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의 영향일까? 2023년의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아름다움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뷰티, 다시 도약한 패션, 우리를 울고 웃게 한 컬처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까지, 2023년을 돌아보는 <얼루어> 리포트.

향기 르네상스 시대

지독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던 때, ‘향수’보다 좋은 치료제는 없었다. 작고 아름다운 보틀이 주는 시각적 행복과 코끝을 스치는 후각적 힐링은 코로나 블루의 치료약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3년 전 시작된 향수 시장의 부상은 올해도 프리미엄 니치 향수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힐리, 쿨티 밀라노, 플로리스 런던, 로렌조 빌로레시 등 다양한 브랜드가 론칭 소식을 알렸고, 딥티크, 산타마리아노벨라, 바이레도, 메모 파리 등 니치 향수를 등에 업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온라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6%나 상승했다. 한섬은 향수 편집 숍 리퀴드 퍼퓸바에 지속적으로 힘을 쏟고 있으며, 신라면세점도 향수 전문관 퍼퓸바를 오픈해 니치 향수 상품군을 대폭 강화했다. 그 영향력은 보디, 헤어, 홈 프래그런스로까지 이어졌다. 향수만큼 유니크한 향과 지속력을 갖춘 ‘퍼퓸드 보디로션’ ‘퍼퓸드 샴푸’뿐 아니라 디퓨저, 캔들, 인센스 스틱 등 공간에 향기를 더하는 제품이 쏟아졌다. 특히 홈 프래그런스는 향기가 선사하는 특유의 분위기에 오브제로도 손색없는 감각적 디자인까지 갖춰 인기를 끌었다. 누구나 향이 가진 힘을 인정하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향기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AGAIN, K-BEAUTY

우리나라가 국가별 화장품 수출 실적 전 세계 4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하며 저력을 드러냈다.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 같은 K-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던 황금기를 제대로 활용한 인디 뷰티 브랜드의 성과다. 쌀, 어성초, 자작나무 수액처럼 해외에서는 흔치 않은 한국적인 성분을 활용해 글로벌 소비자를 사로잡은 것. SNS 마케팅도 성공적이었다. 틱톡을 통해 뷰티 크리에이터와 협업하는 등 젠지 세대를 공략하면서 비싸고 노숙한 한방 화장품이라는 K-뷰티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조선미녀의 ‘맑은쌀 선크림’은 미국에서 누적 판매 800만 개를 돌파했고, 라운드랩은 올리브영 글로벌몰 매출 1위를 달성하며 올해 해외 수출량이 5배 증가했다. 주춤하던 K-뷰티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한 한 해다.

 

방구석 쇼핑 경쟁

이커머스가 뷰티 업계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화장품 시장 내 온오프라인 판매 채널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온라인이 52.2%, 오프라인이 47.8%로, 이미 집콕 쇼핑러가 절반을 넘어섰다. 이에 굵직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하나둘 뷰티 전문관을 개설하면서 온갖 이벤트와 기획전으로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 빠른 배송에 사활을 걸기도 하고,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맞춤 추천하거나 럭셔리 브랜드를 단독 입점시키는 등 저마다 차별성을 갖추려는 자리싸움이 거세다. 하지만 온라인 채널에서 뚜렷한 우위를 보이는 곳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

 

WELLNESS 전성기

보이는 아름다움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하기 위한 웰니스 트렌드가 곳곳에 녹아들었다. 템플 스테이, 치유 여행, 맞춤형 운동 등이 버킷 리스트에 추가됐고, 젊은 세대는 명상 앱을 활용해 혼자만의 내면 가꾸기에 힘썼다.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하는 에어리얼 후프, 펠든크라이스 무브 같은 색다른 운동법으로 ‘오운완’을 인증하고, 웰니스에 럭셔리를 더한 프라이빗 웰니스 프로그램도 줄을 지었다. 개인의 근골격계 분석을 통한 자세 교정, 무너진 근육을 재배열하는 페이스 시술 등 최소 1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인 더클리닉의 ‘리셋 프로그램’을 포함해 운동 전문가, 스파 전문가, 영양사가 연계된 차움의 ‘테라스파’ 등 이제껏 상상하지 못한 초호화 웰니스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 몸의 건강과 마음의 행복을 모두 추구하는 것이 또 하나의 자기 관리로 자리 잡은 것이다.

 

혁신의 클린니컬

클린뷰티에서 한발 더 나아간 ‘클린니컬 뷰티’가 등장했다. 클린뷰티가 안전한 성분을 내세웠다면, 클린니컬은 안전한 성분에 임상시험으로 검증한 과학적 효능까지 갖춘 제품을 말한다. 클린하면서도 피부 고민을 눈에 띄게 개선해 효과를 보장하는 셈. 자연스럽게 제약 회사 기반의 의학적 전문성을 앞세운 닥터 브랜드 제품이 주목받았다. 동화약품이 만든 후시다인의 ‘후시드 크림’은 판매액 200억원을 달성한 후 3세대 제품을 선보였고, 동국제약이 완성한 센텔리안24의 ‘더 마데카 크림’은 누적 판매량 4300만 개를 돌파했다. 동아제약 역시 흉터 치료제인 노스카나의 주성분을 내세운 뷰티 브랜드 파티온을 론칭, ‘노스카나인 트러블 세럼’으로 출시 6개월 만에 10만여 개를 판매했다. 자극은 줄이고 효능은 높인 클린니컬 뷰티,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는 소비자와 이를 만족시키려는 뷰티 업계의 진화가 창출한 신세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