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나고 다시 만났네요. 여기 똑같은 장소였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생기가 넘친달까! 회복력이란, 정말 놀랍죠?
너무나요. 지금도 느끼고 있고요. 그 촬영 얼마 후에 입원을 했죠. 많이 건강해졌어요.
그런데도 핫 팩을 안고서 모든 촬영을 해내는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했어요. 말 그대로 투혼이었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촬영을 취소하지 않았을까?
해야죠! <얼루어>와 스태프들과의 약속이니까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잖아요
정말 바빠요.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하는데, 매일 일정이 있어서 바쁜 날들이죠. 저는 일을 해야 건강해지는 사람인가 봐요. 너무 집에만 있으면 또 컨디션이 나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일할 때는 잊어요. 너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요.
몸이 아프면 진짜 중요한 것만 남죠. 그때 고현정에게 남은 건 뭐였나요?
‘쿨병’에 걸려 있던 나를 발견했어요. ‘쿨병’은 몸에 안 좋다는 것도. 몸에 좋은 건 다정한 것. 따뜻하고, 살피고, 자꾸 안부를 묻고…. 이런 게 좋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이번에 아프고 나서 요만큼이긴 하지만 부모님께 좀 더 잘해요. 저 스스로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전화도 더 자주 드리고요.
소식을 들은 대중의 반응이 인상적이었어요. 자기 일처럼 걱정하잖아요?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나?(웃음)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오랫동안 보자” 같은, 가족한테 할 법한 말을 항상 해주세요. 또 누가 “빨리 나으세요” 하면 그 밑에 댓글이 달려요. “재촉하지 마라. 부담 주지 마라.” 등등. 매번 감동 받고, 너무 감사해요.
그만큼 대중이 고현정을 사랑하는 거예요. 대중의 사랑과 떨어질 수 없죠.
그 와중에 짧은 것 좀 그만 입으라는 분도 있어요.(웃음) 오히려 활동을 많이 할 때는 주로 긴 옷을 입고 다리를 안 드러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생각이 좀 변했어요. ‘여름에 더운데 반바지도 입어보자. 더 나이 들면 못 입는다. 지금 입자.’ 그래서 지금 입고 있어요.
그런 일상이 매번 기사화됩니다. 이젠 익숙하죠?
어떤 분들은 제가 기사를 내는 줄 알아요. SNS에 올리면 됐지 왜 기사까지 많이 내느냐고. 아닌 걸 아시는 분들도 있겠죠? 제가 내는 게 아닙니다.(웃음)
그렇게 많은 걱정과 응원, 관심으로 빠르게 건강을 회복한 것 같습니다.
정말 크죠. 병원에서도 현정 씨는 빨리 나아서 나가야 하니까 집중적으로 치료하자고 했고요. 저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가을쯤이면 약도 줄고 많이 안정될 거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완전히 다 나은 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차기작에 대한 관심도 높아요. 이번 작품 <사마귀>는 고현정의 필모그래피에 한자리를 차지할 만한 작품인가요?
한번 봐주세요. 대작은 아니어도 내용이 재미있어요. 저도 작품을 다 본 건 아니지만요. 제가 맡은 정이신 역은 좀 새로워요. 제가 언제 이런 역할을 또 맡아볼지.
어떤 부분이 새롭고 좋았나요?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정이신은 자기 연민이 없어요. 아들을 만나도 그래요. 모성을 엄청 감추고 있어요. 제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가서 ‘아이들과 친하지 않다는 게 이렇게 슬픈 거구나’라는 말을 했는데, 이번 작품도 그와 연결되는 감정이 있어요. 20년 만에 경찰이 된 아들(장동윤 분)을 만나도 둘이 덤덤해요. 그런 게 새롭다고 느꼈어요.
항상 “나를 새롭게 써주는 사람을 기다린다”고 했죠. 이번 변영주 감독은 어땠나요? 그런 사람을 만났나요?
만난 것 같아요. 변영주 감독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촬영장에서 ‘혈’이 막힐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감독님은 항상 바로 해결하시죠. 예를 들어 하루는 야외 로케인데,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내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날 반드시 찍어야 했어요. 제작 쪽에서 난리가 나고, 저는 그걸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해결책을 바로 내놓으셨어요. 감독님 대안대로 촬영했는데, 그림이 더 예쁘더라고요.
촬영할 때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죠.
그래서 변영주 감독님이 대단해요. 남 핑계 안 대고, 다 내 책임이고, 직접 다 해결하겠다고 하고 해결하시니까요. 또 항상 세심하게 관찰하세요. 제가 연기를 하면 모니터를 보다가 “현정 씨, 그 표정은 자주 본 표정이고, 아까 꼬깔콘 먹을 때 망설이던 그거 해봐요” 하는 식이에요. 그런 디렉션이 너무 좋았어요.
변영주 감독의 전작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도 새로운 연기를 하는 배우가 보이더군요.
그렇게 배우들이 놀 수 있게끔 해주시는 것 같아요. 20~30년 정도 된 배우들은 감독님들도 연기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야 해요. 신인에게는 룰을 알려주면 되지만, 연차가 있는 배우들이야말로 연출자의 진단과 코치가 들어가야 해요. 아니면 쓰던 근육만 쓰고, 하던 것만 잘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건 이미 많이 보여드린 거죠. 새로운 연기를 찾아주는 감독이 진짜 필요해요. 변영주 감독님은 현장에서 합리적이시니까, 배우도 풀리고 새로운 모습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갖고 있던 ‛혈’이 풀렸을 것 같네요. 배우라면 늘 새로운 걸 꺼내주는 사람을 원하잖아요.
너무 풀렸죠. 또 유머 감각도 있으셔서 같이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요. 면전에서 칭찬 못하는 것도 저와 비슷하고요.
칭찬을 밖에서 많이 하시던데요?(웃음) 이제 보니 서로가 그렇네요.
그러니까요. 제가 한번은 전해 듣고 “왜 그러세요. 감독님. 진짜 창피해요” 했더니, 당신은 너무 오해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나라도 이렇게 ‘샤라웃(Shout out)’을 해야 한다고. 그말씀도 너무 감사했죠. 장동윤 씨도 같이 연기하면서 에너지를 주는 배우였어요. 연기를 너무 잘해요. 배려심도 깊고요. 제작사분들도 좋았고, 배우들도 다 좋고! 모든 게 참 좋았어요. 촬영지가 전라도라 꽤 멀었는데, 빨리 현장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 즐겁고 행복한 현장은 다 같이 만드는 거죠. 변영주 감독의 차기작을 제안받는다면 참여할 건가요?
전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놀고 있을게요, 감독님.(웃음) 그런데 제가 아니어도 작품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이분이 너무 소중한 거예요. 영화도 많이 하시고 더 잘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루 시간 내서 배우끼리 뭉치기로 했어요. 자발적 홍보로요. 청담동에서 배우 13명이 모여요. 제 유튜브 팀이 나오시고요.
하하, 그럼 진행비도 고현정의 사비인가요?
제가 내야죠! 배우들도 모두 같은 마음인 것 같아요. 감독님도 가능하면 끝자락에 오신대요. 이번 작품이 8회밖에 안 되니 짧아요. 홍보에 지금 올인해야 하는 시기다. 제가 그랬어요. 우리가 모여서 “사마귀!”라도 외치자고.
배우 열세 분이 스케줄을 맞췄다니 대단한데요. 사실 주연 배우 네 명 외에는 캐스팅이 공개되지 않아서 저도 궁금하네요.
맞아요. 아직 숨기고 있어요. 그래서 가면도 준비해야 하나 싶어요.
이 작품은 미담이 가득하네요. 작품을 위해 출연료를 조정하기도 했고요.
뭐 큰일을 한 게 아니라, 단역 배우분들에게 좀 더 드릴 수 있도록 많이 받는 배우들이 조금씩 그렇게 한 거예요.
갑자기 쑥스러워하네요? 그런 일이 많지 않으니 널리 알려야죠. 요즘 제작 환경이 점점 나빠져서 조연과 단역을 위한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드라마도, 연극도 같은 상황인데 그러면 절대 안 되거든요. 그렇게 역할이 줄어들면 작품에도 정말 손해예요. 같이 얘기하고 논의해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생활고에 시달리고, 생계를 고민하는 배우가 너무 많다는 걸 저는 아니까요.
작품도 새로운 모습을 찾듯이 화보도 항상 고민하죠. 오늘 화보 타이틀도 ‘고현정의 어나더 뷰티’였어요.
이렇게 메이크업을 전면에 내세워서 해본 적이 없어요. 화보 촬영을 자주 해봤지만 오늘 같은 시도는 처음이에요.
지난번 ‘로에베’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패션과 뷰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생각이 늘 흥미로워요. 요즘 메이크업에 대해 새로 든 생각이 있나요?
메이크업은 분장이 아니고, ‘화장’이잖아요. 화장은 나를 이기면 안 돼요. 저는 그래도 보여지는 직업이니까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본래 자신의 생김을 이겨내는 화장법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주근깨도 일부러 드러내듯이 자연스럽게, 때로는 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메이크업을 한다. 이런 생각으로 하면 괜찮지 않나 싶어요.
패션은 1960~70년대로 회귀하기도 하는데, 과거의 메이크업만큼은 그대로 돌아오지 않죠. 초기 작품을 보면 확연히 느껴져요.
불필요해졌어요. 예전에는 브라운관이었기에, 나갈 때 왜곡이 많았어요. 그래서 셰이딩도, 입술도 진하고 별별 화장이 많았죠. 그렇게 해도 화면에 평면적으로 보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예요.
컬러 렌즈가 보편화된 것도 예전과는 다르죠. 오늘도 착용했죠?
컬러 렌즈는 분위기가 확 바뀌죠. 어떤 때는 영감까지 줘요. 오늘은 헤어 컬러에 따라 메이크업 톤이 달라지니까 여행한 기분이에요. 너무 재미있고 좋던데요.
하하, 오늘 네 번의 여행을 한 셈이네요. 어떤 여행이 가장 즐거웠나요?
다 마음에 들어서 못 고르겠어요. 모두 해보지 않던 거여서요. 지금 마지막 메이크업은 주근깨를 그렸고요. 화보로만 가능한 시도들이 저는 항상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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