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첫 공연을 마쳤잖아요. 무대에서 내려온 직후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뭐였어요?
사실 첫 공연은 늘 쉽지 않아요. 공연이라는 게 조명과 영상, 음악, 배우들의 호흡까지 전부 처음 맞물리는 순간이잖아요. 두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해온 걸 관객 앞에 내보이는 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제는 그냥 ‘해냈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시원하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울컥하기도 했죠.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적 무게가 있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첫 공연 날의 공기는 좀 다른가요?
확실히 달라요. 객석의 집중도도 다르고, 무대 위 배우들도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을 안고 올라가요. 저도 첫 공연 때는 ‘더 잘해야지’보다 ‘일단 약속한 대로, 과장하지 말고 정확하게 하자’는 마음이 커요. 실수 없이 준비한 대로 해내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죠.
<헤이그>에서 맡은 이위종은 어떤 인물인가요?
쉽게 말하면 고종의 특사였던 인물 중 한 명이에요. 이상설, 이준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로 가죠. 그런데 이위종은 한국이 아닌 러시아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외교관이었고,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엘리트였죠. 실제로 7개 국어를 했다고 알려져 있고요. 그래서 고종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특사를 보낼 때 외신과 소통할 중요한 인물로 이위종을 택한 거예요.
극 중 이위종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외국어로 조선을 대변하는 역할이라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내뱉는 인물이어야 했어요. 그리고 극 초반에 헤이그로 가는 기차의 승무원으로 위장하고 기차 내부 상황을 이상설과 이준에게 전달하는 부분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일본군이 열차에 탔습니다” 같은 대사는 정보로만 들리면 안 되고, 그 안에 긴박함과 상황 판단이 함께 들어가야 해요. 그래서 캐릭터 공부를 하면서 수첩을 지속적으로 꺼내서 보고 적는 연출을 먼저 제안했어요. 이 인물이 계속 외국어를 번역하고, 해석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작품을 하면서 인물에 대해 많이 공부했을 것 같아요.
네. 역사 공부 열심히 했어요. 저도 사실 ‘헤이그 특사’라는 단어만 책에서 배운 정도였거든요.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건, 이위종이 생각보다 굉장히 직설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에요. 단순히 똑똑하고 언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나중에는 열강의 외면 앞에서 직접 연설까지 하잖아요. 그 연설문이 실제로도 남아 있고, 작품의 마지막 가사에도 내용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그 사람의 지성과 태도를 가볍게 소비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일은 확실히 부담이 크죠?
맞아요. 픽션 인물은 어느 정도 해석의 여지가 있는데, 실존 인물은 넘을 수 없는 ‘팩트’의 벽이 있어요. 역사 왜곡의 소지도 생길 수 있고요. 결국 이위종이라는 인물이 가진 무게를 먼저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았어요. 똑똑하고 엘리트적인 면, 그리고 조선을 대신해 말하는 사람의 책임감을요.
캐릭터와 닮은 점, 다른 점도 있을까요?
저 역시 부모님의 응원과 사랑 아래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어요. 어릴 때는 욱하는 성격도 있었고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면서 크게 바뀌었어요. 사람을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 많이 느꼈죠.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자유롭게 대하려고 해요. 그런 활달하고 자유로운 에너지는 이위종과 닮은 점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저는 생각이 많고 섬세한 편이에요. 경쟁적이고 호전적인 스타일은 아니고, 상황을 차분하게 보는 편이죠. 이위종은 좀 더 직설적이고, 상황 앞에서 바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르기도 해요.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계기도 궁금해요.
드라마를 하면서도 늘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공연은 매체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가 있거든요.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고, 전신으로 연기해야 하니까요. 그런 감각을 다시 배우고 싶었어요.
처음 무대에 섰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가장 달라진 점은요?
부담감요. 어릴 때는 그냥 재밌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이도 있고, 후배도 많아졌고, 선배로서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어요. 오랜만에 노래를 하고, 무대에 서는 거니까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평가도 분명히 느껴지고요.
공연이 없는 날은 어떻게 보내나요?
가만히 쉬는 편은 아니에요. 요즘은 태국 드라마를 준비하고, 어메니티 브랜드도 운영하고 있어요. 시대가 변하면서 하나의 직업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요. 배우 활동과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더 자유롭게 나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편안하게 쉬는 순간은 있을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은 혼자 있어야 다시 정리되거든요. 스트레스를 푸는 건 편한 사람들과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시간이고요.
오랜 시간 무대에 대한 애정이 이어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늘 무대 위에 있었어요. 바이올린도 했고, 성악을 전공해 대학생 때는 무대에 계속 섰고요. 그러다 보니 무대는 제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공간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에서만 느끼는 에너지가 있어요.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바로 호흡을 주고받는 감각이 계속 무대를 찾게 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기 전 루틴이 있다면요?
공연하러 오는 길에 전체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 정도 읊은 다음, 극장에 도착하면 동선을 다시 한번 체크하면서 반복해요. 그렇게 해야만 무대에 올라갈 수 있어요. 실수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배우’의 기준이 있다면요?
연기는 기본이고…. 결국 따뜻한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사람에 대한 태도나 진정성이 있는 사람. 저는 거짓말 같은 걸 잘 못하는 편이거든요. 앞뒤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진실성과 따뜻함이 있는 배우!
앞으로 관객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매 순간 집중하는 배우요. 그리고 작품 안에서 진짜로 살아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면 좋겠어요. 저는 작품보다 대외적 반응이나 평판에 더 집중하는 순간을 경계해요. 짧은 순간이라도 엄청 집중해서 그 작품 안에 제대로 존재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잘되면 좋겠다’. 제 개인보다 <헤이그>라는 작품 자체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해요.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 3·1운동은 익숙하지만, 헤이그 특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이 많잖아요. 사실 헤이그 특사는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사건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인물이 나라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독립운동의 초석이 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에요. 그런 의미를 담은 이야기인 만큼 이 작품을 통해 관객분들이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고, 기록에 충분히 담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열정을 함께 느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진실성. 저는 그 말을 믿어요. 앞뒤가 같은 사람, 따뜻한 배우로 남고 싶어요.
최신기사
- 포토그래퍼
- 김신애
- 헤어
- 이봉주
- 메이크업
- 최윤정
- 어시스턴트
- 이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