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이삭, <커튼콜>의 문성,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의 상욱까지.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의 배우 노상현이 <사운드트랙#2>의 수호로 돌아온다. 

터틀넥 니트는 유스(Youth).

점퍼는 꾸레쥬(Courreges).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터틀넥 니트는 유스. 팬츠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벨트는 렉토(Recto).

톱은 꾸레쥬. 점퍼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팬츠는 펜디(Fendi).

니트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Salvatore Ferragamo).

‘인싸’와 ‘아싸’ 어디에 가까워요?
‘아싸’요.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20대 중반, 대학생 시절 이후로는 줄곧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혼자서 시간을 어떻게 채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망상과 상상요. 생각이 좀 많은 편이에요. <파친코> 이후로는 그런 시간이 훌쩍 사라졌지만요.

예상치 못할 정도로 바빴나요?
이렇게 많은 일이 한 번에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무척 감사한데 동시에 힘들고 지치기도 했어요.

기다림이 길었는데, 더 가열차게 내달리고 싶지는 않았고요?
<파친코> 이후 지난 9월까지 쉰 적이 없어요. 이보다 더 가열차게는 힘들어요.(웃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촬영이 추석 무렵 끝났는데, 이제야 좀 여유로워졌어요.

힘들다고 하지만, 노상현의 궤적을 보면 늘 뜨거웠어요. 연기가 하고 싶어 모델로 데뷔하고 웹드라마, 독립영화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잖아요.
뭔가 시도해볼 수 있는 무대가 있으면 무조건 덤볐어요. 인물이나 작품에 나름의 해석이 있었고, 저만의 방식으로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한 시간이었죠. 기회가 왔을 때 달리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지금도 뭔가 있으면 또 했을 거예요.

그렇게 7년을 버텼죠. 버티는 힘은 어디에서 왔어요?
막연함요. 언젠가 되겠지 하는.

타인에게 의지한 적은 없어요? 조언을 구한다든지요.
어떤 말을 들으면 사람보다 그 말에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의미 있는 말 같다 싶으면 텍스트를 기반으로 명료하게 만들고 생각을 더하고 의심하면서 검증하려 해요. ‘너 자신을 믿고’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기억이 있어요. 언젠가 이 말이 와닿아서 스스로를 훈련시켜봤어요.

일종의 실험인가요? 본인을 최상의 퍼포먼스를 위한 실험체처럼 말하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되게 재미있는 피드백이에요. 아, 아까 에디터님 말씀 중 저를 깊은 생각에 빠뜨린 질문이 있었어요.

어떤 거예요?
‘어떻게 살아야 나를 위한 삶이 될까요?’라는 물음요. 여전히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미 찾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간단히 말하면 건강한 삶인데,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는 거예요.

꿈꾸는 자유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있어요?
사실 완벽한 자유는 없어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죠. 욕망과 감정에 따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도 자유인데 제가 꿈꾸는 자유는 좀 달라요. 어떤 목적이 있으면 그걸 이루기 위해 의무와 책임, 일종의 단계가 생기잖아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포기하고 내 생각과 이성으로 정해놓은 걸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목표를 이루려고 하겠죠. 제가 선택한 자유는 그 길을 온전히 가는 거예요. 내가 원하고 몰두해 있는 걸 이루는 삶에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 자유란 잘 견디고 버티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뭔가 이루고 싶은 마음의 근원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게 나를 위하는 옳은 방식이니까요.

그럼 흔들릴 때는 어떻게 해요?
막연한 믿음이 필요할 때도 있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이나 희망을 놓지 않는 거요. 나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긍정해야 해요. 저 역시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연기가 죽도록 하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지난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고요.

인생이 비극이라고 생각하나요?
반대되는 욕망이나 감정에 따르는 삶은 더 큰 자극을 좇게 되더라고요. 결국 만족하지 못하니까요.

올해 그 자유의 기쁨을 누린 때는 언제였어요?
LA에서 상을 받았을 때요. 미국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 <파친코>가 ‘최고의 앙상블 캐스트’를 수상했어요. 팀을 대표해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부담이 컸거든요. 그런데 막상 상을 받으니 기쁘더라고요.(웃음) 학창 시절 이후 너무 오랜만에 받았거든요. <파친코2>의 마지막 촬영 날도 잊을 수가 없네요.

배우 노상현을 널리 알린 작품이라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어땠어요?
제 입장에서는 모든 여정이 끝나는 것 같았어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캐나다 토론토에서 촬영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어요.

벌써 12월이에요. 31일에는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요?
찍어놓은 작품이 문제없이 안전하게 많은 분에게 닿으면 좋겠어요. 1년 동안 촬영만 하고 공개된 게 하나도 없어서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꼭 공개되어야 합니다. 공백기가 2년이 될 수는 없어요.(웃음)

디즈니+의 <사운드트랙#2>가 그 시작이겠네요. 작품을 선택할 때 직감을 따른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나요?
느낌이 좋았어요. 일단 대본이 솔직하고 유쾌했고요. 오랜 연인이었던 수호와 현서(금새록 분)가 이별 후 달라진 상황 속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에요. 지질하고 서로를 상처 주려고 ‘뼈 때리는’ 말도 서슴지 않는데, 현실 커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죠. 연애할 때 다들 그러잖아요. 그 안에 뭉클한 메시지가 있어요.

현장은 어땠어요?
정신없이 바빴어요. 감독님들께서 기가 막힌 고효율 스케줄을 짜주셨어요. <사랑의 불시착> <빈센조> <작은아씨들>을 연출한 김희원 감독님과 <붉은 달 푸른 해> <악마판사>를 연출한 최종규 감독님께서 현장을 지휘하셨는데, 두 분의 현장을 경험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두 분의 디렉팅 스타일이 매우 달랐어요. 김희원 감독님은 명확한 디렉션을 주는 스타일이고, 최정규 감독님은 배우에게 맡기고 의견을 더하는 편이세요. 덕분에 새로운 걸 배우고 또 한번 성장한 것 같아요.

편집본을 봤어요? 재미있나요?
반 정도 봤는데 아무래도 모니터하듯 보게 되더라고요. 시청자 입장에서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수호와 현서가 처한 각자의 상황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입장 차를 집중해서 보길 권해요. 그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이 더 재미있을 거예요.

수호 입장에 공감해요?
같은 상황을 겪어본 적은 없어요. 6년씩 장기 연애를 하거나 재회한 적도 없고요. 그럼에도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대본 덕분이었어요. 감정과 상황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거든요.

늘 반듯한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얼굴이겠네요?
굉장히 유치해집니다. 한없이 밝고 가벼울 때도 있고요.

노상현이 실없고 유치할 때도 있어요?
많죠, 아주 많아요. 이번 작품에는 실제 제 모습이 녹아든 장면도 꽤 있어요. <사운드트랙#2>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저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시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