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하고 빛날 찰나의 재미를 좇아. 자유로이 유영하는 제미나이. 

니트 톱과 팬츠는 지방시(Givenchy), 실버 네크리스는 오프화이트(Off-White), 브레이슬릿은 콜드프레임(Coldframe), 링은 톰 우드(Tom Wood), 팬츠 체인은 마틴 알리(Martine Ali). LEFT 재킷은 발렌티노(Valentino), 진주 네크리스는 콜드프레임.

지난해를 돌아보니 어땠어요?
솔직히 말하면 많이 아쉬워요. 작년 1월에 친구들이 2022년에는 몇 곡을 만들 건지 물어보길래 40곡이라고 답했거든요. 장난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터무니없는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느새 40곡이 목표치가 되어 있더라고요. 얘기한 걸 못 지킨 것 같아 괜히 미련이 남네요.

목표엔 어느 정도 도달했나요?
스무 곡 좀 안 되게 낸 것 같아요. 피처링 포함해도 1년에 40곡은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럼 반대로 작년에 한 일 중 가장 뿌듯하다고 생각되는 건요?
작업에 임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까지는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음악을 했다면, 2022년을 지나오면서 이왕 할 거 재밌게 하자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작업할 때 하고 싶은 게 잘 안 나오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편이었어요. 어느 순간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음악을 하나 싶더라고요. 더 즐기면서, 재밌게 할 수 있는 건데.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재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꾸준히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지난 12월에는 두 번째 미니 앨범 <Still Blue>를 발매했죠. 이전 앨범과는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사운드에 정말 공을 들였어요. 프로듀서이자 친한 친구이기도 한 과카(Kwaca)랑 진짜 싸워가면서 만들었을 정도로요. 악기 하나 바꿀 때도 “이건 어때?” 하면서 불쑥 끼어들고, 작업할 때 계속 뒤에서 지켜보면서 서 있고.(웃음) 제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Still Blue>를 가장 제미나이다운 앨범이라고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첫 번째 미니 앨범 <Inside Out> 활동이 끝난 뒤 몇 달간 방황하듯 보냈어요. 그 시간을 겪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선 것 같아요.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만드는 것이 내 기준에서의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번 앨범에는 제가 느낀 걸 제대로 담아내고 싶었고요.

수록곡 7곡 중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대변하는 노래를 꼽자면요?
이번 앨범 인트로 곡인 ‘Love Is Banned’요. 난 이제 사랑은 하지 않겠다. 일만 하겠다. 선포하고 떠나는 내용이에요. 조금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웃음) 지금은 일에 모든 에너지와 집중력을 쏟고 싶어요.

단순히 작업량 늘리는 걸 넘어서 숫자로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있나요?
물론이죠. 특히 상을 꼭 받고 싶어요. 이상하게 상에 대한 욕심이 커요. 이번 앨범을 만들 때도 상을 받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꿈은 구체화할수록 좋죠. 어떤 상이 목표인가요?
‘올해의 앨범상’이나 ‘올해의 트랙상’? 열심히 해야겠네요.(웃음)

지금까지의 앨범을 보면 사랑하는 순간의 기쁨이나 황홀함보다 사랑이 남긴 흔적을 이야기하는 노래가 많아요. 이유가 있어요?
앨범을 만들 당시에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이 자연스레 반영되는 것 같아요. 두 앨범을 만들 때 특별히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엄청난 행복을 느끼지도 않은, 잔잔한 상태였거든요. <Inside Out>의 ‘Slo-mo’는 분위기가 살짝 다른데, 예전에 써놓은 곡이라서 그래요. 엄청 행복했을 때였거든요.

행복을 말할 때는 과거형을 쓰네요. 최근에 그만큼의 행복을 느낀 적은 언제예요?
어떤 촬영 때문에 살을 많이 빼야 했어요. 2~3주 동안 눈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보일 만큼 체중 감량을 하고 무사히 촬영을 끝낸 뒤에 치킨을 먹었는데. 와…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게 뭐라고. 치킨에 맥주 하나로 친구랑 계속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었어요.

생각보다 쉽게 행복을 느끼네요?(웃음) 앨범 작업할 때는 왜 사소한 행복에 무뎌지는 것 같아요?
일을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중압감을 느끼는 거겠죠. 근데 저는 우울함 안에도 긍정적인 감정 상태가 섞여 있다고 봐요. 대부분 우울함 하면 잿빛만 생각할텐데 분명 그 안에도 밝은 면면이 있거든요. 그걸 완전한 ‘행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머무르게 해줘요. 이번 앨범을 만들 때는 그 묘한 감정 상태를 조금은 즐기면서 임했던 것 같고요. 우울함 안에서 찰나처럼 빛나는 순간을 골라서 곡을 만드는 거죠.

 

아우터와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링은 톰 우드, 브레이슬릿은 파나쉬(Panache), 니트 모자는 블루마블(Bluemarble).

아우터와 이너로 입은 재킷, 팬츠, 부츠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이어 커프와 링은 톰 우드, 브레이슬릿은 파나쉬.

지금 자신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게 음악밖에 없어서. 제게는 이 말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들려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니까요. 저는 어떤 일이든 관심이 있고 좋아야만 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재미가 있어야 해요.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럼 분명 당장의 힘든 무언가 때문에 재미가 잠깐 가려진 거라고 생각해요.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잖아요. 찾으려고 계속 노력하면 찾을 수 있더라고요.

요즘 제미나이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대상은 뭔가요?
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극과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특히 그루비룸이 오래전부터 많은 영감을 줬어요. 그 친구들은 진짜 쉬질 않아요.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위치까지 올라섰는데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 진짜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루비룸이 에어리어라는 레이블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계기가 제미나이라고 들었어요. 자신의 어떤 면이 에어리어의 포문을 열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은 절대 아닐 거예요. 저 진짜 부족한 부분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제게서 가능성을 확신했다면 점점 나아지는 과정을 봐왔기 때문이겠죠. 노력이 발전으로도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더 큰 기대를 품게 된 거 아닐까요?

그루비룸은 제미나이에게 어떤 파트너인가요?
사장님?(웃음) 동시에 정말 든든한 친구이자 동료죠.

그루비룸의 휘민 씨와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 사이라고 들었어요. 오랜 친구와 함께 일하는 데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제일 친한 친구와 일도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단점인 것 같아요.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도 훨씬 상처를 받게 된달까요. 친구지만 조금은 직설적으로 말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으니까. 저희가 친구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만큼 책임감도 느껴요. 저로 인해 그루비룸의 노력과 수고가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 책임감을 안주하지 않을 수 있는 동력으로 삼는 건가요?
적당한 부담감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요. 그래서 그루비룸 친구들한테도 칭찬을 2 정도 했으면 욕은 8만큼 해달라고 말해요.

상처 받는다면서요.
하하. 제가 또 쉽게 까먹는 편이라서 괜찮아요. 길어봤자 일주일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비보이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비보잉과 힙합 신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뭐예요?
초등학생 때 MTV라는 미국 음악 전문 채널을 자주 봤어요. 흑인 래퍼나 알앤비 가수가 많이 나왔는데, 그때부터 막연히 멋있다고 느낀 것 같아요. 춤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췄어요. 학교 안에서도 춤추고 싶어서 동아리 관리하는 선생님을 계속 찾아가 비보이 동아리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렸던 기억이 나요. 한 2주간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서 끈질기게 매달렸어요.

요즘에도 가끔 춤을 추나요?
아뇨. 이제 몸이 아파요.(웃음) 친구끼리 작업실 모여서 술 마시고 놀 때 보면 꼭 춤 한번 보여달래는 애들 있거든요. 그럴 때 흥이 올라서 살짝씩 추는 정도?

일정 없이 쉬는 날에는 주로 뭘 해요?
술 마십니다. 술자리를 좋아해요. 많이는 못 마시는데 요즘엔 술보다 친구들이랑 모여서 술 마시고 편하게 노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올해는 정규 앨범 계획도 있다고요. 어떤 이야기를 담아볼 생각이에요?
다음 앨범은 좀 해피한 무드로 가볼까 싶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둔 건 없지만 어쨌든 쓸쓸하고 우울한 건 피하려고요.(웃음)

새해 가장 큰 목표는 뭐예요?
정규 앨범 내기. 그리고 밤낮 바꾸기. 제가 되게 야행성이에요. 어제는 아침 6시에 잤나? 그러고 낮 12시에서 1시쯤 일어나요. 밤낮이 아예 바뀌어버리니까 돌려놓기가 어렵네요. 일단 늦게까지 놀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앨범 작업 끝냈다고 약속이 많았거든요.

인터뷰 끝나면 뭐할 거예요?
오늘은 일하려고요. 피곤하다 싶으면 퇴근하려 했는데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전적으로 컨디션에 따라 움직이거든요. 재미를 좇아서. 정말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