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무심(無心)’해질 수 있을까? 시끄러운 마음을 안고, 작은 모래 정원의 선을 그으며 ‘무’를 만나기 위해 애썼다.

‘무념무상’이라는 말이 당신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나? 긍정적인 의미일까? 아니면 부정적인 의미일까? 마치 ‘멍 때리기 대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말처럼 들리지는 않을까? 하지만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뜻은 그보다 깊고 멀다. 불교 교리와 선 사상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무념무상에서 ‘염’과 ‘상’을 들여다보자. ‘염(念)’은 대상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잊지 않는 작용이고, ‘상(想)’은 형상을 취하는 것을 일컫는다. 해서 염과 상은 우리의 마음, 심리를 말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무념무상’을 무아의 경지에서 의식의 대상에 관한 주관적인 견해나 집착을 떠나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자신의 본성을 맑게 지키면서 자유롭고, 상념 속에 있으면서도 상념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무엇에 연연하지도, 휘둘리지도 않는 어떤 경지. 그건 늘 108가지 이유로 번뇌하는 현대인이 꿈꾸는 이상향이다. 바로 그 지점을 위해서 사람들은 수련을 하고, 잠시라도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려고 애쓴다. 

웰니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생활 속에서 몰입과 명상을 돕는 도구도 많아졌다. ‘젠 가든’으로 불리는 미니어처 정원 키트도 그중 하나다. 일본식 모래 정원을 가정용으로 축소한 보급판이다. 맥북만 한 쟁반 위에 하얀 모래를 채운다. 돌, 식물, 이끼를 자유롭게 배치한다. 마음 가는 대로 놓고, 모래를 뒤적뒤적하다 보면 ‘마음 챙김’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일본식 모래 정원일까? 일본의 정원은 유난히 고요하게 다가온다. 영국식 정원처럼 아기자기한 것도 아니고, 프랑스식 정원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미니멀리즘 수행자의 집처럼 최소한의 것만, 더없이 좋은 자리에 툭툭 내려놓은 듯한 일본식 정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큰 미덕이 여백임을 알 수 있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정원을 꾸미는 ‘가레산스이’는 대표적인 일본 정원 기법 중 하나로, 해외에서는 ‘Japanese Rock Garden’ ‘Zen Garden’이라고 한다. 이 가레산스이의 역사는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원은 그저 예쁜 것이 아닌 신화와 동양철학을 담고 있다. 돌과 이끼로 장식한 후 흰 모래와 회색빛 자갈을 깐다. 돌은 산이고 이끼는 숲이고 생명이다. 하얀 모래는 물을 상징한다. 모래 위에 직선과 곡선으로 물결을 그리는 이유다. 이러한 정원은 어느새 사유의 공간이 되고, 명상을 위한 장소가 됐다. 

“사실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리츠칼튼 교토의 정원사인 코키 스즈키(Koki Suzuki) 씨가 말했다. 호텔은 웰니스와 일본 문화 체험에 관심 있는 손님을 위해 소규모로 정원사와 함께 하는 젠 가든 클래스를 열고 있다. 클래스를 위한 테이블에는 흙과, 모래, 돌, 이끼 등이 담겨 있다.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낮고 넓은 화분 또는 트레이만 있으면 재료는 다 갖춘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접시나 쟁반 같은 넓고 얕은 용기에 식물을 심어 작은 정원이나 분경을 꾸미는 원예 활동을 디시 가든(Dish Garden)이라고 하는데,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기다. 재료를 두고 미쓰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완벽한 젠 가든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의 조경 장인이 내게 호통을 치지는 않을까? 만화처럼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가 알려준 가르침은 의외로 간단했다. 흙을 고르게 또는 높낮이가 있게 쌓고, 중심이 되는 돌을 배치하고, 이끼를 더한 후 흰 모래로 흙을 덮으면 완성이라는 것이다. “높이의 차이를 두어 흰 모래로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 폭포가 되죠. 돌 네 개를 십자 모양 탑으로 쌓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은 자유롭습니다.” 내 정원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고, 정답은 없으며 언제든 고칠 수도 있다는 거다. 그 점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일본의 정원을 소개한 사진집을 넘기며 영감을 채웠다.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인 료안지 사진에 눈이 갔다. 15세기 후반에 지은 료안지는 직사각형 모양에 돌 15개가 놓여 있고, 식물은 이끼뿐이다. 매일 아침 승려들은 흰색 자갈을 긁어 선을 만든다. 작고 귀여운 료안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삽으로 떠낸 흙을 화분에 골고루 깔았다. 돌무더기 속에서 마음에 드는 돌을 골라냈다. 특별한 돌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돌이다. 정원의 돌은 보통 ‘산’을 뜻한다. 하나의 산을 크게 만들고 나머지는 작고 평탄한 돌을 골랐다. 내 일상도 평탄했으면 해서. 어느 정도 돌을 쌓은 후에 이끼로 덮었다. 초록색 이끼를 뿌리 쪽 흙이 보이지 않도록 빈틈없이 채웠다. “위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옆에서, 혹은 아래서 보는 형태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흰 모래를 뿌리고 화분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니 나만의 젠 가든이 완성되었다. 별거 아닌 과정인데 거의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미쓰이가 대나무로 만든 도구를 주며 선을 그어보라고 했다. 직선을 긋고, 곡선을 그어본다. 직선 옆에 직선을 그어야 하고, 곡선 옆에 곡선을 그어야 한다.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마음대로 안 된다. “저도 며칠에 한 번씩 리츠칼튼 교토의 정원에 선을 긋습니다. 정말 쉽지 않죠. 때로는 지우고 다시 긋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선을 긋는 데만 온 정신을 쏟아야 합니다. ‘무’를 만난다고 하듯이요.” 해외에서 식물과 흙을 가져오는 것은 방역법상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에, 나는 사진을 여러 장 남기고 내가 만든 첫 ‘젠 가든’을 교토에 두고 왔다. 꼭 키트를 구매하지 않아도 흰 모래, 돌, 이끼와 이를 담을 수 있는 화분이나 그릇만 있다면 언제든 ‘젠 가든’을 다시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됐으니까.

정원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가 되고, 삶을 은유하는 여행이 된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휘몰아치는 강이 되었다가, 조용히 흐르다가 영원할 것처럼 바다로 흘러간다. 이 작은 정원이 내 상념을 잠시나마 대신 담아주는 우주가 될 수도 있다. 마음 시끄러운 날, 억울한 날에도 화를 내는 대신 대나무 긁개를 손에 쥘 테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후 바로 뻗어나간 직선을 그리는 데 집중하면서 흰 모래 위에 선을 긋는 것이다. ‘무심’에 닿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