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현정 세프가 그리는 웰니스 라이프

2026.06.12ALLURE, 이마루(프리랜스 에디터)

농장에서 식탁으로. 그 말을 가장 묵묵하게 실천하는 셰프 엄현정은 오늘도 밭으로 나간다. 

소중하게 모아온 씨앗 봉투를 들고 환하게 웃는 엄현정.
프란로칼 영업은 종료했지만, 수확한 채소는 마을 공유 주방에서 씻은 뒤 보관해둔다. 래디시와 치커리, 원추리.
청서리태, 시금치, 고수 등의 소중한 씨앗들. 농부의 어머니께 물려받은 완두콩 씨앗은 특히 각별하다.

20대 끝자락,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엄현정은 ‘팜투테이블(Farm-to-Table)’ 운동의 선구자 셰프 댄 바버(Dan Barber)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요식업의 매력에 빠졌다. 본업이던 인테리어 디자인을 그만두고 뉴욕 맨해튼에서 스웨덴 요리를 선보이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아쿠아빗’ 등에서 근무했다. 한국에 돌아와 홍대 부근에서 ‘22 소더맘’을 운영하며 여성 오너 셰프 대열에 합류했고, 2016년 양평으로 본격 이주해 ‘팜투테이블’ 철학을 펼칠 수 있는 ‘프란로칼’을 차렸다. 스웨덴어로 ‘지역으로부터(Fran Lokal)’라는 의미를 가진 레스토랑은 2025년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지만, 지역 농민과 견고하게 쌓은 신뢰 속에서 그의 요리는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뉴욕에서 서울로, 그리고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요리와 농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양평에 오게 됐나요?
연고가 있는 건 아니에요. 꿈이었던 ‘팜투테이블’ 철학을 실천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서울을 벗어나야겠다는 확신이 있었죠. 마침 몸도 아팠어요. 홍대에서 사랑받은 첫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와중에, F&B 회사와 연이 닿아 컨설팅을 돕다가 급성 폐렴이 와서 중환자실까지 다녀왔거든요. 어디로 가면 좋을지 지역을 고민하던 사이 문득 레스토랑을 하루 쉴 때면 종종 찾던 양평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양평에서 맛있는 밥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더라고요.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잖아요. 망하거나, 흥하거나. 양평 정도면 서울의 단골 분들도 오실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두 번째 레스토랑 ‘프란로칼’을 열었습니다. 더 먼 곳으로 갔다면 타지에서 파인 다이닝을 10년 가까이 운영하는, 이만큼의 성과를 낼 수는 없었을 거예요.

‘프란로칼’은 2025년 6월을 기점으로 한 챕터를 마무리했지만, SNS를 통해 앞으로도 양평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각오를 밝혔죠. 양평의 어떤 매력에 빠졌나요?
사실 처음부터 제가 농사를 직접 지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아니, 제가 농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한 것 같아요. 토마스 켈러 셰프처럼 좋은 생산자를 발굴해 식당과 연결하는 역할을 하려고 했죠.  그러다가 2017년, 양평 부용리에서 농사짓는 김현숙 농부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농사에 재미를 느꼈어요. 저보다 한발 앞서 어머님과 양평으로 귀농한 분인데,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분과 저, 몇몇을 중심으로 농사를 전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느슨한 농사 공동체 ‘팀 화요’가 생기면서 삶이 조금씩 바뀌었죠. 물론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농사짓는 분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쉬는 날이면 구워놓은 머핀 같은 먹거리를 챙겨서 직원들과 동네를 무작정 돌아다녔을 정도였죠. 요리사처럼 보이려고 셰프 유니폼을 입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어르신들은 저희를 흰 가운 입은 의사인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와중에 전 여자니까 간호사라고 생각하시고요.(웃음) 

지금은 마을 주민과 얼만큼 가까이 연결됐나요?
양평군이 생각보다 원주민의 수가 적어요. 자연이 워낙 아름답고 서울과 멀지 않다 보니 세컨드 하우스가 있는 사람도 많고, 다른 시골보다는 이방인에게 조금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할아버지들은 좀 세상을 빨리 떠나시다 보니 여성 인구가 많거든요. 그분들이 제가 지역에 흡수되게 많이 도와주셨어요. “너 그 누구 농부 만나봐”라는 소개도 해주시고. 그럼 할머니들이 인증해주셨으니까 전 바로 통과죠.(웃음) 양평이 막걸리가 유명하잖아요. 얼마 전에는 토종 쌀로 막걸리 양조하는 분에게서 술지게미 150kg을 받아 밭에 거름으로 줬어요. 작물에는 너무 좋은 양분인데 이분께는 음식물 쓰레기와 다름없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자꾸 서로 연결돼요. 지역 주민 분들이 좀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요.

한치 타르타르와 봄나물 퓌레. 제철 나물을 고르게 넣어 색을 낸 봄나물 퓌레에 살짝 구운 한치를 타르타르처럼 만들었다. 가자미식해 양념을 크림치즈와 섞어 색감을 더했다. 누룩 발효 애호박과 감자뇨끼. 늦봄 수확한 감자로 만든 뇨끼를 고사리와 넓은 파스타 면처럼 자른 봄호박과 같이 올렸다. 샛노란 퓌레는 당근으로 색을 낸 것.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이 많은 밭일의 필수품인 엉덩이 방석.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고 처음으로 봄, 여름 계절을 맞이하고 있죠.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재작년에는 8종의 토종쌀, 작년에는 5종을 심었고, 올해는 처음으로 밀 농사에 도전했어요. 쌀과 밀은 저 혼자 하는 건 아니고 공동 작업이죠. 동료들이 있고 저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기 때문에 농사가 재미로 다가오는 요소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감자는 세 종류를 심었어요. 홍산마늘은 항상 심고 다음 주에는 생강을 심을 거고요. 저기 보이는 파는 토종 파라 이렇게 통통해요. 아이스크림이나 페스토를 만들 때 쓰는 캐머마일을 비롯해 허브와 샐러드에 들어가는 자잘한 잎채소는 웬만한 건 다 있죠. 

어떤 재료가 그중 가장 애정이 가나요?
1년 농사인 쌀은 당연히 기대와 애정이 크죠. 그리고 뿌리식물! 잎채소는 어떻게 크는지가 눈에 보이는데, 뿌리채소는 잘 안 보이니까 더 궁금하고 재밌어요. 워낙 좋아하는 식재료이기도 하고요. 한 작물을 쭉 키우면 쉽기야 하겠지만,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작물 대부분을 직접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 마음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농사를 직접 지으며 또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나요?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졌어요. 서울에서 식당을 하면 도매업체가 아침에 배송을 해줘요. 참 편리하죠. 그런데 내가 고르지 않은 물건이잖아요. 기대했던 수준이 아닌 거예요. 그때도 결국 장을 직접 보러 다녔어요. 지금은 해마다 비슷한 작물을 키우다 보니 특징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며 언제 제일 맛있을지, 그 순간이 정말 눈에 보여요. 후숙을 하며 유통되는 재료와 따자마자 먹는 것의 맛 차이를 알게 되면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요. 가장 맛있는 순간, 정말 다 익어서 막 터지기 직전에 내가 재료로 취할 수 있다는 게 ‘팜투테이블’의 가장 큰 장점이죠. 저희 손님 중에도 “이런 채소의 맛을 나는 왜 평생 몰랐을까요”라는 분들이 많았어요. 프란로칼 막바지에는 일주일에 나흘만 레스토랑을 열고 사흘은 농사를 지었어요. 누군가는 저 보고 반 농부 반 요리사라며, ‘반농반요’라고 하더라고요. 맘에 드는 별명이에요.(웃음)

2010년대 전후 한국에서도 ‘팜투테이블’이 유행했죠. 미식에 대한 관심은 돌아왔지만, 원재료에 대한 관심은 낮아진 것 같아요.
식재료는 많이 팔리는 게 우선인데 경제가 안 좋으면 그것부터 고꾸라지더라고요. 사실 저도 ‘팜투테이블’을 택하는 레스토랑이 늘어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팜투테이블’ 하면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거리도 중요하고, 내가 그 생산과정에 참여하거나 적어도 생산과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허브 모종을 키우거나 산지 직거래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 용어를 사용하죠. 물론 그 또한 노력이지만 제 기준에는 부족해요. 저는 진정성이 없는 건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게 양평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뉴욕에서 ‘팜투테이블’ 운동의 선구자 댄 바버와 만난 경험을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순간으로 꼽은 적도 있습니다. 진로를 바꿀 정도였죠.
맞아요. 한국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가 유학을 갔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미 레스토랑 인테리어 경험이 많은 제가 배우기에는 수업이 맞지 않았어요. 그럼 차라리 이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보자고 해서 추천받았던 타 수업 중에 요리 학교도 있었어요. 등록하러 간 날, 안내를 돕던 직원이 ‘오늘 요리 시연이 있는데 너도 보고 가라. 정말 유명한 셰프다’라고 권유했는데, 그 시연자가 바로 댄 바버였죠. 눈앞의 식재료가 요리로 둔갑하는 걸 보면서 바로 요리 코스를 등록했습니다. 

서울보다 더 치열한 대도시인 뉴욕에서 외국인이자 비전공자로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남보다 훨씬 늦은 스물아홉 살에 요리를 시작하다 보니 하루라도 빨리 ‘나를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열흘 넘게 연속 일하고 하루를 쉬었죠. 하지만 내가 요리사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순간이 마냥 행복했어요. 다만 그때도 이런 대도시에서의 삶을 평생 이어가는 건 저랑 맞지 않음을 알았던 것 같아요. 

지금 방향이 맞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 같나요?
확신은 없어요. 다만 지금 제가 즐겁다면 이걸 계속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왕 시작한 것, 체력이 허락하는 한 좀 더 하고 싶고요. 농사를 짓는 건 분명 힘들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요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도시에서는 사람이 비 오듯 땀 흘릴 일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여름에 밭일을 하면 진짜 티셔츠가 금방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나요. 거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분명 있거든요. 동물적 관점에서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하는 건 필요하구나, 내가 도시에 있었다면 이런 감정은 평생 몰랐겠구나’ 싶어요. 좋아하는 길을 찾고 만들어온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해요. 운도 좋았죠.  

주민들도 엄현정이라는 셰프를 통해 배우겠죠. 그런 상호작용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는데, 김현숙 농부님으로부터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요리사와 생산자의 관계가 돈독해야 한다며, 여러 인터뷰에서도 농부님 얘기를 곧잘 했는데 처음에는 그걸 이해 못하셨거든요. ‘요리한 건 셰프님인데 왜 자꾸 저한테 공을 돌리느냐’고 하시면, 저는 ‘아니다, 이렇게 키운 농작물이 있으니까 제가 요리를 할 수 있는 거다’라고 했거든요. 누군가에게 ‘농부님’이라고 불리며,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고, 더 일을 즐기시게 된 거죠. 저는 재미로 텃밭을 가꾸든, 잠깐 일하고 새참을 얻어먹든, 농부의 직업이 우리에게 더 소중하게 다가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달 마을장에는 카모마일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가요. 달콤한 걸 좋아하는 할머니들께 프란로칼 아이스크림은 꽤 인기가 좋아요. 

이 다음 장은 어떻게 펼쳐갈 계획인가요?
바로 옆에 밭이 있는 레스토랑을 만드는 일이죠. 양평은 보호구역과 녹지 지역이 워낙 많다 보니 밭과 레스토랑, 두 조건을 충족할 곳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아요. 밭 옆에 상업 공간 허가가 안 나거든요. 그래도 최대한 찾아보려고 해요. 저는 식당에 온 사람들이 바로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거든요. 내가 방금 먹은 음식이 저곳에서 자랐다는 걸요.  

농사를 망친 적도 있나요?
작년에 완두콩을 ‘대차게’ 망쳤죠.(웃음) 이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을 때 농부님으로부터 전수받은 토종 완두거든요. 그분도 양평의 이웃에게서 전해 받은, 어쩌면 100년도 넘었을 완두라 책임감을 갖고 정말 잘 키웠어요. 그런데 작년에 레스토랑 마무리와 함께 너무 바빠서 수확 시기를 놓친 거예요. 나흘 정도 늦었는데 이미 다 벌레 먹었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채종을 못했어요. 올해 다시 잘 심어야죠. 작물은 사람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부들 이야기가 정말 맞아요. 

앞으로도 부용리에서 무엇을 나누고 싶나요?
협동의 즐거움을 서로 계속 주고받고 싶어요. 주방도 원래는 팀 스포츠잖아요. 그것에 익숙했기에 지금도 농사 동료가 생긴 게 좋아요. 처음에는 작물 얘기만 했다면 시간이 쌓인 지금은 자기 얘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거든요. 

잘 먹는 법은 늘 화두입니다. 그 근간인 나를 위한 한 끼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굳이 거창한 요리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살짝 구운 두부에 몇년 묵은 집간장을 올린다거나 정말 원재료의 맛에 집중하는 간단한 방법부터 시작해보세요. 이왕이면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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