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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초월한 젠더리스 주얼리 이야기

2025.11.06최정윤

오롯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두의 주얼리. 

(위부터) 곡면의 윤곽선 사이로 촘촘하게 세팅한 끌루 까레 스터드와 뾰족한 피코 장식이 강렬한 조화를 이루는 ‘클래쉬 드 까르띠에’ 네크리스, 야생적인 팬더 모티프에 오닉스, 에메랄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팬더 드 까르띠에’ 타이 핀은 까르띠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회전 실린더 장식이 유희적인 매력을 선사하는 ‘포제션’ 브레이슬릿은 피아제(Piaget).
나연의 캐시미어 니트 베스트는 배리(Barrie). 태민의 스카프 블라우스는 디올 맨(Dior Men).
세미 파베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커프와 이어링을 연결해 남녀 구분 없이 그래픽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LOVE’ 싱글 이어링은 까르띠에(Cartier). 링크 체인에 장식한 시그너처 볼과 락 참이 대담한 균형을 이루는 ‘티파니 하드웨어’ 네크리스는 티파니(Tiffany). 재킷은 구찌(Gucci).
여러 가닥의 골드 스레드가 얽히고설켜 아이코닉한 까나쥬 그래픽 라인을 구현한 ‘마이 디올’ 컬렉션의 링과 브레이슬릿은 모두 디올 파인주얼리(Dior Joaillerie).

한때 백마 탄 왕자님이 건넨 반지를 끼고 아름다운 동화 속으로 훨훨 날아가는 상상을 했더랬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주얼리 광고에는 어김없이 감성적인 러브 스토리가 흘렀고, 그 호화로운 주얼리는 꾸밈의 언어로 소개됐다. 아마 그런 장면이 무의식에 남아 우리를 세뇌했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주얼리는 사랑의 맺음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 각자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무수한 사랑의 형태를 인정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무엇보다 젠더리스 주얼리 시장이 부상한 까닭이 크다.

구조, 그 자체가 아이덴티티

현대의 주얼리는 더 이상 얼마나 희소성 짙은 젬스톤을 세팅했는지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구조적 디자인이나 모듈러 시스템, 그리고 착용자의 해석으로 스타일을 창조한다. 루이 비통의 ‘르 다미에 드 루이 비통’ 컬렉션은 그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적인 다미에 패턴을 골드 스퀘어와 다이아몬드로 배치한 디자인으로, 레이어링과 셀프 스타일링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 컬렉션을 디자인한 루이 비통 시계 및 주얼리 아티스틱 디렉터 프란체스카 암피테아트로프는 앞서 ‘레 가스통 비통’ 유니섹스 파인 주얼리를 론칭했을 당시에도 이렇게 언급했다. “성별로 컬렉션을 구분하는 것은 다소 구식이라고 생각한다. 남성을 위한 사이즈와 요소를 갖추면서 여성을 위한 디자인이기도 해야 한다.” 이런 관점은 다른 하이 주얼리 메종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티파니 하우스는 1962년 아카이브로 남은 볼 체인 브레이슬릿을 재해석해 ‘하드웨어’ 컬렉션으로 부활시켰다. 당시 뉴욕의 거리에는 메탈 체인 주얼리를 착용한 남성이 즐비했고, 티파니는 그 거칠고 세련된 남성의 감성을 유연한 링크 구조로 풀어내며 젠더 코드를 완벽히 전복시켰다. ‘하드웨어’의 체인은 굵고 가는 링크가 공존하며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마무리해 각자의 개성에 맞게 비율을 달리한다. 역시 장식보다 구조가, 꾸밈보다 연출 방식이 강조된다. 더 나아가 근래에는 아티스트 퍼렐 윌리엄스를 영입해 신화 속 포세이돈과 삼지창에서 영감 받은 스피어 스타일의 ‘티파니 타이탄 by 퍼렐 윌리엄스’ 컬렉션을 선보였다. 저항성이 깃든 날렵한 형태는 여성 주얼리 소재로 잘 알려진 진주와 초고강도 티타늄을 과감히 매치해 더 신선하다. 이는 젠더리스라는 서사 아래, 눈부신 보석과 테크니컬이 결합해 기존 관념을 초월하는 새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을 예고한다. 

아방가르드하고 구조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불가리 투보가스’ 이어링은 불가리(Bvlgari). 골드 스퀘어와 다이아몬드를 그래픽적으로 배치해 다미에 패턴의 고유한 형태를 연상시키는 ‘르 다미에 드 루이 비통’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 링은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나연의 오프숄더 톱은 발렌티노(Valentino). 태민의 재킷은 구찌.
영원히 지지 않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피아제 로즈’ 링과 브레이슬릿은 피아제.

젠더 감수성이 이끌 내일의 주얼리

까르띠에는 아이코닉한 팬더의 매혹적인 눈빛을 갖춘 BTS 뷔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했고, 부쉐론은 작곡과 프로듀싱에도 재능을 보이는 NCT 마크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 최초의 남성 프렌즈 오브 더 메종으로 선정했다. 이 밖에 스트레이 키즈 아이엔은 다미아니 글로벌 앰배서더로서 브랜드의 시그너처 라인인 ‘벨 에포크 릴’ 컬렉션을 소개하고, BTS 진은 프레드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약하며 상징적인 ‘포스텐’ 주얼리 캠페인을 펼친다. 이처럼 K-팝 남성 아티스트들이 명망 높은 하이 주얼리 메종의 얼굴로 등장하는 이유는 세계적 팬덤을 기반으로 강력한 문화적 도달력을 지녔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들이 내포한 젠더 감수성은 동시대 럭셔리 브랜드가 추구하는 새 정체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어서다. 바로 주얼리를 착용한 어여쁜 남자가 아닌, 고유한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크리에이터의 태도 말이다. 시장 조사 및 컨설팅 기관인 폴라리스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남성 주얼리 시장 규모는 약 485억 달러로 추정되며, 2034년까지 연 9.9%의 성장률이 예측됐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10.2%의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여성 주얼리 시장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이런 미래 성장을 주도하는 젠지와 알파 세대로 구성된 K-팝 팬덤은 소유보다 경험을, 권위보다 진정성을, 그리고 정체성의 확립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이들은 젠더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감수성을 체득한 세대이며, 하이 주얼리를 부의 상징이 아닌 자기 서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성별을 초월한 사랑의 재정의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거나 공주님에게 줄 보석을 수소문하는 대신, 주체적으로 자신을 빛낼 아름다운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1969년 디자이너 알도 치풀로가 ‘사랑을 잠그다’라는 콘셉트로 탄생시킨 까르띠에의 ‘러브’ 컬렉션도 새 관념을 입고 나선다. 전용 드라이버를 이용해 나사를 풀고 조여야 하는 사랑의 족쇄는 혼자 열거나 잠글 수 없고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제 까르띠에는 ‘잠그는 사랑’에서 ‘무한한 사랑’을 외친다. 바로 지난 9월, 무려 56년 만에 새로운 ‘러브 언리미티드’ 컬렉션을 론칭한 것. 더 이상 드라이버는 없다. 인비저블 클래스프 시스템을 적용해 혼자서도 쉽게 착용하고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정교하게 세공된 거두룬 장식 링크가 손목 위에 유연하게 밀착되며, 또 다른 브레이슬릿과 무한히 연결하도록 고안되었다. 이처럼 오늘날의 하이 주얼리 메종은 아이코닉한 심벌을 내세워 경계 없는 젠더가 세상을 이끌 때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을 그린다. 눈부신 다이아몬드와 황홀한 골드빛이 스며들 그 길에서, 나 자신을 증명하는 언어가 되어줄 주얼리를 찾아보길.

    포토그래퍼
    김성민
    모델
    태민, 박나연
    헤어&메이크업
    이담은
    어시스턴트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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