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크리에이티브 K-POP 프로듀서, 아도라
창작부터 제작까지. 자신만의 웨이브를 만들어가는 90년대생 K-팝 프로듀서 4명.

아도라 1997년생 싱어송라이터. 빅히트뮤직 소속 프로듀서로 BTS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곡을 만들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해인과 함께 보이 그룹 ‘클로즈 유어 아이즈’ 데뷔에 참여했다. 현재 버추얼 걸 그룹 ‘오위스(OWIS)’와 함께 ‘올마이애닉도츠(All My Anecdotes)’ 소속으로 장르적 확장을 시도 중이다.
신생 기획사 ‘올마이애닉도츠’에 합류했다. 근황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점, 디제잉에 도전하게 됐다. 자연스레 새로운 장르도 파고들며,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팬송’을 만들었을 정도로 하이라이트(비스트)의 팬이었던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 어떤 곡을 좋아했나?
K-팝 ‘덕후’ 그 자체였다.(웃음) 하이라이트는 물론, 엑소나 SM 아티스트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사실 빅히트에 프로듀서로 입사할 무렵 ‘SM 음악 좋아하는 티가 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BTS의 ‘봄날’ ‘Magic Shop’, TXT의 ‘그냥 괴물을 살려두면 안 되는 걸까’ ‘Our Summer’ 등 남다른 감성의 곡을 선보였다. 하지만 빅히트와는 연습생으로 먼저 인연을 맺었는데.
연습생을 그만뒀을 때 빅히트에서 작곡가 오디션 공모가 올라와서 지원했다. 뒤늦게 합격 연락을 받았는데 이미 다른 곳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런 곡이 지금 필요한데 만들어 보겠느냐고 해서 낮에 연습하고 저녁에는 작업실에서 써 보낸 게 BTS의 ‘Interlude: Wings’였다. 최종적으로 새 소속사에서 데뷔가 무산되며 빅히트에 프로듀서로 입사하게 됐다.
빅히트가 하이브로 도약하기 직전인 2010년 후반대, 조직 안에 있으면서 느낀 흐름이 있나?
당시에 그것까지 볼 수 있는 시각은 없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정말 어깨너머로 잘 배웠다 싶다. 내가 입사했던 때 빅히트 프로듀서는 피독(Pdogg), 슬로우래빗, 슈프림 보이 PD님과 나까지 4명에 불과했다. 지금 BTS 팬들의 투어 ‘성지’ 중 하나인 청구빌딩 시절의 일이다.
그럼에도 떠나게 된 이유는?
처음 내가 갖고 있다고 평가받던 신선함이 익숙한 게 되면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이 커졌다. 회사와 아티스트가 팽창하며 해외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곡을 보내오는데, 정작 나는 퇴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곡 작업보다는 다른 업무를 하는 일도 늘어났다. 그즈음 갑상선암 수술까지 받으면서 ‘죽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죽어야겠다’ 싶었다.
2022년 뮤지션 ‘ADORA’로 활동한 경험은 어떻게 남아 있나?
냉정하게 판단하면 실패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비하가 아니다. 할까 말까 고민되면 무조건 불구덩이인 걸 알아도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에 후회한 적은 없다. 빅히트에서의 시간을 포함해, 힘들던 시간이라고 해서 내게 남는 게 없는 건 아니더라. 무엇보다 음악방송 활동이 너무 재미있었다.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보겠나?(웃음)
팬, 연습생, 프로듀서, 제작자, 뮤지션 등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은 어떤 포지션에 있는 것 같은지.
돌아보면 정말 10여 년을 이 바닥에서 ‘구르며’ 많은 걸 체득했다. 산업 자체에 대한 본질적 회의감이 들다가도 결국 또 사랑하고, 애증이 있다. ‘덕후’였던 시기까지 포함해 나라는 사람의 많은 토대가 되어준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일을 좋아해서 하는 마음이 더 컸다면, 지금은 일하며 만난 사람들, 같이 고생하는 동료들이 동력이 된다.
그 동료 중 하나가 키스오브라이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잘 알려진 이해인 씨다. 지금 소속사의 COO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연습생을 준비한 회사에서 만났으니 인연이 10년 정도 됐다. 내가 재료에 살 붙이기를 잘하는 타입이라면, 언니는 재료를 잘 찾는 사람이다. 그런 상호 보완적 작용이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데뷔 콘셉트를 잡아갈 때 특히 잘 발현된 것 같다.
이해인, 아도라 콤비는 젊은 여성 제작자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둘 다 아티스트로 노출된 경력이 있다 보니 언급량이 많아진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우리를 향한 평가를 거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성 프로듀서라는 게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기쁘다.
신생 기획사 언코어(UNCORE) 소속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데뷔 제작에 관여하며 새롭게 배운 것은?
TXT 멤버도 워낙 데뷔 초에 만나서 책임감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제작을 하면 정말 ‘내 새끼’가 되더라.(웃음) 한편 대형 소속사와 신생 기획사의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기도 했다. 빅히트에서는 그냥 하면 되던 것이 사실은 품과 공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혹시 또 제작을 하게 된다면, 도전하는 친구들의 시간이나 인생까지 책임질 능력이 있는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대는 정말 중요한 시기니까.
최근 K-팝 신에서 느끼는 흐름이 있다면?
누가 더 신선한 걸 갖고 오느냐가 일종의 경쟁이 되면서 장르의 경계가 사라졌다. 타이틀곡은 어떤 사운드여야 한다는 공식이 있었던 것도 뉴진스 이후 깨졌고. 사이클이 너무 빨라지면서 이제 흐름이라는 게 있는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늘 레퍼런스를 찾다 보니 항상 선두 주자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 게 한계로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건 알맹이, 진심인 것 같다. 계속 찾아가는 중이다.
요즘 영감 혹은 자극이 되는 것은?
디제잉을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한 하우스나 네오 소울처럼 그루비한 사운드의 매력에 빠졌다. 거대한 플랫폼이나 음원 사이트에서 바이럴되는 곡 말고 다른 방식으로 곡을 찾아 들으며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건 진짜 ‘내 곡’이라고 느껴지는 곡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BTS의 ‘봄날’이다. 나 혼자 만든 곡이 아닌데 내게 너무 중요한 이력이 되면서, 남의 공을 훔친 것 같은 기분이 든 때도 있었다. 그 모든 감정이 희석된 지금은 정말 순수하게 애착이 생겼다. 처음 트랙을 받고 의욕이 넘쳐서 10개 정도 톱라인을 써 보낼 정도로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웃음) 당연히 개인 활동으로 낸 곡 대부분은 ‘내 것’ 같다. 웹툰 OST였던 ‘n번째 우주’는 J-록을 표방하는 사운드의 밴드 곡인데 곡도, 가사 작업 과정도 막힘없이 즐거웠다.
이 신에서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것은?
음악적 지식이 해박하거나 조예가 깊지 않다고 스스로 늘 생각해왔다. 노래를 부르고, 만들고, 리듬 타는 걸 좋아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기분이다. 지금은 불안감을 내려놓고 다시 음악을 놀이처럼 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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