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부추긴 지구온난화는 전례 없던 이상기후를 낳았다. 그리고 이상기후는 자연재해로 이어져 우리가 사랑하는 향료를 빼앗아가고 있다. 

자연재해의 핵, 지구온난화 

“우리는 12만 년 만에 가장 뜨거운 날씨를 겪고 있고,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난 7월 8일, 미국 방송사 WFLA의 수석 기상학자 제프 바라델리가 정치 전문 매체 <더힐>에 기고한 내용이다. 약 12만5000년 전에 고온으로 정점을 찍은 마지막 간빙기 이후, 현재 인류는 가장 뜨거운 날씨를 경험하는 중이다. 주원인은 지속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인간이 계속해서 고온화를 부추겨 지구 온도를 달구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또 다른 극단적 이상기후를 낳는다는 거다. 대기 순환 패턴이 달라져 폭염, 폭우, 허리케인 등 종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여러 지역에 산불, 산사태, 가뭄 같은 자연재해로 이어졌고, 또 한 가지 피할 수 없는 나비효과도 불러일으켰다. 안정적인 자연 생태계와 농업에 뿌리를 둔 뷰티 산업을 한순간에 파괴시킨 것. 특히 온습도와 날씨가 수확량을 좌우하는 천연 향료 생산지가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향수, 그 향료를 앗아가고 있다. 

이상기후와 함께 사라지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그라스 마을은 다양한 꽃 식물의 최대 재배지로 ‘향수의 고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유의 온화한 지중해성기후와 해발 325m 분지의 특징을 살려 재스민, 라벤더, 튜베로즈 같은 플로럴 향수 원료의 꽃을 재배한다. 샤넬 ‘N°5’, 디올 ‘자도르’의 주원료인 센티폴리아 로즈 꽃은 오직 그라스 마을에서만 재배한다. 이곳의 향수 생산량은 전 세계의 10%에 달하며, 인구의 60% 이상이 향수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유럽 전역에 전례 없는 이상기후로 가뭄이 계속되면서 그라스 마을의 꽃 수확량이 극단적으로 감소했다. 재스민의 수확량이 절반 이상 줄었고, 튜베로즈도 거의 자라지 못한 상황. 그라스에서 디올 향수만을 위해 재스민, 튜베로즈, 로즈 꽃 농장을 운영하는 캐롤 비앙칼라나 역시 작년에 비해 40%나 줄어든 튜베로즈로 곤혹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그라스에서 꽃을 재배하는 농부는 꽃에 더 많은 물을, 더 자주 주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물 부족을 고려한 프랑스 정부에서 농부와 주민이 받을 수 있는 물의 양을 제한했고, 결국 꽃은 향료가 되지 못한 채 시들어갔다.

전 세계 바닐라 향료의 80%를 재배하는 마다가스카르도 이상기후로 피해를 입은 건 마찬가지. 가뭄과 강수량 부족, 시속 165km가 넘는 강한 열대성 폭풍이 바닐라 농장을 황량하게 쓸어가면서 생산이 위태로워졌다. 만개하려면 3년이 넘게 걸리는 바닐라 꽃의 30%가 손실됐고, 그 결과 남은 바닐라 향료의 가격은 끝없이 폭등했다. 박하과 잎인 파촐리 원료 재배의 80%를 생산하는 인도네시아 열대 섬 술라웨시도 최근 몇 년간 불규칙한 우기와 건기의 반복으로 파촐리 생존율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밝혔다. 이상기후로 인한 향료계의 또 다른 문제는 갖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원료를 재배했다고 해도 그 품질이 저하된다는 것. 다양한 연구와 논문에서 지구의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꽃이 향기를 덜 발산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원인 알론 크나아니는 꽃이 높은 온도에서 자라면 향을 내뿜는 방향족 화합물을 생산하는 유전적 구성이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의 한 과학자도 “무더위나 건조함 같은 극한 기후 조건이 베르가모트에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 품질 이상을 초래한다”며 명확한 상관관계를 지적했다. 향수 원료의 수확량을 확보해도 기후변화는 향의 품질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향수 자체의 향을 변화시키는 중대 요인인 거다.

합성향료로 해결이 될까요?

이처럼 거스를 수 없는 기후변화로 향료 수급에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신선한 원료가 살아갈 자연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식물이 주는 천연 향료를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몇몇 향수 브랜드는 앞으로의 피해를 예상해 향료를 비축하거나, 이미 천연 향료를 대체할 합성향료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합성향료는 화학물질 사용 등의 여러 환경문제를 떠안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 조향사 역시 이에 회의적 반응을 내비친다. <Scent: A Natural History of Fragrance>의 저자 엘리스 V. 펄스타인은 “꽃은 향수를 만드는 장인 그 자체입니다. 저는 재스민이나 장미 등 천연 원료 안에 자연적으로 향료를 혼합하는 작은 화학 공장이 있다고 표현해요. 사람의 손으로, 인위적 방식으로는 절대 그 일을 해낼 수 없죠. 같은 향이 나지 않을 거예요”라며 실험실에서 핀 꽃은 결코 자연에서 자란 꽃과 필적할 수 없을 거라고 강조한다.

순식간에 사라질 향료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두의 행동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 폐코르크 뚜껑을 사용하는 어비어스, 산림 보전을 위한 녹화 사업을 지원하는 베로니크 가바이 등 지구온난화를 늦추려 노력하는 향수 브랜드를 지지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등 일상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내 취향을 온전히 담은, 소중한 향수가 영원히 같은 향으로 남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