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아침을 깨우는 타이치는 노년의 운동이 아니다. 느린 몸짓으로 관절의 정렬을 바로 세우고 습관화한 화를 깨버리는 움직임일 뿐.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생소한 어휘 하나를 마주했다. ‘타이치(Tai Chi)’. 물 흐르듯 부드럽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태극권의 국제 통용 명칭인 타이치는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이루기 위한 실천 학문이다. 약 1600년경 중국의 진왕정이 창시했는데, 무술과 명상, 깨달음, 철학 등 몸과 마음에 대한 동북아시아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했다. 새벽녘 넓은 잔디 위에서 자세를 천천히 바꾸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문득 내 몸과 마음 챙기는 데에 나이가 무슨 소용인가 싶어 태극권 센터를 찾았다.

밝은빛 태극권 서울 센터 강수원 부원장은 타이치가 국내에서 저평가되고 있다면서 “해외에서는 타이치에 관한 연구 논문과 자료가 요가 자료의 2배가 넘습니다. 한국에서도 몸과 마음을 두루 챙기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 곧 타이치도 요가처럼 많은 사람이 찾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구글 학술 검색란에 타이치를 찾아보면 161만여 개의 결과가 나오는 반면, 요가는 74만6000개의 결과만 나온다. 미국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태극권 가이드북 <Harvard Medical School Guide to Tai Chi>를 출간하고, 공식 유튜브 채널에 태극권 동작을 설명하는 영상을 여럿 게시했다. 이 외에 수많은 의학 연구 결과가 태극권이 관절염과 골다공증, 파킨슨병 등 100여 개에 달하는 질병과 질환을 개선하는 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관절 중심의 운동답게 관절 회전 운동으로 나의 첫 타이치 체험이 시작됐다. 어깨, 팔꿈치, 손목, 고관절, 무릎, 발목, 경추, 흉추, 요추 관절 9개 중 뻐근하다고 느끼는 어깨와 현대인이 잘 쓰지 않는 고관절을 회전해보기로 했다. 꼬리뼈를 살짝 말아 넣고 발을 11자로 만들어 하체의 기반을 단단히 세웠다. 어깨의 힘을 빼고 주먹을 쥔 채 엄지와 검지만 쭉 펴서 마치 물줄기가 뿜어 나오는 듯 팔을 길게 늘였다. 그 상태로 천천히 가슴 높이까지 팔을 들어 올렸다. 팔의 각도를 바르게 만들어 손끝을 몸 쪽으로 밀자 그 힘이 어깨로 전해졌다. 각도를 조절하기 전에는 쉽게 구부러지던 팔과 어깨가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수업을 이끌어준 김민성 생텀마을 대표는 타이치가 체화된 습관과 관계망을 버리고 깨뜨리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사기종인(舍己從人), 응물자연(應物自然). 나를 버리고 상황에 따른다, 실재하는 그대로 보고 들음으로써 상황과 내가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에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은 텅 비운 채로 앞사람의 속도와 리듬, 관절의 각도에 응하여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권의 시작입니다.” 곧게 편 팔을 몇 번이고 회전한 뒤, 고관절 회전에 돌입했다. 사타구니 쪽 움푹 들어간 부분에 손을 얹고 배꼽은 정면을 향한 채로 앞, 뒤, 좌, 우, 사선까지 점 8개를 찍었다. 꼬리뼈가 뒤집히지 않도록 주의하며 점 8개를 서로 이어 하나의 원을 그렸다.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깊은 곳에서 색다른 움직임이 전해졌다. 쓰이지 않던 관절을 돌려내고 나니 뻐근한 통증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앞서 익힌 관절의 움직임을 활용해 도인법 2가지를 이어 배웠다. ‘떨어진 물은 다시 올라가고 타오른 불은 다시 내려간다’는 순환의 의미를 지닌 수승화강(水昇火降)과 관절 중심의 움직임을 통해 습관이나 고집으로 왜곡된 호흡이 아닌 본연의 호흡을 이끌어내는 호흡이종을 차례로 했다. 모든 태극권의 첫 자세로 움직임을 멈추는 ‘예비세(豫僃勢)’를 거쳐 위아래로 순환하는 수승화강의 이론과 같이 몸을 움직였다. 무릎을 조금 구부린 채 팔을 천천히 들어 머리 위까지 다다르면 이내 두 팔은 아래를 향한다. 팔이 복부까지 내려왔다면 무릎을 다시 구부려 바닥과 가까워지는 위치까지 내려간다. 연속적인 순환 동작으로 상하운동을 몇 차례 반복했다. 동작이 끝난 뒤에는 에너지를 거두는 과정인 수공으로 마무리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으로 이뤄져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의 균형을 잡은 상태로 순환을 만들어내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수승화강과 유사한 순환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호흡이종 도인법까지 연결했다. 관절을 사용하는 내내 호흡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팔을 올릴 때는 숨이 들이마셔졌고, 팔을 내릴 때 나도 모르게 숨이 내쉬어졌다. 김민성 대표는 그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호흡은 생명력을 나타내요. 그냥 우리가 가진 습관 같은 거죠. 일부러 들이마시고 내쉬는 걸 의식할 필요 없이 타고난 본연의 호흡을 하면 돼요. 그게 호흡이종이에요.”

여러 문파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양가태극권 103식에서 봄에 해당하는 1번부터 16번을 끊김 없이 한 호흡으로 춤추듯 따라 해본 뒤 수업을 마무리했다. 오랜 시간 수련이 필요한 움직임이었지만, 내가 가진 습관을 버리고 강사의 몸짓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꽤 자연스러운 자세가 갖춰졌다. 태극권의 심법(心法)이라던 응물자연을 이룬 듯했다. 관절 마디마디에 정체되어 있던 혈액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이리저리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처럼 온몸에 열감과 함께 기분 좋은 자극이 일어났다. 노년이 되어서야 만나기엔 아까웠다. 삐뚤어진 자세와 부정적인 마음이 만들어낸 관절의 뒤틀림과 가슴속 화를 털어내기에 딱이었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건강한 것이라고 했다. 자연이 가진 순환의 이치를 온몸으로 느낄 때에야 비로소 건강한 나를 마주하게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