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서 꽃과 풀, 나무를 즐기고 싶지만 들이는 족족 식물을 죽인 지난 죄가 떠올라 망설여지는지? 여기 빅데이터와 AI의 은총으로 과거의 굴욕을 딛고 일어선 한 식물 킬러의 이야기가 있다.

 

그린 킬러의 비애

혼자 살면서 항상 식물로 가득 찬 집을 꿈꿨다. 매달 해외 출장을 떠나는 직업을 가졌던 시절엔 양심이 있어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6년간 전 세계를 떠돌다가 드디어 서울에 정착했다. 꿈에 그리던 화단을 꾸미려고 베란다가 아주 넓고 햇빛이 어마어마하게 잘 드는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까지 했다. 거기에 식물을 채워 넣었다. 홍콩야자, 뱅갈고무나무, 여인초, 백도선, 귀면각, 금황환, 수염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그 밖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개에 몇 천원밖에 하지 않아 보일 때마다 사들인 다육종과 허브가 차례로 죽어나갔다. 유일하게 생존에 성공한 건 가장 나중에 들인 디시디아뿐(두 달 이상 물, 빛, 공기 같은 생존 요건을 단 한 번도 채워주지 못했는데도 살아남은 아이다). 처음엔 홍콩 구옥 테라스의 빈티지한 정원처럼 예뻤던 나의 베란다는 성격이 무난하며

명줄도 길고 생명력도 강하기로 이름 난 식물조차 가차 없이 말라 비틀어지는 킬링 필드가 됐다. 왜 그랬을까? 죽은 식물을 하나씩 버릴 때마다 자책과 죄책감 사이에서 허우적댔다. 관심이 과했나? 실은, 그 식물들이 까다로운 종이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물어볼 사람도, 원예의 세계로 파고들어갈 여력도, 응급 처치를 받을 가까운 화원도 없어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내 주제에 식물이라니. 과분하지. 그 결심이 깨진 건 코로나19 때문이다. 여행도 외출도 어려운 시절에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이란 식물 가꾸기뿐. 거기에 가드닝에 온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잉여 시간도 충분하다. 식물 세밀 화가 이소영은 ‘집콕’하는 지금이야말로 원예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 대형 온라인 마켓에선 지난 3월 공기정화식물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4%나 증가했으며 씨앗과 배양토, 분갈이흙 등도 각각 63%, 95% 더 팔렸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식물이 죽는 이유

“나한테만 오면 식물이 다 죽는다”는 염려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변을 늘어놓는다. 집에서 해가 제일 잘 드는 곳에 뒀다. 화원 주인이 조언해준 대로 일주일, 혹은 열흘에 한 번 꼬박꼬박 물을 주고, 환기를 위해 자주 밖에 내놨으며 시들해지면 영양제도 사다 꽂았다. 이 정도면 책잡을 구석 없는 케어 아닌가? 책 <아무튼, 식물>을 쓰고 EBS 라디오 <식물의 수다>를 진행하는 원예가이자 밴드 디어 클라우드의 싱어송라이터 임이랑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저서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에서 ‘절대적 기준과 조건은 없다’고 말한다. 즉 한 집이라도 거실과 베란다 등 공간의 온도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식물 각각의 월동 온도를 체크하고 혹한기와 혹서기에 따라 다르게 돌봐야 한다는 것, 식물이 살고 있는 장소의 온도, 습도, 화분 크기, 일조량, 흙의 종류와 통풍 정도에 따라 물 주는 주기를 조절하지 않으면 과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내 가드닝 서비스 플랫폼 ‘그리니파이’의 서종훈 대표 역시 식물 품종과 키우는 공간의 특성뿐 아니라 화분의 소재, 흙 배합 상태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사람들이 식물을 죽이는 가장 큰 이유는 초등학교 때 배운 자연 교과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식물의 생장에 물과 빛이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집에서 키우는 식물에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곳에 내놓고 광합성을 시켜주죠.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이 지침은 화분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자라는 관상용 실내 식물에는 대부분 적합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죽는 가장 큰 원인이 ‘과습’과 ‘직광’인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키우는 사람이 자기 눈에 예쁜 품종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깊이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자신의 공간, 성격, 라이프스타일이 식물의 성향과 잘 맞는지 여부다. 무관심에 더 잘 자라는 식물, 매일 어르고 달래며 살피지 않으면 금세 시드는 식물, 그늘에서 잘 견디는 식물, 공중 습도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 식물, 수돗물에 약한 식물 등 각색의 개성에 장단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적당히 물 주고 볕, 바람을 쏘이는 작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성격, 취향, 생존 방식을 가진 반려동물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섬세한 케어가 필요한 일이다.

나만의 식물 집사

저 많은 변수를 다룰 수 없는 사람은 오래 함께 지낼 풀 한 포기 갖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버려야 할까? 타고난 그린 핑거, 인기 있는 플랜트 디자이너의 SNS 피드에 올라오는 아름다운 식물과 화단을 탐하다가, 이런 사람이 친구였으면, 혹은 동네 꽃집 주인이었으면 생각했다. 정원사까진 아니어도 (부릴 공간도, 돈도 없지만) 적어도 내 집에 맞는 식물을 추천해주고, 가끔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부담 없이 물어볼 정도의 관계만 있어도 좋을 텐데. AI가 영어 과외도 해주는 시대에, 왜 식물 키워주는 로봇은 없는 걸까?

놀랍게도 그런 시스템이 이미 나와 있다. 식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의 생활 공간, 경험, 라이프스타일 등에 맞는 식물을 찾아 제안하는 식물 큐레이션 서비스 얘기다. 자체 구축한 식물 정보 데이터베이스와 공간 환경, 가드닝 경험 수준, 취향 등의 정보를 매칭한 알고리즘으로 반려식물을 추천하는 ‘그리니파이’, 키우는 사람의 관심사 또는 성격에 맞춰 설문을 진행한 후 키우기 적합한 식물을 알려주는 ‘플립’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선택지 중 1:1 상담을 통해 지속적인 온라인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리니파이를 골랐다. 식물을 키울 때마다 별의별 게 다 궁금했던 터라, 맘 놓고 물어볼 수 있는 ‘원예인’ 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취향, 거주 환경, 경험 등을 묻는 ‘큐레이션’ 테스트를 거쳐 이국적인 ‘몬스테라 델리시오사’와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를 추천받았다. 꽃시장과 도매 화원에선 찾기 힘든 이탈리아제 테라코타 화분에 다양한 영양소가 첨가된 배양토로 분갈이까지 한 두 식물은 하룻밤 만에 현관문 앞에 곱게 배달됐다. 늘 식물 따로, 화분 따로 구매 후(한 상점에 둘 다 맘에 드는 게 있는 경우가 없었다) 마사토와 배양토를 어설프게 섞어 분갈이하다가 많은 식물을 저세상으로 보냈었는데, 그런 불상사를 염려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pF(토양수분장력) 값을 측정해 식물에 물이 필요한 순간을 알려주는 수분 측정기를 함께 주문해 몬스테라 앞에 꽂았다. 부디 이 아이들은 오래오래 살아남길 바라면서. 다음 날 아침, 노심초사하며 거실에 나가 새 반려초(?)의 동태를 살폈다. 아니나다를까. 몬스테라의 세 번째 잎이 기운 없이 늘어져 있다.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헬프’ 탭을 클릭했다. 통상 ‘수십 분’ 안에 답변을 해준다는 안내가 무색하게 ‘케어팀 대니얼’이 곧바로 대화창에 나타났다. 물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는 건 파악하고 있었지만 식물의 특성과 돌보는 방법을 정리한 케어 카드에서 본 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잎에 분무를 자주 해 공중 습도를 높이라는 안내가 있는데, ‘자주’는 얼마나 많은 횟수를 의미하나요?” 그 잦은 분무조차 과습으로 이어질까봐 지레 걱정이 됐다. 케어팀은 분무의 필요성부터 계절별 분무 요령, 적정 횟수 그리고 두 식물이 좋아하는 햇볕의 강도와 형광등의 유익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려줬다. 궁금한 걸 언제든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호들갑을 거두는 데 꽤 큰 도움이 됐다.식물을 밖에 내놔야 하는지, 자리 잡은 위치가 적당한지 따위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며칠 더 지내봐야 그 답도 알 것 같아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닷새쯤 지났을까. 아스파라거스는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몬스테라는 영 시원치 않다. 이번엔 두 번째 잎까지 말썽. 다시 케어팀을 찾아, 뒤로 말려들어간 잎 두 장의 사진을 찍어 전송하고, 물을 충분히 줬는데 왜 이러는지, 영양제를 사다 줘야 하는 건 아닌지, 밖에 두고 키워야 하는지 따위의 질문을 했다. 다행히 우울한 선고는 아니었다. 식물도 분갈이와 새집, 새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답과 밝고 따뜻한 곳에서 며칠 더 지켜보자는 당부를 들었다. 앞의 답변은 예상한 내용이었지만 뒤의 독려는 뭐랄까, 같은 마음으로 식물을 돌보는 든든한 백업팀을 가진 기분이었다. 새 반려식물을 들인지 2주 차. 몬스테라의 3번 잎은 거짓말처럼 구겨진 얼굴을 편 채 건강을 회복했고 아스파라거스의 희끗한 줄기 마디에선 솜털 같은 순이 삐죽 솟았다. 기세를 이어 곧 셋째가 될 후보를 탐색할 계획이다. 언젠가 은발의 마오리 코로키아 그린(예민하고 까다롭기가 유칼립투스 못지않은 식물로 유명하다)을 창가에 두고 볼 날을 꿈꾸며.


더 이상 식물을 죽이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가이드

그리니파이 GREENIFY
공간의 환경, 키우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정보를 입력받고, 이를 자체 구축한 식물 DB와 연동해 최적의 식물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사용자에게 적합한 식물을 찾아 제안하고 온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케어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하반기엔 그간 구축한 식물 증상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딥러닝된 AI를 통해 자동으로 문제 원인과 솔루션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www.greenify.kr

플립 FULEAF
‘내 성격과 잘 어울리는 식물 찾기’ 테스트를 거쳐 사용자에게 적합한 식물을 큐레이션한다. 첫 화면의 검색창, ‘나는 ________를 잘 키우고 싶다’의 빈칸에 궁금한 식물의 이름을 입력하면 해당 식물의 특징, 돌보는 법, 분갈이 방법 등을 자세히 알려준다. 식물뿐 아니라 화분, 가드닝 도구, 인테리어 아이템 브랜드를 함께 소개한다. www.fuleaf.com

식물집사 리피 LEAFY
친환경 식물관리 솔루션 회사 ‘코스믹그린’에서 운영하는 식물 콘텐츠 채널. 반려식물도감, 반려식물 처방전, 이달의 식물, 식물 용어 사전 등 식물관리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담은 콘텐츠를 알차게 발행한다. blog.naver.com/cosmicgreenofficial

심다 SIMDA
식물 큐레이터 이주연, 의뢰인의 공간 특성, 식물에 대한 취향, 라이프스타일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질답 과정을 거쳐 식물을 추천하고 키우는 과정까지 도와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INSTA @simd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