터는 올세인츠(All Saints). 스커트는 오즈세컨(O'2nd).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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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과 당신의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나?
ㅡ 집에 있다가 소속사 대표님이 잠깐 미팅을 하자고 해서 나갔다. 카페에서 감독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감독님이“ 하려고 나온 거지? 잘해보자”라고 하셨다. 그렇게 참여하게 되었다.

원래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나.
ㅡ 좋아했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오! 수정>이다.

당시 시나리오가 없었을 텐데 감독은 이 영화를 어떤 영화라고 했나?
ㅡ “옷 만드는 것을 배우는 ‘민정’이라는 여자가 ‘영수’와 연인이다”라고 했다. 이것 말곤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영화가 나올지 감독님도 궁금하다고 했다. 그런 즉흥적인 작업이 재미있었다. 연남동에서 자주 만나 드럼을 치기도 하고, 거기 잔디밭에서 즉흥연기를 하면서 다 같이 재미있게 놀곤 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연기하다 보니 한 명의 인물이 만들어졌다.

영화에 당신의 실제 모습을 많이 반영했을 것 같은데?
ㅡ 감독님이 나를 포함한 모든 배우를 간파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옷은 내 옷장에 있는 옷을 가져가면 감독님이 골라주셨다. 좋아하는 것을 물어서 피아노와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같이 가서 한번씩 쳐봤다.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해서빠지긴 했지만.

이번에는 연남동이 배경인데, 대부분 실제 장소다.
ㅡ 연남동에서 한 달 반 정도 촬영했는데, 카페나 막 술집은 물론 집도 다 실제 장소다. 영화에 나오는 나머지 배우들은 대부분 연남동에 사는 뮤지션들이고, 영수의 집과 작업실은 술집 주인으로 나오는 실제 백현진 씨 집과 작업실이다. 침대도 이불 하나 안 건드리고 다 그대로다. 김주혁 선배님은 아예 백현진 씨의 옷을 입었다.

촬영이 끝난 후 연남동에 다시 가본 적 있나?
ㅡ 있다. 주혁 선배님이 취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 나온 막걸리집에 가서 다른 영화팀 사람들과 회식을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이유영’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사람이 많은데, 인상적인 반응은 없었나?
ㅡ 기자들도 다 나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이야기해줘서 재미있었다. 어떤 분은 홍 감독님의 영화에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하고, 어떤 분은 어려 보인다고, 또 어떤 분은 내가 억척스럽고 그늘져 보인다고 했다.

김주혁, 유준상, 권해효 세 명의 남자 배우와 연기하는 건 어땠나?
ㅡ 촬영하면서는 대본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별히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대본에서 펼쳐질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다.

영화 속에서 당신은 민정 혹은 민정을 닮았지만 민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어떨 때에는 민정의 쌍둥이라고 하고, 민정이라는 사람은 아예 모른다고 한다.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했나?
ㅡ 내가 여러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까 장면에 영수랑 있었는데, 카페에 다른 남자와 앉아 있는 이 민정이는 누구지? 민정이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얘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쌍둥이인지 나도 궁금했다. 나로서는 상황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쌍둥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도 엄청 헷갈렸다. 그때에도 진심으로 쌍둥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민정은 계속 술을 마신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
ㅡ 술… 좋지 않나? 맨 정신으로 있고 싶지 않은가 보다 했다. 나도 살면서 오해도 많이 받고 억울한 일이 많았는데, ‘민정’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떤 리뷰에서 민정이가 술을 마시는 것은 ‘술을 마시면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 이라는 글을 봤는데, 일리 있다고 느껴졌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민정을 너무 좋아하거나 욕을 하거나 한다. 믿어야 사랑이 유지된다고 말하는 연애 우화 같기도 했다. 당신은 이 영화가 무엇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나?
ㅡ 감독님이 “사람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야”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민정이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민정이가 상처받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든다.

이 영화는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그 외에도 많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당신도 칭찬을 많이 받았나?
ㅡ 파티에서 와인잔을 들고 있었는데 한 외국인이 오더니 내게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다.(웃음) 영화를 보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인 것 같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고, 한 스페인 배우는 내 역할을 자기가 맡을 수 있다면 돈을 내겠다고 했다. 그 정도로 민정이라는 역할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개런티가 적고, 시나리오도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늘 좋은 배우가 함께한다. 배우 입장에서는 어떤 장점이 있나?
ㅡ 갑작스럽게 대본을 외우느라 힘들었던 것 빼고는 너무 행복했다.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대본이 완성되어 있지 않으면 기다려야 했다. 하루는 눈 이 빨갛다고 하셔서 잠을 못 잤다고 했더니 “그럼 이건 안 되겠네” 그러면서 썼던 걸 다 지우고 다시 쓰셨다. 그날 배우의 컨디션, 날씨에 매번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대본 속에서 내가 그 순간을 사는 것 같았다.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나이가 더 들어서 감독님의 영화를 한 번 더 찍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연기를 더 해보고 찍었으면 이 영화도 달랐을 것 같다.

1년 반 만에 드디어 영화가 관객과 만나게 된다. 당장 이번 주부터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기대되나?
ㅡ 관객과의 대화는 하기 전에는 늘 걱정이 되는데, 막상 하면 정말 재미있다. 관객들과 즉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는 없으니까. 정말 다양한 질문이 나온다.

다음은 어떤 작품에서 볼 수 있나?
ㅡ <원더풀 라이프>라는 영화로 내년에 개봉한다. 휴먼, 코미디 등 다 섞여있는 작품이다. 마동석 선배님과 김영광 선배님 사이에 주로 사건이 일어나고 난 김영광 선배님의 여자친구 역할이다. 둘이 연인으로 생선 장사를 하며 씩씩하게 살다가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이제 고등어는 정말 잘 손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