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피 시대

그야말로 셀피의 전성 시대다. SNS 여신을 꿈꾸는 여고생, ‘인증샷’이 생명인 파워 블로거, 팬 서비스에 충실한 연예인은 물론 대통령과 교황, 심지어는 무중력을 부유하는 우주인조차 뿌리치지 못한 셀피의 유혹에 관하여.

“팔을 쭉 뻗어서 휴대폰을 약간 위로 드는 게 좋아요. 이목구비가 뚜렷해 보이거든요. 그러고는 카메라에 키스를 날리죠.” 톱 모델 칼리 클로스는 그렇게 밋밋한 흰 벽을 배경으로 질투 날 만큼 근사한 셀피(Selfie)를 찍었다. 미국 <W> 매거진이 2014년 3월호를 출간하며 선보인 ‘슈퍼 모델처럼 셀피 찍기’ 동영상의 일부다. 거기에는 그녀 외에도 캔디스 스와노펠, 아드리아나 리마, 알레산드라 암브로시오 같은 톱 모델이 대거 등장해 자신만의 예쁜 셀피를 찍는 비법을 알려주는데,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든가 머리를 일부러 헝클어뜨리는 등 방법도 가지가지다. 셀피가 뭐길래. 어떻게 찍어도 예쁜 그녀들을 애쓰게 만드는 걸까?

카메라 렌즈를 돌려라!
옥스퍼드 사전에 공식 등재되기가 무섭게 2013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셀피는 인스타그램에서만 약 1억4천만 개의 사진에 해시태그되었고, 빌보드 EDM차트 1위를 기록한 댄스곡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셀피라는 단어 하나가 일궈낸 온갖 경이로운 수치와 기록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지만 이 거대한 문화의 흐름에 편승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버튼 하나로 카메라 렌즈를 전환시키고, 몇 번의 터치만으로 온라인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낼 줄 아는 우리 모두가 이미 셀피의 시대를 살아가는 셀피 세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셀카’라는 말이 더 익숙한 한국인은 꽤 오랫동안 셀피를 찍어왔다. 1990년대 말, 스티커 사진 기계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포즈를 잡는 자신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는 오그라듦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전자 기기와 IT 기술의 혁신을 누구보다 빨리 경험하며 셀피를 일상에 접목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유행하기 전부터 싸이월드를 갤러리 삼아 셀피를 공유했으니 이 분야에서는 일종의 선구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국내에서도 셀피가 처음부터 사랑받은 것은 아니다. 굳이 팔을 뻗어서 아슬아슬 힘들게 셔터를 누르는 기괴한 풍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차라리 찍어달라고 하지…”라고 중얼거리게 만들었고, 조그만 기계를 향해 눈을 동그랗게 하고 온갖 예쁜 표정을 짓거나 ‘눈물 셀카’, ‘침대 셀카’를 위해 혼자만의 연기를 펼치는 건 몸이 베베 꼬일 만큼 낯간지러웠다. 그걸 즐기던 몇몇 연예인은 허세의 아이콘으로 대중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피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스케일은 더 커졌다. 아무리 ‘이기적인 세대의 자아도취적인 놀이’라 폄하해도,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내면의 낯선 자아를 발견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건 분명 신나는 일이다. 솔직히, 카메라를 향해 눈을 크게 뜨며 예쁜 각도를 찾아본 경험은 다들 한 번씩은 있지 않나?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 속 하이킥을 날리지만 소싯적의 나는 무려 눈물 셀카를 시도해본 적도 있다.
온라인에 유명인의 사진보다 일반인의 사진이 몇 곱절은 더 많은 2014년에 셀피는 아랫집 학생도, 옆집 누나도, 동네 쌀집 아저씨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간단한 얼굴 사진이 평범함과 비범함, 프로와 아마추어,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를 흐리며 누구나 돋보일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셀피 속의 사과 같은 내 얼굴
잘나가는 사진가라고 해서 꼭 셀피를 잘 찍는 것은 아니다. 셀피의 핵심은 잘 찍은 사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인증이자 남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소통의 도구다. 빛이 어떻고, 피부가 얼마나 매끄러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수없이 많은 필터와 사진 편집 툴이 알아서 해결해주니까. 노란색이 감도는 필터로 따뜻하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카리스마를 나타내기 위해 짙은 대비의 필터를 사용할 뿐이다. 이렇게 사진의 퀄리티와 무드는 앱에 맡긴 채 우리는 작은 프레임 안에 펼쳐진 상황, 나의 표정, 함께 찍힌 오브제로 사람들의 ‘좋아요’를 유도한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일상인 슈퍼 모델들조차 좀 더 돋보이는 자신만의 셀피 노하우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국어를 배우듯, 우리는 그렇게 셀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셀피의 가장 큰 매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이미지를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것. 타임라인에 올리는 말 한마디, 링크 하나, 사진 한 컷, 좋아요를 누른 기록 등 요즘 세대는 SNS를 통해 외부에 전달되는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하는 데 익숙하다. 얼짱 각도의 예쁜 컷부터, 망가진(것 같지만 나름 귀여운) 얼굴의 엽기 셀피까지 좋은 건 넣고, 싫은 건 빼고, 필요한 건 추가하며 자신을 편집하는 것이다. 현실이야 어떻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장밋빛으로 물들일 수 있다.
이런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괴리는 올 초 전 세계의 클럽과 인터넷을 달군 한 DJ듀오의 댄스곡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체인스모커즈의 ‘#Selfie’는 흥겨운 일렉트로니카 비트에 지독한 밸리 걸(Valley Girl : 캘리포니아 중산층의 허영심 많은 여자들을 지칭한다. 피상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에 특유의 과장된 말투가 특징) 악센트의 내레이션을 얹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 남자, 클럽 분위기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대화의 끝은 언제나 ‘셀피나 찍을까(Let me take a selfie)’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렇게 찍은 셀피는 SNS로 직행한다. “친구들과 불금~”, “아 너무 신나!” 같은 코멘트와 함께. 요즘 만나는 남자의 바람기를 의심해도, 지금 당장 이 클럽을 벗어나고 싶더라도 상관없다. 불만 가득한 실제 상황이나 껄끄러운 대인관계는 웃는 얼굴의 셀피 한 컷으로 평화롭게 포장된다. 물론 이런 위선적인 현상에 대해 일부 사회학자들은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 속의 불만 가득한 얼굴보다 셀피 속의 밝고 예쁜 얼굴을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는 선택이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니체의 격언을 살짝 비튼다면, 셀피 찍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칙칙한 현실조차 잊을 수 있으니까.

셀피는 나의 힘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셀피를 잘 다루는 것은 곧 새로운 권력을 의미한다. 또 내가 예뻐 보이고 내 삶이 흥미로워 보이는,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근사한 셀피를 찍는 건 재주다.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또 잘 이용하는 사람들은 바로 연예인. 영화 시사회, 콘서트 같은 큰 행사에서 셀피를 이용한 스타의 팬 관리는 빛을 발한다. 바리케이드에 막혀 레드카펫 위로 애타게 손을 흔드는 팬들에게 스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서비스는 셀피. 바리케이드 너머로 팬과 얼굴을 맞대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친구 같은 제스처를 취하는데, 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하고 스타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나오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할 수 있기 때문에 굴욕 사진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평소 셀피를 즐기고 또 팬들과도 자주 찍기로 유명한 배우 제임스 프랑코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풍부한 양의 셀피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관심은 SNS를 지배하는 힘이 되더라.” 스타에게 셀피는 팬을 사로잡는 마술 지팡이였다.
검색창에 이름만 쳐도 ‘셀피’가 자동 완성되는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는 샤워 셀피, 메롱 셀피, 누드 셀피 등 찍을 때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셀피로 자신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놓았다. 미드 <한나 몬타나> 시리즈로 미국의 ‘국민 여동생’이 되었지만, 영원히 귀여울 수만은 없었던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야한 옷을 입고 야한 포즈로 셀피를 찍었다. 기존의 사랑스러운 그녀를 좋아하던 팬들은 순식간에 안티 팬으로 돌아섰지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셀피를 통해 폭발시킨 마일리 사이러스의 커리어는 그 어느 때보다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앞으로 그 누구도 그녀에게 다시 착하고 귀여운 여동생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셀피와 SNS의 합작품인 이 고육지책은 성공한 셈이었다.
끝내주는 몸매를 가진 리얼리티 TV스타 킴 카다시안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그녀는 아슬아슬한 흰색 수영복을 입은 뒷모습 셀피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몇 시간 만에 40만 좋아요를 돌파한 그 사진은 현재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카니예 웨스트가 트위터로 “지금 바로 퇴근(Heading home now)”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링크를 퍼가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카니예 웨스트의 사랑스러운 애정 행각에 돋보인 건 셀피 속 카다시안의 엉덩이. 잘록한 허리와 대비되는, 남다르게 풍만한 엉덩이는 그녀를 제니퍼 로페즈 이후 가장 유명한 엉덩이 스타로 만들었고, 이후 그녀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었다. 미국 <보그> 커버를 장식하고, 리카르도 티시의 새로운 뮤즈가 되고, 발렌티노의 쿠튀르 쇼의 프론트로에 그녀를 앉힌 게 바로 그 엉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위터 역사상 가장 많이 리트윗된 사진 또한 셀피의 몫이었다. 일명 ‘오스카(Oscars) 셀피’라 불리는 사진 속에는 브래들리 쿠퍼, 제니퍼 로렌스, 줄리아 로버츠, 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의 A급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중 찍힌 이 셀카는 장난기 많은 사회자 엘렌 드 제네러스의 즉흥 제안으로 둔갑했지만, 사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삼성 갤럭시 핸드폰을 생방송에 노출하는 것. 이 재기발랄한 간접 광고는 순식간에 트위터를 마비시켰고, 온라인 세상으로 퍼져나가며 셀피 한 컷이 불러올 수 있는 바이럴 광고 효과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렇듯 셀피는 평범한 사람들을 특별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유명인들에게는 더욱 강력한 힘이 된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셀피를 찍을 때마다 화제가 되고 지지도가 올라가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셀러브리티의 셀피, 최고 권력자의 셀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셀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한때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나 ‘셀피를 위한 부고’ 같은 제목의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돌지만 셀피는 사람과 SNS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두고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상, SNS의 바이럴 효과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셀피는 더욱더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셀피는 놀이다. 셀피를 지탱하는 가장 센 힘, 잘 노는 사람이 잘 산다는 ‘놀이의 힘’은 이제 겨우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을 뿐, 계산 없이, 기대할 것 없이 그저 즐기면 된다. 아, 바라는 것 한 가지가 있구나. 내 팔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해시태그, 해시태그!
SNS 바다를 부유하던 수많은 셀피는 해시태그를 타고 무리 지으며 유행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해시태그로 대동단결한 세상의 별별 셀피들.
#duckface 외국 셀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덕페이스는 말 그대로 ‘오리 얼굴’을 뜻한다. 서양식 미의 기준으로 좀 더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입술을 내밀다 보니 마치 오리 같아 보인다는 데서 시작됐다.
#photobomb 폭탄을 투하하듯, 고의로든 실수로든 누군가 셀피를 찍고 있을 때 뒤 배경에 난입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예쁜 포토바머(Photo Bomber)로는 자신의 콘서트장에서 팬의 셀피에 난입한 비욘세를 들 수 있겠다.
#funeralselfie 장례식에서 셀피를 찍는다고? 누군가는 경악할 만한 일이지만 이 세상에는 희한한 개념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다. 진짜로 장례식에서 셀피를 찍는다. 그것도 할머니의 관을 배경으로!
#bootyselfie 킴 카다시안의 아이코닉한 엉덩이 셀피 이후, 부티셀피라는 해시태그를 단 일반인들의 엉덩이 셀피가 쏟아져 나왔다. 운동 좀 하는 육감적인 엉덩이가 보고 싶다면 찾아보라. 단, 몇몇 사진은 아주 외설적이다.
#bikinibridge 비키니를 입어본 여자라면 알 거다. 비키니를 입고 누워 아래쪽을 바라보면 골반뼈 위로 비키니가 살짝 들려 마치 다리를 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세상에, 그걸 또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다!
#celotape 얼굴을 셀로판테이프로 친친 동여매 괴물 같은 형상을 하고 셀피를 찍는다. SNS에는 예쁜 얼굴을 올리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aftersex 뭘 기대했나? ‘성관계 후 셀피’라 하면 당연히 야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무척 로맨틱하고, 평화롭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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