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마인드 테라피가 나의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꿔놓는다는 말을 믿는가? 직접 걸려들기 전까지는 모르는 최면 치료의 세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에 밤잠을 설친 지도 어느덧 1년째. ‘오늘 만난 친구는 내가 던진 그 한마디에 혹시 기분이 상했을까?’ ‘부모님은 내가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면 부담스러워하시겠지?’ 새벽에 친구에게 오늘 미안했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남기는 일은 흔했다. 생각에게 잘 시간을 내어주고 얻은 건 눈 밑 다크서클과 구름이 낀 것처럼 희뿌연 머릿속. 매일 밤, 잠들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문득 이 끝없는 생각의 시작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20대 후반, 수많은 고민이 가져온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문제인가 싶었지만, 심리 상담을 받으러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만난 RTT(Rapid Transformational Therapy). 단 한 번의 세션으로 마음이 가진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 부정적 의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최면 테라피라니 한번 걸려들고 싶었다.

“최면? 너 그러다 큰일 나.” “못 깨어나는 거 아니야? 무서워.” 최면을 기반으로 한 테라피라는 말에 친구들의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못 깨어나는 것보다 최면에 걸리는 것이 가능한지가 더 의심스러워 홈페이지와 각종 포털 사이트를 샅샅이 탐색해보니 생각보다 꽤 과학적이었다. RTT는 신경가소성 이론을 기반으로 여러 심리요법과 신경과학, NLP(Neuro Linguistic Programing), CBT(Cognitive Behavioral Therapy) 등 최면요법의 가장 유익한 원리를 새롭게 결합해 탄생한 치료법이라고 했다.

본격적인 세션 전, RTT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원더마인즈(Wonderminds)의 정상훈 대표에게 간단한 사전 질문지와 설문지를 작성해 보냈다. 테라피를 받으려 결심한 이유와 내가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변화에 관한 의지 등을 적었다. 곧 걸려온 전화에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고, 꼼꼼히 답하며 테라피의 목표와 방향을 잡았다. 며칠 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방문한 서촌의 작은 스튜디오에는 요가원에서 즐겨 트는 잔잔한 명상 음악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가져온다는 고래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릇푸릇한 나무는 편안함을 줬다.

“우리 기억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잠재의식을 활성화해 반복적인 질문을 던지며 문제의 근본 원인에 관한 기억을 찾는 거예요. 최면이라고 하면 많이들 무서워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의지와 감각은 전부 살아 있는 상태에서 기억에 몰입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간에 답하기 꺼려지는 질문이 있다면 건너뛰셔도 되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오셔도 돼요. 최면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그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한 자동차라고 할 수 있어요.” 정 대표의 말에 지레 겁먹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제가 램프의 요정 지니라고 생각하시고, 이번 테라피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단 한 가지를 말해보세요.” 최면에 돌입하기 전 받은 질문에 이루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한참을 망설이다 뱉은 답은 ‘생각 줄이기’. 생각을 줄이면 스트레스도 줄겠지.

편안한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고서야 비로소 진짜 테라피 세션이 시작됐다. “턱은 고정한 채 제 손끝을 따라 눈을 움직여보세요.” 점점 높아지는 시선에 눈이 뻐근하게 아파오다 이내 파르르 떨리며 빠르게 움직였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양손을 높이 들었다. “양손이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서로 만나려 합니다.” 자석이 없다는 걸 알지만 두 손은 서서히 가까워졌다. 손이 맞닿으려는 순간, 정 대표가 손을 잡아 내려놓자 더 깊은 최면의 상태로 들어갔다. 손발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이내 땅속에서 누군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게 이완이에요. 눈이 떨리는 건 렘수면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죠. 렘수면 상태는 몸의 움직임을 저하시켜서 몸을 휴식하는 역할을 해요. 몸은 쉬지만 뇌파는 깨어 있습니다.” 이윽고 시작된 퍼즐 맞추기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사실 맨 처음 뭐가 보이는지 물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 ‘이러다 최면에 실패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테라피스트의 리드에 온전히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묻어둔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억을 꺼내놓을 때마다 당시 느낀 감정이 피부에 와닿았다. 웃기도 했다가 짜증도 냈다가 억울하기도 했다가 두려워하기도 하고 슬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이 ‘생각이 많다’는 내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남의 반응과 시선에 맞추려 애쓰다 결국 나를 잃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약 2시간의 테라피가 끝나고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씌워둔 필터 하나를 걷어낸 듯 산뜻하고 개운했다. 마치 긴 명상을 끝내고 난 것처럼. 문제를 직면하는 것만으로 마음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싶었던 의심은 온데간데없었다.
“RTT는 긍정을 확언하는 게 아니라 부정을 직면하게 하는 작업이에요. 나를 힘들게 하는 이슈를 다른 관점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거죠. 그 과정에서 감정 표현이 정말 중요해요. 이성과 감정 중에는 늘 감정이 이기거든요. 감정이 항상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납득하고 벗어나려 해도 깊은 곳에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 감정을 꺼내서 바라보고 달래줘야 해요.”

RTT는 최면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것 자체를 치료로 여긴다. 어떤 행동 가이드를 제공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그저 원인을 찾아 알아차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거다.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당장 그날 밤부터 잠이 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확연히 단축됐고, 쓸데없는 걱정의 빈도가 줄었다. 다른 걱정이 생길지언정 인간관계로 인한 걱정은 더 이상 머리에 없었다. 세션 참여자 각각의 고민에 맞게 약 15분의 길이로 제작된 커스터마이징 레코딩은 변화된 관점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도왔다.
“사람에게 새로운 생각이나 습관이 자리 잡는 데 필요한 시간이 최소 21일이라고 해요. 그래서 3주간 레코딩을 듣도록 하고 있어요.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들으면서 명상을 하면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될 거예요.” RTT를 탄생시킨 영국의 심리치료사 마리사 피어(Marisa Peer)는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힘은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한 번의 테라피로 내가 가진 마음의 짐을 모두 털어냈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느끼는 어려움과 나의 기억 사이 문제적 연결고리를 찾은 건 나 자신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