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로맨틱’ 룩을 정의하는 방법
거대한 보와 시어 소재, 흐트러진 러플과 절제된 테일러링 사이에 선 로맨틱.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늘 패션에서 가장 쉽게 소비되면서도, 동시에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로맨틱 하면 프릴과 레이스, 핑크 컬러와 꽃무늬를 떠올리지만, 런웨이를 보면 이는 결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한껏 부풀린 러플 드레스가 로맨틱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셔츠 칼라 아래 단정하게 묶은 리본 하나가 훨씬 더 로맨틱하게 느껴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장식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미묘한 힘이다. 사람의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여운을 남기는 것.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그 미묘한 감각을 대표적으로 ‘보(bow)’라는 디테일에 담아냈다. 과거의 리본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분위기를 강조했다면, 지금의 보는 더 복합적이다. 때로는 쿨하고, 관능적이며, 어떤 룩에서는 극도로 절제된 모던함으로 기능한다. 쉽게 말해, ‘어여쁜 장식’에 머물지 않고, 룩 전체의 긴장감을 조율하는 영리한 장치로 진화한 것이다.
생 로랑은 과장된 화이트 보와 블랙 레더를 충돌시키며 클래식한 여성성을 날카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부드러운 실크 리본 아래 묵직한 레더 재킷과 펜슬 스커트를 배치하자, 보는 오히려 권위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랄프 로렌 역시 새하얀 셔츠 위에 핫 핑크 보를 더해 자신감 넘치는 애티튜드를 완성했다. 단정한 셔츠와 테일러링 속에서 리본 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르며 룩 전체의 온도를 바꾼 순간이다.
한편 끌로에는 보다 전통적 방식의 로맨티시즘을 이어갔다. 플로럴 드레스의 바스트 부분에 리본을 묶어 쿠튀르적 볼륨을 강조한 것. 이번 시즌 보가 특히 새롭게 느껴지는 건, 예상 밖의 소재와의 충돌에 있다. 얇은 시폰과 튤 위에 놓인 리본은 예상 가능한 로맨틱이지만, 스포츠 점퍼나 구조적 셔츠 위에 놓이는 순간 완전히 다른 무드가 만들어진다.
조머는 레드 보머 재킷 위에 스트라이프 보를 더하며 프레피와 스포티즘을 충돌시켰고, 막스마라는 크롭트 니트와 시어 스커트의 미니멀한 룩을 통해 극도로 절제된 로맨티시즘을 보여줬다.
시어 소재 역시 이번 시즌 로맨틱 무드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피부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얼마나 자연스럽게 흐트러져 보이느냐에 집중했다. 발렌티노와 알베르타 페레티의 드레스는 몸을 감추기보다 공기처럼 감싼다. 얇게 겹쳐진 오간자와 시폰은 움직일 때마다 형태가 흐느적거리고, 그 순간 관객은 옷보다 분위기를 먼저 보게 된다. 블루마린과 돌체앤가바나는 보다 관능적 방향으로 접근했다. 란제리와 슬립 드레스, 레이스와 스타킹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노골적이지 않다. 오히려 약간 흐트러진 헤어와 힘을 뺀 스타일링 덕분에 현실적 무드가 살아난다.
로맨틱 섹슈얼리티는 어딘가 무심하고 불완전하며,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플라워 장식도 빠질 수 없다. 다만 이 역시 전형적인 방식에서 벗어난다. 캐롤리나 헤레라는 라벤더 컬러 드레스 전체를 꽃잎 같은 입체적 텍스처로 뒤덮었고,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거대한 보와 플라워 패턴을 결합해 마치 동화 속 드레스 같은 실루엣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건 컬러와 스타일링이 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볼륨은 극대화됐지만 표정과 헤어, 메이크업은 오히려 담백하다. 로맨틱을 과장하기보다 차갑게 다루는 방식이다.
결국 이번 시즌의 로맨틱은 서로 다른 감각이 충돌하며 만들어진다. 얇은 시폰과 단단한 레더, 거대한 보와 미니멀한 테일러링, 란제리와 오버사이즈 셔츠처럼. 어쩌면 지금 패션이 다시 로맨틱을 논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지나치게 빠르고 선명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설명 가능한 것보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에 더 끌린다. 아주 얇은 시폰 한 겹, 바람에 흔들리는 리본 끝, 움직일 때마다 형태가 달라지는 러플 같은 것들. 이번 시즌의 로맨틱은 결국 그런 작은 흔들림에 대한 이야기다.
- 사진 출처
- COURTESY OF GORUNWAY
- 아트 디자이너
- 이청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