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속에서 죄책감 없이 와인을 마시기 위해 내추럴 와인을 골랐다. 과연, 내추럴 와인은 친환경적일까? 우리가 와인을 마시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 

언제부터인지 봄, 가을은 사라지고 냉동실과 찜통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극한의 여름, 겨울만 남았다. 와인 한 잔을 들고 TV를 켜니 와인 산지의 산불 소식에 마음도 타들어간다. 건조한 지역에서는 특별한 발화원이 없어도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마찰만으로도 불이 붙는다. 기온이 올라가면 발생 빈도는 자연히 더 높아진다. 포도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전소되지 않아도 스모크 테인트(Smoke Taint)가 묻어 한 해 농사를 포기하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경우도 생겨난다. 작년 4월에는 프랑스 전역에 때아닌 서리가 내려 포도밭의 약 80%가 피해를 보았다. 일반적으로 재앙을 맞고 나면 파생적으로 기진맥진한 포도나무에 질병이 세트로 따라와 수확을 마칠 때까지 내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역시나 ‘생태계를 교란하지 말 것, 친환경 와인을 만들고 소비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친환경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이름부터 자연에 가까운 내추럴 와인이다. 유기농이나 유기농법에 기초해 밭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달과 태양계 그리고 포도나무 생장 주기에 맞추어 경작하는 방식인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을 기본으로 와인 메이킹 과정에도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진 와인 메이킹 방법을 고수한다. 내추럴 와인이 유기농, 바이오다이내믹 와인과 차별화되는 점은 일종의 살균 처리와 산화방지제에 해당하는 이산화황(SO₂)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아주 적은 양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펑키한 미감을 선사하면서도 때론 예측하기 어려운 컨디션을 보이기도 한다. 매번 와인을 열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바로 그것이 큰 불안 요소이기도. 물론 이런 문제는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소비될 때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유통 거리가 좁아지면 탄소 발자국이 줄어들면서 와인 또한 산화방지제 없이도 안정적인 소비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와인은 여행을 한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내추럴 와인을 한국에서 마신다면? 와인의 안정성을 떠나 다른 그 어떤 와인보다 더 환경을 생각하는 와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캘리포니아와인협회는 포도밭을 경작하거나 양조를 하는 과정보다 패키징과 운송 과정에서 더 많은 양의 탄소 발자국이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포도밭과 양조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량과 패키징과 운송에서 발생하는 비율을 보면 약 49:51로 환산된다. 예를 들어 무거운 병에 담긴 내추럴 와인이 멀리멀리 여행을 해 소비된다면 100% 친환경 와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로컬 푸드를 애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와인에 큰 기대를 걸어봐야 하나? 쥐라나 보졸레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까? 한국 와인도 물론 훌륭하지만 한 번 맛본 세계의 맛을 잊을 수는 없다. 다행히 와인 업계에서도 탈탄소화를 고민하며 다양한 대체 방안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포장 형태를 변경하는 것. 유리병은 와인을 숙성하고 보관하기에 적합하지만 무겁고 적재 효율이 떨어져 운송에 드는 비용과 에너지가 크다. 대부분의 와인은 구매 직후 소비되는 것으로 추정되어 꼭 이 형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초저가 와인에만 사용된다고 알고 있는 백 인 박스(Bag in Box)가 좋은 예시다. 백 인 박스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 유리병 대신 종이 상자 안에 있는 진공팩에 와인을 넣는다. 싼 와인이라는 인식은 맞으면서도 틀리다. 보통 작은 팩은 3L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750mL 와인이 무려 4병이 담기는 사이즈다. 포장재 값을 덜어내고 와인을 담아낼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가격은 내려가게 되는 훌륭한 포맷. 스웨덴 정부의 와인 및 알코올 유통을 운영, 책임지는 시스템볼라겟(Systembolaget)의 경우 모든 와인병 무게를 420g 이하로 제한하고 이를 넘기는 생산자에게는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한 유통되는 와인의 55% 이상이 종이 박스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와인을 생필품으로 소비하고 있는 영국, 호주 등도 마찬가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지 드링킹 스타일의 와인의 경우 재활용 플라스틱을 이용한 평평한 보틀 또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대용량의 백 인 박스 이외에 좀 더 작은 포맷의 테트라팩이나 캔 형태로도 와인을 만들어 유통하지만 포장 단가가 높아 와인 가격이 비싸지는 단점이 있었다면 플랫 보틀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와인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적절한 단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포도 재배의 영역에는 토양 건강을 살피는 것뿐 아니라 야생 동물 서식지 보호와 수자원과 에너지 효율을 관리하고 기부하며 유통망을 단축하는 등의 더욱 광범위한 개념이 포함된다. 2019년에는 IWCA(International Wineries for Climate Action)라는 단체가 생겨나 약 30개의 와이너리가 참여하고 있다. 와이너리의 탄소 배출량 측정을 돕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산출 도구(Greenhouse Gas Emissions Calculator)를 출시,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레이스 투 제로(Race to Zero)’는 2050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한 민간 영역 탈탄소 경주의 출발을 알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이니셔티브다. 이 ‘레이스 투 제로’ 캠페인에도 와인 및 농업 분야 최초로 IWCA가 참가했다. 창립자인 잭슨 패밀리 와인(Jackson Family Wines)은 이 작업을 수치로 환산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상위 4개 병 주형의 무게를 5% 줄임으로써, 회사 전체의 탄소 배출량을 연간 2~3% 감축했다. 연간 유리 비용 중 1백만 달러, 연간 연료 비용 중 50만 달러 절감 효과를 누렸다. 얻은 이익은 재생 에너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진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탄소 배출 제로 차량과 트랙터로 전환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 위기 속에서 와인 평가의 기준 또한 달라지고 있다. 100점 환산제의 대표 주자인 로버트 파커는 최근 점수 옆에 초록색 도장을 찍는다. ‘로버트 파커 녹색 마크(Robert Parker Green Emblem)’가 그 움직임이다. 내일을 위해 더 큰 노력을 하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와인 생산자들을 가려내어 소개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녹색 마크를 받기 위해서는 포도밭 경작에 해당하는 유기농이나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은 것과 별개로 제조 공정이 생태계에 친화적이며 사회적으로도 책임 있는 과정을 통해 생산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개념을 포괄하고 있는 내추럴 와인은 분명 자연 친화적인 농산물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유지하기 위해선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와인을 만드는 양조업자는 대체로 유기 농법을 채택해 와인을 만들지만, 개개인과 지역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절하기도 한다. 수질, 어류 및 야생 동물 서식지를 보호하는 생산 방식을 인증하는 ‘Salmon-Safe’,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SIP Certified’ 인증을 받을 수도 있으며, 다양한 지역 산업 협회들도 명확한 기준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와인 강의를 할 때면 “와인병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은 와인이라는데,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정답은 “No”.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 탄산을 함유하고 있어야 하므로 병내 압력을 견디기 위해 아주 얇은 유리병을 사용할 수 없다. 스틸 와인보다 와인병이 묵직한 이유다. 하지만 스틸 와인도 스파클링 와인도 병 무게가 나가야 좋은 와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해외 와인 시장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무거운 병보다는 가벼운 병, 가벼운 병보다는 백 인 박스 포장재를 선호한다. 내추럴 와인이건 아니건 외형보다는 맛이 묵직하고 진중한 와인을 선택하는 것,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작은 노력이다.