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을 향한 <얼루어>의 고민은 2024년에도 계속된다. 기후, 생명, 환경 등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필요한 고민과 변화를 예측해봤다. 

수리권 촉진

일상을 편리하게 하는 전자제품에는 일정한 수명이 있다. 수명을 다한 제품은 폐기되고 새로운 장비를 들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명을 다한 건 제품이 아닌 부품이다. 소모성 부품의 보유와 판매 기간을 늘리고 소비자가 스스로 수리할 수 있도록 쉽게 설계한다면 제품은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생활용품 수명만 연장해도 탄소 배출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이런 권리를 촉진하려고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는 제작 과정부터 수리가 가능하고 내구성이 높은 제품을 설계 및 생산해야 한다. 설계와 생산, 구매까지 확장된 가치사슬이 핵심이다. 덩달아 생산 기업의 수리 기술과 부품 독점을 막고 소비자는 수리의 주체와 방식, 업체를 선택할 권리가 생긴다. 프랑스는 2021년부터 모든 가전제품에 수리 가능성 등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영국은 일부 전자기기에 한해 예비 부품을 최장 10년까지 제공하는 것을 법제화했다. 콧대 높은 애플을 비롯해 삼성, 구글 같은 기업도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추세다. 

 

생물다양성 전략 체제

2022년 12월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는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걸 핵심 목표로 삼았다. 더불어 훼손 지역의 30%를 효과적으로 복원하는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론을 제시, 요구한다. 각 국가는 이를 이행할 국가적 생물다양성 전략 목표를 2024년 당사국총회 전에 수립해야 한다. 현재 전국 훼손 지역 조사를 실시하고 복원 우선순위를 수립하고 있지만, 육상보호지역은 지금의 2배, 해양보호지역은 14배 이상 늘려야 30%에 도달할 수 있다. 끊임없는 훼손에 경각심을 갖게 되는 가운데 국제적 요구를 실효성 있게 이행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린워싱 탐구

전 세계 여러 기업이 그린워싱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친환경을 표방하려면 감축한 탄소 배출량 또는 자원 소비량, 기업의 주 수익원이 친환경적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해야 하는 규제가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모호한 태도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셸과 루프트한자, H&M 같은 기업 광고가 금지된 사례도 있다. 실체가 없는 친환경 마케팅은 소비자 기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몰고 오기에 그린워싱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소비자는 더 예리하고 적극적으로 기업의 거짓말을 파헤친다. 안티(Anti) 그린워싱의 흐름에 기업은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자체 점검에 나서고 침묵하는 그린허싱(Greenhushing)에 나서기도 한다. 건강한 친환경 마케팅을 위한 ESG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인재 육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

플라스틱 사용의 심각성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유엔환경계획(UNEP)는 정부 간 협상 위원회를 소집해 대안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들이 논의 중인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2022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24년 완성을 목표로 한다. 이 협약은 협약 당사국에 협약 이행과 목표 달성을 위한 국가 계획을 개발하고 시행할 의무를 부여한다. 협약문에는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생애 주기에 걸친 플라스틱 오염 관련 의무 사항이 담길 예정이다. 이 협약의 마지막 회의가 2024년 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는 곧 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줄일 기회가 된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금쪽 같은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며 탄소 중립이라는 국제적 소명을 거스르는 상황에서 어떤 실천법이 마련될지 지켜볼 일이다. 

 

잠금해제 캠페인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는 2020년 잠금해제 캠페인을 진행했다. 수족관, 쇼에 착취되는 해양생물을 구원하는 프로젝트로, 이후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이들은 고래축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첫 번째 신호탄은 울산에서 열리는 고래 축제다. 불법 어업과 의도적 포획을 유발하는 고래 고기의 대목이자 시끄러운 음악과 밝은 조명 아래에서 쇼를 해야 하는 돌고래의 착취가 극심한 이 축제를 서동욱 울산 남구청장은 생태관광축제로 육성하겠다고 한다. ‘생태’의 반대되는 지점만 가득한 현장을 바꾸는 것부터 시도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의 활약 촉구

2년 전 발표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 30.2%였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목표치가 2023년 21.6%로 대폭 축소됐다. 이에 따라 보조금과 같았던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도는 후퇴했고, 소규모 태양광발전 지원 제도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한국 정부는 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결의에 동참하기로 했지만, 현재 행보를 보면 미국과 유럽연합 등 주요국의 입김에 떠밀린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의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비중은 5.35%로 유럽, 미국과도 차이가 크고 일본, 중국, 베트남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언제까지 거스를 수 있을까? 

 

맛있는 비거니즘

육식은 동물권뿐 아니라 기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행동하고자 한다. 인식에 따른 행동이 확산하며 점점 맛있는 비건 제품과 비건 레스토랑이 늘어나는 추세다. 풀무원 지구식단은 이효리를 모델로 기용하며 홍보에 박차를 가한다. 무려 39년 만에 첫 유명인 모델이다. CJ제일제당 역시 식물성 식품 브랜드 플랜테이블의 라인업을 확장했고, ‘베러미트’로 대안육의 신호탄을 쏜 신세계푸드는 대안식 브랜드 ‘유아왓유잇’을 론칭해 비건식 라자냐, 김치덮밥, 볼로네제를 판매한다. 국내에 굵직한 식품 유통 브랜드가 비건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비건 식탁이 일회성 경험이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안착하는 건 시간문제다. 

 

30×30 캠페인

해양생태계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은 기후위기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에도 영향을 끼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형 선박과 그물로 바다를 싹쓸이하는 상업 어업으로 바다는 말 그대로 텅텅 비어가고 있다. 그리고 남획의 중심에는 우리나라가 있다. 국내 원양어업의 대표 격인 참치 어업은 170km에 이르는 대규모 그물을 사용해 해양생태계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조업해 오랫동안 비난받았다. 한국이 남극에서 주도하는 크릴 어업도 마찬가지다. 무자비한 개발과 어업 행위로 고갈되는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해역이라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해양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그린피스는 2019년부터 30×30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 바다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현재 80여 개국이 30×30 캠페인을 지지한다. 그럼에도 높은 수준으로 보호받는 해양보호구역은 전 세계 해양의 3% 미만이다. 유엔 역시 해양생태계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해양생물다양성보전(BBNJ) 협정문을 채택하고, 60개국 이상이 서명하면 2024년 9월부터 정식 발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