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로부터 직장생활을 구하라

그만두자니 사소하고, 계속 다니자니 매일을 괴롭게 만드는 직장 생활의 갖가지 사건사고. <얼루어> 독자가 보낸 S.O.S 요청에 전문가가 응답을 보내왔다.

수다쟁이 직장 동료

함께 일하다 보면 사생활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되죠. 그런데 업무나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문제가 없는 직장동료가 저와 나눈 대화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화제에 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민감한 내용은 아니지만 원치 않는 순간에 제 이야기를 사람들이 알게 되니 신경이 쓰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끄러운 관계를 원할수록 작은 불편함에 대한 고백하기가 필요합니다. 사소한 갈등을 그냥 지나치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게 되기 때문이죠.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를 공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발설하는 것은 분명히 무례한 행위예요. 내가 원치 않는 대화임을 꼭 알려주세요. 눈을 맞추고 ‘~씨’ 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원치 않는 대화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죠. 그렇게 했는데도 못 알아듣는다면 문자를 통해, 방금의 대화가 불편했다고 귀띔해주세요. 조직 내 평판은 업무역량과 사생활에

내가 만만한 남자 후배

나이는 저보다 한 살 많지만 연차는 2년 낮은 남자 후배가 저를 상사로 존중하지 않아요. 제가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보다 어린 여자한테 고개를 숙이는 게 싫은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나이인 제 남자 동기와 저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딴판이거든요. 인간적으로 친해보려고 남자 동기까지 포함해 셋이서 술자리도 한 번 가져봤는데 저를 거의 투명인간 취급하더군요. 제가 예민한 걸까요?
상황을 판단하는 데 감정이 이성보다 정확할 때도 많죠. 아마도 그는 당신을 ‘나보다 어린 여성’이라는 관점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요. 남성보다 열성인 ‘여성’, 게다가 나보다 ‘어린’ 사람이라는 잣대로 보면 권력관계에서 자신이 우위라고 판단할 거예요. 그는 연차가 많다는 그 이유 하나로, 자신보다 조직 내 서열이 높은 존재라고 인정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경우에는, 그가 인정하는 권력으로 접근하는 게 좋아요. 조직 내 키맨(Key man)과 친분을 과시한다든지, 그보다 한참 선배이거나 인사고과가 좋은 동료들과 전문 역량을 발휘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을 장악할 수가 있어요. 성평등한 시선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직의 위계질서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답니다.

술은 제발 그만!

저는 술을 잘 못하는 반면 직장 선배들은 술고래예요. 술도 억지로 마셔야 하는 회식이 정말 괴롭습니다. 제가 못 마시는 걸 알면서도 마셔야 는다며 손에 있는 건 일단 마시라고 하고, 숨기다가 걸린 적도 있어요. 평소에는 정말 좋은 선배들인데 요령 있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평소에는 좋은 선배인데, 회식에서만 강압적이라면 회식 자리를 즐기는 방식이 흥청망청 마시고 노는 것일 거예요. 연대의식과 흥을 느끼는 자기만의 스타일인 셈이죠. 좋은 의도로 접근했지만, 서로 스타일이 맞지 않을 때는 참 곤혹스러운데요. 우선, 무작정 안 마시려고 하기보다 마시기 부담이 없는 약한 술을 따로 주문해서 그 술 위주로 마시는 시도부터 해보세요. 소주 대신 순하리, 청하 이런 주류들 말이에요. 주량은 좀 약하지만 회식 분위기를 깨지 않는 후배라는 인식을 얻기 위해 술자리에서 이미 취한 사람처럼 노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내겐 너무 더러운 상사

하루에 담배 한 갑, 커피 열 잔 콤보에 손 씻기와 양치질은 점심 식사 후 한참 뒤에나 하는 과장님! 극심한 입냄새 때문에 얘기할 때마다 티 안 나게 고개를 살짝 돌리거나 숨을 안 쉬고 있어요. 흡연자 중에서도 유독 냄새가 심한 것 같은데 아기 낳으면 끊는다, 담뱃값 오르면 끊는다 하던 과장님, 아기 돌이 곧 다가오는데도 끊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잘 관리되지 않은 ‘사람냄새’는 비위를 건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효율성도 저해하고, 관계 유지에도 어려움을 주죠. 하지만 자칫 잘못 말했다가는 상대의 인격을 침해하는 발언이 될 수 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직설화법보다는 간접적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는 것을 권해요. 민트 캔디나 아이스 브레이커 몇 개를 선물하는 방법부터 시도해보세요. 단, 몰래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과장님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저희가 준비했어요”라고 하면서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인지 힌트를 주면 좋겠네요. 그래도 전혀 변화가 없다면, 사무실에 방향제 등을 티 나게 뿌리세요. 왜 자꾸 방향제를 뿌리냐고 묻는다면 “담배 냄새 때문에 일이 집중이 안 돼서요”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할 타이밍!

왕이로소이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 경력직 사원이 왔어요. 첫날부터 저를 반말로 부르기 시작하더니 메일 하나만 보내도 자리로 불러 하나하나 따지듯 물어봅니다. 본인이 따라주는 술은 무조건 원샷해야 하고, 핸드크림이나 페브리즈는 자기 것처럼 가져다 쓰고는 본인 자리에 둬서 제가 다시 가지고 오곤 해요. 이러다 폭발할 것만 같아요.
정말 무례한 사람이네요. 이런 사람은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이 아무리 뭐라고 불만을 호소해도 ‘네까짓 게’라고 반응할 확률이 높아요. 경력직 채용으로 입사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조직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 거예요.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에겐 기존 조직원의 도움을 받는 게 효과적이랍니다, 그보다 직급이 높은 여자 상사가 있다면, 도움을 청하세요. 호칭에 대한 차별을 수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도움을 청할 마땅한 선배가 없다면 반말로 이름을 부를 땐, 대답하지 마세요. 왜 대답을 안 하느냐고 문제를 삼을 때 명확하게 존칭을 써달라고 입장을 표명해야 합니다. 핸드크림이나 페브리즈는 이름 스티커를 붙여서 개인 서랍장에 두세요. 작은 무례함을 지속적으로 수용하면 그 무례함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거든요.

성희롱 능력자

여직원마다 집적대는 상사 때문에 미치겠어요.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맛이지’, ‘삼겹살 위에 소금도 여자가 뿌려야 맛있지’ 같은 뉘앙스의 멘트는 기본, 커피 받으면서 손등 터치, ‘OO씨는 손도 아기 같네. 칭찬이야’ 하며 치고 빠지기, ‘어깨가 뭉치는데 와서 살살 만져봐. 농담이야’ 등등. 직장 내 성희롱 대처 매뉴얼조차, 농담인 듯 치고 빠지는 고단수 상사에겐 쉽지 않더라고요. 얼마나 더 참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조직 내 권력구도를 이용해 어린 여직원을 성적 대상화시키는 것에 대해, 혼자 툴툴거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일삼는 상사의 행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모으세요.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조직 내 성희롱고충처리위원회에 접수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어야 하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 방법은, 유연하되 단호하게 성희롱 발언에 대처하는 거예요. 어깨를 주물러달라거나, 살결이 곱다는 식의 불쾌한 발언을 했을 때 그냥 넘기지 말고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제가 잘 못들어서요”라고, 눈을 바로 맞추고 불쾌한 표정을 담아 물으세요. 상사와 잘 지내는 것보다 상처받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팀장님은 회사를 사랑해

회사 일을 사랑하는 팀장님. ‘칼퇴’는커녕 7시가 넘어 자리에서 일어나도 ‘일 다 했냐’, ‘왜 이렇게 일찍 가냐’ 눈치를 줍니다. 팀장이 집에 가지 않으니 팀원들이 괴로워요. 정시에 퇴근하는 옆 팀을 보며 매일 부러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하루 업무가 다 마무리됐다면 퇴근하는 게 마땅하죠. 하지만 일을 더 하기 위해 정시 퇴근을 하지 않는 팀원의 눈에 부하직원들의 칼퇴근은 거슬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리고 일 못하는 너는 쉬고, 늙고 유능한 나는 더 열심히 일하냐’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원칙대로 무조건 정시퇴근을 외칠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른 퇴근을 유도하는 게 현명할 것 같네요. 보통 7시 30분쯤 퇴근한다면 7시 15분 퇴근을 한 달간 유도했다가 다음 달부터는 7시 5분 정도로 퇴근시간을 서서히 앞당기며 상사와 조직원들이 이른 퇴근에 조금씩 적응하게 되는 방법을 추천해요. 단, 제대로 업무를 마무리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에요.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마루
포토그래퍼
심규보
이재은(여자라이프스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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