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디지털 환경이 동시에 작용하는 ‘피지털 패션’

가상필터, NFT, 메타버스를 중심으로 거론되던 ‘피지털 패션’이 예술과 퍼포먼스의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무대 위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순간, 그가 입은 옷은 더 이상 단순한 의상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열광하는 스타의 캐릭터와 동시대 트렌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아닌가. 팬데믹 이후 공연과 음악, 패션을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이런 비주얼은 더 강렬하고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다. 공연이 현장 안에서만 그치지 않고 유튜브 라이브와 SNS, 숏폼 영상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퍼지는 만큼 아티스트가 연출한 스타일도 훨씬 큰 영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시간 그래픽과 CGI, 카메라 연출 효과 등이 결합돼 극적인 이미지로 확장되는 중. 이 같은 변화와 함께 다시 주목받는 개념이 ‘피지털 패션’이다. 한때 메타버스와 NFT, 가상필터를 중심으로 소비되던 피지털 패션은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실제 신체와의 접점을 만들지 못한 채 하나의 콘텐츠처럼 소비되며 빠르게 한계를 드러냈다. AI 생성 기반 패션 캠페인과 가상 인플루언서를 둘러싼 피로감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지나치게 매끈하고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범람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리얼리티에 다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피지털 패션은 현실과 디지털 환경이 동시에 작동하는 예술적 퍼포먼스의 영역 안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가 FKA 트위그스다. 그는 일찍이 모션 캡처와 CGI, 실시간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신체 위에 디지털 레이어를 덧입히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특히 2024년 발표한 앨범 <EUSEXUA> 비주얼 프로젝트와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실제 신체 움직임 위로 디지털 그래픽과 왜곡된 보디 이미지를 겹쳐 배치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무대 위 조명과 카메라 워크, 실시간 비주얼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신체 자체가 하나의 디지털 오브제처럼 연출된 모습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이후 런던과 파리에서 이어진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반투명 소재 의상과 모션 기반 비주얼 프로젝션을 결합해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가 계속 변화하는 장면을 구현하기도 했다. 이로써 2026년의 피지털 패션은 음악과 무대, 실시간 비주얼과 신체의 움직임이 결합한 하나의 장면 안에서 강렬한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중적인 놀이처럼 소비되던 초기 디지털 패션과 달리 이제는 더 집요하게 설정된 장면과 이미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적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신체와 가상 퍼포먼스가 확장될수록 새로운 규제와 윤리적 문제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는 AI 기반 디지털 퍼포머와 합성 인물 사용 시 이를 명시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강화하고 있으며, 디지털 신체는 더 이상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권리와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런 구조는 기술적 취약성도 내포한다. 디지털과 물리적 환경이 정교하게 결합할수록 시스템은 더 많은 변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코첼라 무대에서 DJ 애니마와 블랙핑크 리사가 함께 연출한 무대는 강풍으로 인한 무대 설치 지연과 시스템 셋업 문제가 겹치며 한 차례 지연 이슈를 겪었다. 이는 무대연출과 영상, 사운드, 라이브 그래픽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재정비를 거쳐 구현된 ‘Bad Angel’ 퍼포먼스는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올해 코첼라를 대표하는 화제의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파급력은 현장 관객과 라이브스트림 시청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연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었기에 가능했다. 관중들 머리 위 수십 미터 높이로 떠오른 거대한 천사 형태의 리사는 유튜브 라이브스트림에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 이는 현실에서 구현된 홀로그램이라기보다 라이브 퍼포먼스와 실시간 CGI·AR 그래픽, 카메라 트래킹 기술이 결합된 연출로 완성한 것이다.
즉 현장 관객은 초대형 LED 스크린과 조명, 실제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공연을 경험했지만, 온라인 시청자는 리사와 천사 형상의 트윈 리사를 동시에 관람할 수 있었다. 이때 패션은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 예술적 퍼포먼스를 완성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마치 기름막처럼 무지갯빛이 번지는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홀로그래픽 커스텀 드레스를 입은 리사 그리고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 ‘Cherry On Archive’가 설계한 건틀릿 패션 피스를 착용한 뮤직비디오 속 리사, 금속성 날개를 뻗쳐 낸 디지털 리사까지. 허구와 현실을 교묘하게 연결하는 유기적 스타일링은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피지털 판타지 속에서 작동하는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패션은 예술이다(Fashion is Art)’란 드레스 코드로 수많은 화제를 낳은 ‘2026 멧갈라’에서는 웨어러블 기술과 인터랙티브 장치, 3D 프린팅 구조물이 레드카펫에 등장하며 전통 쿠튀르 패션과 디지털 기술의 접점을 본격적으로 허물었다. 심장박동 소리가 흘러나오는 핸드백부터 지능형 로봇 팔 구조물, 그리고 약 1만5000개의 유리구슬 위로 실제 비눗방울을 생성한 버블 드레스까지. 패션은 정적인 조형물에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라이브 퍼포먼스의 역할을 겸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실시간 디지털 그래픽과 완전히 결합된 피지털 구조라기보다 물리적 패션이 기술적 장치와 만나는 과도기적 단계에 가깝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음이 더 궁금해진다. 멧갈라를 포함한 미래의 레드카펫 그리고 스트리트로 퍼져 나올,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거대한 그래픽과 AI 기반 라이브 연출이 결합된 패션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상적 비주얼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건 실제 몸과 움직임이 가미된 퍼포먼스라는 것. 

    사진 출처
    COURTESY OF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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