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하고 거침없는 선과 면 그 너머. 깨고, 접고, 칠하고, 쌓으며 치열하게 땀 흘리는 공예가 4인을 만났다.

(위부터) ‘지태칠기 원기둥 스툴’ 합판으로 만든 뼈대에 한지를 바른 뒤 겹겹이 옻칠을 얹어 만든 스툴. 옻을 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텍스처가 빛에 따라 오묘한 색을 낸다. 290×290×440mm.
‘지태칠기 사각 스툴’ 앉아있을 수도 있지만, 물건을 올려두는 선반이나 장식대로 활용하는 등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220×400×430mm.

옻칠 공예가 | 유남권

재단법인 예올이 선정한 ‘2022 올해의 젊은 공예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등극한 옻칠 장인 박강용 명인의 문하생으로 옻칠을 시작했다. 종이로 된 기물을 옻칠로 마감하는 ‘지태칠’ 기법으로 옻의 기능과 미감을 소개한다.

옻칠은 어떻게 시작했나?
한국의 전통적 색채를 띤 작업에 늘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진로에 대해 고민할 무렵에는 한복집이나 단청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 기웃거리기도 했다. 옻칠도 그 과정에서 우연히 접한 일 중 하나다. 제대로 배우려고 옻칠 제기로 유명한 남원에 내려가 옻칠장 박강용 선생을 찾았다. 지금도 격주로 남원에 내려가 선생님의 공방에서 이수자로 일하고 있다. 

물건에 옻칠을 하는 과정은 왜 필요한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마감 도료로 바르는 걸 옻칠이라 한다. 기물에 옻칠로 마감하면 도막이라 불리는 층이 겹겹이 쌓여 물에 젖거나 썩지 않고, 각종 해충으로부터 보호된다. 짙은 갈색이 기본이지만 색을 내는 안료를 섞으면 다양한 색감을 연출할 수도 있다. 

옻칠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옻이 올라 고생을 많이 했다. 칠을 한 뒤 건조시킬 수 있는 공간이 따로 필요하기 때문에 물리적 측면에서 제약도 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소재를 원하는 질감으로 다양하게 변주시키는 재미를 이기진 못하는 것 같다. 작업자 역량에 따라 소재를 완전히 뒤덮어버리기도, 혹은 적당히 드러내기도 하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만들 수 있다. 

종이에 옻칠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옻칠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옻칠의 대상이 되는 목재나 금속 기물을 제작하는 돈만 해도 만만치 않다. 금전적인 문제를 두고 고민할 무렵, 한지를 활용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동양화를 외면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한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옻칠을 해보니 얘기가 달라졌다.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검게 옻칠한 종이 기물은 마치 먹이 스민 한지처럼 고아한 매력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전통 지태칠 기법은 전면을 균일하게 칠해 플라스틱처럼 매끈한 광택감을 내는데, 나는 반대를 지향한다. 한지에 먹을 잔뜩 머금은 붓을 콕 찍으면 퍼지면서 흘러내리는 것처럼, 종이를 입힌 기물에 옻을 흐르도록 칠해 건조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특히 지태칠한 스툴은 습기가 닿으면 틀어지는 원목 대신 합판으로 백골(옻칠하지 않은 기물)을 만들어 쓰고 있다. 이후 한지를 발라 완전 건조시킨 뒤 옻나무에서 처음 채취한 생칠, 검게 만드는 흑칠, 색을 입히는 색칠 등을 20~30번 반복한 후 마무리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무엇인가?
마무리 칠인 ‘상칠’은 먼지와의 싸움이다. 마지막으로 건조장에 들어가기 전 먼지가 들러붙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상칠 전에는 늘 작업복을 깨끗이 털고, 작업장의 허공에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힌 뒤 바닥을 쓸어줘야 한다. 

주로 어떤 것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나?
작년 예올 프로젝트를 준비할 당시에는 건축물을 많이 봤다. 정형을 깨는 작품을 준비해야 했는데, 오히려 직선의 정형 구조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린 셈이다. 지나가는 풍경에서 수시로 영감을 얻는 편이다. 다른 분야에서 작업하는 또래 작가들과 교류하며 자극을 얻기도 한다. 전시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름답고 창의적인 말과 그림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들에서는 늘 많은 영감을 얻는다.

지금 머무는 공간에는 어떤 공예품들이 있나?
옻칠 작업을 할 때는 칠이 튀거나 사포질로 먼지가 쌓이기 쉬워서 작업실에는 생각보다 물건이 많이 없다. 아무래도 주변에 나이대가 비슷한 공예 작가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만든 물건에 관심을 갖고 사용하게 된다. 평면적 형상을 3차원으로 입체화하는 작업을 하는 곽철안 작가의 거울과 해양 쓰레기를 금속에 조합하는 이혜선 작가의 조명, 비정형 유리 공예를 주로 하는 양유완 작가의 잔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신의 작품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나?
옻칠은 친환경적인 재료다. 식기류에 사용할 수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인간에게 무해한지 알 수 있다. 지태칠을 할 때 사용하는 종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모두는 나의 개인적 흥미에서 시작한 작업일 뿐 처음부터 환경에 미칠 피해를 고려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작업이 환경 파괴 문제에 뾰족한 돌파구를 제시한다고 할 수는 없다.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며 매 순간 조금이라도 무해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작업에서는 내가 재미와 매력을 느끼는 것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거나, 자동차 공회전을 하지 않는 등 작업에 앞서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도 친환경적인 선택을 하는 습관부터 들이려 한다. 

당신의 작품이 사용자의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나?
생각지도 못한 쓰임으로 활용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흑칠한 벤치를 주거 공간에 장승처럼 세워놓거나, 스툴을 다른 작품을 올려두는 진열대로 활용하기도 하더라. 기발한 활용 사례를 보고 역으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다. 실질적인 삶의 편의를 위할 수도 있지만, 정서적인 안정감과 만족을 얻고자 소비할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어떤 의도로 만든 물건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잘 만든 공예품을 필요에 맞게 들여 윤택하고 세련된 삶을 꾸리는 데 사용하길 바랄 뿐이다. 

작업하지 않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
작년엔 유독 작업량이 많았다. 작업 전후로도 끊임없이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온전히 쉴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뭔가를 만들지 않을 때는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틀어놓고 한없이 누워만 있었다. 한동안 맛있는 전통주를 디깅하듯 찾아 마시기 바빴다. 단종된 막걸리 양조장을 찾아갈 정도로.(웃음) 술을 빚는 일에도 잠시 관심을 가졌는데 작업과 병행하기는 무리일 것 같아 관뒀다. 

회사원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고 작업을 하기도 하나?
대체로 루틴을 만들어 일하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완전히 마무리할 때까지 초긴장 상태다. 밤낮도 없다. 온종일 작업 생각만 가득하다. 끝나고 나서야 며칠 맘먹고 쉬는 편이다. 

이 일을 하며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
표현하고자 하는 지점이 생각만큼 완벽히 구현되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 내가 의도한 지점을 알아차리고 공감해주는 사용자를 만날 때도 기분이 좋다.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또 다른 작업으로 이어져 완성될 때 이 일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보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톺아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시간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신작보다는 기존 작업을 시리즈로 발전시키는 식으로 작업의 밀도를 높이려고 한다. 

 

(위부터) ‘GLOSSY WING CUP SERIES’ 독주를 마실 때 사용하도록 만든 잔. 크고 동그란 얼음이 쏙 들어갈 만한 크기로 제작했다. 차가운 차를 마시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100×100×110mm.
‘GLOSSY WING OBJECT SERIES’ 나비의 날개를 연상케 하는 패턴의 오브제 시리즈. 다완으로 활용하기 좋다. 115×115×70mm.
‘DOT PLATE SERIES’ 점을 주제로 한 접시 시리즈. 유약이 흐르는 형태가 보일 수 있도록 오목한 모양을 택했다. 190×190×50mm.

도자 공예가 | 신소언

보호색과 대비되는 경계색을 주제로 컵, 플레이트, 오브제 같은 도자 조형물을 만든다. 마감재인 유약을 장식 기법으로 활용해 선명한 문양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올해 하반기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도자 공예는 어떻게 시작했나?
대학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했다. 학부생 때 공예과와 합쳐지면서 자연스럽게 공예를 접했다. 취미로 물레나 도자기 수업을 꼭 들어보고 싶었던 나에겐 반가운 기회였다. 섬유와 패턴을 다루는 평면 작업만 하다가 입체 작업을 시도하니 모든 게 새롭고 재밌었다. 

도자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도자기는 손으로 이리저리 형태를 잡는 과정을 거쳐 가마에서 구워야만 완성된다. 가마에 들어가 있는 시간은 내가 제어할 수 없으니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데, 동시에 가장 극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단계이기도 하다. 상상한 것과 표현한 것의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 같다. 

유약을 표현재로 활용하는 작업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자 작업을 시작할 무렵 처음 본 작품이 권순형 선생의 백자였다. 현대 도예의 1세대라고 불리는 분인데, 색을 다양하게 쓴 작업물이 많았다. 청자와 백자만이 도자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때에 그분의 작업을 보고 도자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됐다. 성형은 금속이나 목공에서도 가능하지만 유약 처리는 도자 작업에서만 볼 수 있는 과정이다. 내가 다루는 재료만의 특수성을 돋보이게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흙을 진공 상태로 만든 다음 물레 위에 올려 성형을 한다. 모양이 잡혔으면 하루 정도 건조시킨 후 칼로 깎아 정형하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서 또 며칠간 건조시킨 뒤 1차로 가마에서 초벌을 한다. 한 번 구운 도자에 유약을 입히는데, 이 과정을 ‘시유’라고 한다. 보통 유약에 토분을 담가서 모양을 내지만, 나는 붓이나 케이크 만들 때 쓰는 짤주머니로 찍어 바르기도 한다. 시유한 뒤 또 한 번 건조시키고 재벌해주면 완성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무엇인가?
유약을 입힌 뒤 재벌하기까지는 늘 노심초사한다. 가마에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대충 어떻게 나올지 예측되지만 재벌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크기가 15% 정도 줄어들고, 유약이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유약은 물에 돌가루를 녹여 만드는데, 재료의 비율이 살짝만 틀어져도 패턴이 완전히 망가지는 예민한 작업이다. 

주로 어떤 것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나?
대학원생 때 경계색이라는 테마를 잡고 작업한 적이 있다. 경계색은 화려해서 눈에 잘 띄는데 보통 나비나 개구리 같은 하위 포식자에게서 발견된다. 눈에 잘 띄면 위험한 거 아닌가 했지만, 알고 보니 화려한 색 안에 독성을 품고 있다더라. 상위 포식자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는 셈이다. 그걸 보니 내가 처음 도자기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났다. 대학원에서 나는 적어도 4~5년씩 도자를 공부해온 친구들에 비해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늘 열등감에 시달려 화려한 것만 좇았다. 돌이켜보니 그게 나만의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경계색이라는 개념을 접하고부터는 내 방어기제를 작업의 콘셉트로 삼기로 했다. 도자 작업한 지 햇수로 6년째인데, 이제야 비로소 내 색을 찾았다고 느낀다. 

미적 기능과 실용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려 하나?
지금까지 공예품은 기능에 잠식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변색을 막고 위생상의 효과를 지닌 유약을 아름다움을 위한 표현재로 활용하는 것이 공예품에 내포된 두 가치를 조화롭게 섞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머무는 공간에는 어떤 공예품들이 있나?
최대한 공예품을 많이 소비하려 한다. 내가 만든 것도 사용하지만, 동료 작가나 선후배가 만든 것도 많이 구매하는 편이다. 공예 작가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만든 물건이 잘 팔리는 것도 중요하니까. 특히 작업실에는 각종 잔이 가득하다. 작업실에 놀러 온 사람에게 차나 커피를 내어줄 때 원하는 잔을 고르라고 하는데, 선택한 잔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 좋다.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신의 작품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나?
도자기는 가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재활용이 가능하다. 흙에 물을 넣고 수분을 날아가게 한 뒤 다시 반죽해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굽고 나면 재활용은 어렵기 때문에 작업에 앞서 쓰임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는 편이다. 한 가지 용도를 정해두고 물건을 만들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활용이 애매해질 것 같은 물건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당신의 작품이 사용자의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라나?
내가 만든 잔은 굽이 높고 좁은 편이다. 그래서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데 그걸 의도한 거다. 마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쓰는 물건을 주의 깊게 보고 의식적으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다.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사용해봤으면 한다. 

손잡이 없는 잔만 만드는 이유도 같은가?
그렇다. 커피를 뜨겁게 마시는 엄마를 보며 떠올린 아이디어다. 손잡이가 없다면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나. 그 짧은 여유라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했다. 기물의 일부인 손잡이만 쓰기보다 몸통 전체를 움켜잡고 사용하는 것이 잔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없앤 것도 있다. 

작업하지 않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
최근에는 작업하지 않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에 치여 살았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10분 안에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선식 같은 것만 찾았고, 사람도 거의 못 만났다. 기분 전환을 하려고 미술관을 가도 자연스럽게 작업의 레퍼런스를 찾고 있더라. 감상 대신 분석을 하느라 바빴다. 모든 과정에 배움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거다. 시간을 쓸데없이 보낼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회사원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고 작업하기도 하나?
그러려고 노력한다. 누구도 나에게 강제성을 부여하지는 않지만 이 일을 직업 삼은 이상 일반적인 회사원이 일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시간 이상은 작업실에 붙어 있으려 한다. 

이 일을 하며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
일단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과정이 재밌다. 도자기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물레를 활용하는 건데, 물레로 성형할 때는 도자기의 모든 면이 손에 닿는다. 어느 하나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물건이니 자연스레 애착이 생긴다. 머릿속에서 뿌옇게 자리한 아이디어를 선명하게 만들고, 마침내 마주했을 때의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작년 12월에 개최된 <2022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유리 공예의 매력에 빠졌다. 유리 공예 작업에도 가마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더 관심이 간다. 지금은 도자 작업에만 매진할 생각이다.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10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위부터) ‘DRAW A CIRCLE SERIES’ 황동 구리로 만든 기물에 금태칠을 한 뒤 자개를 한 땀씩 끊어 장식했다. 구체적인 쓰임을 가정하지 않고 제작한 오브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 중인 디자인이다. 270×270×200mm.
‘ANOTHER PEARL SERIES’ 물결 모양으로 디자인한 입구가 특징이다. 견고한 금속 표면에 옻칠을 한 뒤 반짝이는 자개를 썰어 세팅했다. 물건을 담거나 꽃과 식물을 꽂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170×170×180mm.

금속 공예가 | 김현주

금속과 나전을 접목한다. 자개를 썰어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흐릴 수 있는 간결하고 모던한 형태를 차용해 옛 물건이 고루하고 진부하다 느끼는 인식을 허물고자 한다.

금속 공예는 어떻게 시작했나?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금속, 도자, 목칠, 섬유를 모두 배웠는데, 그중에서도 금속 작업에 가장 열심이었다. 나전과 금속을 융합하는 작업 방식을 선택하게 된 건 대학원생 때 들은 수업 덕이다. 우리나라 나전칠기 1호 명장 손대현 선생에게 금속에 옻칠하는 ‘금태칠’을 배울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개를 붙이는 방법을 시도한 거다. 

자개를 끊어 붙이는 끊음질 기법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금속 표면의 단조로움을 뛰어넘고 싶었다. 자개를 끊어 붙이는 방법이 곧 자개가 지닌 영롱한 바다 빛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금속에 자개를 붙인 뒤 3백 번에서 많게는 1천5백 번 정도 연마해 광을 낸다. 이 과정은 어디까지나 자개가 본래 품고 있는 색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포질을 할 때도 광을 유지할 수 있는 두꺼운 자개를 쓴다. 

금속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금속과 자개는 단단하지만 열처리를 하거나 따뜻한 물에 담가두면 유연해진다. 한없이 강해 보이는 금속이 부드러워지는 순간을 활용해 내가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과정은 늘 재미있다. 딱 내가 원하는 만큼의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크게 봤을 때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황동 판재를 디자인하는 작업과 그 위에 옻칠하는 작업으로 나뉜다. 금속은 칠수록 단단해지기 때문에 열처리와 산처리 이후 망치질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친다. 견고해진 금속에 옻칠한 후 보석을 세팅하듯 자개를 입히는 나전 작업을 병행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무엇인가?
내 작품은 결국 자연에서 난 자개를 단단한 물성을 지닌 금속과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질이 서로 다른 두 재료가 하나의 결과물에 공존해야 하는 만큼 재료 간 균형을 찾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과정이 가장 어렵다. 

주로 어떤 것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나?
과거에 완성한 내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 물건이 어떤 면에서 부족했는지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다. 그걸 보완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 <식물도감>도 자주 본다. 자연이 만든 형태를 스케치하다 보면 내가 추구하는 조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기형으로 옮긴 뒤 그와 어우러지는 자개를 선별하는 식이다. 

미적 기능과 실용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려 하나?
한 번은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접시를 판매했는데, 어느 구매자가 메일을 보냈다. “나는 이 접시를 하나의 그림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보내준 거다. 누군가는 내가 의도한 접시라는 기능을 지운 채 순전히 예술 작품으로만 바라본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심미성과 기능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건 이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공예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최근 한국에서 공예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통 공예가 설 자리는 좁다. 공예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을지언정, 여전히 일상에서는 비교적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산품을 사용하는 데 길들여져 있으니까. 하지만 획일적으로 대량생산되는 물건은 다양한 군상의 인간성을 표현하고 예술로 이어지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산품에 익숙해질수록 오랜 시간에 걸친 사회·문화적 요소가 반영된 공예품의 가치는 더 선명해질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신의 작품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나?
아직 미미한 단계지만 유기나 자개 같은 한국 전통 소재를 일회용 플라스틱의 대체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에 앞서 지금은 이를 활용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전통 소재에 대한 대중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당신의 작품이 사용자의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라나?
최근 자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패션 아이템에 녹여내는 브랜드가 많이 보인다. 더 이상 자개를 예스러운 것이 아닌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가성비보다 가치관을 따져 소비하는 시대, 내 작업물 또한 누군가의 취향과 색을 드러내는 물건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리라 기대한다. 

작업하지 않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
여태껏 작업만 하느라 제대로 된 여유를 누리지 못했다. 평소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보기만 하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움직여보려 한다. 일을 멈추는 데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올해는 용기를 내볼 생각이다. 

회사원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고 작업을 하기도 하나?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미술학과 교수로 재임 중인데, 대학교수가 되기 전에는 줄곧 작업실을 회사로 여기며 살았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꼬박 작업만 했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한두 점은 만들 수 있었다. 그때는 작업하는 시간이 무용하다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작업에만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 

이 일을 하며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 엄청난 성취감을 느낀다. 아주 얇은 자개를 사용해 끊음질을 완성한 순간은 운동선수가 신기록을 달성했을 때와 비슷하다. 겉으로는 정적이고 온화한 작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엄청난 도전 정신과 투지를 갖고 임한다. 실패가 남는대도 그 또한 나를 성숙한 공예인으로 끌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나는 금속 공예가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대학교수기도 하다. 제자를 양성해 공예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최근 3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무형문화재인 나주소반, 죽람장 차바구니, 은장도 장인들과 한국 고유의 문화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공예가로 자리 잡으려는 학생에게 설득력 있는 작품으로 시대적 요구나 상황을 반영하는 자세를 심어주고 싶다. 

 

(왼쪽부터) ‘ECLIPSE_CH_GOLD’ 좁은 너비로 겹겹이 접은 한지에 금속 지지대를 활용해 형태를 잡았다. 조도를 낮게 연출하고 싶다면 바닥에 두고 사용해볼 것. 300×170×450mm.
‘ECLIPSE_FL’ 50개 수량으로 제작한 플로어 램프. 거실, 라운지, 침실 등 쉼이 필요한 공간에 잘 어우러진다. 300×170×1500mm.

한지 공예가 | 권중모

한지를 겹치거나 접었을 때 빛이 어떻게 투과되는지를 실험하며 다양한 색온도를 지닌 조명을 만든다. 오는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갤러리 ‘로사나 올란디(Rossana Orlandi)’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여한다. 

한지 작업은 어떻게 시작했나?
처음부터 공예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대학에서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실물로 만들어내는 샘플링 과정 중 한지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접점을 키워갔다. 

조명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지와 만난 빛의 온화함에 매료됐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빛은 꼭 필요한 존재지만, 빛이 사람을 피로하게 하기도 한다. 같은 빛이라도 한지를 통하면 더 따뜻하게 느껴져 눈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 집중했다. 투과한 한지 종류에 따라 다른 색을 띠는 빛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을 발전시키다 보니 조명에까지 이르렀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대체적으로 실험하듯 작업하기 때문에 정해진 과정은 없다. 색과 두께가 서로 다른 한지를 이렇게 접어보고, 저렇게 겹쳐도 보면서 빛의 양상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장 공을 들인다. 조명의 형태가 떠올라 그 디자인에 적합한 한지를 찾을 때도 있지만, 한지를 깊이 연구할수록 디자인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가장 신중을 기하려고 한다. 한지로 대략적인 형태를 잡은 뒤 조명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지지를 도와줄 재료를 찾아 조합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지점은 무엇인가?
한지를 접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간혹 입체 조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에 대한 디자인적 고민도 많다. 일반 종이에 비해 질긴 편이지만 섬유에 비하면 턱없이 약하기 때문에 내구성을 높이는 방법도 늘 연구할 문제다. 

한지로 만든 조명을 오래 사용하려면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하나?
보관 방법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말하길 한지는 천년을 가는 종이다. 습기만 조심하면 된다. 

주로 어떤 것에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나?
한지를 갖고 노는 데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작업하고 남은 자투리를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빛을 비춰본다. 늘 검은 한지로 조명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먹이나 검은 물감을 칠한 한지로는 빛이 투과되지 않아 구현하기 어려웠다. 최근에 검은색으로 옻칠한 한지에 빛이 은은히 스민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로부터 가지치기하듯 다양한 색의 한지 옻칠을 실험하며 여러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한지 조명 디자인을 위해 옻칠을 배운 건가?
유튜브를 찾아봤다.(웃음) 실험하는 마인드로 가볍게 접근했기에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영상을 찾아 무작정 시도했다. 감을 익힌 뒤에는 옻칠 공예를 하는 주변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시중에 옻물을 들여 파는 한지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컬러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당분간 직접 옻칠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미적 기능과 실용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려 하나?
어느 쪽이든 값을 지불할 가치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구매자를 더 세분화해 분석하려 한다. 더 아름답게 만들지, 기능적인 측면을 부각할지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사람이 내가 만든 조명을 사용할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봐야 한다는 말이다. 공예 신이 전례 없이 활성화한 지금과 같은 시기에도 공예 시장의 소비자를 심도 있게 분석한 데이터는 부족하다. 촘촘히 쌓인 사용자 데이터야말로 다양한 공예품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지금 머무는 공간에는 어떤 공예품들이 있나?
옻칠한 수저, 젓가락이나 도자기 잔 같은 식기류가 많다. 작업실에는 내가 만든 조명을 비롯해 한지 작업물이 대부분이다. 작업하고 남은 한지로 대충 모양을 낸 다음 오브제처럼 걸어두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렇게 널브러진 조형물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이어질 때도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공예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공예품은 인간에게 이롭다. 모든 제작 과정에 사람의 손길을 거치기 때문에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 끼어들 틈이 없다. 건강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물건만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아우라가 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신의 작품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나?
미국의 산업디자이너 빅터 파파넥이 쓴 <녹색위기>라는 책이 있다. 산업디자이너로서의 환경적 책임을 논하는 책인데, 20대 초반부터 잊히려 할 때쯤 반복해서 읽고 있다. 파파넥은 어떤 제품이건 세상에 나온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다른 쓰임을 갖고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나 역시 완벽한 재활용을 위해 재료의 성질별로 완전히 분리되도록 조명을 설계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버려지지 않고 오래 쓰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작품이 사용자의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지를 통과한 빛은 자연의 빛과 비슷하게 느껴져 심리적, 신체적 안정감을 준다. 앞으로는 여기에 한지 자체가 지닌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일정 거리까지 항균 효과를 발생시키는 한지를 찾았다. 조명으로 쓰이기에 적합할지 테스트해봐야겠지만, 만약 이를 활용한 조명이 제작된다면 사무실이나 작업실, 침실 같은 공간에 유용할 것 같다. 

작업하지 않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
아무것도 안 하겠다 마음먹지만 새로 시작한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연스레 움직이게 된다. 작업이 유독 안 풀리는 날에는 산책을 한다. 내 머리는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려 할 때보다 걸을 때 훨씬 활성화하는 것 같다. 가끔씩 쉬는 날에도 작업실에 나온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작업실에서 한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만들어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부담 없이 끄적이기도 한다. 

회사원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고 작업을 하기도 하나?
일하는 시간을 정해두지는 않는다. 매일 자유롭다. 작업하는 걸 생활의 일부처럼 생각하며 산다. 이제는 딱히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걸 보니 이런 삶의 방식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다. 

이 일을 하며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
생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목격할 때.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또 가지치기할 때 더없이 행복하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뭔가를 얻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조명 외에 다른 조형물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주력으로 삼고 있는 작업 외의 것을 고민하다 보면 지금의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되돌아오게 되더라. 물론 이 과정도 나름 재미있기는 하다.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에는 늘 열려 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