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뷰티는 사실 가장 과학적이고 인공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내추럴’은 뷰티 업계에서 매출을 보장하는 마법의 단어에 속한다. 또 화장품 회사가 제품 홍보를 위해 모호하게 사용하는 ‘그린’ ‘클린’과 함께 대표적으로 남발하는 단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내추럴’ 하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뜻한다. 사전적 정의대로라면, 뷰티 업계에서 진정으로 ‘내추럴’한 제품은 하나도 찾기 힘들 거다. 화장품이라는 건 반드시 인간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것이기에. 하지만 이런 가공 과정이 꼭 나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인공적’인 제품과 ‘자연적’인 제품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며, 흑백논리 같은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구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의도는 ‘내추럴’이라는 모호한 단어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단어 의미 자체에 너무 얽매이지는 말고 관련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고자 함이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식물성 스킨케어 제품은 극한의 온도나 곤충 수만 개에 노출시켜 효능을 입증한 것이다. “예전에는 기업이 식물 원료를 적극적으로 탐구할 이유가 없었어요. 수익성도 없고 실패율도 높은 사업에 어떤 업체가 수십억 달러를 들여 실험을 감행하겠어요.” 화장품 개발 회사인 샤 컨설팅 그룹 대표 알렌 샤(Allen Sha)가 말했다. 그럼에도 최근 식물성 제품 개발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환경친화적 동결건조

동결건조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다. 얼린 망고나 딸기 같은 동결건조 간식을 즐겨 먹고 있으므로. 식품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기술이 이제는 뷰티 업계로 흘러 들어왔다. 아니, “흘러 들어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동결건조는 수분을 제거하는 기술이니까. ”쉽게 저온건조라고 생각하면 돼요”라고 보스턴 피부과의 라넬라 허시(Ranella Hirsch) 박사가 설명한다.
알로에를 예로 들어보자. 식물에 열을 가해 증기로 수분을 제거하고 추출물을 얻는 대신 진공상태에서 물체를 얼려 물이 승화(중간 단계인 액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수증기로 변화하는 것)하는 방식으로 추출물을 뽑는다. 즉 “수분이 기체로 날아가며 남은 고체 상태의 결정체를 으깨 고운 입자의 파우더로 만든다”는 게 플로리다주 생화학자 크루파 코스틀린(Krupa Koestline)의 설명이다. 코스틀린은 동결건조한 알로에 분말이 주재료인 스킨케어 제품으로 샹테카이의 ‘CBD 300 페이스 및 바디 크림’과 코파리의 ‘트로피칼 글로우 젤 클렌저’가 있다고 말한다. 

생화학자 진저 킹(Ginger King)은 “동결건조한 재료는 방부제가 필요 없기 때문에(수분이 증발해 세균이 번식할 수 없다), 이에 민감한 환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파우더 형태의 식물 성분은 다른 형태보다 유효 성분이 고농축되어 있어 효과도 뛰어나다고. “어떤 효과를 보기 위해서 일반적인 식물성 추출물을 1% 정도 썼다면, 파우더 형태의 제품은 0.1%만 있어도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어요.” 또 건조된 형태라서 일반 파우더 메이크업 제품에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최근 급부상하는 스킨케어 트렌드 ‘워터리스 포뮬러’에도 적용 가능하다. 

동결건조의 가장 큰 장점은 환경친화적이라는 것. “유통기한은 긴 반면 방부제가 적게 들어가고, 무게도 가벼워요.” 허시 박사가 말한다. 또 유통과정에서 운송하기 쉽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에도 도움을 준다. 2050년까지 세계 물류 운송으로 유발되는 온실가스 양이 4배 이상 증가한다는 국제교통포럼의 보고서를 보고 나면, 이게 얼마나 환경에 필요한 기술인지 잘 알게 될 거다.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동결건조 기법은 매우 환경친화적입니다. 이 또한 소비자가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죠.” 허시 박사가 덧붙인다. 

한국 뷰티 업계에서는 이미 동결건조 화장품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대표 제품은 웰라쥬의 ‘리얼 시카 카밍 원데이 키트’. 병풀을 동결건조해 얻은 고농축 시카 히알루론산 캡슐이 핵심으로, 지난 2020년 <얼루어>가 <얼루어 US>와 함께 선정한 <얼루어 베스트 오브 뷰티> ‘K-뷰티 어워드’에서 혁신적인 제품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동결건조 식물은 기존의 수분과 오일 베이스 스킨케어 제품의 효능을 높여주기도 한다. “동결건조로 원재료의 분자량을 줄여서 화장품의 피부 침투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뉴욕시 피부과 전문의 다발 G. 바누살리(Dhaval G. Bhanusali)가 설명한다. 동결건조한 흰목이버섯을 주원료로 한 휴먼레이스의 ‘라이스 파우더 클렌저’의 탁월한 보습 효과가 이를 증명한다. 아카더마(Acaderma)사는 상백피 뿌리를 동결건조해 스타 라이트 스팟 코렉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상백피 추출물에는 멀베로사이드 F라는 유기화합물이 포함돼 있는데, 이 성분은 멜라닌 생성을 억제하고 피부 미백에 도움을 줍니다.” 매사추세츠 피부과의 아나르 미카일로프(Anar Mikailov) 박사는 “동결건조한 상백피는 기미 완화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발효의 힘

사람들은 과거에 ‘발효’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어느 뷰티 회사의 CEO가 자사 제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가정해보자. “저희는 식물 추출물에 미세한 미생물을 투입해 발효했습니다. 이 성분이 우리 페이스 크림에도 포함되어 있죠!” 예전 같으면 그런 발상 자체가 조롱거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기적의 크림’으로 잘 알려진 라메르의 ‘크림 드 라메르’(1965년에 첫 판매)와 SK-II의 대표 제품인 ‘피테라 에센스’(1980년대 첫 출시)는 모두 발효한 해초 추출물을 핵심 성분으로 한다. 또 최근 몇 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콤부차 역시 발효 음료다. 요즘은 가정용 양조기로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먹는 일도 흔하다. 지금은 발효 식품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친숙해졌고, 효모와 박테리아가 소화뿐 아니라 피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효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면서 뷰티 업계도 발효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발효 관련 특허 신청이 3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효모 발효 여과물은 다년간의 연구 결과로 탄생한 유망한 재료다. 효모를 이용해 식물을 발효하고 발효된 유익 성분 외의 미생물은 제거하는 것이 그 원리다. 미생물을 없앴기에 더 이상 발효되지 않아 용기에 안전하게 담을 수 있다.

코스탈린에 따르면, 발효되지 않은 성분보다 발효된 성분의 효과가 훨씬 강력하다고. 원재료의 발효 대사 과정에서 큰 분자가 쪼개져 약물의 생체이용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생체이용률은 우리가 성분을 발랐을 때 성분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발효 홍삼이 일반 홍삼 추출물보다 주름 제거에 훨씬 더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한국식품영양학회 학술지에 게재되었고, 대두는 발효됐을 때 미백 효과가 뛰어난 노화 방지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한국독성학회 저술지에 소개되었다. 현재는 스킨케어에 쓰이는 발효 식품에 대한 연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하나만은 확실하다. 발효 과정을 거치면 재료의 피부 침투율과 효능이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

발효가 스킨케어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이상 기존에 쓰던 평범한 알로에 수딩젤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두 번 발효된 알로에 추출물로 만든 올로스의 ‘수딩 너리싱 크림’처럼 빠른 피부 진정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 테니까. 이니스프리의 ‘자연발효 에너지 에센스’와 피치앤릴리(Peach & Lily)사의 ‘레이지 데이 올인원 모이스쳐 패드’ 역시 모두 발효된 대두 추출물을 함유해 항산화 효과가 우수하다. 오씨(OSEA)의 ‘씨글로우 오버나잇 세럼’은 자운고 발효 오일을 사용해 피부 수분 장벽 개선에 도움을 준다. 이탈리아의 연구가들은 20종의 테스터로 실험해 참당귀와 자초근 뿌리를 발효해 얻은 식물성 오일이 우리의 피부에 서식하는 미생물을 다양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노화나 질병으로 미생물의 다양성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다양성 유지가 왜 중요한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비건 성분과 과학 사이

국소적으로 도포하는 콜라겐은 일반적으로 동물의 결합 조직에서 추출한다. 피부 진정용 라놀린은 양의 분비물이 주원료다. 그리고 최근까지는 천연 피부 보호막으로 잘 알려진 스쿠알란의 주성분은 상어 간유였다. 각질 제거용 젖산은 유제품에서 유래했고, 피부의 수분 증발을 차단하는 벌집 밀랍은 말하지 않아도 어디서 왔는지 너무 뻔하다(답은 벌!). 동물에서 유래한 성분은 화장품의 핵심 원료로 쓰이며,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는 데 일조해왔다. 하지만 최근 동물성 성분으로 효과를 낸다고 마케팅하는 화장품 회사를 본 적이 있는가? 비건 화장품은 이제 뷰티 업계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전보다 화장품 성분을 깐깐하게 따지는 소비자는 기존의 동물성 성분 대신 식물성 성분을 함유한 비건 화장품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 조사 기관 글로벌 인더스트리 애널리스츠에 따르면, 2026년까지 비건 스킨케어의 성장률은 비건 메이크업과 헤어를 추월해 약 206억 달러(약 28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비건 화장품 성분의 폭이 넓어진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 왜 하필 지금?’이라는 질문에 샤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건을 지향하는 소비자의 니즈가 커지는 것과 동시에 더 많은 업체가 친환경, 깨끗한 제품 생산에 대한 지침을 의무화한 것이 영향을 주었죠.” 비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제조업체는 대안으로 식물과 같은 천연 재료로 눈을 돌리고 있다. 샤는 밀랍은 해바라기와 쌀겨로, 젖산은 발효한 옥수수 전분으로, 라놀린은 수소화된 식물성 기름과 버터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코스틀린은 비건 콜라겐의 미래에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 피부 탄력 유지에 도움을 주는 콜라겐 단백질은 동물에서만 추출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연구자들이 식물, 효모, 균을 이용해 콜라겐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있으나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막대함은 물론, 젊은 피부에서만 발견되는 특정 콜라겐을 생산하는 기술 구현이 어려워 연구가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바이오 디자인 기업 젤터(Geltor)가 발효로 비건 버전의 XXI형 콜라겐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콜라겐을 사용한 성분을 ‘휴마콜21(HumaColl21)’이라고 하는데, 특히 국소 부위에 바르면 효과적이라고. 휴마콜21의 효과를 경험하고 싶다고? 그럼 오로라(Orora)의 ‘바이오 액티브 콜라겐 세럼’을 사용해보면 된다. 

피부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수분 손실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인 일종의 지방질인 스쿠알란도 이젠 비건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아마란스 씨앗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1980년대에 제조업체는 올리브유 생산 후 남은 찌꺼기를 정제해 스쿠알란을 만들 수 있는 경제적인 방법도 고안해냈다. 최근에는 합성 생물학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아미리스(Amyris)가 사탕수수를 사용해 스쿠알란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사탕수수를 스쿠알란으로 만드는 데 빠질 수 없는 중요 과정은, 이미 짐작하듯 ‘발효’다.
“채식주의자로서 화장품 제조업체가 이런 재료에 관심을 갖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라고 코스틀린은 말한다. 그러면서 비건 제품은 동물의 윤리적 대우와 보호 측면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환경적인 측면에서의 의미도 크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작물 재배보다는 가축 사육에 더 많은 토지와 수자원이 필요하다. 비영리단체 세계자원연구소의 2016년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필요한 자원이 많을수록 온실가스 배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큰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인공 성분과 천연 성분을 구분하는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연 vs 인공의 오래된 대립 구조가 뷰티 업체가 신성분을 개발하는 데 방해가 된 것은 사실이다.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스킨케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화장품 제조업체는 재료별 포뮬러를 더 깊게 연구할 수 있고 좀 더 투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미 그렇게 경영하는 기업 중 하나가 코코카인드(Cocokind)다. 이 브랜드는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면서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공 재료와 천연 재료를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세라마이드 베리어 세럼’의 경우 알로에 잎에서 추출한 식물성 글리세린은 천연을, 반면 세라마이드는 인공 성분을 택했다. 코코카인드의 창립자 프리실라 사이는 “식물에서 세라마이드를 추출할 수도 있지만, 추출법이 복잡하고 비용도 크기 때문에 수급에 어려움이 있어요”라며 인공 세라마이드를 사용하는 이유를 전했다.

“소규모의 임상 연구와 고객, 환자의 피드백을 살펴본 결과 많은 브랜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능이 가장 우수한 제품은 식물성 재료와 인공 재료를 섞어 쓴 제품이라는 걸 깨달았죠”라고 바누살리 박사가 설명한다. 결국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의 결합이 중요한 셈. 허시 박사는 2024년 뷰티 업계의 트렌드를 한 단어로 요약했다. 그건 바로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