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해진 기후 변화에 따라 ‘텅’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내 월급보다 생활비가 더 빨리 오르는 이유를 돌아봤다.

지난여름, 나는 사무실 서랍과 파우치에 늘 양말 한 켤레를 넣어 다녔다. 미팅과 행사, 촬영으로 외근 중 예고 없이 쏟아지는 폭우로 우산을 써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과 옷은 마른다 해도 신발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내 발의 찝찝함은 참을 수 없었다. 집중호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고, 바쁜 일정 속에서 하루의 일정이 죄다 흐트러지기도 했다.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했을 때는 최악의 상황이 기다린다. 일단 편의점으로 뛰어들지만, 우산이 매진되면 발을 동동 구르다 택시를 부른다. 이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니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 점점 시간은 가고, 마음은 급해진다. 결국 앱의 권유에 따라 추가 비용을 내고 택시가 더 빨리 잡히는 쪽을 택한다. 변덕 심한 날씨 탓에 자꾸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긴다.
지난해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유독 잦은 시설물 고장을 겪었다. ‘여름철 폭우로 인한 기계식 주차기 내부 턴테이블 고장과 관련해 여러 업체와 검토한 결과 수리를 진행하더라도 정상적인 사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수리 비용도 매우 크게 발생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라는 문자를 시작으로 몇 주 간격으로 옥상 누수와 기온 상승으로 인한 해충 방역 추가 같은 관리비 관련 공지가 쏟아졌다. 폭염으로 매달 날아오는 관리비 고지서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한 지 오래다. 5년 전, 처음 독립했을 때와 비교해 여름철 관리비는 월 평균 2만원 정도 상승했다. 최대한 선풍기를 사용하려고 하지만, 무더위 탓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잠을 청할 수 없다.
1인 가구의 가장으로서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어마어마하다. 과한 에너지 소비로 연료비 상승은 생활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예전에는 눈길조차 가지 않던 공공에너지와 에너지 전환, 재생에너지 같은 키워드를 찾아보게 됐다.
기후 변화로 인한 물가 상승 현상인 ‘기후 인플레이션(Climate Inflation)’이 피부로 느껴지는 건 끼니를 고민할 때다. 건강한 식재료를 구입해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는 포부도 마트에서 각종 채소와 고기 등을 담다 보면 한두 끼 가격 치고는 다소 황당한 숫자에 헛웃음이 나온다. 혼자니까 신선하고 맛있는 제철 식재료를 취하겠다던 다짐은 가격 앞에서 작아진다. 여기에 재료 손질과 요리, 설거지 등에 들이는 내 노동력과 시간을 더했을 때 ‘나는 한 끼에 얼마짜리 밥을 먹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자 배달 앱을 켜는 빈도가 잦아졌다.
이제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 위기를 넘어 재앙이 왔다는 걸 요즘은 통장으로 실감한다. 대한민국 평범한 30대 직장인 월급으로는 남는 것도 없는 생활비가 아찔하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처럼 물가상승의 폭은 가파르다.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도 영향을 끼치지만, 식자재 원가가 줄줄이 상승하는 데는 기후 위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1년 내내 이어지는 이상고온과 집중호우, 폭설 등 계속되는 이상 기후 현상은 과일과 채소의 수확량을 떨어뜨린다. 한번 망가지면 회복의 기회가 없으니 수입에 의존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의 분석에 따르면, 폭염이나 폭우 등 극한 기상 현상이 국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C의 고온 충격은 24개월 이상, 10mm 강수 충격은 15개월 이상 지속되었다고 한다. 농수산물은 고온과 강수 충격에 모두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며, 서비스 물가의 경우 고온 충격에는 상승하고, 강수 충격에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폭염 아래에서는 생산성이 저하되니 운영비가 증가하고, 생산 비용 역시 상승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통가에서는 공급 안정을 위해 많은 기술적 투자를 하지만 체감되는 정도는 아니다.
매년 월급에서 생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고, 미래를 위한 저축의 자리는 자연스레 좁아진다. ‘100세 시대’라지만 정작 ‘내 노후는 안녕할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하곤 한다. 노인 빈곤과 주거 불안정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입고, 먹고, 머무는 일상의 생존 문제다. 만약 뼈만 남은 북극곰이나 황폐해진 열대우림,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해양생물의 사진만으로는 아직 기후 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다면, 퇴근길 마트의 신선식품 코너를 한번 둘러보길 권한다. 기후 위기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대재앙이 아니라 서서히 우리의 일상에 스민 현실의 일이다.
- 일러스트레이터
- ROBERT BEAT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