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기. 그 원초적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

방구석 포르노 스타

아기를 낳고 성욕이 수면욕에 밀리는 바람에 자위는커녕 섹스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최근 3년. 그래도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대부분의 생활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위기를 맞을 뻔한(?) 섹스 라이프도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 사실 섹스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이 솟구치던 지난날에는 셀프 또는 뮤추얼 러브를 위한 성인용품이나 코스튬을 검색하거나 탐색할 에너지가 있었지만, 육아라는 격동의 변화로 인해 원래 갖고 있던 바이브레이터마저 서랍 속에 깊숙이 처박아버려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니플 클램프를 선물받았다. 이는 유두 집게로, 진작 시도해보았으나 상상 이상으로 아파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아이템. 대낮에 작업하던 중 밀려오는 충동적 성욕에 낯설어하며 오랜만에 자기 위로의 시간을 갖고자 경건하게 준비물(물티슈, 휴대폰, 베개, 핑거 콘돔 등)을 챙기던 찰나, 서랍 속에서 잠자던 니플 클램프가 떠올랐다. 샤워 후 거울을 보며 정성스레 유두 집게를 장착하는데 이번에는 아릿하게 고통스러우면서도 묘한 쾌감이 들었다. 또 양 ‘꼭쥐쓰’에 집게를 부착하고 거울을 보니 웬걸, 집게와 집게 사이에 장식된 금빛 체인 덕분에 내가 마치 인도의 공주님이 된 듯 꽤 아름다웠고, 체인이 몸에 닿는 차가운 감촉도 야릇하게 느껴졌다. 시각적 자극에 예민한 나로서는 거울 속의 옷 벗은 내가 포르노의 여배우가 된 것처럼 그 자체만으로 이미 평소와는 다른 흥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면 누군가가 젖꼭지를 당기는 듯한 느낌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항상 혼자만의 시간에 클리와 내부 삽입 외의 성감대에 대한 자극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작고 귀여운 아이템이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꼭 어떤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티 팬티나 망사 스타킹을 입고 거울 속의 섹시한 나를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매번 똑같은 루틴의 섹스가 지루하듯, 나를 위한 시간에도 새로운 자극을 탐색한다면 좀 더 야릇하고 기쁜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테니. – 민조킹(일러스트레이터) 

 

내 길은 내가 찾아 

괜한 고백 하나. 나는 자위를 좋아한다. 사춘기에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괜한 헛기침을 하거나 철 지난 유행가를 방음벽 삼아 틀어놓고 허겁지겁 해치워 버릇했다. 자기 위안인지 자기 비하인지 헷갈릴 정도. 하지만 이젠 느긋하고 아늑하게 나 자신을 위하고 느끼며 즐긴다. 주로 하루의 끝, 몸과 마음을 한없이 늘어뜨려도 좋은 깊은 밤이 오면 이런저런 준비물을 갖춘 채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한 방 안에서. 헛기침이나 포르노에 등장하는 모르는 사람의 거친 가짜 신음은 필요 없다. 자위는 일종의 영험한 명상과 같다. 가만히 눈을 감거나 아니면 거울 속 자기 몸을 차분히 살펴도 좋다. 자위의 재미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몸을 만지고 관찰하며 나도 몰랐던 내 몸의 형태와 새로운 성감대를 발견하는 데 있다. 별로라고 깔보던 내 몸의 예쁜 구석을 새롭게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다른 낯선 몸을 만나 체온을 나누고 살냄새를 맡는 섹스를 통해 불안과 외로움을 잠식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섹스보다 재미있는 건 자위다. 쓸데없이 분위기를 잡거나 순간적으로 쪼그라든 근육을 펌핑할 이유도 없으며 지루한 애무를 위해 허튼 시간을 소비하지 않아도 좋다. 자위의 맛을 알수록 혼자서도 완벽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자위는 가장 사려 깊고 정확히 내가 나와 즐기는 섹스다. 부르르 떨리는 사정의 순간, 사정은 단순한 성적 쾌락이라 믿었던 시절도 있기 마련인데, 자위 끝에 만나는 사정에는 그보다 더 다채롭고 복합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다. 자위를 끝낸 후 깨끗하고 따끈한 샤워를 마치고 나면 낮 동안의 거세고 격한 울분, 미움, 질투, 경멸은 연해지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라는 생각 대신, 그런 품위 없고 어리석은 감정이야말로 사정하듯 내다 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다소 대책 없는 낙천적 기분마저 든다. 자위에는 그런 심신 안정 효과마저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확실한 오르가슴의 정점을 찍기에는 섹스보다 자위가 더 낫다. 빠르고 정확히 가려면 괜한 사람 달고 다니지 말고 혼자 가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최지웅(<데이즈드> 디지털&피처 디렉터)

 

창조적 오르가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통한다기보다는 계단 하나를 오르면 딱 한 계단 위에 서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찰랑거렸다. 넘치면 허무하고, 모자라면 애를 써야 하니까 딱 그 절정의 기류에서 찰랑거려야 오는 오르가슴처럼 내 머릿속과 육체를 넘실거리며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 그날도 차 안에서 영화, 음악, 문학, 정치에 대해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떤 촉각의 탐닉 없이 눈이 마주쳤고 뭔가가 시작되었다. 입을 살짝 벌릴 때 나는 혀와 침의 마찰 소리, 조심스레 움직이며 나는 부스럭거리는 옷 소리, 코의 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 아이러니하게도 시각과 촉각은 부재하고 청각에 고밀도로 생긴 긴장감은 몇 분이나 흘렀을까. 어떤 것도 만지지 않고 보지 않은 내 몸에서 팡파르가 터졌다.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다. 눈만 보고 느끼는 오르가슴이라니.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반응이다. 몸이 풀리고 눈물이 글썽이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안아주더라. 그리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얼마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내게 이렇게 신비한 위로를 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날의 경험은 오랫동안 내 안에 있는 여신을 만나기 위해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솔직하고 용감하게 살아온 시간이 옳은 것이었다는 확답이었다. 나를 똑바로 보는 습관은 나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이고, 감히 다다를 수 없는 내 안의 우주를 감싸 안는 경이로운 지점이다. 그 중심에서 자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목소리에 당당하게 집중해온 창의적인 오르가슴 탐험의 시간은 이처럼 아름다운 공동 자위의 순간으로 찾아왔고, 나는 내 안의 여신을 만났다. 남을 통해 나를 보는 시한부적인 행복에 매달려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 끝이 보이지 않게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명징한 방법을 알고 있다. 그 영광스러운 찰랑거림을! – 최인선(아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