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그녀 / 박문치

박문치가 수상한 웃음을 짓는다는 건, 뭔가 재밌는 일을 벌인다는 뜻이다.

레드 롱 코트는 딘트(Dint). 실버 오버사이즈 셔츠는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화이트 팬츠는 1017 알릭스 9SM(1017 Alyx 9SM). 퍼 포인트 로퍼는 뉴인(Neu_In). 토끼 백팩은 세이모 온도 (Samo Ondoh).

도트 패턴의 아우터와 스커트는 마르니(Marni). 볼 캡은 032c.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펀칭 디테일 롱 코트는 더 그레이티스트(The Greatest). 격자무늬 패턴의 롱 드레스는 아크리스(Akris).

촬영 콘셉트가 ‘일탈’인 거 알고 있었어요? 오늘 밤 박문치를 이 놀이터에서 가장 수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보자 했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시선이 흘깃흘깃 느껴지더라고요. 재밌었어요. 이런 촬영 자체가 저한텐 일탈이에요. 요즘처럼 작업실에 파묻혀 살 때는 더더욱. 새로운 옷을 많이 입어볼 수 있어서 신이 좀 나기도 했고요.

‘이런 촬영’이라 함은?
다 같이 힘을 모아 수상한 걸 만들어보자는, 진지한 장난기가 느껴지는 현장? 모든 스태프가 다 같은 뜻으로 똘똘 뭉쳐 있었잖아요.

크고 작은 일탈을 즐기는 사람인가요?
요즘은 주로 작업실에 있는데 지루해질 때쯤 한 번씩 친구들이랑 ‘도파민 걸’ 콘셉트로 모여요. 그게 제일 큰 일탈일 걸요? 거창한 건 없고 그냥 홍대에 술 취한 사람들 구경하러 다녀요.(웃음)

술을 마시지는 않고요?
네. 클럽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술집과 클럽이 밀집해 있는 거리를 걸으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봐요. 세상 모든 유형의 인간이 거기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삼거리 포차 쪽 아시죠? 오늘 같은 날(금요일) 가면 끝장나는 거죠.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재미’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재미를 좇는 인생에서 감수할 건 뭔가요?
아주 많죠. 가장 큰 건 사람들의 시선. ‘굳이?’ 하고 되묻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사실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지만. 시간도 감수해야죠. 더 재밌으려면 굳이 시간을 써야 해요.

요즘처럼 작업실에 파묻혀 살 때는 재미를 찾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맞아요. 그럴 때는 작은 것에서라도 어떻게든 찾으려는 것 같아요. 어제도 작업하다가 느낌이 오더라고요.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이대로 가다간 힘에 부치겠는데?’ 하는 느낌. 그럴 때는 중간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래서 갑자기 릴스를 찍어 올렸죠.(웃음)

한계치를 넘지 않게 잘 빠져나오는 편인가 봐요?
‘힘들어도 어떡해. 그래도 해야지.’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면서 살고 싶진 않거든요.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틈을 비집고 제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것들을 굳이 하려고 하는 거예요. ‘놀지 않으면 일을 안 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바꿔 말하면 박문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놀아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결국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가? 아무튼 워라밸이 중요해요.

일과 놀이의 비율이 어떻게 돼야 균형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율은 잘 모르겠고, 합리화가 될 때? ‘이 정도 놀았으니 이제 일해야지’ 하고 스스로 납득할 때가 와요.

2017년 첫 싱글인 ‘울희액이’를 발매한 지도 6년이 흘렀어요. 과거를 자주 곱씹어보나요?
그럼요. 지난주에는 그렇게 곱씹다가 인스타에 감성글도 하나 투척했잖아요.

‘1년에 한두 번 쓰는 그런 글’이라고 끝맺은 그 글 말이죠?
맞아요. 거기 써놓은 게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인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늘 주변 사람에게 너무 고마워요. ‘지금까지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들 같이 해줬지?’ 싶어서요. 진짜 순수하게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함께 음악을 하는 동료들은 박문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중요한 사람.

어떤 면에서요?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이유야 어떻든 중요할 걸요? 일단 저랑 있으면 많이 웃게 될 거고요. 음악적인 작업을 할 때도 재밌게 할 수 있어요.

주변 사람 말고, 스스로를 돌이켜봤을 땐 어때요? 지난 시간을 지나온 나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요?
대견하다. 그동안 해온 걸 보면 ‘지가 재밌어하는 거 잘해왔구나’ 싶어요. 저는 지금 제 포지션이 마음에 들거든요. 다양한 걸 많이 경험한 것 같아서 후회보다는 뿌듯한 게 큽니다.

그 다양한 경험 중 하나로 <놀면 뭐하니?> 출연을 빼놓을 수 없겠죠.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고마운 경험이죠. <놀면 뭐하니?> 이후로 일이 확실히 많아졌어요.

한바탕 그 시기가 지나고 대중의 관심이 잦아들었을 때는 어땠어요?
오히려 그때 새로운 챕터가 열린 느낌이었어요. 원래 제 꿈이 얼굴 없는 유명 작곡가였거든요.(웃음) 한발 다가간 것 같은?

<라디오스타>에서 류승수 씨가 한 말 알아요? “아무도 날 모르고 돈이 많으면 좋겠다”.
맞아요 그거! 많은 사람의 꿈이겠죠? 근데 저도 웃긴 게 막상 사람들 앞에서 뭐 시키면 열심히 해요. 재밌어하면서. 아무래도 저 자신과 합의 좀 봐야 할 것 같아요. 더 나댈 건지, 더 숨을 건지.(웃음) 노선을 확실히 해야겠어요.

대중은 모르는, 아직 내 안에 빛을 발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저는 잘들 보시라고 빛을 열심히 내고 있는데 보지 못하는 분들도 있겠죠? 반대로 알 사람은 알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살고 있어요. 음원 차트 욕심을 버린 지도 오래됐고.

레트로 음악으로 주목받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어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확실히 있었어요. ‘나 이것만 하는 사람은 아닌데’ 하고. 혼자만의 소소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얼마 안 가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아니, 팩트잖아?(웃음) 레트로 음악 많이 해놓고 뭘 아쉬워해. 맞는 말이지 뭐.’ 했죠. 제가 뭘 하든 들을 사람은 들어줄 테니 그런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지자 생각하고 있어요.

죠지, 영케이, 권진아, 강다니엘, 수호. 뚜렷한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뮤지션과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협업은 주로 어떻게 성사되나요?
보통은 연락이 와요. 감사하게도 주로 제안을 받는 편이죠. 즉흥적으로 작업이 성사되는 경우도 많고요.

가장 의외였던 연락은 누구였어요?
아무래도 아이돌 쪽에서 연락받을 때 그렇죠. ‘어? 뭐 좀 아는구나?’(웃음) 실제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맞는 말이잖아요. 저한테 연락을 줬다는 건 음악을 굳이 찾아 들었다는 거니까. 제일 처음 같이 작업한 아이돌이 정세운이었는데, <놀면 뭐하니?> 출연 전에 연락을 했더라고요. 번호 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알아내가지고는.

요즘 인스타에 업로드하는 영상통화 시리즈를 보니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던데, 다음 작업의 예고편으로 봐도 되나요?
스포로 느껴지던가요? 뭐, 아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웃음) 지금은 말을 아낄래요. 스포든 뭐든 재밌게 지켜봐주세요.

일단 곧 싱글 발매 계획이 있죠. 이번 곡은 어떻게 설명하고 싶어요?
와, 이런 거 진짜 못하겠네요. 단순함? 아니다. 단순함 속의 복잡함! 흐흐. 들어보면 알 거예요.

작업 과정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못 고를 것 같아요. 되게 많거든요. 나만 좋은 줄 알았는데 남들에게서도 좋다는 반응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아주 행복해져요. 그런 순간이 이번에 많았어요. 노래가 정말 좋다는 뜻!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안에 또 다른 곡도 들려줄 건가요?
계획은 하고 있지만 섣불리 말은 못하겠어요. 제가 너무너무나 P라서요.(웃음) 꼭 뱉어놓으면 못 지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말을 안 하려고요. ‘정규 낼 거야!’ 하면 EP가 되고, ‘EP 낼 거야!’ 하면 싱글이 돼요. 지금 싱글 낸다고 했다가 아무것도 못 내면 어떡해요. 말 안 할래요. 박문치의 저주에 빠지기 싫습니다.

오늘 밤 날씨를 보니 이러다 곧 겨울이 오겠구나 싶어요. 이맘때 기분이 어때요?
아직은 입기 이른 옷들이라 홀로 선풍기를 쐬어야 했지만…. 가을 냄새는 저도 맡았습니다. 좋아해요. 계절 바뀔 때. 괜히 몽글몽글하잖아요.

가을을 타나요?
좀 아련해진다면 가을을 타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사람을 더 많이 만나려고 해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바로바로 만나야 해요. 어제는 엄마가 집에 왔는데 작업실에 박혀 있느라 못 봤어요. 엄마를 빨리 봐야겠어요.

    에디터
    고영진
    포토그래퍼
    LEE YONG HEE
    스타일리스트
    현국선
    헤어
    이재연
    메이크업
    임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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