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나물은 찰나의 봄이 사라지기 전 먹어둬야 할 에너지다.

쑥
전쟁이나 폭격으로 난장판이 된 현장을 묘사하는 단어 ‘쑥대밭’은 쑥의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에서 기원했다. 모든 것이 망가진 척박한 환경에서도 쑥은 돋아난다. 감염을 예방하는 약초이자 따뜻한 성질로 몸의 혈액순환을 돕고 냉기를 없애며, 플라보노이드와 폴리페놀 같은 항산화 성분도 풍부하다. 잎이 좁고 가늘며 잎 뒷면에 회백색 털이 보슬보슬한 것이 특징이다. 해외에서는 쑥의 동양적 아로마에 주목해 흥미로운 변주가 돋보이는 나물이다. 특유의 쌉싸름한 향과 녹색의 풍미를 무스, 폼, 페이스트, 크럼블 등 다양한 텍스처로 변주해 디저트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미나리, 돌미나리, 고사리
명절 제사상에 오를 때 보던 고사리도 사실 지금이 제철이다. 봄에 수확해 말린 형태로 먹는 게 익숙하지만, 햇고사리는 보드라운 식감과 풍부한 육즙, 산뜻한 향이 별미다. 천연 해독제라 불리는 미나리에는 페르시카린, 이소람네틴 성분이 들어 있어 간에 쌓인 독소를 정화하고 기능을 활성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논미나리는 줄기가 길고 부드러워 나물이나 탕 요리에 제격이다. 반면 계곡이나 밭에서 자란 돌미나리는 줄기가 짧고 단단하지만, 응축된 영양과 강렬한 향 덕분에 생식으로 즐길 때 진가를 발휘한다. 단, 독성이 강하니 물에 30분 이상 충분히 담가 사용할 것을 권한다.

명이, 해방풍, 참나물, 부지깽이, 머위, 곰취, 원추리
우리나라 나물의 매력은 지역과 생태환경에 따라 고유의 향취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이 매력이 극대화되는 시기가 바로 봄. 울릉도의 명이나물과 부지깽이,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해방풍, 깊은 산속의 기운을 받은 곰취 등은 각각의 개성을 가진 토속 나물로 봄에 자란 어린잎이나 새순을 먹는다. 전국 방방곡곡 산과 들에서 새순이 돋기 시작해 딱 한 시즌 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풍성한 잎을 자랑하는 나물은 쌈과 무침, 장아찌 등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살짝 데쳐 계절의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장아찌처럼 발효과정을 거치면 미생물과의 시너지로 연금술을 부린 것 같은 새로운 맛으로 창조되기도 한다.

냉이
쌉싸름한 향이 매력적인 냉이는 조리법에 따라 맛의 변주가 무궁무진하다. 찌거나 데치면 단맛이 올라와 된장찌개는 물론, 라면에도 어울린다. 살짝 데쳐 소금, 간장, 들기름, 참기름, 고춧가루 등과 버무려도 어엿한 요리가 된다. 데치지 않은 채로 불에 굽거나 볶으면 구수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향이 더욱 풍부해지면 올리브유나 버터에 볶고 숨이 죽었을 때 후추와 레몬즙을 뿌리면 이색적인 가니시가 완성된다. ‘봄의 인삼’이라 불리는 냉이는 비타민과 단백질, 칼슘이 풍부하다. 잎부터 뿌리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냉이는 잎이 짙은 녹색을 띠고, 향이 진한 것이 좋다. 어디서나 잘 자라는 탓에 도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토양에서 영양소를 흡수하는 특성상,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두릅
봄날의 경동시장에서 두릅은 황제 취급을 받는다. 비싼 몸값만큼 깨끗하게 손질되어 나무 박스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온몸에 단단하고 뾰족한 가시를 두른 두릅나무의 새순은 수확이 까다롭지만 향긋하고 쌉싸름한 풍미가 중독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두릅나무에서 채취하는 두릅 외에 엄나무, 땅에서 자라는 독활에서 재배한 새순 역시 두릅이라 칭한다. 두릅나무에서 재배한 건 참두릅, 나무두릅이라 하고, 엄나무에서 얻은 두릅은 개두릅, 엄나무순이라 한다. 개두릅은 향과 맛이 진해 시장에서 가장 고가로 대접받는다. 땅에서 자라는 땅두릅은 뿌리는 물론 줄기까지 먹을 수 있으며, 참두릅에 비해 굵직하고 뿌리가 붉은 것이 특징이다. 제철을 맞은 두릅은 익숙한 방식대로 초고추장에 찍어 입맛을 돋우기도 하지만, 기름진 고기와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달래
봄의 전령과도 같은 달래는 알싸한 향이 특징이다. 손질은 뿌리의 흙을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조영재 셰프는 “달래를 먹기 전에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담그지 말고 그대로 식혀주세요. 봄나물은 독성이 있어 살짝 데쳐 먹는 게 좋은데, 찬물에 담그면 향이 금방 날아가거든요”라며 팁을 전했다. 은은한 향의 달래는 소금, 간장, 올리브유나 들기름 같은 최소한의 양념을 더해 두부처럼 담백한 재료와 함께하면 완연한 봄의 미식이 완성된다. 최근 시장에서는 달래보다 뿌리가 하얗고 통통한 은달래도 인기다. 일반 달래를 1년 이상 키워 줄기 부분은 제거하고 알뿌리가 더 통통하며, 향과 맛도 더 응축되어 있다.
- 포토그래퍼
- 이주혁
- 푸드 스타일리스트
- 권민경(101레시피)
- 도움말
- 조영재(오마카세 다이닝 ‘짠’ 헤드 셰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