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향수병, 재즈…. 와인 소개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단어를 장착한 큐레이션 서비스, 캅셀이 말한다. “뻔한 건 싫어요!”

‘캅셀(Kapsel)’은 리브랜딩과 큐레이션을 통해 와인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지난해 4월, 직업에서 영감을 받은 ‘잡(Job)’ 컬렉션을 시작으로 현대인이 걸리기 쉬운 마음의 병을 주제로 한 신드롬 등 다양한 주제의 컬렉션을 출시했다. 패션 브랜드의 캡 슐 컬렉션을 표방해 비정기적으로 먹고 마시는 일에 유쾌한 물음표를 던진다. 

촬영 내내 유쾌한 분위기가 인상적인다. 캅셀은 어떻게 시작했나?
대환 마케터, 목수, 와인 수입사 직원, 디자이너로 구성된 크루다. 현업이 주는 결핍을 채우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찾던 중 재진을 중심으로 지금의 크루 가 결성되었다.
재진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뭉쳤다.(웃음) 대환과는 대학 동기, 철민과는 가구 공부를 하며 만났다. 초기에는 내가 몸담은 업계인 가구나 소품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했 는데,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 그러던 중 고등학교 동창이자 소믈리에 자격증 을 가진 재순이 합류하며 와인으로 방향이 잡혔다. 디자이너로는 대환의 동생인 경환이 합류했고, 최근 들어온 혜진은 클라이언트에서 크루가 됐다. 각자의 능력을 살려 기획 과 콘텐츠 에디팅, 와인 셀렉트와 디자인, 촬영을 담당한다. 

컬렉션 개념으로 와인을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은 어떻게 탄생했나?
재진 패션 브랜드의 트렁크 쇼, 작은 단위로 아이템을 선보이는 캡슐 컬렉션에서 아이 디어를 얻었다. 캅셀(Kapsel)이라는 브랜드명 역시 캡슐(Capsule)이라는 뜻의 독일어 다. 예측할 수 없는 캡슐 컬렉션처럼 우리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리브랜딩한 와인 큐레 이션 서비스를 선보인다. 

‘와인’이라는 콘텐츠의 매력은 무엇인가?
대환 정답이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개인의 감상이 더해지는 감각의 영역이라 명확한 추천과 정보만 있으면 즐기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하면 할수록 큐레이션이라는 우리의 접근 방식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아이템이다.
혜진 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의 순간은 무수히 많다. 이는 곧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 을 뜻한다. 크루가 되기 전 ‘와인을 이렇게 판매할 수도 있다니!’라는 충격으로 캅셀을 염탐하고 있었는데, 다소 폐쇄적인 와인 사업장이나 플랫폼과 결이 다르다는 점이 신선 했다. 와인을 일상의 익숙한 요소와 연결하니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리브랜딩과 큐레이션 과정에서 할수록 욕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나?
경환 디자인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됐다. 기획 당시만 해도 큐레이팅과 콘텐츠에 힘을 실었는데, 점점 디자인적 욕심이 커진다. 우리만의 디자인 문법이 생기고 좋아해주는 분이 생기다 보니 캅셀만의 소통 장치가 되어가는 것 같다.
재진 와인을 중심으로 풀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석의 여 지가 무한하다 보니 다양한 콘텐츠를 녹일 수 있다. 덩달아 협업의 가능성도 무한하다. 사업적인 면에서 공간의 한계로 원하는 만큼의 파이를 가져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어 내부적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실현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대환 한 달에서 한 달 반 주기로 새 컬렉션을 출시한다. 기획 단계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꼽지만, 와인을 먼저 선정하는 경우도 있다. 주제를 정하고 나면 키워드 서너 가 지를 꼽고, 재순이 와인을 옵션별로 정해주면 모여서 와인을 마시고 감상을 나눈다. 이 날의 대화는 전부 녹음해 디자인과 큐레이션 노트에 반영한다. 확정된 디자인과 콘텐츠 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뒤 고객이 주문하는 만큼 매입해 보내주는 사이클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컬렉션은 무엇인가?
경환 ‘678’컬렉션이 각별하다. 6월, 7월, 8월을 주제로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든 컬렉션이다. 디자인하는 입장에서 키워드가 모호해 애를 먹었지만, 가장 뿌듯한 피드백 을 얻은 컬렉션이었다.
대환 직업을 주제로 한 ‘잡(Job)’ 컬렉션. 실제 우리의 직업에서 파생된 작업인 만큼 가 장 캅셀다운 와인을 골랐다고 생각한다. 첫 프로젝트라서 정도 많이 들었고.
철민 나 역시 ‘678’컬렉션! 세 번째 컬렉션인 만큼 그간의 시행착오가 쌓여 높은 완성 도를 낼 수 있었다. 라벨 디자인도 취향을 저격했고 콘셉트와 디자인, 큐레이션 노트 등 모든 콘텐츠의 균형이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혜진 ‘굿바이 굴(Goodbye Guul)’ 컬렉션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캅셀 크루가 될 수 있 는 인연의 시작이었으니까. 사이드 프로젝트로 운영하던 을지로 와인 바 굴(Guul)의 영 업 종료를 결정하며 캅셀에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서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고 캅 셀의 가능성을 몸소 경험했다. 

소비자에게 캅셀 같은 와인 큐레이션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재진 매거진의 존재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시선, 질문의 힘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AI(인공지능), 알고리즘처럼 뭐든지 자동화되는 시대에 생각의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던져야 세상은 발전할 수 있으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시선은 엄선한 질문을 통해 정보 를 선별하고 큐레이션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재순 누구나 즐기는 편안한 와인 문화의 안착을 꿈꾼다. 와인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적당히 즐기기도 한다. 그러려면 누구나 와인을 편하게 경 험할 기회가 필요하다. 그 놀이의 기회를 큐레이션을 통해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3년 캅셀이 계획하는 일은 무엇인가?
재진 한 달에 한 병의 와인을 소개하는 컬렉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숫자 큐레이션이라 는 이름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월 단위의 와인이 고정적으로 출시된다. 사이사이 진행 될 컬렉션 역시 기대해도 좋다. 더불어 와인을 기반으로 우리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장 르를 확장하고자 한다. 우리만의 언어로 새로운 시선에 대한 탐구를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