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여행러’의 한식 맛집 좌표

먹을 게 넘쳐나는 여행지라도 때로는 영혼을 울릴 한식이 필요하다. ‘프로 여행러’의 지도를 탈탈 털어 한식을 보기 힘든 도시에서 진짜 한식 맛집을 찾았다. 

미국 하와이
아일랜드 빈티지 와인 바|ISLAND VINTAGE WINE BAR

로열 하와이언 센터에 위치한 아일랜드 빈티지 카페는 아사이볼과 코나 커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하와이 로컬은 안쪽에 있는 아일랜드 빈티지 와인 바를 더 즐겨 찾고, 나도 셀렙과 촬영할 때마다 열 몇 명을 이끌고 이곳에서 멋진 시간을 보냈다. 훌륭한 와인과 하와이만의 무드가 가득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곳은 엄밀히 말해 ‘한식집’은 아니지만, 여러 메뉴에서 우리의 정신이 느껴진다. 특히 김치볶음밥은, 이건 해외 셰프가 흉내낸 수준이 아닌 한국의 집밥 그 자체! 다른 메뉴를 제쳐놓고 모두가 한입 한입 김치볶음밥을 탐했다. 한국계 오너가 운영하기 때문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역시,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 포케도, 스테이크도 좋지만 이곳의 김치볶음밥은 꼭 먹어야 하와이 여행이 끝난다. – 허윤선(에디터) 

이탈리아 밀라노
미가|MIGA

해외에서 이렇게 자주 한식을 먹어본 일이 있던가. 촬영팀 전원의 선택으로 이곳에서 저녁을 2번이나 해결했다. 당시 출장 일정이 4박 5일이었으니, 꽤 자주 들른 셈이다. 이탈리아로 이민 온 부모님 덕에 밀라노에서 나고 자란 드라이버 청년에게 추천받은 미가의 시그너처 메뉴는 돌솥비빔밥이다. 야채, 소고기 김치 볶음, 제육, 불고기 중 토핑은 선택할 수 있는데, 한 그릇을 싹 비울 때까지 완벽한 간을 자랑한다. 인원이 많다 보니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었는데, 압도적 찬사를 받은 건 두부김치와 삼겹살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감칠맛의 볶음 김치는 한 입 먹는 순간 입맛이 살아나고 삼겹살은 직접 구워 깔끔하게 나온다. 상추, 쌈장, 마늘과 고추까지 함께 제공돼 한 쌈 가득 싸 먹을 수 있다. – 김정현(에디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산마루|SANMARU

프로젝트 단위로 근무지가 정해지는 터라 한번 출장을 떠나면 짧게는 3주, 길게는 몇 달을 그 도시에 머문다. 유독 독일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던 내게 산마루는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해외에 있는 한식당은 유독 편차가 큰 터라 지인의 추천에 의존하는 편인데, 이곳은 인터넷 검색 후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처음 방문했다. 그 걱정이 기우였음을 푸짐하게 나온 반찬 한 입을 먹고 알았다. 각종 찌개와 볶음 등 메뉴 구성이 다양하고, 시기에 따라 방어, 광어, 농어 등의 회도 판다. 모든 메뉴가 평균 이상의 실력을 자랑하지만, 얼큰하고 칼칼한 찌개류를 추천한다. 돌솥에서 보글보글 끓여 나오는 뜨거움과 위장 깊은 곳까지 얼얼해지는 진정한 한국의 맛이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으니 지도를 믿고 잘 따라갈 것. – 이혜지(기업 컨설턴트)

스페인 세비야
단밤|DANBAM

‘단밤’에 발을 들이는 순간, 지금 이곳이 서울은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한때 유행한 네온사인 인테리어, ‘Hola!’라고 던진 우렁찬 인사가 무색할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서버는 한국 그 자체다. 단밤의 음식은 전형적인 한식을 떠올리면 실망할 수 있지만, 매운 음식과 찌개류를 즐기지 않는 내게는 완벽했다. 메뉴에는 로제 떡볶이와 짜파게티, 콘치즈, 떡꼬치, 치킨마요덮밥 같은 분식류가 주를 이룬다. 특히 자극적인 스페인 음식을 먹어도 도저히 채울 수 없던 매콤달콤함을 채우는 김치볶음밥은 꼭 맛봐야 한다. 한때 김치볶음밥으로 열렬한 사랑을 받은 술집 ‘코다차야’의 풍미가 생각나는 익숙하고 그리웠던 바로 그 맛이다. – 김지현(에디터)

인도네시아 발리
서울 소울 프로젝트|SEOUL SOUL PROJECT

발리에서 만난 한국인이 입을 모아 극찬한 곳. 구글 평점 역시 4.9로 만점(5.0)에 가깝다. 힙스터가 몸을 신나게 흔들고 있을 것만 같은 외관과 음악 아래 정갈한 한식이 있다. 밥과 반찬 5~6종을 기본으로 메뉴에 따라 쌈 채소와 사이드 메뉴가 한 상 차림으로 서브된다. 화려한 비주얼에 밀키트 수준의 맛을 걱정했지만, 메뉴 하나하나 웬만한 한식당 뺨치는 맛이다. 특히 ‘가마솥 비빔밥’이라는 이름의 돌솥비빔밥은 발리에 머무는 한 달 동안 가장 즐겨 먹은 음식 중 하나로, 나물의 간이 완벽하다. 아침 8시부터 영업을 시작해 이른 아침을 해결하기도 좋다. – 이현주(뷰티 마케터)

체코 프라하
프라하 맛집|PRAHA MATZIP

내 몸에 한식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체코에서 깨달았다. 초·중·고를 중국에서 보내고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나는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한식당을 찾은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체코를 여행하는 내내 속이 안 좋았고, 밀가루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쌀’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한식당을 검색했다. 제육덮밥, 갈비덮밥, 족발, 막창, 양념치킨, 탕수육 등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한식 중 나는 자극이 가장 덜할 것 같은 된장찌개를 골랐고,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여행 내내 골골대던 몸은 된장의 맛에 감쪽같이 회복됐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전반적으로 간이 세지 않고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양 자체는 매우 푸짐하다. 매장도 넓고, 지하 공간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니 여럿이 가도 걱정 없다. – 조채연(어시스턴트)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푸쿠마마|FUKU MAMA

물가 높기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 외식은 사치다. 즉석밥, 조미김, 라면, 볶음김치, 참치 캔 같은 간편식을 캐리어 한가득 채웠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마트로 향했다. 한국보다 질긴 고기와 느끼한 즉석식품에 지쳐 외식을 결심한 날 발견한 푸쿠마마는 구세주 같았다. 불고기, 김치찌개, 돼지고기볶음, 비빔밥 등 없는 게 없는 한식당! 맛은 현지 스타일에 맞게 변형한, 한식보다는 아시안에 가까운 맛이 났지만, 돼지불백처럼 밥과 파무침, 숙주 볶음 같은 반찬, 메인 요리가 함께 나오는 비주얼은 합격. 달달하고 짭짤한 불고기를 김치와 볶아 우동 면 위에 김과 함께 고명처럼 얹은 불고기 국수도 별미다. 메뉴 2개에 5만원 가까이 지출했지만, 여행자의 향수를 달래느라 전혀 아깝지 않았다. – 이재윤(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
    노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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