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한
<건물주>의 이야기 주축에 두 부부가 있죠. 인터뷰 전 궁금해서 ‘김준한 결혼’을 검색해보니, <안나> 때 수지 씨와 촬영한 웨딩 사진이 잔뜩 나오던데요.
참 과감하게 작품 홍보를 했던 덕분에 당시 많은 사람에게 원성을 들었죠.(웃음)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깊은 욕망을 전시하듯 표현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표현해주신 감독님에게 지금도 감사하죠. 다만 결혼은,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영화 <살목지>와 <인턴> <파문> 등 차기작도 많아요. 그 사이 예능 <바다 건너 바퀴 달린 집> 출연으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요. <굿파트너>에 함께한 장나라, 지승현, 그리고 배우 성동일, 김희원까지 함께 홋카이도에서 보낸 시간은 어땠나요?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저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어요. 이제 좀 친해졌다, 긴장이 풀렸다 싶으니까 집에 가야 되는 상황이라 아쉬웠지만요. 특히 나라 선배가 직접 해준 요리를 맛보면서 우리만의 늦은 뒤풀이를 한 것 같아 찡하기도 했어요.
작품과 헤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인가요?
<굿파트너>라는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커요. 정우진이 사실 제게는 숙제였거든요. 좋은 역할인 만큼 고민도 많이 한 캐릭터인데, 이제 좀 알 것 같을 때 헤어졌죠.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야 하는 게 여행과 좀 비슷하기도 하네요.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그냥 있어줘야 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자리를 지키며, 그늘이 되어주는 역할인데, 그 사이 악역을 워낙 많이 했고, 보는 분들에게 제가 그런 이미지로 단박에 설득될 것 같지 않은 거예요. 그렇다고 또 뭘 하려고 들면 그건 우진이가 아니고. 방송 직전까지도 혼자 계속 좌절했어요. 그런데 역시 작품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닌 것이, 작품을 보니 우진이가 있었어요. 다 같이 만들어주신 거죠.
이렇게 마주 앉아 얼굴을 보니 그동안 악역 제안을 많이 받은 게 묘하게 납득이 됩니다.
흔한 말로 ‘얼굴에 선과 악이 다 있다’고 하시는데, 배우로서는 너무 감사한 말이죠. 사실 악역이 마음 편한 부분도 있어요. 실제 삶에서 선을 행하기가 더 어렵듯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악한 건 배려나 고민을 내려놓을 때 따라오는 거라서 되게 다양한 길을 가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선한 건 정의로운 척 목소리를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본질이 뭘지를 깊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어요.
민활성은 엘리트지만 거듭 실패를 해요. 부유한 처가에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오랜 친구 기수종까지 범죄에 끌어들이는 인물입니다.
항상 인물이 자기를 합리화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해요. 일종의 영역 싸움 중에 민활성의 경우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건데, 그 기준이 좀 ‘골 때리는’ 부분이 있죠. 우리가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을 악역이라고 하잖아요.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임필성 감독과도 역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나요?
감독님 모니터 옆자리가 현장에서 제 공식 지정석일 정도였어요.(웃음) 이미 찍은 촬영분에 대한 토론도 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도 말하고, 감독님에게 넋두리하듯 이야기하면서 계속 찾아갔죠. 감독님도 제가 촬영하고 뒤에서 갸우뚱하고 있으면, ‘네가 이상하다고 한 게 난 다 좋았다’며 계속 안심시켜주시고요. (하)정우 형에게도 많이 배웠어요. 제가 고민이 워낙 많고 연기를 팽팽하게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안 해도 된다는 걸 실감했죠.
이 이야기를 보는 사람들이 어떤 걸 느끼길 기대해요?
<건물주>의 인물들은 다 자기 자리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거든요. 다만 낭떠러지 끝에 몰렸기에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과감한 선택을 하고, 그것들이 도미노가 되죠. 그런데 우리도 살다 보면 어떤 상황과 맞닥뜨릴지 모르잖아요. 갑자기 인생의 선로가 바뀌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맞을 수도 있고요.
김준한도 과감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나요?
생각보다 과감한 선택을 해온 것 같아요. 음악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그렇지만, 또 연기를 위해 음악 활동을 완전히 접기도 했고요. 내가 내 마음이 하는 이야기에 솔직하게 살았구나 싶어요. 운도 좋았죠. 연기 학원에서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오디션에 전념하자고 결심한 지 반년도 안 돼서 <박열>을 만났으니까요. 앞으로도 마음이 또 움직이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여전히 독서가 취미인가요?
독서가 참 신기한 게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제가 읽은 것과 경험이 섞이는 느낌이 있어요. 독서를 흔히 자기 확장이라고 하지만, 저는 연결인 것 같아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상상력에서 시작한다’는 말처럼 과학에도 예술적 사고가 필요하고, 연기를 할 때도 다른 관점이 필요하잖아요.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지점도 발견했나요?
전 계속 변할 것 같아요. 겉으로는 큰 차이 없어 보여도 생각의 흐름이 바뀌면서 저는 제가 눈빛이나 몸가짐도 조금은 변한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예전에는 독설가였어요.(웃음) 그런데 날카로운 척했던 지점에 대해 어느 순간 이해도가 생겨버린 거예요. 그런 부분이 좀 부드러워졌다고 할 수도 있겠죠. 사람들이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사고하다 보면 염세적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유한한 사람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뭐든 가능하다! 이런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100% 행복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순간은요?
삶이 잔잔하게 흘러갈 때죠. 푹 자고 일어나서, 청소하고, 책 읽고, 운동하고, 그런 평범하면서도 단단한 일상을 스스로 잘 꾸려 나갈 때 행복을 느껴요. 욕심이 많은 편인데, 너무 많은 걸 해내는 게 꼭 삶을 지탱해주는 것 같진 않더라고요.
숙면, 청소, 독서, 운동…. 이 중 하나만 해도 ‘갓생’인데요.
그러니까요. 다들 얼마나 버겁게 살아가고 있으면 푹 자고 일어나 청소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정수정
오늘도 새벽까지 <건물주> 촬영이 있었다면서요?
아침까지 찍고, 예능 하나 찍고, 또 <얼루어> 현장에 와 있네요.
드라마가 드디어 공개되는데요. 어떤 면에서 기대되는 작품인가요?
대본을 처음 읽을 때부터 재미있었어요. ‘그런 점이 어떻게 표현될까?’ ‘시청자분들에게 어떻게 닿을까?’ 이 점이 궁금해요. 저도 아직 본 적이 없거든요. 또 드라마가 한 4년 만이라서 더 기대돼요. 감독님과 배우분들이 대단하시잖아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빵빵’하다!
하하, 오늘 모인 다섯 배우죠. 놀랍습니다.
여기에 제가 껴도 되는지….(웃음)
그렇게 환상의 5인조가 완성된 거죠. 조금 전에 남편 분인 김준한 씨도 만났습니다.
선배가 남편 역할을 많이 하더라고요. 지금도 조금 못된 남편이죠.(웃음)
이번 작품도 수정 씨가 둘입니다. 다 같이 모이면 뭐라고 부르나요?
수정 언니랑 전작 <거미집>을 했을 때는 모두가 저희를 다 그냥 ‘수정’ ‘수정’ 이렇게 불렀어요. 그런데 이 현장은 저를 크리스탈이라고 불러요.(웃음) “크리스탈!”
임필성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감독님도 드라마는 처음 하신다고 하는데, 배우의 입장을 정말 잘 이해하시더라고요. 현장에서뿐 아니라 사적으로 대화할 때도요. 그 사람이 배우든, 누구든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고 싶어 하세요. 또 되게 쿨하세요. 편하게 해주셔서 작업할 때는 부담 없이, 물론 부담은 되지만 현장 자체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세요.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해외 행사에서 하정우 선배를 만났는데, “혹시 다음 작품 계획한 거 있느냐”고 하셨어요. “임필성 감독님 작품이 있는데, 마침 정수정을 생각하던 차에, 오늘 너를 만나서 너무 신기하다. 대본 한번 읽어볼래?” 해서 대본을 받았어요. 너무 궁금해서 빨리 읽었고, 특히 에피소드들이 초반에 좀 몰아치거든요.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었어요.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어요.
‘이경’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뭐였나요?
제 캐릭터가 감정적인 신이 좀 많아요. 그렇게까지 감정 신이 많은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서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겪는 게 많고 자꾸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서 감정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캐릭터예요.
촬영 전에 임 감독과 이경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나요?
감독님은 “나는 배우를 믿어.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 항상 이런 말을 하세요. ‘배우가 맞다고 하면 배우가 맞는 거지’ 하는 스타일이세요. 정우 선배나 수정 언니는 너무 베테랑인데, 저는 그래도 되나 늘 고민됐어요.
건물주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에 공감이 되었나요?
왜 그러는지는 알 것 같지만, 전 별로 관심이 없어요. 피곤해요.(웃음)
여기 모인 주요 인물 다섯 중 수정 씨가 맡은 ‘이경’은 유일하게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죠.
맞아요. 사실 저는 돈에 그렇게 연연하는 편이 아닌데, 남편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의 경제 수준에 제 생활을 좀 맞춰주는 면이 있어요. 그래도 부유한 역할이다 보니 처음에는 화려하게 입으려고 노력했는데, 생각보다 예쁜 옷을 입을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이경’은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한 사람인 것 같은데, 남편 ‘활성’을 택한 것도 그 사람만 본 것 아니었을까요?
순수한 사람이에요. 안 좋은 일을 겪는 것도 순수하고 순진한 면이 있어서예요. 다들 그랬어요. 사실은 이경이가 제일 착하다고.
이경이 활성에게 갖는 감정은 뭐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 활성과 결혼해서 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어요. 시간이 흐르며 미운 정도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 중심에는 여전히 사랑이 있어요. 첫사랑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경이 활성에게 바란 건 뭘까요?
“계속 그냥 그렇게 있어주면 돼.”
그렇지만 활성 때문에 상당한 고초를 겪게 되는데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하. 하지만 저도 다 알고 시작한 거고, 또 현장에서 최대한 배려해주셨어요.
여기 모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건 또 어떤 즐거움이었나요?
준한 선배, 수정 언니와 붙는 신이 많아요. 수정 언니와 정우 선배는 조언을 정말 잘해줘요. 제 캐릭터를 같이 고민해주고 “이경이라면 어떻게 얘기할까?”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으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줬어요. 제가 감정 신을 앞두고 부담감에 자신 없어 할 때면, 정우 선배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현장에 오라’고 말해줬거든요. 감정 신을 미리 계산해서 오지 말라고요.
오히려 가벼워져야 한다는 조언이었나요?
맞아요. ‘오늘 나 여기서 울어야 되는 신이네’ 하는 생각을 갖고 오지 말라는 거예요. 그냥 ‘또 다른 신 찍네!’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저한테 툭 던지듯이 조언해줬어요. 그게 큰 도움이 됐어요. 저는 항상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가벼워지니까 순간적으로 몰입될 때가 있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선배님 아니고 ‘하정우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웃음)
<거미집> 이후 기대가 높아졌어요. 부담감도 있었나요?
칭찬을 받는다고 금세 들뜨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감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저를 의심하기도 해요. 칭찬을 들었다고 해서 막 ‘내가 진짜 잘했나?’ 하는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사실 모니터도 잘 못하고요.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남을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기대를 엄청 하고 시작하지는 않아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냥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단순한 면도 있어요. 재밌어서, 내가 원해서 하기로 했으니까 했다. “왜 정수정이 여기 나왔어?”라는 말만 안 듣고 싶어요.(웃음) 이번 작품은 특히 진짜 같이 만들어가는 매력이 있었어요. 배운 게 너무 많아요. 이런 시각으로도 보고,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도 생각하는구나. 모두에게 많이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은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엊그제도 촬영하는데 ‘이거 진짜 잘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떠오르더라고요. 다들 디테일이 엄청나요.
그런 사람들이 모일수록 심플한 사람이 필요하다니까요.
임 감독님이 저한테 항상 하던 얘기예요. “크리스탈이 역시 쿨해!” 저는 사실 ‘에이, 몰라!’ 이거거든요. 저 사실 별로 안 쿨해요.(웃음)
심은경
<여행과 나날>로 ‘키네마 준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오늘 촬영장에 오기 전에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셨어요? 이제 거의 상영 막바지인 것 같았거든요.
수상 소식 덕분인지 오히려 지난주보다 상영관이 늘었던데요! 이런 큰 상을 받으면 어떤 감정이 찾아오나요?
워낙 권위 있는 상이다 보니 소식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조금 차분해졌어요. ‘서툴면 서툰 대로 자기 길을 걸어 나가는 게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작품으로 이렇게 큰 상을 받았다는 것에서 괜히 저 자신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관객을 만나 소통하고 싶은지도요.
극 중에서 각본가인 주인공 ‘이’가 GV에 참석한 장면이 나오죠. 조금은 어색한 그 분위기를 실제 심은경도 경험한 적 있겠지 싶었어요.
배우가 자기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쑥스럽지만 또 갑작스럽게 자신의 부족함도 느끼게 되거든요. 그런 미묘함을 캐치하는 장면이라 대본에서 봤을 때 마음이 갔어요. 미야케 쇼 감독님은 항상 동시대 사람들의 초상을 그려내는 분이잖아요. 감독님이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신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다가오기도 했죠.
자기 의심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죠. <건물주> 촬영은 어땠나요? <머니게임> 이후 한국 드라마 촬영장은 꽤 오랜만인데 바뀐 게 있던가요?
제작 환경이 바뀌었다기보다는 현장 분위기 자체가 압도되는 면이 있었어요. 하정우 선배님도 드라마는 굉장히 오랜만이고, 임필성 감독님의 첫 드라마잖아요. 여러모로 예측할 수 없는 신선한 자극을 주는 현장이었어요. 제 역할도 기존과 많이 달랐고요.
‘드디어’라고 해야 할까요. 악역을 맡았습니다. 리얼 캐피탈 런던 지부에서 일하는 요나는 국적도, 정체성도 모호해요. 그의 어떤 면에 끌렸나요?
‘빌런’을 연기하고 싶다는 오랜 염원을 풀었죠.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열 번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고요.(웃음) 감독님과 촬영 전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악역이 되면 좋겠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었죠. 요나를 키워드로 설명하면 순진무구함, 그리고 성실함 같아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괴리감이 느껴질지언정 자기만의 순수함이 있고, 정말로 자기 일을 열심히 수행하거든요.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 속 요한도 슬쩍 떠올라요. 좋아하는 캐릭터로 꼽은 적이 있죠?
요한을 비롯해 여러 인물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만들어갔어요. <프라이멀 피어>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이중인격 캐릭터, <향수>의 그르누이를 참고했죠. 특히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화도 영화지만 소설이 1인칭으로 진행되다 보니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한국적인 욕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요나는 그런 가치에는 초연한가요?
요나가 관심을 갖는 인물은 기수종이에요. 그를 압박하며 대치하는 과정에서 왠지 모를 ‘친근감’과 ‘재밌다’는 감정을 느끼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요나가 악역으로서 한 번씩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만들며 긴장감과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쓰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해외 영화제 참석은 어떤 경험을 남기나요? <더 킬러스>로 뉴욕아시안영화제를 다녀왔던 것에 이어, <여행과 나날>로 로카르노영화제에 참석했어요.
제가 출연한 작품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즐길 때 새삼 영화의 힘을 느껴요. 사실 저도 때때로 궁금하거든요. 왜 나는 영화를 보고 왜 영화관에 갈까, 여기에 직업적인 것 외에 어떤 이유가 있는가, 영화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런 의문이 로카르노에서 특히 해소됐어요. 영화만의 명백한 에너지와 존재 의의를 느꼈죠.
아역 배우로 아홉 살 때 일을 시작했고, 10대 때 이미 <써니>와 <수상한 그녀> 같은 흥행 영화의 주연을 해냈어요. 이후에는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자기만의 활로를 구축했죠. 제일 성장한 구간은 언제인 것 같아요?
올해로 서른셋이 됐는데요. 어떤 특정한 경험이 나를 이끌어줬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무심코 지나친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조금 나태했던 20대 초반이나, 시간을 낭비했다고 자책한 순간조차 결코 쓸모없지 않았더라고요. 그렇게 따지면 모든 순간이 경험인 거죠.
좋은 방향으로 잘 걸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나요?
그건 저도 알 수 없죠.(웃음) 다만 내가 무엇을 향해 가는지, 그 방향만큼은 잃지 않고 계속 생각하려고 해요. 연기를 해내는 것뿐 아니라 연기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잊지 않고 인생이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죠.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면서요. 왜냐하면 정말 노력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거든요. 부족한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끝없이 찾아가기 위해서는.
늘 노력이라는 단어가 나오네요. 그러고 싶지 않았던 때도 물론 있겠죠?
한창 ‘노력’을 강조하던 시기에도 말만 그렇게 할 뿐 노력하기 싫었을 수도 있어요.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저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래서 요즘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잘해나가려고 하나 봐요.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 영위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기도 했고요.
언젠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을까요?
아직 저는 제 안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누가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저 스스로 이미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까요? 지금은 그보다 여러 이야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요. 무엇보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요.
나에게 칭찬을 하나 해준다면요?
그래도 헛되게 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뭐랄까, ‘크게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샛길로 빠지지 않고 나름대로 지구력 있게 잘 걸어왔구나’라는 걸 문득 느끼고는 해요. 이게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걷기왕>의 만복이 같네요. 오늘 이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서 뭘 하면 행복할까요?
와 퇴근! 이렇게 별 탈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면 마음이 정말 편안해요. 집에 가서 씻고 침대 위에서 요거트를 먹는 것. 정말 제 소소한 행복의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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