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헤리티지와 지속 가능한 완성도에 집중한 ‘워치스앤원더스 2026’.

LESS, BUT MORE VALUABLE
지난 4월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간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에서 열린 ‘워치스앤원더스 2026(Watches & Wonders Geneva 2026)’은 참가 브랜드와 방문객 수 모두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워치메이킹이 하나의 문화적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2019년 이후 7년 만에 복귀한 오데마 피게를 포함해 총 66개 브랜드가 참가했고, 메인 메종 중심의 전시 구조에서 벗어나 독립 워치메이커 섹션인 ‘까레 데 오롤로저(Carre des Horlogers)’와 메자닌 전시 공간까지 확대하며 다양한 창작자와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또 스타트업과 테크 기업을 위해 신설한 ‘랩(Lab)’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는 자기장 저항과 새로운 인증 시스템부터 스마트 스트랩,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 기술까지 총 13개의 혁신 프로젝트가 공개돼, 워치메이킹이 전통공예를 넘어 기술과 실험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미래형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올해 워치스앤원더스에는 약 6만 명의 방문객과 1750명의 기자, 6000여 명의 리테일 관계자가 박람회를 찾았고, SNS 해시태그 도달 수는 전년 대비 29% 증가한 약 9억 회를 기록했다. 행사 운영 방식도 변화를 보였다. 기존에도 제네바 시내 일부 브랜드 부티크와 이벤트를 연결하는 ‘인 더 시티(In The City)’ 프로그램은 존재했지만, 올해는 이를 본 행사와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워치메이킹 무대로 확장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오데마 피게는 박람회장을 직접 찾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도 메종의 역사와 장인 기술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제네바 시내 중심부의 퐁 드 라 마신의 ‘AP 랩(Lab)’ 공간을 마련해 이색적인 체험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상영을 진행했다. 이 밖에 여러 팝업 부티크와 장인 시연, 전시, 라이브 공연, 공개 체험 프로그램이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이렇듯 올해 워치스앤원더스는 소수 컬렉터와 업계 관계자에 한정되지 않고, 기술과 공예, 문화 경험을 연결하는 거대한 라이프스타일 이벤트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번 워치스앤원더스가 흥미로운 건, 워치메이킹이 지속 가능성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과거 워치 페어가 새로운 컴플리케이션과 화려한 기술 경쟁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올해는 기능을 덜어내고 구조와 비율, 완성도를 정교하게 다듬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실제로 투 핸즈 혹은 스리 핸즈 워치, 초박형 구조, 스켈레톤 무브먼트, 빈티지 기반 디자인, 더욱 콤팩트한 사이즈가 핵심 흐름으로 떠올랐으며, 티타늄과 세라믹, 스틸 같은 내구성 중심 소재도 주요 키워드로 자리했다.
특히 많은 브랜드가 새로운 기능을 무한히 추가하기보다 오래 사용하는 구조와 유지 가능한 설계 자체를 새로운 럭셔리 가치로 이끌어냈다. 대표적으로 예거 르쿨트르는 새로운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와 함께 메종의 새로운 인장 ‘HPG(High Precision Guarantee)’를 선보였다. 특허 출원 중인 엄격한 프로토콜을 거친 이 인장은 시계를 완전히 조립한 상태에서 실제 착용 환경을 재현해 정밀하게 테스트하며, 고도, 충격, 위치, 온도의 네 가지 핵심 요소를 기준으로 성능을 철저히 평가해 타임피스의 탁월함을 엄격히 보증한다. 이어 롤렉스는 ‘슈퍼래티브 크로노미터’ 인증 기준에 지속 가능성과 신뢰성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고, 파네라이는 극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구조적 안정성을 강화했으며, 쇼파드와 제니스는 복잡한 기능 경쟁보다 클래식 크로노미터 본연의 정밀성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또 한편에서는 시계가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를 넘어, 하이 주얼리와 쿠튀르, 감각적 오브제로 변모하는 움직임도 강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화려한 장식을 더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오너멘탈 스톤 세공과 금세공, 자수와 미니어처 페인팅, 메티에 다르 같은 전통 장인 기술을 오늘날의 워치메이킹 안에서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에 더 가깝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에제리 스프링 블로섬’을 통해 오트 쿠튀르에서 영감 받은 장식 공예를 스트랩까지 적용했고, 쇼파드는 1960년대부터 이어온 금세공 아카이브를 현대적 하이 주얼리 워치로 다시 풀어냈다. 반클리프 아펠과 피아제 또한 오랜 시간 쌓아온 스톤 셀렉션과 세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간을 숨기고 장식성과 조형성을 극대화한 주얼리 워치를 소개했다.
점차 사라져가는 장인 기술과 공예 유산을 이어가고, 섬세한 기술력이 집결된 타임피스를 어떻게 더 오래 유지하여 다음 세대로 전할 것인가. 결국 올해 워치스앤원더스는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경쟁보다, 지금의 기술과 유산을 얼마나 깊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며 럭셔리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THE VALUE OF LESS
복잡한 기능 경쟁 대신 오래 착용할 수 있는 형태와 유지 가능한 설계에 집중한다. 새로운 기능이나 장식을 덧붙이기보다 메종이 오랜 시간 이어온 헤리티지를 더 단단히 다지는 것. 대신 소재와 무브먼트, 품질 테스트를 끊임없이 정교화하며 시계를 더 오래, 안정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든다.
HERMES

‘Mysterious Mechanisms’을 주제로, 시계의 핵심인 무브먼트 구조를 무대 공간처럼 활용해 끝없이 변모하는 스켈레톤 예술을 펼쳐냈다. 불필요한 장식을 더하기보다 구조 자체를 디자인화한 점이 핵심이다. 특히 ‘H08 스켈레톤’ 워치는 투명하게 비워낸 다이얼로 특유의 간결한 케이스 속에 감춰져 있던 ‘H1978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드러낸다. 원근감을 형성하는 구조선과 기어 장치가 시선을 끌며, 하나의 그래픽처럼 읽히는 티타늄 구조는 각각의 부품이 맞물리고 겹쳐지며 입체적 여정을 펼쳐낸다.
ROLEX

1926년 탄생한 ‘오이스터’ 100주년을 기념하며, 메종은 올해 소재 기술과 다이얼 공예, 성능을 중심에 둔 새 워치를 공개했다. 그중 ‘오이스터 퍼페츄얼 요트-마스터 II’는 복잡한 레가타 크로노그래프라서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조작 방식과 정보 구조는 단순화한다. 카운트다운 설정은 직관적으로, 핸즈 방향과 다이얼 구성을 재조정해 남은 시간을 명확하게 읽도록 만든 것. 또 ‘슈퍼래티브 크로노미터’ 인증 기준에 항자성과 신뢰성, 지속 가능성 항목을 추가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시켰다.
CHOPARD

‘L.U.C’ 무브먼트를 생산하는 매뉴팩처 플뢰리에 설립 30주년을 맞아, 쇼파드는 메종이 가장 잘해온 클래식 크로노미터의 완성도를 다시 정교하게 다듬는다. 새롭게 공개한 ‘L.U.C 1860’은 1997년 첫 L.U.C 모델의 비례와 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순수한 디자인을 유지하려고 날짜 표시 창까지 과감히 생략했다. 케이스와 다이얼, 브레이슬릿 구조 역시 절제된 방향으로 정리한 것. 시계 심장부에는 1996년 쇼파드 매뉴팩처가 최초로 개발한 무브먼트의 진화형인 ‘L.U.C 칼리버 96.40-L’을 탑재했다.
ZENITH

창립자 조르주 파브르-자코의 이니셜을 딴 ‘G.F.J.’ 컬렉션은 시간 측정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주력한다. 1950년대 천문대 크로노미터 대회에서 수상한 전설적 ‘칼리버 135’를 현대적으로 재설계했지만, 기능은 시·분·스몰 세컨즈 중심으로 극도로 절제했다. 대신 제니스는 오차를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는 데 힘썼다. COSC 인증과 함께 하루 ±2초 수준의 정밀성을 구현했고, 20피스만 생산되는 까다로운 탄탈럼 케이스 역시 화려한 비주얼보다 밀도와 내구성, 오래 유지되는 소재의 물성을 강조한다.
PANERAI

이탈리아 해군을 위한 전문 장비 공급자로서의 유산을 바탕으로 ‘루미노르’ 본질을 단단히 다진다. 대담한 쿠션 케이스와 시그너처 크라운 프로텍팅 브리지, 기능성에 대한 확고한 철학은 유지하면서도 다이얼과 기능 구성은 점차 단순해지는 방향. 새로운 ‘루미노르 PAM01731’과 ‘루미노르 데스트로 PAM01732’ 역시 꼭 필요한 인디케이션만 44mm 포맷 안에 눌러 담아 재해석했다. 여기에 케이스와 개스킷의 10년 사용 가속 노화 시뮬레이션, 보증 방수 수치보다 25% 높은 기준의 수중 테스트를 거쳐 완성한다.
JAEGER-LECOULTRE

1973년 ‘마스터 마리너 크로노미터’에서 이어지는 디자인 코드를 바탕으로 한, 일체형 메탈 브레이슬릿의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 컬렉션은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갖춰 이상적 현대식 시계를 지향한다. 무엇보다 실제 착용 환경을 재현한 테스트를 통해 시계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새로운 품질 기준 ‘HPG(High Precision Guarantee)’ 실(Seal)을 도입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COSC 크로노미터 인증과 함께 적용되며, 기능의 과시보다 매일 착용하는 시계로서의 완성도를 섬세하게 다듬는다.
IWC

IWC 샤프하우젠이 처음으로 출격시킨 툴 워치 ‘파일럿 벤처러 버티컬 드라이브’. 유인 우주비행과 우주에서의 시간 측정을 위해 모든 요소는 극한 환경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구성됐다. 비행 계기판처럼 직관적 정보 전달에 집중한 매트 블랙 다이얼은 필요한 정보만 남기고 빛반사까지 최소화했다. 크라운 대신 케이스 측면의 로커 스위치를 적용해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와인딩과 시간대 조작이 가능하며, 베젤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와인딩 시스템은 미세 중력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TAG HEUER

반세기가 넘는 동안 아이콘으로 자리해온 ‘모나코’의 구조와 서사를 섬세하게 재정렬한다. 50여 년 전 출시된 오리지널 레퍼런스 1133에서 영감 받은 이번 신세대 모델은 모나코 특유의 상징적 실루엣을 계승하면서도 역동적 라인을 더했다. 1969년부터 이어져온 사각 케이스와 크로노그래프 레이아웃은 그대로 간직한 채 컬러와 디테일만 조정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으로 착용감과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각진 케이스와 직선적 다이얼 구성은 불필요한 장식 없이도 특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