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연프’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

우후죽순 솟아나는 ‘연프’들. 왜 우리는 속절없이 연프에 빠질까? 이를 정의하는 키워드 4가지. #스토리확장 #사회실험 #도파민 #진정성

이분법은 늘 위험하지만, TV 신에서는 이 이분법이 확실하다. 세상에는 연애 프로그램, 소위 ‘연프’를 몰입하며 보는 사람들이 있고, 손도 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연애를 구경하며 울고 웃는 이들, 수많은 연프가 자가복제를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키워드, 확장 스토리를 구독하기

연프를 보지 않는 사람들은 묻는다. 남의 연애가 뭐가 재미있는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되잖아? 이는 연프 시청자를 모르는 말, 그들은 어차피 현실이든 허구든 모든 로맨스 서사를 구매하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테라스하우스>에서 파생한 <하트시그널> 같은 연프는 도시에서 번듯한 직업을 가진 선남선녀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며 사랑에 빠진다는 <프렌즈>식 드라마를 변주한다. <환승연애>는 헤어진 연인의 재회와 두 번째 이별의 서사를 보여준다. <연애남매>는 가족 전체가 관여하는 홈드라마 로맨스를,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연애 초보들이 서투르게 시작하는 관계를 그린다. 연프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처럼 31가지 다른 맛의 로맨스 스토리텔링을 제공한다. 가끔은 여러 맛을 섞어 먹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대사회에서 서사로서 연프의 가장 큰 장점은 끝나지 않는다는 성질, 현실까지 이어지는 확장성에 있다. 허구의 로맨스가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후기 없이 끝난다면, 연프는 수많은 스핀오프를 만들어낸다. 이는 사생활을 콘텐츠로 파는 SNS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발을 맞춘 현상이다. 일단 연프에 출연만 하면, 블라인드에 출연자의 인스타그램 주소와 지인들의 증언이 쭉 올라온다. 아니, 처음부터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출연자 본인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후일담을 쏟아낸다. 다음 연프가 시작하면 이들은 리뷰 콘텐츠를 만들면서, 연프 캐릭터로서의 수명을 연장한다.

물론 끝이 나지 않는 스토리를 파는 건 버거운 일이다. 현실 인간은 캐릭터처럼 일관적일 수 없고 언젠가 어긋난다. 그런데 이 어긋남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크 스토리다. 앞뒤 다른 행동을 두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권리를 주는 것만큼 관심을 확실히 끄는 방법이 없다. <솔로지옥 시즌5>에서 최미나수가 그렇다. 시청자는 그의 언행에 화냈지만, 버즈량이 늘어나며 화제성도 높아졌다. 정당하게 화낼 빌미를 준, 그렇지만 변호의 여지도 있는 아름다운 빌런은 대중의 열광을 모은다.

두 번째 키워드, 연프라는 사회 실험

사람들이 연프에서 설렘만 구하지 않고 갈등을 기대한다는 건 연프의 사회 실험적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솔로>(<나솔>)는 기원부터 폐쇄된 공동체의 사회 실험 다큐로 기획한 SBS <짝>에서 유래했다. <나솔> 출연자들이 본명이 아니라 옥순, 광수로 불리는 것도 실험 설정이다. <나솔>에서는 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같은 직종에서 직급이 다른 공무원을 같은 회차에 섭외하거나 근거리 연애를 선호하는 사람을 먼 곳에서 일하는 이성 사이에 넣는 방식이다. 최근 연상녀-연상남 특집에서는 샤넬 가방 든 여자를 꺼리고 연하를 선호하는 가부장적 남자를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온 연상녀들 사이에 던져넣었다. 그의 시대착오적 발언은 매회 대중에게 뭇매를 맞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여기에서 짝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일반 예상을 벗어나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다.

설레는 파트너를 찾는 젊은이들이 결혼의 조건을 우선하는 어머니와 함께 출연하는 <자식 방생 프로젝트 합숙 맞선>은 아예 넷플릭스에 사회 실험 키워드로 등록되어 있다. <환승연애>나 <연애남매>는 전 애인이 앞에 있을 때, 혹은 혈육이 지켜볼 때 인간은 어떻게 구애 활동을 하는가 하는 실험적 요소가 강하지만, 이를 스타일리시한 촬영으로 감춘다. 돈이냐 사랑이냐를 선택하는 <러브캐처>, 피지컬 시합을 더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데이트 환경을 분리하는 <솔로지옥>은 더 노골적이다. 대중은 폐쇄적이고 극단적 상황에 놓인 인물의 이상 행동을 즐기고, 이들을 비난하면서 쾌감을 얻는다. 이 또한 미디어를 소비하는 대중에 대한 사회 실험 중 하나다. 

세 번째 키워드, 무한 도파민

로맨스 서사와 각종 빌런의 출연, 연프는 이 두 가지를 대중에게 공동의 어젠다로 던져주며 도파민을 무한히 공급하는 소스가 된다. 연프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영철과 옥순이 무슨 문제적인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있으며, 천국도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볼 수 있다. 평범한 사회인이었을 사람이 폐쇄된 연프의 공간에 들어가서는 문자를 받지 못했다고 폭주하고, 현실로 돌아와서는 인스타그램에 검은 배경 사과문을 올린다. 플러팅과 싸움과 폭로의 한가운데에서 도파민이 분출된다.

진지한 비평가들은 연프가 사회구조를 수긍하는 보수주의와 가장 사적인 감정을 재료로 삼아 중독적인 콘텐츠를 만든다고 비판하지만, 제작진은 그런 도덕 담론을 고려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를 보는 대중에게 더 심각한 악덕은 선정성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재미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환승연애4>에서 한 여자 출연자가 전 애인 두 명을 데리고 나왔을 때, 대중의 불만이 폭주한 건 상황의 자극적인 요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불만은 환연의 핵심 서사, 엑스와 새로운 연애 상대를 두고 고민할 때 발생하는 감정적인 갈등의 구도가 깨졌다는 것이다. 두 명의 엑스가 공존하면 <환승연애2>에서 자기 엑스와 데이트하러 나간 룸메이트를 보낸 후 화장대 앞에서 눈물을 또르르 흘리던 해은의 명장면을 연출할 수 없다. 현규의 “내일 봬요, 누나”가 레전드로 남을 수 있었던 환승의 쾌감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네 번째 키워드, 그럼에도 진정성

결국 겉보기는 로맨스, 속으로는 사회 실험일 때 도파민이 극대화된다. 제작진은 이 진실을 적당히 굴려서 환상을 빚어낸다. 그런데 여기에 묘한 역설이 있다. 통계적으로 <하트시그널> 같은 예쁜 러브 스토리에서 최종 커플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아직) 없고, 배려 있는 포장 따위는 관심 없는 <나솔> 같은 프로그램에서 결혼 커플이 더 많이 배출된다는 것이다. 본연적인 연프의 딜레마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절묘한 균형은 아무리 재능 있는 제작자가 와도 쉽게 성취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래도 어떤 연프는 간혹, 어떤 운명처럼 그런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환승연애4>에서 원규-지현의 편지 같은 장면이다. 연애할 때는 시 한 번 써준 적이 없던 원규가 떠나간 지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둘이 같이 듣던 카더가든의 노래 ‘그대 작은 나의 세상이 되어’의 가사를 꼭꼭 눌러서 쓴다. 그 후 이 발라드가 다른 공식 OST를 제치고 차트 1위에 오르는 것을 보면, 진정성만 한 흥행 요소는 없는 것 같다. 진짜 연인들이 출연한다고 해도 <환승연애>가 인플루언서 오디션의 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모르는 시청자는 없다.
그렇대도, 그럼에도, 화면 속 어딘가 남아 있을지 모르는 순수한 감정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연프를 놓지 못한다. 사랑까지도 상품화할 수 있다면 팔고 싶다는 소비주의의 진정성, 그것이 현대 연프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박현주
    일러스트레이터
    신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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