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밀이 많은 곳

집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안식처이지만 누군가에겐 폭력이 대물림되는 장소다. 오래 묵은 비밀이 있고,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며 오랜 아픔이 치유되기도 한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지금처럼 적극적이지 않을 때 집은 때로 여성들이 생각할 수 있는 세계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이전 여성 화가들이 ‘가정화’로 불리는 그림을 그린 것처럼 여성 작가는 집을 배경으로 위험한 상상을 써 내려갔다. 요컨대 가정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사건들, 감정들을 여성 작가만큼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좌절된 꿈과 욕망은 펜끝을 지나 생생한 이야기가 됐다. <제인 에어>의 가장 강렬한 장면은 제인 에어가 아닌 ‘다락방의 미친 여자’였듯이.

영화 팬에게는 <새>의 원작자로, 뮤지컬 팬에게는 <레베카>의 원작자로 유명한 대프니 듀 모리에는 사후 ‘서스펜스의 여제’라는 영광스러운 닉네임이 붙여졌다. 그녀의 장기는 집과 그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낸 서스펜스다. 새롭게 출간된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단편집 <인형>은 작가 초기 작품을 통해 작가의 근간과 이후 작품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열세 편의 작품은 각기 다른 인간의 욕망과 고독, 갈망과 신경증, 공포와 슬픔의 감정을 담고 있다. 그중 ‘해피밸리’는 꿈과 실제를 오가며 <레베카>의 배경인 맨덜리 저택의 모델이 된 매너빌리 저택을 우연히 발견한 작가의 경험을 몽환적으로 담아낸다. A.S.A. 해리슨의 ‘가정 스릴러’인 <조용한 아내>는 최근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비슷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아들러 연구자인 심리학자 조디의 남편은 2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친구 딘의 딸 나타샤와도 관계를 맺는다. 딘의 전화로 나타샤가 임신했으며 두 사람이 결혼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디는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문학의 많은 즐거움이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과 인물에 있듯, <조용한 아내>는 말 그대로 조용하고 서늘하게 인간의 내면을 거울처럼 비추며 자신만의 복수를 실행해나간다. 심리전문가로서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조디의 냉철한 시선은 극을 이끌어가는 큰 힘 중 하나다. 현재 영화화가 진행 중으로, 조디 역에는 니콜 키드먼이 캐스팅됐다.

구병모의 빛

한 손에 잡히는 작은 크기의 ‘작은책’ 시리즈. 함께 선보이는 오디오북은 2시간이면 들을 수 있다. 언제 어느 때도 부담 없이 동시대 작가의 신간을 영혼을 위한 양식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 이번 작가는 <파과>, <아가미>의 작가 구병모다. 작가의 신간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삶 속에서도 구원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엇이 나를 지켜줄까? 라는 말은 다시 무엇으로 스스로를 구원할까? 라는 질문과도 이어진다. 오디오북은 영화배우 서영화가 읽었다. 팟빵, 밀리의 서재,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들을 수 있다.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JEONG JO 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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