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종영을 2회 앞두고 있어요. 시작하기 전에 유독 부담감이 많았다면서요?
부담감과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어서 많이 서성였던 것 같아요. 법정물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경험하니까 확실히 어렵더라고요.(웃음) 다 함께 으쌰으쌰해서 만든 결과물을 사랑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석훈(이진욱 분)이 효민과 대화하면서 그러죠. “(변호사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효민처럼 배우란 직업이 적성에 잘 맞나요?
전에는 ‘적성’과 ‘성격’은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제 성격과 부딪치는 면이 있다고 느꼈지만, 그때도 ‘적성에는 너무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최근에 누가 그러시더라고요. “네 성격 아니었으면 지금 일, 적성에 안 맞았을 거고 즐겁지도 않았을 거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맞는 거예요.
‘성격’과 ‘적성’을 한참 고민하던 때가 있었군요?
그런 거 있잖아요. 타고난 성격이 정말 무던하더라도, 사람이 성장하려면 내 안에서 계속 갈등하고 싸워줘야 더 잘하게 되고, 더 성장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계속 나 자신과 부딪쳐야 하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됐어요.
극 중 사건으로 성장하는 효민과도 같네요. 사실 20대는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알아가는 시기죠. 일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고요. 그런 과정에서 생각이 많은 편이죠?
엄청 많아요.(웃음) 생각을 없애려고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생각이 많은 것도 연기할 때는 도움이 되지 않나요?
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작품 초반에 무의식적으로 또 생각에 막 빠져요. 예를 들어 <에스콰이어>를 준비할 때는 ‘그런데 효민이는 왜 이러는 걸까?’ ‘효민이는 이럴 때 무슨 생각인 걸까?’ 하게 되고요. 확실히 배우로서의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생각이 많은 나 자신도 더 예뻐해줄 수 있겠어요.
맞아요. 나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호기심과 물음표는 다 좋다. 다 좋은데 어느 순간 생각의 골이 너무 깊어지고 그 화살이 ‘나’를 향하면, 그건 저는 “놉!” 하거든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특히 나에 관한 생각은요. 나에 대한 관찰이나 이런 건 좋은데, 점점 파고들면 어느 순간 ‘나는 왜 이럴까?’까지 가버리잖아요. 그래서 거기까지는 가지 않게요.
이번 작품에선 어떤 생각에 빠져들곤 했어요?
어느 순간 효민이가 되었나 봐요. 에피소드도 거의 순서대로 찍다 보니 효민이의 삶을 진심으로 경험한 것 같아요. ‘오늘은 또 무슨 회의지?’ 생각하게 되고, 회사 생활하는 직장인처럼 쉴 때는 소파나 침대에 가만히 있고 싶고. ‘가만히 있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깨닫고요. 촬영 중간에 쓴 일기에는 제가 그렇게 썼더라고요. “오늘도 의뢰인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들어주고 변호하자.”
하하, 일기를 매일 써요?
딱 떠오르는 게 있을 때나 뭔가 정리하고 싶을 때 이렇게 적을 때가 있어요. 많이 안 쓰고 길어야 다섯 줄이거든요. 일기를 쓸 때는 무조건 아침에 써요. 커피 마시면서.
자고 일어난 후에도 남아 있는 생각이 진짜다?
밤에 쓰면 너무 센티멘털해지는 느낌? 무조건 아침. 머리가 좀 더 정리되어 있을 때. 되게 좋아요! 고민이 길게 갈 때는 ‘몇 주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이랬던 것 같다’ 하면서 적어요. 한 달에 한 번도 안 쓸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많이 썼어요. 작품을 하면서 아침마다 일기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나중에 보니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꾸준히 그렇게 써보려고 해요.
지금 앞에 펴놓은 수첩에 빼곡히 적어둔 글은 무엇을 적은 거예요?
아, 이건 오늘 인터뷰를 위해 써온 건데…. <에스콰이어> 안에 좋은 대사가 많아서 정리해뒀어요. 회차마다 저만의 명대사를 적었어요. 저는 직접 쓰는 걸 좋아해서.
그중 밑줄 친 것, 보라색 형관펜으로 칠한 건 어떤 의미예요?
밑줄 친 건 윤석훈 변호사님이 저한테 가르쳐준 대사고 제가 좋아하는 대사는 보라색으로 칠하고. 하하. 그냥 보려고 약간 정리한 정도인데요. 왜냐하면 사실 제가 좀 전에 성격 얘기를 한 게, 사람들이 많거나 저한테 너무 집중되면 소심해지고 얼굴이 빨개지곤 해서요. 인터뷰를 잘하고 싶어서 준비했어요.
큰 무대에 숱하게 오른 아이오아이 정채연이!
하하, 그때는 안 그랬거든요. 확실히 무대라는 곳은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줘요. 그런데 제작 발표회 같은 건 너무 떨려요. 우리가 지금까지 몇 개월 동안 찍어놓은 결과물인데, 이걸 처음 보시는 분들은 어떨까 하는 떨림에 ‘어버버’할 때도 있어요.
다른 인터뷰를 보니 작가는 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게 효민의 대사 “사랑도 심신미약 주장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하더군요. 이런 게 효민이의 다름을 보여주잖아요.
작가님도 좋아하시는 대사인 줄은 몰랐어요. 효민이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그래서 부담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하겠습니다. 이건 해야 합니다.” 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산을 넘을 때 성장하게 되죠?
확실히 느꼈어요. 어려운 걸 해야 배우는 게 더 있구나. 끝났을 때 또 다른 산을 한번 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내레이션도 해야 하고, 독백도 해야 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회의실에서 ‘율림즈’를 만나면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그렇게 반가운 거예요. 혼자 하는 게 어느 순간 외로웠나 봐요, 이제 또 다른 산이 오겠죠. ‘산 넘어 산’이니까요.(웃음)
‘율림즈’가 실제로도 힘이 됐군요?
이진욱 선배님도 저를 위해 많이 노력해주셨더라고요. 제가 촬영할 때 젤리를 자주 먹는 편인데, 같이 젤리 되게 잘 드셨거든요. 그런데 젤리 안 좋아하신대요. “그건 다 채연이에게 다가가기 위한 나의 연기였을 뿐이다”라고요. 어제 알았어요.
극 중에서 효민은 석훈에게 그러죠. “손전등 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채연 씨에게도 그렇게 빛처럼 다가와주는 사람이 있었나요?
고민이 많고 힘들 때 회사분들과 대화하면 그 부분이 환기될 때가 있어요. 이 대사잖아요.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걷는 기분이었는데 손전등 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조금 심각할 정도로 저는 다른 의견 듣는 걸 좋아해요. 어느 순간 제가 잘못된 걸 혼자 고집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고 계속 열린 채 살고 싶어요.
그래도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건데, 결정한 다음에는 어때요?
뒤도 안 돌아봐요. 그래서 더 결정이 어려워요.
2015년에 첫 작품이 공개되고 계속 배우로 만나고 있고 어느새 작품 수도 많아졌어요. ‘퀀텀 점프’라고 하잖아요. 언제 스스로 크게 성장한 것 같아요?
<조립식 가족>. 그때 제가 배우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예전에도 무대에서 내려와서 공허한 적은 없었어요. 하루에 연기도 했다가 갑자기 녹음하러 갔다가 무대도 섰다가 하는 식으로 여러 스케줄을 하다 보니 또 그렇게 습관화된 저 자신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조립식 가족>을 하게 됐을 때, 그 시점이 딱 지금 회사를 만나는 시기와 겹치면서 이제는 연기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달라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이돌을 할 때는 저를 절제하려고 하는 게 컸어요.
연기에 집중하면서 표현이 많아졌나요?
제가 더 열렸어요.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가게 되고요. 제 안에 변화하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립식 가족>이 끝났을 때 너무 힘든 거예요. 처음으로 못 헤어나오고, 한두 달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런 감정인 거구나. 우린 계속 다 같이 밥을 먹고 식탁에 있어야 하는데, 집에 왔는데 나밖에 없네.(웃음) 일과 삶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제가 나름 정해둔 게 있었는데, 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왜 분리하려고 하느냐고. ‘그러네? 그것도 맞는 말이네’ 했어요.
하하, 생각이 많은데, 또 소통이 아주 잘되네요, 채연 씨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른 거죠.
그렇죠! 그래서 집에 있다가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확실히 열리는 부분이 있어요. 좋은 작품들과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저도 바뀌는 것 같아요.
집에 가장 크게 투자한 건 뭐예요?
저는 무조건 제 반려견 양치. 제 모든 걸 바치고 있어요. 양치한테 말도 많이 걸어요. 오늘도 나오면서 “양치야, 엄마 어때?” 했는데 양치는 쳐다보지도 않고. 아마 마지막 회도 집에서 양치랑 볼 거 같은데. 시원섭섭해요. 그런데 약간 더 섭섭. 몇 개월을 찍었는데 한 달 반 만에 끝나니까 서운한 감정이 큰 것 같아요.
종영 다음 날 아침 일기를 쓴다면 뭐라고 쓸 것 같아요?
끝났다.(웃음) 저는 ‘인간은 참 간사하다. 쉴 때는 일하고 싶더니, 일할 때는 쉬고 싶고 인간은 참 간사하다.’ 이런 식으로 일기 첫 문장을 쓰거든요. “끝났다. 이제 뭐 하지?” 생각이 정리되면 써 내려가겠죠. 나중에요.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포토그래퍼
- 황병문
-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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