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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CURIOUS? / 이호정

좋아하면 발동하는 배우 이호정의 무한한 호기심.

울 크레이프 미니드레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스웨이드 재킷은 프라다(Prada). 이어링은 톰우드(Tom Wood).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틸레토 메리제인은 막스마라(Max Mara).

타이 커프스 블라우스는 H&M.

맥시드레스는 지아 스튜디오 바이 10 꼬르소 꼬모 서울(Gia Studios by 10 Corso Como Seoul). 웨지 샌들은 에트로(Etro).

필모그래피를 보다 좀 놀랐어요. 드라마 <알고 있지만,>의 윤솔, <도적>의 언년이, <굿보이>의 마귀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더라고요.
유독 장르물이 많기도 했죠. 제 선택이라기보다는 감독님들이 저를 ‘픽’해주신 덕분에.(웃음) 

‘감독님들은 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한 캐릭터를 자꾸 내게 줄까?’ 생각해본 적 있어요?
정말 이상해요. 오디션에서는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발발 떠는 스타일이거든요.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그 증상이 더 심해져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디션을 길게 본 적도 많지 않은데, 감사하게 같이 해보자고 연락을 주세요. 하나의 이미지보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커리어를 쌓을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아주 감사해요. 캐릭터가 너무 막연해서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완성해가는 재미도 크고요. 

고통스러운 시간, 그 뒤에 찾아오는 달콤한 수확은 뭐예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붙는 거요. 일단 캐릭터가 주어지면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거든요. 마귀처럼 마약을 팔아본 적도 없고, 언년이처럼 총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으니 여러 방법으로 고민하고, 다른 작품을 참고하며 어떻게 하면 완성형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계속 상상해요. 도장 깨기를 하듯 해낸 뒤에는 ‘내가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해냈구나’ 하고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정말 부족했는데,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해낸 후에는 스스로 꽤 자랑스러워요. 

모델로서 창창한 커리어를 쌓았는데, 왜 자신이 없었어요?
저도 저라는 사람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한창 연기를 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연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영화를 몰아서 본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막상 시작해보니 배우 경력이 전무하고 그 선택이 맞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게, 하면 할수록 재미있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특히 재미있어요?
치열함요. 특히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아요. 하나의 장면을 잘 찍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큰 힘이 돼요. 그 치열함 속에서 제 몫을 다 해내고 기진맥진해서 집에 왔을 때, 소파에 털썩 주저앉을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 촬영이 끝나고, 한동안 현장에 나가지 못해서 요즘 좀 멍한 상태예요. 요 몇 주 그 그리움이 증폭되고 있어요. 

그리움이 큰 걸 보니 꽤 치열했나 봐요?
매번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지만, 그 마음이 커지고 커져서 폭발할 지경이었어요.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헤쳐가는 이야기인데, 저는 그 속에서 형사 ‘노진영’이라는 역을 맡았어요. 정말 너무 갖고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이 작품이 배우로서 제 커리어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연기를 시작하고 가장 큰 용기를 낸 순간은 언제였나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준비하며 삭발했을 때요. 가족을 위해 성별을 숨기고 입대한 캐릭터였는데 진짜, 정말 잘하고 싶어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죠. 

거기까지는 가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네,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어요. 모델 일을 오래 하고 막 배우로 커리어가 전환되는 시점이었는데, 삭발 후 스스로 가둬놓았던 틀이 한 꺼풀 벗겨지기도 했고요. 그때 그 선택을 안 했다면 지금 연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 것 같아요. 

성별을 뛰어넘는 역할도 했네요. 나이, 언어에도 제한이 없다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어요?
지극히 평범한 인물요. 밥 먹고, 산책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그런 평범한 인간을 연기하고 싶어요.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처럼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좋아해서, 시청자로서 작품을 택할 때도 그런 이야기에 끌려요. 아직 그렇게 평범한 인물이 제게 온 적이 없기도 하고요.(웃음)  

2012년 16세의 나이로 데뷔했으니 인생의 절반은 일을 하며 보냈어요. 후회는 없나요?
헉! 

왜 그렇게 놀라요?
지금 이 질문을 듣기 전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인생의 절반을 일했다니 약간 소름이 돋아요. 몇 년 뒤면 절반 이상이 일한 시간이라뇨!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구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집요함요. 어떤 것에 꽂히면 그걸 끝까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요함이 큰 편이에요. 어떻게 해서든 버텨내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집요함의 목표가 있어요?
명확하게 있어요. 너무 소중해서 입 밖으로 꺼내기가 무서워요. 넓게 보면 중년이 됐을 때, 멋진 어른이 되는 거예요.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목표를 이룬다면 그때 꼭 말씀드릴게요. 

지금 그 목표의 어디쯤 왔어요?
아직 3분의 1도 채 못 왔어요. 하지만 이 속도와 밀도는 좋아요.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단단하게 잘 쌓아가는 것 같아요. 

생각하는 멋진 어른이 있어요?
정말 소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마주할 때가 있어요.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봤는데, 자신의 고유함을 잃지 않으면서 일을 잘해내는 사람들이더라고요. 필요하다면 타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요. 그분들이 지닌 특유의 단단함에 존경심이 들어요. 그 단단함이 부서지고, 비난받고, 우울함을 극복하는 등 풍파를 이겨낸 사람의 흔적 같달까요. 지금 떠오르는 분 중에는 예민하고 까칠한 분도 있는데, 그 타당한 까칠함마저 좋아요. 

일찍부터 일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모델 일을 안 했다면 인플루언서나 옷 관련 사업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릴 적부터 옷을 워낙 좋아해서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옷에 집요했군요.
옷을 향한 집요함은 중학생 때 정점을 찍었죠. 새 옷을 사고 싶은데 학생이라 돈이 없으니 중고 거래 사이트를 애용했어요. 입던 옷을 리폼해서 팔기도 하고 열심히 활동했죠. 

옷을 질리도록 좋아했던 사람의 패션 철학이 궁금해지네요.
10년 뒤에 봤을 때도 촌스럽지 않은 것. 그게 요즘 제 스타일링의 우선순위예요. 무엇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요. 

어떻게 하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어요?
촬영 기간이든 아니든 밥은 꼭 제시간에 먹으려고 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보통 9~10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 3~4시에 저녁을 먹어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루틴을 지키려고 해요. 최근에는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 술과 커피도 멀리하는 중이에요. 현장에서 탈탈 ‘털릴’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관리하고 있어요.

    포토그래퍼
    채대한
    스타일리스트
    김민
    헤어
    마준호
    메이크업
    황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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