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내 취향으로만 가득 찬 아파트를 만들었다.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고친 1인가구 집 이야기.

 

시로 쿠라마타가 디자인한 카펠리니의 암체어와 카스텔리의 알키 체어를 마주 보게 배치했다.

바꾸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기 좋은 집이었지만 팬데믹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들뜨고 누래진 벽지를 자르지 않고 인스타그램을 올리고 싶다, 보복성 소비로 구입한 각종 귀여운 소품을 예쁘게 진열하고 싶다, 어차피 적금으로 묶어놔봤자 벼락거지로 가는 지름길에 미미한 꽃가루밖에 안 되는 돈으로 물질이라도 만지고 싶다….’ 살던 집을 리모델링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실행은 곧바로 이어졌다. 돈 버는 일은 더디게 해도 돈 쓰는 일은 한 치의 지체가 없는 삶을 살아와서인지 어쩐지 마음이 급해지기까지 했다. 지은 지 25년이 넘어가는 서울 끄트머리 소형 아파트에 입주한 지 10년째다. 처음 지었을 때의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 집은 문틀과 몰딩이 ‘메로나’ 색깔이고 안방 창문은 나사 못을 돌려 잠금장치를 여닫아야 하는 형태인 데다 뒷베란다 하나 없는 비효율적 구조 그 자체다. 입주할 때부터 인터폰은 한쪽 귀퉁이가 박살 나 있었고 부엌과 화장실은 한차례 수리했지만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한번 고치기로 마음먹은 이상 대대적인 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베란다 확장을 포함한 일명 ‘올공사’를 기준으로 견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금은 빠듯했지만 포부만은 원대했고, 그렇게 아파트를 고치기 시작했다.

매듭처럼 묶인 쿠션은 뉴욕 지우지에에서 직구.

잡지 선반을 제작해 베란다 확장 후 노출된 우수관을 커버했다.

지금 이 순간의 내 드림하우스

어떤 스타일의 집에 살고 싶은지에 대해선 한마디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어떤 집을 피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우선 천편일률적인 ‘올화이트’ 아파트를 피하고 싶다. 벽지, 부엌, 선반, 붙박이장 모든 것이 새하얀 집은 적어도 나한테는 엽서의 뒷면처럼 아무 느낌이 없다. 선명한 컬러가 발랄하게 어우러졌으면 했다. 두 번째는 삼성 비스포크가 대표하는 컬러블록 스타일의 냉장고를 피하고 싶었다. 부엌과 거실이 거의 한 몸처럼 붙어 있는 소형 아파트의 경우엔 냉장고가 모든 분위기를 좌우하는데, 부엌 리모델링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그 냉장고를 들이는 순간, 뭘 해도 다른 집들과 비슷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을 맞춰준다는 이 냉장고가 너무 보편화되어버리니, 아이러니하게도 내 취향이 디디고 설 틈이 거의 없어져버린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소파와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펜던트 조명을 피하고 싶다. 모두 아파트의 아늑함을 담당하는 중요한 가구지만, 유난히 좁고 긴 거실에 소파를 두게 되면 이것만으로도 거실은 꽉 차고, 배치를 자유롭게 바꾸기가 힘들어진다. 펜던트 조명 역시 다는 순간 그곳이 식탁자리로 확정돼버리니 마음껏 가구를 옮길 수가 없다. 네 번째는 부엌과 거실의 구획이 나뉜 집을 피하고 싶었다. 아파트가 엄청 크거나, 공간 구획이 애초에 분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펼치면 손바닥보다 조금 넓은 아파트에서 부엌과 거실이 부자연스럽게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두고두고 어색했다. 그저 한 공간에 부엌, 다이닝룸, 리빙룸이 마구 어우러졌으면 했다. 다섯 번째는 결혼이나 육아 등 가족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결혼은 아직도 활짝 열려 있는 인생의 목표이지만, 집을 고칠 때만큼은 지금 이 순간의 1인가구를 위한 곳을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소형 아파트 대세 인테리어에서 벗어난 큰 틀을 잡고 보니 딱 한마디가 떠올랐다. “엄마한테 등짝 맞을 집!”

기존에 사용하던 소파는 서재방으로 옮겨 데이베드로 활용하고 있다.

2년 전 코펜하겐에서 구입한 빈티지 조명과 컬러를 맞추기 위해 해외 직구한 융의 콘센트. 두 달만에 도착했다.

물론 엄마 눈치 보며 살 나이는 훌쩍 넘겼지만, ‘엄마’가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시선의 사람이라는 뜻에서 내가 원하는 집은 정말로 등짝 맞기 좋은 집에 가까웠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증명된 형태의 보편적인 아파트의 모습을 거부하는 행태라니…. “사는 곳은 무조건 보기에 편안해야지, 멋부리다 금세 질린다, 한번 살아봐라 불편해서 되겠냐, 다른 사람들은 특이하게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느냐, 나중에 집 안 팔린다.” 귓가를 때리는 엄마의 잔소리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었다.

침실의 한쪽 벽면에 포인트 벽지를 사용했다.

침실에 설치한 액자형 벽걸이 TV. 폭이 꼭 맞는 시계를 올렸다.

‘아파트이지만 옆집과는 다른 집’을 만들어준다는 세련되고 합리적인 대형 인테리어 업체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그곳과 계약하지 않은 이유다. A4 다섯 장짜리 견적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시집 보듯 읽고 또 읽었지만, 어쩐지 내가 원하던 그림은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었다. 내 취향을 반영하기에 그들의 선택지는 상대적으로 좁은 것 같았고, 스타일도 한정적인 범위 안에서의 변주에 불과했다. 취향과 욕망이 이렇게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거리는데 교복을 고르러 간 학생처럼 마음이 오갈 데 없이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내 편이 되어서 등짝을 지켜줄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를 찾았다. 색을 과감하게 쓰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볼 용의가 가득한 곳, 시공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아이디어가 더 많은 곳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주변의 연결로 베르데 컴퍼니(@verde_company)와 함께 디자인을 시작했고, 쏟아지는 색다른 제안에 나는 물개 박수와 엑스자 손가락을 번갈아 보여주며 시종일관 취향을 전달했다. 집의 가장 중심축이 되는 부엌 겸 거실은 젊고 섬세한 제작가구 업체 셉토(@septto_)와 함께하기로 했다.

색깔의 조화를 고려한 부엌가구와 식탁. 의자 하나만 새로 구입했다.

와인잔뿐만 아니라 작은 위스키 잔도 많기에 거꾸로 거는 와인렉을 사용하지 않고 선반을 만들어 팬트리에 짜 넣었다.

집을 비우고, 공사를 시작했다

모든 리모델링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협찬’은 하나도 없다. 마지막 돈 한 푼까지도 모두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이렇게 내 돈을 탈탈 털어 쓰는데 동시에 이 집이 예쁘려면 10년간 내가 쌓아둔 물건을 탈탈 털어버리기도 해야 했다. 리모델링을 위한 한 달짜리 보관이사를 앞두고 약 2주는 오로지 내다 팔고 버리는 일에 집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당근’을 뛰었고, 특수마대를 세 포대를 갖다 버렸다. 하도 짐을 내다 버려서 정작 이사하는 날엔 손목이 나가버렸다.

부엌과 거실이 한 몸인 집, 환기창이 아예 없는 부엌, 유난히 좁은 거실이라는 한계점이 너무 극명하다 보니 인테리어의 콘셉트도 이에 맞춰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중국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부엌에서 불 쓰는 요리를 많이 했는데, 엄청난 유증기와 음식 냄새가 집 안에 갇혀 전혀 쾌적하지 못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는 횟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더불어 요리를 만들어 먹는 횟수와 스케일이 크게 줄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주방의 요리 적합성보다는 최소한의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거실 가구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방 같은 거실, 거실 같은 주방을 갖고 싶어요!” 디자인 미팅 초반부터 내도록 외친 이 말을 반영해 자연스레 냉장고는 완전히 숨기는 형태의 빌트인으로 제작했다. 원하는 자리에 들어갈 냉장고의 용량이 작아 식품용 냉장고, 음료용 냉장고 두 대를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 둘의 간격을 거실 끝과 끝으로 완전히 벌렸다. 평소에도 냉장고의 반절은 술, 반절은 음식 보관이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이상할 것이 없는 선택이자 ‘신박한’ 구성이다. 술과 술잔이 신발보다 많아서 큼직한 술 팬트리를 만들었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가구처럼 연결되도록 만들어 부엌과 거실을 한 공간으로 연출했다. 색깔이야말로 원하는 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푸른색 원형 식탁과 빨간 의자와 어우러질 수 있는 노란색을 택했다. 거실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제작 가구는 자재부터 만듦새까지 완성도가 높았으면 했는데, 며칠 전 정수기 설치 기사님이 전한 “안 보이는 곳까지 단단하고 꼼꼼하게 잘 만들어놔서 타공하기가 두렵다”는 말로 인증도 완료했다.

냉장고를 전혀 보이지 않게 빌트인으로 숨겨 부엌에 노출되는 가전 제품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밥솥은 과감히 버렸다.

물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과감한 포기와 결단도 필요했다. 화장실은 고치기 전에도 꽤 멀끔했기에 “그래도 이왕 짐을 빼고 고치는 김에 다 고쳐라”는 주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대신 한쪽 벽면의 타일만 네이비 컬러로 골라 ‘덧방’으로 시공했다. 집에서는 주로 테이블 조명 여러 개로 생활하는 터라 천장에 다는 매립등의 개수를 반절로 줄여 금액을 조금 아꼈다. 드레스룸의 행어는 이제 막 펀딩을 시작한 신규 업체의 가장 저렴한 것으로 짜 넣었다. “섀시는 L사”라는 평소 어머니의 그 말 한마디는 수용했다. 거실 섀시만 L사의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훨씬 저렴한 타사의 것으로 선택해 한 번 더 금액을 줄였다.

주방가구와 이어지는 거실가구는 ‘발크로맷’ 소재로 마감했다. 한지처럼 살짝 질감이 보여 따뜻한 느낌을 내는 친환경 소재로 노란색과 회색 두 가지를 사용했다.

내 입맛에 맞는 새집

내 취향대로 집을 고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 한 달 동안 집에서 이것저것 치우며 노느라 공유사무실에 고작 두 번 나갔다. 집들이 파티는 3일 걸러 한 번씩 하고 있다. “결혼할 돈 다 부었냐”고 지인이 면박을 주기도 했는데, 그 말이 너무 정답이라 같이 웃었다. 내 마음에 맞게 집을 고치니 기존 내가 사 모은 작은 소품과 조명들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동기화되면서 꽤 아늑한 집이 되어가는 중이다. 빈티지 리빙 편집숍 중에서는 뉴욕의 홈유니온(@homeunion)과 세곡동의 델라보테가(@dellabottega)를 좋아하는데 이곳에서 산 물건들이 기가 막히게 제자리를 찾아 들어간 느낌이 드는 것도 신기했다. 평소 집에 놓는 것과 별개로 그저 좋아했던 의자나 가구도 어울리게 맞아 들어갔다. 이제 천천히 내 마음에 드는 반려식물을 들이고 계절에 맞게 패브릭 등을 채워 넣을 일이 남았다. 그리고 다음 주, 드디어 엄마가 방문할 예정이다. 과연 등짝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서 어머니의 셀카 인증샷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한쪽 벽면의 타일만 변경해 최소한의 금액으로 마무리한 화장실.

 

리모델링을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팁

인스타그램만 봐도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예쁘게 리모델링한 집이 수두룩하게 쏟아지지만 내가 원하는 집은 따로 있다. 내 취향에 맞는 리모델링을 완성하기 위한 몇 가지 팁.

업체 선정은 신중하게
의뢰인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 꿈을 구현해줄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보통 해당 업체가 ‘내 스타일’의 결과물이 많은지 포트폴리오를 소상히 뜯어보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포트폴리오가 모두 완성도가 높은 경우를 고르는 쪽이 더 안전하다. 의뢰인의 스타일을 반영해줄 수 있는 유연성이 지날수록 더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말이다. 관심 있는 업체가 있다면 3곳 정도 견적서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 자신의 예산 범위에 맞는 업체를 1차로 추린 후 견적을 의뢰한다.

쌍끌이 저인망 방식으로 레퍼런스 찾기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의 제안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다양한 레퍼런스를 밑바닥까지 긁어 모아두길 권한다. 잔뜩 세팅이 더해진 잡지 사진도 좋고 브랜드들의 홍보 사진도 좋다. 특히 아파트와 전혀 다른 구조이지만 말랑한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외국의 공간 사진이 크게 도움이 된다. ‘오늘의 집’과 같은 앱은 자재와 시공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따로 모아두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는 해외 사진을 차곡차곡 정리해두었다. 선호하는 스타일의 부엌인 리폼 코펜하겐(@reformcph), 늘 볼거리가 넘치는 인테리어 디자인 매거진 계정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

예산은 조금 넉넉하게 
사진 몇 컷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재나 만듦새의 차이에 따라 예산은 몇 천만원까지도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 예산은 언제나 조금씩 초과하게 되어 있다. 전체 예산을 잡을 땐 처음 목표로 하는 금액보다 최소 15%는 초과해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다. 물론 계약 이후에 약속되지 않았던 금액이 추가되는 것은 피해야겠지만, 처음 목표로 했던 예산을 절대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진행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힘을 줄 곳과 뺄 곳은 확실하게
“이렇게 큰 돈을 쓰는데 모든 곳이 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만 버리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기호를 살리면서도 합리적인 예산으로 리모델링이 가능하다. 다만 힘 뺄 곳은 확실하게 빼야 한다. 우선순위가 낮은 공간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우선순위가 낮은 인테리어 디테일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예산을 원하는 수준으로 운용할 수 있다. 집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가장 바꾸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본다.

가구 쇼핑은 공사 전후로 나눠서
버릴 가구와 유지할 가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하고 시작한다. 4~5개월 전부터 리모델링과 함께 바꿀 큰 가구가 무엇인지 보고 구매를 시작하길 권한다. 최근 인테리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수입 브랜드 가구의 경우 발주부터 설치까지 3~4개월, 최장 6개월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원하는 제품을 확보해두고 이를 기반으로 디자인을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확실히 줄어든다. 집에 가지고 있는 가구, 이미 구입한 가구를 아예 PPT에 한데 모아두고 디자인 과정에서 계속 매칭해보면 좋다. 그리고 나머지 작은 가구나 소품들은 공사가 끝난 후, 완성된 공간의 실제 느낌을 파악한 후 구입하면 실패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