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을 에너지로 하는 ‘솔라 워치’에 대해
태양광이라는 근원적인 에너지로 박동하는 ‘솔라 워치’가 이제 하이엔드 타임피스로 영역을 넓힌다.


날이 좋은 오늘, 괜히 ‘탱크 머스트 솔라비트’ 워치를 차고 외출하고 싶다. 따사로운 가을볕에 나도, 시계도 ‘완충’되는 기분이다. 손목 위의 이 시계는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해 움직이니,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행위도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까르띠에가 선보인 솔라 워치는 클래식한 ‘탱크’의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이얼 아래 숨겨진 비밀스러운 패널을 통해 동력을 얻는다. 기술이 유난스럽게 드러나지 않아서 더 우아하다.
이처럼 럭셔리 타임피스 세계에 태양이 떠올랐다. 바로 빛으로 시간을 짓는 솔라(Solar) 워치가 그 중심에 서게 되었다. 솔라 워치는 1972년 로저 W. 리엘에 의해 처음 등장했다. 당시 스위스 시계 산업은 역사상 최악의 위기였던 ‘쿼츠 파동’에 직면해 있었다. 1969년 일본의 세이코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쿼츠 시계를 출시하면서, 전통 기계식 시계를 고수하던 스위스 시장은 급격히 몰락했고, 불과 13년 만에 전체 종사자의 3분의 2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 격변의 시기에 리엘의 ‘싱크로나(Synchronar) 2100’ 워치는 붉은 LED를 자랑하며, 마치 영화 <스타트렉>에 나올 법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쿼츠 시계에 쏠린 관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는 태양광 충전이란 개념 자체가 낯설었고, 빛에 노출시켜야 작동하는 번거로움과 성능 대비 값비싼 가격 탓에 ‘얼리어댑터의 장난감’으로 치부됐으니까.
그렇게 업계에서 사라지나 했던 솔라 워치는 의외의 장소에서 재조명됐다. 바로 도시의 쇼케이스가 아닌, 태양광이 지배하는 드넓고 푸르른 아웃도어 현장이었다. 이때 주목받은 제품으로는 1976년 첫 솔라 아날로그 시계를 세상에 내놓은 시티즌이 기술을 정비한 뒤 1995년 선보인 ‘에코드라이브’ 워치와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카시오 지샥 시리즈의 ‘터프 솔라’ 워치, 세이코의 ‘프로스펙스’ 워치 등이 있다.
장시간 자연을 탐험하며 액티비티 레저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거추장스럽게 배터리를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솔라 워치가 무척이나 편리하게 다가왔다. 이전보다 기술력도 크게 향상돼 빛이 없는 상태에서도 저장된 에너지로 수개월, 길게는 몇 년간 꺼지지 않고 작동할 수 있었다. 몇몇 매체와 전문가에게 북극의 끝없는 백야에서도 훌륭한 역할을 해낼 타임피스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렇듯 과거 실험적 발명품으로 탄생한 솔라 워치는 점차 신뢰를 쌓으며 대중성을 갖췄고,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한 타임피스로 자리 잡게 된다.
합리적인 가격대로 쉽게 착용할 수 있는 시계로 대표되던 솔라 워치는 지금 럭셔리 업계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비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재생 가능한 태양광은 자원의 순환성을 일상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하이엔드 브랜드에게 번뜩이는 해답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 타임피스와 달리 친환경 시계로 주목받게 된 이유는 뭐였을까? 기계식 무브먼트는 태엽을 감아 축에 저장된 에너지가 기어를 하나하나 밀어 올리고, 밸런스 휠과 이스케이프먼트가 그 에너지를 조금씩 풀어내며 초침을 움직인다. 또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태엽이 자동으로 감기는 오토매틱 방식도 같은 원리의 연장선에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정밀한 부품은 사용감에 따라 마모되고 유지 차원에서 자원이 추가로 소모된다. 또 시계의 수명을 오래 유지하려면 반드시 오버홀(Overhaul)을 해줘야 한다. 즉,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부품을 완전히 분해해 점검하고 세척한 뒤, 윤활유를 교체하거나 필요시 부품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산업용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등 추가 자원 소모가 꽤 크다.
반면 솔라 워치는 태양광 패널이 빛을 흡수해 전기로 바꾸고, 그 에너지를 축전지에 저장해 무브먼트를 움직이는 데 조금씩 사용하는 심플한 원리를 이용해 부수적인 번거로움을 생략한다. 물론 부품 수백 개가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예술적 무브먼트와 솔라 워치의 단순한 구조를 나란히 두고 비교할 수는 없다. 판매가만 보더라도 그 위계는 명확하다. 기계식 워치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솔라 워치는 대부분 기계식과 쿼츠 무브먼트 사이에 자리한다. 이는 태양광 워치가 단순히 쿼츠의 연장선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기술 혁신이라는 브랜드 안에서 독립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하이엔드 타임피스 무대 위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발휘할 솔라 워치 에디션을 차례로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까르띠에는 2021년 상징적인 ‘탱크 머스트’ 컬렉션을 리뉴얼하며 2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솔라비트 무브먼트를 세상에 공개했다. 당시 까르띠에의 CEO 시릴 비네롱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것보다 메종의 유산을 되돌아보며 아름다운 형태에 의미 있는 디테일을 가미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솔라비트 무브먼트를 탑재한 ‘탱크 머스트’ 워치는 카보숑 크라운, 둥근 평행 샤프트, 블루 스틸 핸즈 등 타임리스 디자인을 유지해 일반 쿼츠 제품과 비교했을 때 시각적 차이가 없다.
처음에는 로마 숫자 인덱스에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 시작했고, 이후 보다 많은 양의 빛을 다이얼 아래 감춰진 포토볼타익(Photovoltaic) 패널로 전하기 위해 세밀한 마이크로 펀칭 특수 다이얼을 매치했다. 최소 16년이라는 놀라운 수명을 자랑하며 완전히 충전되었다면 5개월간 햇빛에 노출하지 않고도 동력을 생산한다. 여기에 친환경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해 사과 폐기물로 만든 논-레더 스트랩을 부착한 것도 매력적이다.
까르띠에가 전통적 ‘탱크’의 얼굴에 환경적 책임을 더했다면, 태그호이어는 보다 직접적으로 기술력을 내세운다. 그 주인공은 전용 ‘칼리버 TH50-00’ 무브먼트. 직사광선에 2분만 노출해도 하루 동안 박동하고, 40시간 미만의 햇빛 노출만으로 최대 10개월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시계가 멈추더라도 최고 효율의 충전 기능 덕분에 10초만 빛을 쬐어도 즉시 작동한다. 15년간의 수명을 자랑하는 배터리로 장기적 신뢰성까지 보장하는 솔라 무브먼트는 2022년 ‘아쿠아레이서 프로페셔널 200 솔라그래프’ 워치에 탑재돼 효율성의 정점을 입증했다. 좋은 반응에 힘입어 올해는 모터스포츠의 정수를 담은 ‘포뮬러 1’ 컬렉션에 같은 무브먼트를 매치한다. 총 9가지 모델로 구성하는데, 그중에서도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무한한 색상 구현까지 가능한 신소재 TH-폴리라이트 케이스의 타임피스는 태양광과 하이테크 소재, 스피디한 스포츠 워치의 혈통이 결합한 퍼포먼스의 아이콘으로 주목된다.
한편 티파니는 태양의 힘으로 시간을 재는 새로운 ‘로프’ 워치로 주얼리 시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한다. 그 중심에는 세계적 업체 ‘라 쥬 페레(La Joux-Perret)’와 협업한 초정밀 스위스 솔라 무브먼트가 있다. 라 쥬 페레는 스위스 뇌샤텔주 라쇼드퐁에 위치한 무브먼트 제조업체로 현재 시티즌 그룹에 속해 있으며, 일찍이 태그호이어의 솔라 워치에 무브먼트를 제공한 이력이 있어 그 성능 역시 보장된다. 이번 태양광 무브먼트 사용은 브랜드에서 처음 시도하는 도전이자, 20세기 최고의 주얼리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의 유산에 안착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날이 맑든 흐리든 상관없이 실내외 어디서든 빛을 에너지로 치환하는 마법은 태슬과 브레이드에 모티프를 둔 ‘로프’ 디자인 특유의 트위스트 골드와 조화를 이룬다. 또 다이얼을 감싸는 넓은 골드 베젤과 다이아몬드가 반사하는 빛의 영롱함이 다이얼 아래에 내장된 태양광 전지가 얼마나 탁월한 파워리저브를 제공하는지 증명한다.
이처럼 태양광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럭셔리 워치 업계의 시간을 써 내려가고 있다. 타임피스의 아름다움과 희소성에만 의지하지 않고,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찾은 우아한 균형으로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태양처럼 뜨겁게 빛날 럭셔리의 다음 장이다.
- 포토그래퍼
- 최나랑
- 모델
- 유에멍
- 헤어
- 이봉주
- 메이크업
- 임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