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내게 웃음을 주는 사람. 때론 즐거움에 웃음 짓는 나날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스웨이드 재킷은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도트 패턴 셔츠는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비즈 장식 크라운은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목걸이는 구찌(Gucci). 이너로 입은 빈티지 프린팅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재킷은 존 로렌스 설리번(John Lawrence Sullivan). 팬츠는 아미(Ami). 셔츠와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 <육사오>에, 드라마 <가우스전자>까지 요즘 큰 웃음을 주는 사람이죠.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고요.
하하하. 웃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좋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거 같아요.

실제로도 사람을 웃기는 걸 좋아해요?
작품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사람들을 웃기는 데 욕심이 있어요. 항상 선배들이 ‘코미디가 제일 어렵다’ ‘연기의 끝은 코미디다’라고 말씀하셨죠. 작품에서 코미디적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 신을 만날 때마다 이래서 그런 얘기를 하신 거구나 해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코드에 들어맞도록 조준해서 웃음을 저격한다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대신 이뤄냈을 때의 성취감도 크고요.

웃음을 주려다 실패하면 어색함을 제일 빨리 알아차리는 게 대중이잖아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웃길 수 있어요?
지금도 그걸 알아가는 중이에요. 그나마 얄팍하게 파악한 코미디의 특성이라면, 몇 가지 규칙이 있는 거 같아요. 변칙성이라든지, 반복성이라든지 조금이나마 타율을 높일 수 있는 코미디의 규칙 같은 걸 작업하면서 감독님이나 선배님에게 어깨너머로 체득하고 있어요.

<빅마우스>에서는 진지한 역할이었는데, 바로 다시 코미디로 돌아갔죠, 이건 코믹 연기에 애정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육사오>가 있고, <괴이>라는 작품에, <가우스전자>를 하고 있으니까 퐁당퐁당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우스전자>는 놓치면 후회하겠다 싶은 작품이었고요. 저는 가려고 하는 방향이 명확한 걸 좋아하거든요. 작품으로서도 그렇고요. <가우스전자>는 명확하기 그지없거든요. 이건 코미디다!

원작인 웹툰을 어떻게 각색할지 궁금했는데, 정말 코미디더군요. 맘에 들어요?
툭 까놓고, 멋 안 부리고. 그냥 ‘우리는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하는 게 쿨하더라고요. 코미디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도 맞고, 나는 다른 거 또 할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 자신감? 같은 것도 있어서 그냥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했어요.

패기가 좋으네요. 코믹도 결이 많은데 어떤 웃김을 추구해요?
뭐랄까. 실소를 자아내는 웃음요. 박장대소보다 아니 저게 뭐야? 하면서 느긋하게 웃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피식으로 시작해서 끝은 어디일지 모르는. 큰 범주에서는 병맛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어이없는 웃음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애드리브에도 능하죠? <육사오>나 <빈센조> 등에서 사랑받은 장면 중 애드리브가 꽤 있었다면서요?
생생하게 보이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죠. 그래서 코미디 장르에서 애드리브는 좋은 무기예요. 대신 최대한 이 인물의 특성을 깊고 넓게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아무 거나 할 수는 없으니까요.

미남은 재미없다는 속설이 있는데, 동연 씨는 미남인데 웃기기까지….
하하하!

평생 미남이라는 소리 들었을 텐데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웃네요?
저는 미남이란 절대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그 영역은 넘볼 생각을 안 해요. 미의 끝판왕들이 있잖아요. 원빈 선배님 같은 분들이죠. 절대자는 따로 있다!

그럼 본인 얼굴은요? 얼굴도 목소리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잖아요.
그냥 저는 뭐, 나쁘지는 않다. 때때로 볼만하다. 어릴 때 되게 결핍이 있었어요. 저는 변성기도 제대로 안 겪었어요. 원래 앵앵거리는 목소리였거든요. 제가 본 드라마나 영화의 모든 선배님은 다 묵직한 중저음인 거예요. ‘나는 글렀나?’ 하면서도 아래 음을 뚫으려고 엄청 애썼죠. 그래서 지금도 연기할 때 음역의 폭이 좀 넓어요. 가끔씩 좋다는 말을 들으면 역시 수련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OTT가 있어서 다들 차기작, 차차기작 두고 한다지만, 올해만 드라마 세 편에 영화 한 편인데, 쉴 틈 없이 일하죠?
<가우스전자>는 올해부터 찍었고요. <괴이>는 작년에 찍었어요. OTT가 생기고,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잘 맞으면 작품 촬영을 연달아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어요.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스물다섯, 스물여섯의 곽동연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최대한 다양하게 다 하고 싶다, 너무 많이 소모되지 않는 선에서. 그래서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하려고 노력하고도 있고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한 일주일 정도 쉬면 다시 일하고 싶어요.(웃음)

 

체크 슈트 셋업, 셔츠, 타이, 어깨에 두른 스트랩은 모두 구찌.

스팽글 재킷과 반지는 돌체앤가바나.

10년 동안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말이 좋았어요. 결국은 태도가 중요하다고 믿어요?
그게 제 자부심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되돌아봤을 때 그때 좀 더 열심히 했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면 최악일 거 같아요.

그런데 정말 ‘허투루’라고 했어요? 문어적인 표현인데 책과 뉴스를 좋아해요.
네. 이것저것 읽는 걸 좋아해요. 어디 가면 아는 척하고 싶고요. 하하.

어쩐지 막힘없이 말을 잘하더라고요.
잘하려고 노력해요. 달변가를 보면 멋있어요. 어릴 때부터 좀 동경한 거 같아요. 그런데 불과 2~3년 전에 한 인터뷰를 보면, 제 딴에는 좀 도발적 발언을 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두루뭉술하게 얘기해야되나 싶어요.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유명인은 충분히 많아요. 우선 다 얘기해봐요.
저는 또 웬만하면 필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요. 그런데 저 딱히 거를 거 없지 않나요? 하하! 스스로 하냐, 누가 해주냐의 차이인 거 같은데, 저는 자립심을 키우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다 서로 시간 내서 하는 거니까요.

완벽주의적 면모도 있고, 유연한 면모도 있는 게 재미있어요. 그냥 다 해보자는 느낌?
그렇게 봐주셨다면 정말 감사해요. 제가 지향하는 바라서요. 굳어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거든요. 어릴 적부터 활동하면서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으려고 세워놓은 심지가 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울타리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는 도태되겠다 싶어 유연하게, 유하게 지내야지 하는 마음을 먹은 지 좀 됐거든요.

울타리 안에 있으면 편안하고 안전하잖아요.
그게 제일 위험한 거죠. 특히 연기하는 사람한테는요.

왜 열려 있고 싶어요?
그 안에 있다가 고여서 썩는 줄도 모르는 게 제일 위험한 거 같아요. 주변에서 예쁘다, 좋다 해주니까 진짜 예쁜 줄 알고, 그러다 세상이 내 것 같고, 사고 치고요.

스물다섯 살인데 벌써 썩는 걸 걱정해요?
계속 경계해야 하는 거 같아요. 좀 더 어릴 때는 꾸중도 듣고 혼나기도 했는데 그런 게 점점 줄어들어요, 그게 되게 겁나요. 시선도 편협해지는 거 같고…. 저 자신을 의심하고요. 이게 맞는 건가? 되새겨보는 거예요.

유연함을 만든 게 뭘까 싶었는데, 그런 고민이 있었군요. 어쩐지 트위터 같은 그런 무시무시한 세계에 성큼성큼 들어오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왜 그럴까요? 트위터는 어쨌든 대화가 되는 게 좋아요. 인스타그램은 댓글 형식만 있으니까요. 말장난의 창구로 생각해요.

‘심장곽동’ 같은 거 유쾌하고 재미있죠.
팬카페에서 팬 이름 공모전을 열었어요. 정말 기발한 게 많았어요. 팬분 것을 차용해서 쓴 게 ‘심장곽동’이에요. 아직도 ‘빙산의 일곽’은 좀 아까워요.

하하, 팬들과 결이 맞네요.
결이 맞아요. 박수 소리가 괜히 나는 게 아니라고 저쪽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던져주니까 제가 받아먹죠.(웃음)

항상 동료 남자 배우와 케미가 좋아요. 드라마에서 연애는 안 할 건가요?
해야죠. <가우스전자>에서 좀 할 거고요. 제가 로맨스라는 장르를 연기자로서 이해한 지가 얼마 안 됐어요. 저한테는 어려운 장르였죠. 하지만 삶에서 사랑이라는 카테고리를 뺄 수 없으니까요. 사랑이 주는 희로애락이 너무 크잖아요. 저는 해산물을 안 먹는데, 그건 안 먹고 살아도 사랑을 하지 않고 살라면 너무 큰 손해겠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연애도 예능이 되었죠.
맞아요. <미래일기> 같은 건 좀 놀라워요. 아는 감독님이 한 번은 그러더라고요. 이제 로맨스 자신 없다고요. 다 진짜를 만들어버리는데 우리가 암만 연기 잘하는 배우들, 대본 잘 써서 해도 그걸 어떻게 이기느냐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로맨스 연기를 해야 하는 동연 씨 같은 배우들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건 이야기의 힘밖에 없으니까요. 이미 저기에서 진짜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국은 더 드라마적인 이야기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97년생이고, 스물여섯인데 배우로서는 어떤 나이 같아요?
이게 맞는 비유일지 모르겠는데, 제가 최근에 분재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근데 수형을 잡을 때 철사를 감았다가 몇 달 뒤에 풀어줘야 해요. 그 철사를 풀고 있는 분재 같달까? 이제 슬슬 약간 나를 믿어볼까? 철사를 풀어도 될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시어링 볼레로 재킷은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목걸이는 크롬하츠(Chrome Hearts). 빈티지 프린팅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플러피 재킷, 슬리브리스 니트 톱, 패디드 팬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부츠는 닥터마틴(Dr.Martens).

10년을 허투루 안 했는데, 이제 약간 풀어도 될 거 같다?
풀까, 말까….

사람 곽동연으로는 어떤 나이예요?
저는 이쯤 되면 되게 안정적일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근데 대혼돈 그 자체예요.

또래는 아직 학생인 경우도 있을 텐데, 이미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영화 <육사오>처럼 57억은 아니어도 또래보다 많은 돈을 벌잖아요.
세상살이에 대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게 기쁘면서도 두려운 거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요. 또 모순적으로 지금 내가 일해서 버는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하기도 하고요. 분재도 사고, 분재 약도 사고요. 인간적으로도 내가 어느 정도 성숙했다, 나도 이제 사회인이고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뒤돌아서면 아, 나 아직 애구나 싶기도 하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서술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거 같다가도 몇 글자 쓰다 보면 아닌 거죠. 그런 대혼돈의 시기인 거 같아요.

어릴 적부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맞아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내가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면 이렇게 휘둘리고 다니지 않겠지. 내 주장을 당당하게 얘기하고 인정받고 지내겠지.’ 그런 생각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자기 삶을 꾸리면 어른이죠.
자기가 세금 내기 시작하면 어른인 거 같아요.(웃음) 나이보다 잘한다는 말이 고마우면서도 언제까지 그 나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을 수 있을지 겁도 나고요. 어릴 적부터 그걸 이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가우스전자>의 회사원 이상식으로 사는 삶은 어때요? 이상식은 말 그대로 상식적 인물인데, 그런 사람 마음에 들어요?
상식이를 설명할 때 저는 항상 본인만의 이상과 상식을 가졌다고 하거든요. 상식만 가졌다기에는 스스로 로맨틱하게 구는 부분이 있어서요. 사회에 있으려면 사회화되어야 하는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니까요. 사실 촬영이 딱 5일 남았는데요, 저는 상식이를 통해서 지금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코미디와 상식이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요. 그래서 여한이 없습니다.

원작인 웹툰이 장수 웹툰으로 유명하죠. 장수에 대한 꿈이 있어요?
저는 130세까지 살고 싶어요. 한 60세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세계 유랑을 하고 싶어요.

삶의 목표를 세우는 편인가요?
어떤 물리적 목표보다는 그냥 개인 성찰에 대한 목표를 세워요. 잘 화내는 법 같은 거요.

분재에는 왜 끌린 것 같아요?
거실에 놓고 바라보거든요. 돌보는 맛도 있고 좀 뭐랄까…. 나만의 세계를 가진 거 같은 느낌이랄까? 원래 엄청 커야 하는 나무를 작게 만들어서 두고 볼 수 있는 게 되게 묘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분재는 거의 매일 케어해야 하거든요. 물도 주고, 순 따기도 하고, 분무도 해줘야 하고요. 지금 집에 있는 분재는 두 개고, 산다고 하고 못 가져온 분재가 하나 있어요. 그러니까 총 세 개네요. 다른 화분도 있어서 더 늘리지는 않으려고 해요. 무언가를 매일매일 애정을 갖고 돌본다는 게 정말 좋아요.

문득, 식물을 잘 돌보는 사람이 어른 같기도 하네요.
집에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식물만 돌보면 되니까요. 엊그제 좀 섬뜩하더라고요. 촬영이 좀 일찍 끝나서 집에서 빨래를 했어요. 빗소리 들으면서 음악 틀어놓고 건조기에서 꺼낸 수건을 개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냄새 폴폴 나고, 수건은 아직 따뜻하고. 이러다가 진짜…. 무슨 말인지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