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다른 페노메코
페노메코는 갑작스레 찾아온 유별난 손님이 아니다. 꽤 전부터 제자리를 지키며 성실한 랩과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한 발짝 뒤에 서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쁜 기억은 다 잊고 좋은 것만 말하면서.
당신처럼 이미 자신의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궁금해요. 인터뷰를 통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에 어색함이나 부끄러움은 없어요. 가사를 통해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일이니까요. 그런데 인터뷰는 좀 달라요. 어렵고 창피한 면이 있어요. 가사는 온전히 제가 통제하고 관리해서 잘 정돈된 언어만 내보일 수 있지만 인터뷰는 그게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약속된 길이 있지만, 그 길을 벗어나 즉흥적인 대화를 나누죠. 순간의 선택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건 언제나 조심스러워요. 주로 단어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단어에 민감한 편인가 봐요. 가사를 쓸 때 비슷한 단어 몇 개 중 뭘 가져다 쓸지 고민해요?
맞아요. 비슷한 단어라도 엄밀히 말하면 다른 거니까요. 이걸 쓸까 저걸 쓸까 고민해요. 인터뷰 자리에서 어떤 단어를 말하는 게 더 적합할지 마냥 고민하고 앉아 있을 순 없잖아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용기 낼 수 있긴 하네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마음속에 본능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쳐요. 그걸 가사로 쓸 땐 단어 선택과 맥락을 고민할 거예요. 여러 번 수정하겠죠. 그건 주저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몰라요. 제 안에서 필터링을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정작 처음에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켜버릴 때도 많을 거예요. 인터뷰는 그게 통하지 않는 게임이잖아요. 그럴 땐 그냥 직구로 던져버려요.
지난 한 해 페노메코의 이름으로 4장의 싱글 혹은 EP 앨범이 나왔어요. 다른 뮤지션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게 공식적으로는 10곡이고요.
세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뭘 많이 하긴 했네요. 음악 하면서 가장 많이, 또 부지런하게 작업한 해였어요. 스스로 좀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2018년까지만 해도 어떤 의미에선 강박적으로 작업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제가 정해놓은 데드라인을 지킬 수 없어요. 욕심이 나니까 계속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럼 모든 게 다 늘어져버리죠. 제 심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놓고 보면 제가 세상에 내놓는 곡의 수는 몇 개 되지 않았어요.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혼자 끙끙 앓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요. 2019년에는 좀 다르게 생각했어요. 쉼 없이 존재를 알리고 싶었어요. 저 여기 있다고요.
제 작업도 열심히 했고 피처링 제안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지금 말씀하신 양을 듣고 원래의 저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작업량이길래 놀랐어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작업 중인 곡이 더 있으니까 그쯤이면 분명히 칭찬해도 될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2014년 데뷔 이래 정규 앨범은 단 한 장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좀 의아해요.
제가 자존감이 낮아요. 자신에게 가혹한 편이기도 하고요. 감히 정규 앨범을 낼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뮤지션에게 정규 앨범은 특별한 의미와 무게거든요. 그런 부담이나 압박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재미없잖아요. 저는 재미있게 음악 하고 싶거든요.
친구인 지코, 딘, 크러쉬 등이 속한 크루 팬시 차일드, 다이나믹 듀오, 그레이, 식케이, 엘로, 아빈, 정세운, 미아, 이바다, 릴러말즈, 펀치넬로, 소금, 엑소, 잇지. 당신이 2019년에 함께 작업했거나 곡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에요. 장르로 보나 그 면면으로 보나 굉장한 다양성이 신기할 정도예요. 그들이 페노메코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
랩과 노래 둘 다 가능하다는 걸 장점으로 보지 않았나 싶어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장르적인 면에서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편이기도 하고요. 저는 상대 뮤지션이나 프로듀서에게 비트나 콘셉트를 받았을 때 제가 도드라지는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그들이 준 숙제에 최대한 녹아들기 위해 노력해요. 괜한 고집도 부리지 않아요. 이것저것 다양한 톤과 무드에 유연하게 맞추면서도 나쁘지 않은 성능을 가졌으니까 의뢰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위험수당이 좀 적을 것 같긴 하네요.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 말은 어때요? ‘유연한 작업 방식과 다양한 장르를 품을 줄 아는 페노메코는 대중적이다.’
글쎄요, 그건 좀 어려워요. 오히려 대중적이지 않아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대중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요즘 그쪽으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서 공부도 하고 있어요.
엑소의 ‘Tempo’와 잇지의 ‘Icy’에 작사와 랩 메이킹으로 참여했죠. 어쩌면 지금 가장 대중적인 아이돌의 노래에 이름을 올린 뮤지션의 고민치곤 좀 그런데요.
안 그래도 처음 제안받고 ‘왜 나를?’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마 제 가사에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거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 없다는 걸 안전하게 본 것 같아요. 되도록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는 편이거든요. 그런 성향이 아이돌 음악의 정체성과 잘 맞을 거라 생각했겠죠.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내 스타일을 고집할 수도 없고, 비속어도 들어갈 수 없었어요. 잠깐만 들어도 귀에 쏙쏙 꽂혀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어요. 평소 제가 쓰는 가사 센스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에 제안한 거니까 그 센스는 또 명확히 보여줘야 했고요. 무슨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세심하게 작업한 기억이 나요.(웃음)
당신을 ‘래퍼’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정의할 순 없지만, 물질적 부를 자랑하는 어떤 래퍼들과 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뭘 말하고 싶어요?
세 보이려는 욕망을 지우고 싶은가 봐요.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래퍼’라는 특정한 이미지나 제한을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저는 그냥 음악 하는 사람일 뿐이거든요. 주로 사랑이나 행복 같은 긍정적인 걸 말하려고 해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고 반대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버티면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고 할 수 있어요. 20대 내내 늘 날카롭고, 공격적이고, 예민한 상태로 지냈거든요. 그 성향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뮤지션 페노메코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그걸 표현하고 싶어요. 결국 지난날의 경험과 기억을 이야기하는 건데 과거는 늘 미화되기 마련이잖아요. 나쁜 기억은 잊고 좋은 것만 이야기하게 돼요. 또 요즘은 한 편의 소설을 쓰듯 가사를 쓰는데요.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하는 식이죠. 밖에 나가서 뭐라도 좀 해야 영감을 받든 자극을 받든 할 텐데 주로 집과 작업실에만 있으니까 그렇게라도 해야 뭐가 나와요. 최근에 쓴 사랑 노래는 제 개인적인 경험이라기보다는 이상과 판타지가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2019년 11월 지코의 첫 정규 솔로 앨범 <Thinking Part. 2>의 1번 트랙 ‘Another Level’에 참여했어요. 어떤 인터뷰에서 그가 말하더군요. “페노메코의 엄청난 음악적 역량을 아직 많이들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요. 친구의 말, 어때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인정받은 느낌도 들고요. 그걸로 충분해요.
재능과 능력, 또 활약에 비해 정작 ‘페노메코’라는 뮤지션이 정당한 평가와 유명세를 얻지 못했다는 생각은 없어요?
서운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어요.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언젠가 저 스스로 ‘아 이건 내 인생작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 있게 내놓은 노래가 있거든요. 그런데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그냥 흘러가듯 지나가버렸어요. 실망스러웠죠. 저 자신에게요. 음악이 문제인지, 아니면 내게 매력이 없는 건지, 내 딴에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건데 그런 행동이 내 캐릭터를 애매하게 만들어서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 건가 한참 그런 생각에 빠져 지냈어요.
그 인생작이 뭐죠?
2019년 봄에 나온 ‘영화 한 편 찍자’라는 노래예요.
왠지 그 노래를 생각했어요. 대중이 생각하는 ‘페노메코’의 음악적 범주를 벗어나 저 먼 곳의 정서가 담긴 발라드곡이라 낯설긴 했죠.
저 정말 그 노래에 영혼을 갈아 넣었거든요.(웃음)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아마 그 노래가 잘됐으면 지금까지 쭉 그런 노래만 했을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해주기만 했다면요.
이 대화가 담긴 책 표지에는 2020년 1월호가 찍혀 있겠지만, 오늘은 아직 2019년이에요. 2010년대의 10년을 돌아보면 어때요? 언제 가장 서러웠는지가 궁금한데요?
재미있네요. 2010년대에는 저의 20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삶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도 또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도 모두 그 10년 안에 담겨 있어요. 2011년에 더 내려갈 곳도 없는 데까지 바닥을 쳤거든요. 0.5평 고시원 생활이 시작된 때예요. 그때 가장 많이 울었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땐 감히 2019년의 페노메코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어요. 페노메코라는 이름도 없을 때 정동욱이라는 어떤 청년은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죠. 어둠이 지금 저를 만든 것 같아요.
2019년은 행복했어요?
보람찬 해였죠. 열심히 살았어요. 모든 게 다 감사해요. 아무리 안 좋은 상황이 와도 1평도 안 되는 고시원에 살 때보단 낫겠죠.
지난밤에 무대에 있었죠. 추운 일요일 오전에 우리는 짧게 만났고요. 지금 다시 무대 위로 간다면서요?
좋아요. 계속 지금처럼 바빴으면 좋겠어요. 잊히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오늘까지만 일하고 저 내일 떠나요. 바다 건너 남쪽으로 갑니다. 유년기를 지낸 곳으로요. 멀리요.
지금쯤 잠깐 쉬어가는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군요. 비우는 여행과 채우는 여행이 있다고 하던데요?
물리적으로는 채우는 여행이 될 겁니다.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생각이니까요.(웃음) 정신적으로는 모든 걸 다 비우는 여행이 될 거고요. 일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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