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르베다, 나를 말해줘

열대 식물이 가득한 몰디브의 정원에서,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줄줄이 읊어주었다. 용한 점쟁이를 만난 것처럼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내게 “당신은 ‘바타’ 타입”이라고 말했다.

천국은 아마 이런 모습일지 몰라, 싶었던 몰디브의 한 리조트에 머무른 적이 있다. 셀러브리티는 한없이 투명한 민트색 바닷가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고, 나는 우리 화보팀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준 리조트의 기사를 쓰기 위해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던 포시즌스 란다 기라바루는 인도 아유르베딕 의학에 바탕을 둔 서비스가 많았다. 의사가 상주해 게스트들의 건강과 체질을 감별해서 식단이나 테라피를 추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바타, 피타, 카파의 세 가지 도샤 중 상담을 통해 이 체질을 진단하고, 생활에서 피해야 할 습관과 좋은 습관, 좋은 식재료와 줄여야 할 식재료, 도움이 되는 호흡법 등을 알려주었다. 상담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스파 트리트먼트를 추천받을 수 있고, 레스토랑 메뉴에서도 세 가지 도샤에 어울리는 메뉴가 준비되어 있는 식이었다. ‘리트리트’와 ‘디톡스’만을 위해 혼자 방문해 7일, 14일, 21일간의 집중 프로그램을 받는 부자들도 있었다. 체질 상담은 무료였기에, 나는 열대 식물과 서양란으로 가득한 정원에서 인도 의사를 만나게 됐다.

나는 점이나 체질을 잘 믿지 않는다. 체력이 한풀 꺾이는 30대 중반을 지나며 한동안 유행했던 팔체질로 유명한 병원에 줄을 서보기도 했지만 어느 것도 나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마늘과 고추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말라니, 그건 한국인으로 살지 말라는 말 아닌가? 때문에 전통 의상을 입고 나타난 인도 의사를 만나는 내 마음도 의심이 반이었다. 설문지의 빈칸을 채우고, 인도 의사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도 심드렁했다. 인도 의사는 내가 하는 말보다 내 얼굴과 안색, 목소리나 앉은 자세 등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당신은 평소에는 잘 자지만 고민거리가 있으면 잠들지 못하는군요.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일을 맞혀볼까요?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일 거예요. 당신에게는 한 번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념은 당신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도 꺾을 수 없어요.” 흥미가 생기는 얘기였다. “아유르베다는 바타, 피타, 카파의 세 가지 도샤 개념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사람은 각자 지배적인 도샤 유형을 띠기 마련이고 이후 환경에도 영향을 받죠. 당신을 지배하는 도샤는 ‘바타’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샤 유형은 내 건강과 수명, 선호도, 행동, 감정을 좌우한다. 그러니까 도샤는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는 것. 바타가 우세한 사람은 마른 몸을 유지하고 활기차며 열정적이고, 항상 새로운 관심사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좋은 것만 있다고 생각할 때 의사는 말했다. “밸런스가 유지된 경우에는 말이죠.” 하지만 균형은 언제든 무너지고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바타의 에너지는 급상승하기 때문에 또한 갑작스러운 피로가 발생합니다.” 그랬다. 마감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인데, 며칠을 새벽을 벗 삼아 달린 후에 마감이 끝나면 이틀 동안을 그냥 누워만 있는 사람이 나니까.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활동적이다가 어느 순간 퓨즈가 딱 끊어지면, 얼굴이 파리해지는데 친구들은 그걸 ‘배터리가 닳았다’고 표현하곤 했다.

“바타 타입은 매우 건조한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요. 손발이 차가울 수 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울해지고 체중이 줄어듭니다. 바타 도샤가 불균형을 이루면 불면증이 생기고, 소화 장애, 불안 장애, 신경 질환이 생깁니다.” 의사는 몰랐지만 나는 신경 질환에 속하는 대상포진을 크게 앓았고 1년 반 동안 병원을 다닌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건조한 피부와 머리카락이라거나, 마른 몸은 눈에 쉽게 보이는 것이기에 역시 나는 그를 반만 믿고 있었다. 그는 이제 나의 감정 상태로 주제를 옮겨갔다. “바타는 짜릿함과 새로운 경험을 좋아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아주 적절하군요. 그리고 당신은 타인에게 실망했을 때에도, 그를 쉽게 용서할 겁니다. 바타는 유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뭘 잘못했지?”라며 억울해하겠죠.” 그는 나를 위해 처방전을 써 내려갔다. 이 처방은 도샤가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 금식하지 마세요. 음식물을 자주 섭취하세요.
◈ 추운 환경을 피하세요. 따뜻하고 습한 곳이 좋습니다.
◈ 강한 마사지 말고 부드러운 마사지를 받으세요.
◈ 목욕, 따뜻하고 잘 만든 음식, 조용한 환경은 도샤의 균형을 돕습니다.
◈ 단맛, 신맛, 초록 채소를 많이 드세요.

이쯤 되니 지금까지 받은 많은 컨설팅 중 실제 나의 모습을 가장 많이 설명하는 게 아유르베딕 체질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점성술이라거나 사주, 팔체질보다도 인도 아유르베딕이 잘 맞다니. 내 시조인 가야 허황옥 왕비가 인도계라는 설이 역시 맞는 것일까? 시간이 흘러 내가 받은 아유르베딕 처방이며, 바타 타입 같은 건 아예 잊고 살았다. 날씨가 추워지니 요즘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얼마 전 알아보기 어려운 손글씨로 적힌 처방전을 다시 찾아냈다. 20분마다 조금씩 물을 머금어 목을 축이라는 조언은 전혀 따르지 않고 있지만, 스트레스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슬그머니 떠오르는 의사의 조언이 있다. 오른쪽으로 누워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자라. 몸을 뒤척이며 어느새 나는 나의 오른쪽 콧구멍을 지그시 막아보며 다시 나의 도샤가 ‘균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에디터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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