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모두가 주목하는 ‘탄소’의 모든 것. 

화제의 단어, 탄소 

미국 증권 거래위원회(SEC)의 기후 관련 공시에 따라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무로 보고해야 한다. 선택이 아닌 의무이자 준수 사항이 된 온실가스 회계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탄소 데이터 역시 주요한 지표로 시장을 견인한다. 온실가스 회계의 지침인 온실가스 프로토콜(GHGP)은 올해 또 한 번 업데이트될 예정으로 시장의 지각변동도 예상된다. 

 

탄소? CARBON? C? 

탄소는 무슨 죄를 지어서 그토록 욕을 먹고 있을까? 전 세계 정부가 기피하는 탄소의 정체는 온실가스와 관련 있다. 지구 환경오염의 주범이 온실가스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탄소는 그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1997년 선진국을 대상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온실가스 감축의무 설정이 이루어진 교토의정서에서는 온실가스를 6종으로 규정했다. 온실가스로 규정된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화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유황(SF6) 중 무려 4개에 탄소가 포함되어 있고,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는 건 곧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각국 전문가로 구성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C)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인류의 생존과 생태계 보전을 담보하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최후의 한계선인 1.5°C 이내로 제한했다. 

 

세기의 미션, 탄소중립

탄소중립이란 배출한 탄소와 흡수한 탄소 양의 균형을 맞춰 실질적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배출량은 줄이고, 흡수량은 증대해 순 배출량이 ‘0’에 이르는 것을 탄소중립, 넷제로(Net-Zero)라고 한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이르는 것을 약속했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도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해 시행되어야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발전을 자원 고갈과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아닌 기술과 과학의 발전을 통해 자원의 선순환을 도모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곧 산업, 경제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친 새로운 메커니즘의 도래다.

탄소에도 세금을!

유럽연합과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주도로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Tax)가 화두에 올랐다. 이 세금은 온실가스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강한 국가로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할 때 발생하는 무역 관세로 오염자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탄소배출원의 이동 현상 방지를 목표로 한다.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한 환경 규제가 강력해지는 흐름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2030년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감축하는 입법 패키지 ‘핏포 55(Fit for 55)’에 탄소국경세 도입을 포함하며, 2026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부과할 예정이라 밝혔다. EU는 2025년까지를 준비 기간으로 지정하고, 오는 10월부터 탄소배출량을 의무 보고하도록 했다.

 

CARBON FOOTPRINT 

탄소발자국은 개인 또는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의미한다. 사실 일상에서 우리가 내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발생시키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장 오늘 아침 마신 커피가 어떻게 자라고 가공되어 커피포트에 안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뿜어냈는지도 모르니까. 재화와 서비스에 탄소발자국을 추적하는 시스템이 미비해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과정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실상 개인의 정확한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알 건 알아야 한다. 한국기후·환경 네트워크에서 개발한 탄소발자국 계산기에서는 전기, 수도, 가스, 교통, 폐기물을 기준으로 한 달 기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발생하는지 수치화할 수 있다.

기억할 단어, 탄소배출권(CER)

탄소배출권(Certified Emission Reduction, CER)은 교토의정서에서 지정한 6대 온실가스를 일정 기간 배출할 수 있도록 유엔의 담당 기구가 개별 국가에 부여하는 권리다.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르면, 탄소배출권은 국가에 발급되며 일종의 채권처럼 거래소나 장외 매매가 가능하다.
또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사업장과 국가 간 배출 권한 거래를 허용하는 배출권 거래도 가능하다.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인 실적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등록하면 감축 양만큼 탄소배출권을 부여받는다. 배출권은 국가별로 부여되지만 기업에게 할당되기 때문에 거래의 대부분은 기업 간 이루어진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탄소배출권 거래액은 2005년 109억 달러(약 14조원)였지만 2009년 1400억 달러(약 184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기업적 차원에서 탄소배출량은 감소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억해야 할 수치, 스코프(Scope)

불투명한 개인의 탄소배출량과 달리 기업의 수치는 ‘스코프’라는 단위로 측정한다. 이는 1998년 세계지속가능 발전기업협의회와 세계자원연구소가 명시한 온실가스 회계 처리 보고에 관한 가이드라인 온실가스 프로토콜에 명시된 기준이다.
기업은 탄소배출원의 범위에 따라 스코프를 1~3단계로 나눈다. 스코프1은 직접 배출을 의미하며, 기업이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배출원의 탄소량을 뜻한다. 스코프2는 기업의 탄소 간접 배출량으로 구매, 취득하여 사용한 전기, 증기, 난방, 냉각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의미한다. 기업 입장에서 매우 광범위하고 계산이 복잡한 스코프3은 간접 가치 사슬 배출을 뜻한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먹거리 

2023년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8)는 역사적 성과를 낳았다. 28년 총회 역사상 최초로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합의문을 도출하고, 기후 위기를 겪는 국가에 금전적 보상을 하는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 더불어 유엔 과학자들은 화석연료의 배출을 중단하는 것을 넘어 탄소 제거 기술이 필수임을 강조했다. 최근 발표된 매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탄소 제거 능력에 대한 전 세계적 투자는 약 132조원에서 약 52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브랜드 뉴 마켓

정부 주도의 규제적 탄소 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과 민간 주도의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으로 분류된다. 규제적 탄소 시장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달성하기 위해 감축 의무자가 사전에 설정한 할당량을 배출권 형태로 거래한다. 이와 반대로 자발적 탄소 시장은 개인, 기업, 정부, 비영리 단체 등이 지구인의 책임을 위해 탄소 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공인 기관의 인증을 받은 탄소 크레딧(Carbon Credit) 형태로 거래가 가능하다. 자발적 탄소 시장은 파리 협약에서 규정한 NDC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 금융 기관, 정부의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넷제로의 개척자

이쯤 되면 ‘과연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먹고사는 문제만큼 시급한 생존의 문제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채식을 지향하고 걷기를 생활화하며, 가치소비를 지향함을 넘어 탄소 시장에 뛰어드는 방법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탄소 상쇄권 중개 플랫폼을 구축한 제시아 플랫폼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자발적 탄소 시장의 신뢰 부족과 불확실성에 발 벗고 나서 공인된 기관에서 검증받고, 건강한 생태계가 구축되도록 앞장서고 있다. 탄소 상쇄권의 B2C 플랫폼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더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시장이 활성화될수록 의무 탄소 시장 역시 강력한 규제와 실행이 보장된다. 넷제로는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우리가 모여 개척해야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