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살인, 붕괴로써 완성되는 사랑 고백이 있다. 살인 트릭으로 파악한 감독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하여.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우아하게 세공된 멜로물인 동시에, 상징을 트릭의 방식으로 삼은 고전적 추리물이다. 기자 간담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의 틀은 고등학생 시절 처음 읽은 마이 셰발&페르 발뢰의 스웨덴 범죄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 왔다고 밝혔다. 시리즈의 제2권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서문을 쓴 추리소설가 밸 맥더미드는 주인공을 이렇게 묘사한다. 

“베크는 일종의 이상주의자인데,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세계와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 사이 간극에 계속 대면하게 된다. 간극에 대한 인식이 삶을 물들여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가끔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상황을 낫게 할 수 있나 하는 숙명론적 체념을 품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에서 장해준(박해일 분)의 캐릭터가 어떻게 조형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영화의 사건은 수사관이자 인간으로서의 이상 때문에 사건에 휩쓸리는 해준의 캐릭터가 빚은 필연이다. 감독의 말대로라면 “100%의 수사 드라마와 100% 로맨스 영화”라는 <헤어질 결심>. 등장인물의 감정과 추리물의 장치가 어떻게 결합되었는지 낱낱이 해체해보고 싶은 것도 추리 마니아의 욕망일 것이다. 

산 – 상승의 욕망과 첫 번째 살인의 트릭 

형사와 피해자의 아내라는 고전적 추리물 구도의 영화에서 첫 번째 죽음은 부산(釜山)에서 일어난 추락 사망 사건이다. 부산은 항구도시지만, 여기서는 ‘산’을 내포한 도시다. 송서래(탕웨이 분)의 남편 기도수(유승목 분)가 떨어져 죽은 구소산, 해준과 수완(고경표 분)이 살인 용의자를 쫓아가는 높은 계단, 살인 용의자 산오(박정민 분)의 이름과 그가 추락하는 옥상, 해준과 서래가 함께 올라가 훈훈한 시간을 보내는 산사(山寺), 서래가 한국에 온 이유인 호미산까지. 영화 전반부는 산과 고도를 이용해 해준과 서래 사이의 높아지는 관계적 긴장감을 묘사한다. 

서래가 남편을 죽이는 방식이 몸을 움직여 ‘산을 오른다’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소유물로 취급되는 삶에서 벗어나 올라가고 싶었던 서래는 남편이 등산하는 코스를 미리 파악하고, 월요일마다 간호하러 방문하는 할머니의 집 뒷담을 넘어 빠져나가 알리바이를 만든 후, 다른 암벽등반 코스로 올라가서 남편을 밀어 죽인다. 해준이 서래의 살인 수법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할머니의 핸드폰 이동 기록에서 138계단이라는 높이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해준에게 들켰을 때 서래의 생존 욕구, 상승의 욕망은 무너진다. 애초에 이 트릭은 서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서래와 해준은 산보다 바다를 좋아한다. 그들이 추구한 이상은 높이보다는 깊이였지만, 그들은 관계와 살인 양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높이로 올라갔다. 결국 해준은 서래를 믿었기에 자신이 ‘붕괴’했다는 중요한 고백을 한다.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붕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는 서래. 개념 은유적 관점에서 뭔가가 ‘무너지려면’ 그것은 높이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이상을 추구했던 해준이 무너지고 깨어지자, 서래는 자신의 알리바이도 무너졌음을 깨닫는다. 사랑에 빠지자 생존을 위한 상승의 트릭이 깨어졌다는 뜻이다. 

바다 – 물의 다정함과 두 번째 살인의 트릭 

후반부는 바닷가[浦]를 품은 도시, 이포에서 시작된다. 전반부와 대조적으로 물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수영장에 빠져 죽은 시체, 사건 이후 바닷가에서 서성이던 서래, 노래와 날씨로 표현되는 물안개. 초록인지 파랑인지 알 수 없는 바다색 원피스, 역시 물색을 담은 펜타닐 알약. 살인 수법도 물의 깊이와 관련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유명한 고전 추리 수수께끼와 비슷하다. 한 젊은 여성이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장례식 후 여성은 그를 찾으려 하지만 만날 수 없다. 며칠 후, 여자는 동생을 죽인다. 왜일까? 답은 동생의 장례식에 그 남자가 올까 봐. 두 번째 살인 사건에서 해준과 서래는 형사와 유족이자 최초 목격자, 용의자로서 다시 만난다. 해준을 다시 만나기 위해 서래는 두 번째 남편 호신(박용우 분)을 죽였을까? 이런 의구심을 품은 해준은 “내가 만만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서래는 반문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두 번째 살인의 트릭은 추리소설에서는 전형적인, 대리 살인(Proxy Murder)이다. 대리 살인의 대표적 예는 청부 살인이지만, 서래가 쓴 방식은 이보다는 더욱 감정적이고 친밀하다. 서래는 호신에게 사기를 당한 어머니 때문에 원한을 품은 철성(서현우 분)이 한 말, 어머니가 죽으면 호신을 죽일 거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는다. 결국 서래는 병원을 찾아가 아픈 철성의 어머니를 한참 돌봐주고 안아준 뒤 펜타닐을 먹인다. 다정한 살인으로 잔혹한 살인을 촉발한다. 보통 이런 대리 살인은 알리바이를 만들거나 공범을 끌어들이는 목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죄에서 벗어날 마음이 없는 서래에게는 알리바이가 필요 없기에 이런 방식은 의문스럽다. 어차피 포기할 삶이라면 서래는 왜 해준을 위협하는 호신을 직접 죽이지 않았을까?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행된 첫 살인과 달리, 두 번째 살인은 사랑을 위한 것이다. 해준은 서래가 진범임을 알고도 직접 체포하지 못했기에 경찰의 이상이 깨어졌다. 따라서 서래는 남편 살해범으로 체포당할 수는 없었다. 서래가 다시 살인자가 되면 경찰로서 해준의 붕괴는 더욱더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살인은 물을 모티프로 삼았대도 첫 살인과 정도 면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서래는 해준이 무서워할까 봐 피를 치우기 위해 얕은 수영장에서 물을 빼고 호신의 시체를 꺼내서 씻어 앉혀놓는다. 시체는 완전히 물속에 가라앉지 않고, 아직 지상에 걸터앉아 있다. 중간에 나오는 자라 절도 사건이 암시하듯, 두 번째 사건은 대리로 자행되었기에 물과 뭍, 양쪽에 자리 잡은 일종의 자라 같은 살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살인

해준의 붕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떨어진 높이만큼 깊이가 필요하다. 거기서 서래의 세 번째 사건, 자신이 희생자가 되는 살인의 트릭이 나온다. 서래는 바닷가 모래밭에 깊이 가라앉을 수 있는 구덩이를 파고, 그리로 내려간다. 서래가 그 속으로 사라졌을 때, 그 앞에 높이 쌓여 있던 ‘모래산’이 만조에 따라 무너지고 깨어지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높이 올라갈 수 없는 서래는 스스로 무너지고 깨어져 깊이를 만들었고, 후에 서래를 찾으러 온 해준은 서래가 묻힌 자리 위에 선다. 즉, 서래가 만들어낸 물속의 깊이로, 해준의 높이는 다시 확보된다. 그러니 서래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을 지하에 묻음으로써 해준을 지키려는 방식으로 보인다. 해준이 ‘나는 붕괴했다’고 한 말을 사랑 고백으로 받아들인 서래는 그대로 돌려준다. 세 번째 살인의 방식은 결국 무너지고 깨어진 모래산 아래에 자신을 가두어 해준의 붕괴를 복구하려고 한 서래 나름의 사랑 고백이었다. 이포의 초반에 나오는 석류가 상징하듯 영원히 땅 밑에 있을 페르세포네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